고부기사진첩
언론의 호들갑과 미리 뿌려댄 비 때문에….
우린 결국 손절을 치고야 말았지
전날 8시까지도 패를 움켜쥐고 끝까지 버티다가 8시 반 죽도 패를 조용히 던져 버린거야…
그러고 나서 황찬과 고부기는 미리 예매했던 홍성행 열차를 다음날 서대전착 10시 20분 열차로
바꾸고 말았지.
그렇게 미탁전야는 난리부르스였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전날 까지도 청승맞은 가을비를 뿌리던 미탁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고요히 침잠한 흐린 날에 시원한 가을 바람이 소슬하더군
그리고 가끔 태양이 구름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누런 이를 드러내고 이죽거렸지
“뭔 일 있었어?”
보기 좋게 당했어 미탁이의 네다바이에….
우린 대신 옥천 관광을 하기로 했어…
꿩이 잡히지 않으면 대신 닭고기 먹으면 되는 거지….
근데 별루 아쉬울 것도 읍써
올해 못가믄 내년에 가믄 되지…
울릉도에서 만난 죽도는 울릉도 어딜가도 죽도록 따라와서 죽도라드만
홍성 앞바다에 빤히 보이는 죽도가 내년에는 워디루 도망갈 일도 읍구.
섬이란 우리가 세월에게 빼앗긴 많은 것들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곳이야
늘 기대와 기다림이 머무는 그리움의 선착장
거긴 화창한 봄날이나, 하늘이 높고 바람이 맑은 날이 더 좋지
우리가 즐거운 하루를 만드는 건 비단 장소의 문제만은 아니거든
우린 삼복 염천에 불타는 천안의 도심에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영화도 함께 보고 다방에서도 몇 시간 죽치면서 이바구를 틀수도 있는 능력자들이라
일단 차를 몰아 부소담악으로 갔어..
고부기의 해설에 따르면 "푸른 소에 떠 있는 그림 같은 담벼락 같은 바위들"……
풍경도 사람처럼 살아 있는 거야 …
우리가 같은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없듯이 우리는 같은 곳에 가도 늘 또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거지
계절과 날씨 그리고 동행하는 친구들과 그 날의 내 마음에 따라서도 시시각각 변하는 …
다음에 오면 배를 타야겠어
우리가 숲 속에서 들어가면 숲의 모습을 보지 못하듯이 좀더 멀리서 바라본 부소담악이 더 아름다울 테니
고리산에서 내려다 본 부소담악이 그림 같다고 느꼈던 그 날처럼.
그렇게 시장기를 좀더 부추키고 나서 우리는 금강 올갱이로 갔어….
대청호 순례길에서 제집 드나들 듯 들러 가던 곳
올갱이탕 한 그릇에 막걸리 두통을 비웠지…
이건 술이 아니여…
이건 해묵은 우리의 추억을 끌어 올리는 마중물이고
오늘 즐거운 하루에 불을 지피는 쌈지불이여
밥을 먹고 나니 날씨는 더 좋아져서 일단 먼저 걷는 코스를 택하기로 했어
생명강 전월마을에서 피실나루 까지 2.5km 목가적인 구간
가다가 으름을 따고 밤도 주으면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한가롭게 걷는 길
발이 편안하고 낭만적인 강둑 길을 걸어 피실 나루에 도착하면 강물이 막아선 곳에 옥천 팜랜드가
반겨준다..
체험학습 그리고 숙박과 캠핑을 겸하는 농장
커다란 개 한 마리가 길목을 지키고 있는데 사람들을 보고도 멀뚱멀뚱 바라본다..
으르렁 대지도 않는 그 태연함이 오히려 위압적인 카리스마를 발산하는데….
혹여 개줄이라도 풀어져 있을 까봐 잔뜩 긴장해서 우산대에 절로 힘이 간다.
근데 이 녀석 가만히 지켜보니 아주 순한 녀석이여….
농장에서는 그래도 귀에 익숙한 흘러간 시절의 팝송 멜로디가 흘러 나왔다.
누군가 오지의 외로움을 음악으로 달래려는 듯 볼륨을 한층 높인 채로...
천방지축 고부기.
길에서 주은 알밤만이 아니라 체험학습 밭에 들어가서 주은 굴따한 밤알들까지 수북하게 내놓으며
마냥 의기양양한 고부기
주인 아주머니는 미저리처럼 창가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데....
밤 몇 개 따다가 밤 나무 한 그루 값 물어준 야그도 못 들어 본 무식한 고부기
급기야 쥔 아줌마가 밖으로 나오고 제수씨가 눈치를 주어도 여전히 사태파악을 제대로 못하는 고부기
당최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철 없는 고부기.
그리고 그 긴박한 상황에서 다시 조용히 나서는 해결사 황찬이
숙박관련 질문을 하면서 노련하게 아주머니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분산시킨다.
그리고 주인 아줌마 말을 많이 시켜서 미심쩍어하는 아줌마의 의구심을 희석시키는 나
고부가 너 친구들 없으면 험한 세상 어찌 살라고 그러냐?
40명 수용하는 방이 40원
30명 수용하는 방이 30만원
4명 가족방이 15만원
캠핑 1인당 1만원
당최 산식이 맞지 않는데
수용 인원도 순전히 주인의 주관적 계산이고 시설에 비해 숙박비도 좀 비싼 편
그래도 친구들과 강변 길을 걷고, 저물어 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모닥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어 먹으면서
지난 이야기를 나누는 낭만은 누려 볼만 하지 않을까?….
집 당 텐트 하나씩 가지고 ….
되돌아 가서 차를 몰고 올 동안 여자들은 농장에 앉아서 놀고 있으라 했는데 모두들 같이 걸어 간데서
우린 모두 생명강 전원마을 강둑 길을 두 시간여 걸었다
부소담악 길을 포함하면 6km정도 걸었으니 밥값은 한 셈이다..
두 코스를 둘러보고 나니 4시가 넘어서 나머지 일정은 포기한 채 우린 한밭수산으로 갈 수 밖에
없었어..
농수산 시장 옆 문전성시 한밭수산.
어제 태풍이 지나 갔는디 여긴 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이여?
이 집을 보면 경제불황이니 소비침체니 당최 헛말이여….
오늘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렇게 애타게 소망하던 내일 이었고 조금 전 까지
어항에서 유유히 헤엄치던 새우와 고기는 허기에 지친 우리에게 잘근잘근 씹혀죽은 날이여.
난 광어만 해도 황송한데…
황찬이는 농어가 좋다고 하고
황찬댁은 한 술 떠서 가격이 거의 따불 수준인 줄돔 먹자고….
그랴서 우린 대하 2kg에 농어2kg를 먹고 줄돔 1kg을 더 추가해서 먹었다.
그게 끝이 아니여…
매운탕에 공기밥 2인분 까지….
근데 질과 양의 해묵은 논쟁에서도 늘 승자는 말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한마디 말도 없이 묵묵히
먹기만 하는 사람들이여 ..
고부기댁과 봉규댁 같이….
우야튼 삶의 스타일은 다 달라…
난 말이여 일단 양으로 시작해서 질로 승부하는 스탈이지
마치 자가증식하는 아메바처럼…
고도로 발달된 미각으로 그 수 많은 양의 질적 수준을 스스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거야…
광어에서 줄돔의 맛을 느낀다고나 할까?
맛의 차이는 비교에서만 성립하는 것이니까...
줄돔이 확실이 맛 있긴 하지만 같이만 안 먹으면 광어로도 줄돔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거지
근데 고부기는 말벌하고 원한관계에 사무쳐서
그 꼬리한 냄새가 나는 독한 말벌주를 혼자 다 마셨어….
말벌들의 아우슈비츠
독한 술에 말벌들을 산채로 다 담궈버렸으니 그 벌들의 한맺힌 죽음의 절규가 빚어낸 서슬 푸른 독기가
막힌 혈을 뚫어 건강과 정력을 증진시킨다는.....
친구들 쬐금만 주고 혼자 다 마셔버린 거야
독한 고부기
말벌한테 수십방을 쏘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 돌아 온 레버넌트 고부기
액땜한 것까지 따지면 나중에 120년은 거뜬히 살아갈 고부기
하여간 우린 모두 발벌주와 뎅구알버섯 소맥 까지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헤어졌자
인생 뭐 별거 있어 ?
매일 돌아야 하는 다람쥐 챗바퀴도 즐겁게 돌고
매일 먹어야 하는 그 나물에 그 밥도 맛 있게 먹다가
가끔 코에 바람 한 번씩 넣는 거지
가끔은 멋진 풍경을 보라보고 가끔은 맛있는 음식 앞에 두고 좋은 친구들과 술 한잔 치면서
그렇게 즐겁게 늙어가면 되는 거지.
이사람아 오늘 하루 이만 하믄 됐지 더 뭘 바래나?
그렇게 10월 HIOF 친구들과의 모임은 즐겁게 마무리되었다..
함께 여행을 하고 싶은 친구라면 좋은 친구들 아니겠어?
겨울 럭셔리 회갑여행을 목청 높여 부르짖던 황찬이 왜 슬며시 꽁지를 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에 가더라도 무엇을 먹더라도 우린 또 즐겁지 않겠어?
2019년 10월 3일 목요일
소요비용 :
금강올갱이 : 70,000원
대하&횟값 : 100,000원 (대하 2kg , 농어 2kg)
자릿세외 : 54,000원 (술,매운탕,공기밥 포함)
줄돔추가 : 38,000원 (1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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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 계 : 262,000 원
분 담 금 : 6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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