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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 500리길

대청호500리길 7구간 (고리산 -공곡재-방아실-와정삼거리)





















































































































































난 공허로부터 와서 공허로 돌아 간다.

긴 인생의 과정이 순식간에 흘러 갔고 내 존재의 가치는 나의 가슴과 기억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순간들이다.

 

귀연의 가야산 행보는 취소되었다.

로열티 높았던 산 친구들은 하나 둘 떠나고

가을 속으로 가는 귀연 마차는 허리 굽은 노년처럼 쓸쓸하다.

 

그러고 보니 참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하지만 고작 백두대간 두 번에 정맥 몇 개 하고 나니 훌쩍 지나갈 만큼

그렇게 짧은 세월이었다.

우린 그 세월에 젊음을 내어주고 웃음을 내어주고 친구를 내어주었군

그 만큼의 세월이 더 지나면 난 무엇을 더 내어 주어야 할까?

 

반가운 산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온 산을 헤집고

얼굴이 불콰 해진 채 붉은 단풍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돌아 오는 길

배낭에 담긴 추억과 가슴에 담은 사랑만으로도 더 없이 아름다웠던 날들이었는데

마치 다른 세상인 듯 우리에게 이렇게 적막한 가을이 또 있었던가 ?

산우들이 너무 적은 안스러움에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이젠

마음을 잃은 모양이다.

우리가 함께 했던 젊음이 세월의 심연으로 흘러든 것처럼 귀연의 해도 이젠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

어쩌라 영고성쇠가 다 삶의 섭리이어늘

늙음이란 억지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드는 거

내가 늙어가듯이 또한 늙어 가는 귀연에게

다시 돌아 올 생각없는 그리운 산 친구들에게…...

 

홀로 대청호 500리 길을 이어가기로 했다.

차리리 제일 뱃속 편하다.

이러저런 인연을 주렁주렁 달아매지 않고 떠나는 길이란

 

혼자 가니 치밀한 준비도 필요 없다.

딱히 몇 구간을 걷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마음이 동하는 대로 걷다가 그냥 시린 풍경에 머물고 다시 추억을 따라 나서는 거다.

 

약해산이 있는 대청호 깊은 곳은 너무도 고요하고 그림 같은 풍경이라 가고 싶기는 한데 고작 6km

정도라 약해 보인다.

그래도 혼자 누리는 자유는 거침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모처럼 고리산을 타고 방아실로 넘어가 와정 삼거리 까지 걷기로 했다.

500리길로 따지면 7-1 구간과 7구간을 한꺼번에 연결하는 것이다.

희망이 반영된 제법 야심 찬 계획이지만 그 옛날 악바리처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마무리하겠다 는

생각은 애초에 없다.

다 걸을 수 있으면 좋고 안되믄 다음에 걸으면 되지

 

그러고 보니 고리산도 꽤 오랜만이다.

오래 전에는 꽤 자주 갔던 산이었다.

신록과 어우러진 대청호의 풍경이 너무 좋아서

벚꽃과 싸리꽃 흐드러지는 사월이면 혼자도 많이 빠대고 술만 먹고 헤어지기에는 너무 아까운

친구들도 많이 데리고 갔다.

황골말로 올라 고리산 능선을 길게 타고 그 끄트머리에서 낙차 큰 비탈길을 구르듯 쏟아져 내리면

공곡재 아래 있는 외딴 잡에 도달한다.

그 곳에서 공곡재를 넘어 방아실로 흘러든 적도 있고 도로를 따라 시작점으로 돌아 온 적도 있으니

그 쪽엔 내 발 길이 닿지 않은 곳이 별로 없을 터이다.

게다가 그 쪽엔 대규모 할미꽃 군락지가 있어서 봄에 으례껏 한 번씩은 날 잡아 쏘다녔으니 그 일대는

정말 손바닥처럼 훤하다.

아 나는 할미꽃이 좋다.

어릴적 연못가에서 만난 노란 난초와 물방개

그리고 무덤가의 할미꽃은 내 고향의 언덕과 그 시절의 추억을 생각나게 해서인지

지금도 그 꽃들을 보면 마음이 설렌다.

그러니 봄이면 홀로 할미꽃 여행을 떠나는 건 잃어버린 동심을 찾아 떠나는 추억여행인 셈이다.

 

 

제법 단풍이 물들어 있었다.

봄의 풍경과는 다르게 다소 퇴페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갈색의 색감들이 편안 함을 가져다 주었다.

단 두 명의 산님을 만나고 그렇게 호젓하고 낭만적인 가을 길을 홀로 걸었다.

고리산을 지나 능선을 가파르게 내려섰다가 다시 한바탕 치고 오르더니 고꾸라지듯 곤두박질 친다.

고리산을 내려서고 나서 호반 도로를 따라 걸어 가는데 물가의 풍경이 한가롭다.

공곡재를 넘어 가는 길은 겨울에 마눌과 함께 넘었다.

그 때 눈이 펄펄 내리고 난 몇 일 뒤라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려서 바라보는 풍경이 더할 나위 없이

낭만적이었다.

장대한 눈으로 인해 버스는 끊어졌고 포장도로를 덮어버린 눈으로 인해 발길이 한결 편안했었다

 

그 때 그 길을 걸으며

뜽금없이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란 백석의 시가 생각났었다.






대청호 둘레길 11구간 (추소리 -대정리 나그네 횟집) 

http://blog.daum.net/goslow/17939877






세월이 많이 흘렀다.

마눌과 공곡재를 넘어간 건 2013년 겨울이었으니 햇수로 7년이 다 되어 간다.

사람 사는 이치는 다 같지만 그래도 내 삶은 많이도 변했다.

해가 다시 떠오르는 것이란 걸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처럼

31년을 하루같이 아무런 의문 없이 오갔던 그 길이 어느 날 막히고……

나의 삶을 구성했던 많은 것들이 하나 둘 내 곁을 떠나 갔다.

어제 비에 꽃 잎을 떨구는 꽃처럼

간밤의 바람에 가지가 꺾이고 잎새를 날리는 나목처럼

 

가끔 날개 꺾인 새의 아픔과 상실감이 찾아오고

외로움과 쓸쓸함이 친구 맺기를 졸라대기도 한다.

그렇게 염원하던 자유가 내 목을 조르고

외로운 건지, 괴로운 건지, 두려운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이 한동안 수면아래서 허우적 거리다 보면

흔들리지 않는 고요가 다시 찾아 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삶으로 떠오른다...

 

우린 다시 무엇이든 될 수가 있다.

영고성쇠,와 생로병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대 자연의 섭리를 벗어날 수 없지만 

궁극적으로 남은 삶은 단지 내 마음이 규정할 것이다.

또 다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던 그건 나의 운명이고 그리고 참이고 진리이다.

내가 늙어가도 내가 서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고

무엇을 하던 무엇이 되던 그것은 나를 위한 노래가 되어야 하고 내 영혼을 춤추게 해야 한다.  

중요한 건 나는 계속 내 인생의 여행을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잘 살아 오지 않았나?

이 험한 세상에서 힘들다고 주저 앉지 않고 아프다고 목놓아 소리쳐 울지 않고

아둥바둥 하지 않으면서도 드 넓은 세상 마음껏 누렸으니

 

마음 가는 대로

이젠 좀 더 느긋하고 여유로워도 되니 더 좋다..

바람 길에는 등짐 내리고 쉬어 가도 되니 어떤 풍경인들 더 살갑지 않을까?

그래

내게 가끔은 위로의 말을 보내고 가끔은 등도 토닥이며 남은 날은 그렇게 날 위해 사는 거지 .

 

그림 같은 호수를 바라보며 걸어가는데 길가의 감나무들이 탐스럽다.

마침 허기가 동하는 점심 때라 인적이 뜸한 길섶의 감을 하나 따서 먹는데

완전 홍시가 되기 점의 감 맛이 그렇게 달 수가 없다.

공곡재 정상에 당도할 때 까지 4개의 감을 따 먹고나니 밥 생각조차 없어진다.

 

공곡재 바로 아래서는 길가에 감나무가 엄청 크고 알이 너무 굵어 탐이 난 나머지 감나무 아래로

들어가서 스틱을 휘두르는데 바로 아래서 벼락 같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혼비백산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엉겁결에 죄송합니다. !”라고 말을 해 놓고 뒤에 붙일 말이 없다.

주인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도 그렇고

배가 고파서 그랬습니다도 그렇고

그래서 또 죄송합니다.” 하고 서둘러 돌아 서는데 감 주인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진 않았다.

 

대청호 둘레길은 마눌과 산길을 넘어 수상스키 훈련장을 거쳐 방아실 뒷산 수로를 타고 내려 나그네

횟집을 찾아 갔었다

대청호 500리 길은 도로를 따라 금오골 까지 가서 밭둑 길을 따라 방아실로 넘어간다.

근데 물이 많이차서 금호골에서 방아실로 넘어가는 호반길이 막히는 바람에 대정삼거리를 거쳐

방아실로 먼 길을 휘돌아 갔다.

끝까지 가볼 거라고 진행하다가 진흙창에 등산화가 빠지고 공장의 화학성분인 듯 오폐수 악취가 코를

찌르는 통에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대정삼거리를 휘돌아 방아실을 거쳐 수생식물원까지 진행 했으니 고리산을 내려와서는 3시간 동

안 계속 포장도로를 걸은 셈인데 그 곳에서도 잠시 요기를 하고 산 길을 타지 못하고 도로를 따

1시간 넘게 걸어 와정 삼거리에서 일정을 마감했으니 4시간 넘게 아스팔트 길을 걸었다.

시방 내가 모하는 시츄에이션 ?

발에 가해지는 피로로 따지면 8시간 산행보다 더 심하며 심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 젊은 날 그렇게 혹사 시키고도 여전히 짱짱한 내 다리인데 신주단지 모시듯 감싸고 보호해도

시원찮을 판에 완전 무자비한 테러와 고문을 가한 셈이다.

그려 내 다리야 고맙다.

누을자리 보고 발 뻗는 다고

그래도 내가 널 철썩 같이 믿으니 이렇게 기고만장해서 나대고 설치는거 거 아니것냐?

앞으로 남은 올해는 진짜 자중자애하마….

 

수생식물원은 굳게 닫혀 있어서 산 길로 와정삼거리를 연결하지 못햇다.

다음에는 약해산의 그림 같은 7-1 구간과 와정삼거리-수생식물원 구간을 한꺼번에 걸어야 겠다

도로를 따라 온 길을 되 집어 와정삼거리에 도착하니 430분 나와의 감미로운 밀회는 7시간

 15만에 그렇게 끝이 났다.

운 좋게 버스는 5분이 채 도지 않아 바람 같이 달려와 주었고 나는 세천에서 버스를 다시 갈아타고

이평리 황골말로 가서 나의 애마를 되찾아 귀로에 올랐던 것이다.

멀리 떠나지 않고도 제법 뻐근한 몸풀기 겸 옛 추억을 더듬어 가는 즐거운 여행길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