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내장산에 들었다.
그냥 떠나는 가을 여인에게 인사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하늘은 잿빛으로 흐리고 바람은 야단이었다..
날리는 낙엽따라 계절의 수심과 만추의 서정이 펄펄 날리는 길을 그녀와 함께 걷는데…
다소 냉소적이고 싸늘한 그녀의 표정이 더 고혹적이었다.
이렇게 슬프고 우울한 낯빛으로 구태여 가슴속의 뜨거운 사랑을 감추려 해도
바람에 날리는 그녀의 머리칼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우리의 가을은 그렇게 심오했다...
가을 사랑
누군가에게 가슴을 내보이고 사랑을 말한 다는 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그 사랑과 이별이 우릴 더 깊어지게 하기에….
대청호 가는 날
산 친구들과 너무 오랫동안 적조했다.
7월말 야유회 때 이후로 얼굴을 보지 못했으니 칩거가 너무 길어 졌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귀연 마차는 번번히 발이 묶였다.
그리고 벌써 11월 중순이 지나고
또 한 해가 간다고 술 한 잔 퍼 마시자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허물어지는 소중한 내 삶의 한 귀퉁이를 맨 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어서
우린 술기운의 허장성세와 술잔을 부딪히는 소리로 그 아픔을 감추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참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하지만 고작 백두대간 두 번에 정맥 몇 개 하고 나니 훌쩍 지나갈 만큼
그렇게 짧은 세월이었다.
우린 그 세월에 젊음을 내어주고 웃음을 내어주고 친구를 내어주었군
그 만큼의 세월이 더 지나면 우린 무엇을 더 내어 주어야 할까?
마치 다른 세상인 듯 우리에게 이렇게 적막한 가을이 또 있었던가 ?
반가운 산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온 산을 헤집고
얼굴이 불콰 해진 채 붉은 단풍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돌아 오는 길
배낭에 담긴 추억과 가슴에 담은 사랑만으로도 더 없이 아름다웠던 날들이었는데 …
우리가 함께 했던 젊음이 세월의 심연으로 흘러든 것처럼 귀연의 해도 이젠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
어쩌라 영고성쇠가 다 삶의 섭리이어늘
늙음이란 억지 웃음이라도 지으며 손을 흔들어야 하는 거
내가 늙어가듯이 또한 늙어 가는 귀연에게…
다시 돌아 올 생각없는 그리운 산 친구들에게…...
산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반가운 날에
뜽금없이 또 비가 온단다.
연속 2부작 일요 드라마….
지난 주엔 잔뜩 흐리고 바람이 불고
이번 주엔 뚝 떨어진 기온에 급기야 비 까지 내리고….
요즘은 일기예보가 잘 맞아서
비는 오후에나 쎄게 내릴 거라니
후딱 끝내고 막걸리 한잔 치고 돌아오면 되겠지 생각했다.
근데 그 분이 너무 빨리 오신 거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청승 맞은 가을비가 추실거리고
한여름 비처럼 점점 거세 졌다…
그래도 이렇게 나와서 산 친구들을 만나니 좋다.
정말 오랜만에 우산을 들고 산길을 오르내리자니 비던 눈이던 거침 없었던 지난 날의 기억들에
가슴이 시려온다.
10시간 꼬박 비를 맞아 등산화 속에서 개구리 울고 사타구니가 쓰려 어그적 거리던
사작부터 끝까지 뼈속까지 젖었던 어느 무모했던 날의 후련한 역설
간밤의 비와 이슬을 러셀하면서 걷던 안개비 내리던 새벽 대간 길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차가운 계곡물에 몸을 씻고 따뜻한 난방이 들어오던 차창에 기대어
비몽사몽의 눈으로 밀리던 풍경을 바라보던 뿌듯하고 따뜻했던 귀환
지리산 종주 중에 폭우를 만나 음정으로 하산 하던 날에 보았던 지리산의 슬픈 얼굴과
음정 길가에서 손을 흔들던 접시꽃의 해맑은 웃음
모두다 못 견디게 그리운 빗 길의 추억들이다.
추억만 남긴 채 모든 게 세월 속에 다 지나 갔다.
갈 길은 먼데 벌써 다리는 아파오고
비오는 산 길에 흰 머리카락 날리며 이빨 새 벌어진 노인 하나 그렇게 힘없이 웃고 있다.
바가 소환하는 추억과, 비오는 날의 수채화가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는 길
10시에 산행을 시작해서 도로와 들판을 가로지르고 초록감투마을과 산덕리 상산마을을 지나 산길로
접어 들더니 11시 20분 경에 곰실봉에 도착했다.
당이 떨어진다고 산 길 초입에서 에너지바를 먹던 헬레산이 배가 고팠는지 비를 긋는 전망대 게단
아래서 밥먹고 가자고 애원을 했는데도 모두들 못들은 척 청남대를 향해 갔다.
그래도 낙엽이 수북히 쌓인 산길이 포장도로보다 더 운치 있고 발이 편하다.
산길은 학바위 전망대를 앞두고 우측 산길로 접어 들어 청남대를 향해 가는 중에 몇 개의 봉우리를
더 넘어 간다.
그 가을의 모습이 너무 예쁘고 낭만적이라 우산을 들고 비를 긋는 와중에도 셔터를 누르려니 발 길이
자꾸 밀리는데 앞에서 자주 알바를 해주는 바람에 몇 번이나 선두그룹으로 나섰다가 다시 후미로
쳐지기를 반복했다.
마지막 임도 알바까지 하고나서 12시가 조금 넘어 청남대 뒷산 초소에 도착했다.
비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철망은 열려 있고 길을 넘어 간다면 청남대로 무료 입성하게 된단다.
옛날 같으면 총을 맞을 수 있겠지만 지금이야 시절이 좋아져서 단속할 사람도 없을 거고 설령 걸린다
해도 과태료 부과 명분도 없으니 훈방조치 될 게 뻔한 터
밥 먹을 곳이 마땅치 않은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날에는 청남대 안의 휴게소나 전시관에 들어가 점심을
먹고 잘 조성된 대통령 길이나 돌아보고 일정을 마무리 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는데 원안대로 진행 한단다.
이러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어느 길이든 걸으면 내 길이고 걷는 만큼이 다 내 땅인 걸
청남대 인근은 오래 전에 내가 사들인 땅이고
오늘 비오는 날에도 또 새 땅을 사들이면 더 부자가 되는 거지
어느 길인들 꽃 비만 내리고 어느 길인들 흙 비만 내릴까?
걸음이 보배고 마음이 부자라
마음은 멀리 걷는 만큼 넓어지고 높이 오르는 만큼 깊어지는 것
어디라도 걸을 수 있고 언제라도 걸을 마음이 있는데 무에 걱정이야?
오늘 내 길이 아니면 내일 내 길을 만들면 되고 오늘 걷지 못하면 내일 다시 걸으면 되지….
정말 이렇게 떼로 하는 날궃이는 내 취향이다.
혼자 비를 그으면 청승이라 할 테고
둘이 걸으면 낭만이라 할 텐데
요즘 60이 다 된 내 친구넘들 한 테 빗 속을 걷자 하면 때 이른 노망이라고 난리 칠 일이 뻔한데 오늘
이렇게 산친구들과 같이 빗 속을 같이 걷고 또 우아하게 우산을 들고 걸을 수 있는 편안한 산 길이니
좀 좋지 않은가?
거기다 걷는 걸음마다 지난날의 상념가 불현듯 소한되는 젊은 날의 추억 까지 따라 나서고 있으니…
가을 길은 우리나라 시국처럼 어수선 했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붉은 감이 잎 새 없는 가지에 가득 매달려 있는가 하면
가을걷이가 끝난 빈 들판에는 갈색의 늦가을 서정이 펄펄 날리고 길 섶의 은행나무는 노란 잎새를
남김 없이 떨구었다.
하산 길과 도로가에는 가장 아름다운 가을을 시새우는 단풍들의 축제가 한 창인데
어느 성질 급한 놈은 제풀에 낙엽을 제 떨군 채 빈 가지로 비를 긋고 어떤 넘은 화가 나서 붉으락
푸르락 아직 분을 못 삭히고 있다.
헬레산처럼 한잔 걸치고 제 흥에 불콰한 넘이 있는가 하면 엄동설한에 반팔 반바지 입고 설치는
큰놈처럼 이직 푸르뎅뎅 독야청정한 넘도 있고 노란 꽃 잎을 티워 낸 철없는 개나리도 있다.
하여간 비오는 호수의 그림 같은 풍경도 좋았지만 아름드리 나무들이 단풍에 물들어가거나 비 바람에
날리는 모습도 가을 전람회장의 꽤 볼만한 그림들 이었다.
쏟아지는 빗 속에서 가을 풍경 사진 찍으랴 질주하는 차를 신경쓰랴 바쁘기 짝이 없이 보내다 보니
일행들의 뒷모습이 자꾸 멀어진다.
길은 외줄기
아스팔트 길 삼백리…
중간에 분기되는 길이 없으니 일행은 놓칠 일은 없지만 너무 오래 위험한 도로를 걷다 보니 조금씩
지루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길이 500리길이라고 만들어 놓은 인사들이 참 한심하다.
길을 이를 방도가 달리 없었으니 그랬겠지만 너무 위험한 길 아닌가?
승질머리 더러운 버스 운전사들은 피하던지 말던지 니들이 알아서 하란 심산으로 걸어가는 도로쪽으로
더 바짝 지나 가면서 대놓고 으름짱을 놓는다.
멀리서도 일행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길래 속도를 빨리 해서 부지런히 걸어 가는데 웬걸 갑자기 넓은
주차장이 나오고 일행들이 모두 모여 있다.
빨래 끝~~~
청남대 제2 주차장
오늘의 젖은 빨래는 여기서 널기로 했다.
11키로 3시간 남짓 소요 ~~ 다소 아쉽긴 하지만 감성을 자극하는 우중 가을산책이었다.
움직임이 멎으니 체온은 급히 떨어져서 버스를 기다리며 작은 우산으로 비를 긋다가 경비아저씨들이
눈코뜰새 없이 바쁜 틈을 타서 몇몇 일행들과 경비실로 난입 히터를 켜고 여장을 정비하면서 비에
젖은 몸을 녹였다.
주객전도.
여긴 청남대을 출입하는 차량들을 확인하는 경비초소라 경비실 안의 모니터에 밖의 상황이 그대로 다
디스플레이가 되는데 우리는 히터 열기가 훈훈한 경비실에 앉아서 경비 아저씨들이 일을 잘 하는지
못하는지, 혹은 경비초소로 오는지 안 오는지 느긋하게 감시면서 휴식하다가 도착한 버스에 서둘러 올랐다.
당근 아저씨들게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으면서….
몸이 젖어 추위가 심한터라 비오는 한데에서 늦은 점심식사하기가 어려워 식당으로 갔다.
뜨내기 들이 찾아간 식당 치고는 추어탕 맛이 괜찮았다.
뜨거운 돌솥밥과 추어탕 그리고 한 잔의 소주로 차가운 날궃이의 여독은 말끔히 날려보냈다...
대청호 500리 길을 걷기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 간다.
다음달에 대장정을 마무리를 하게 되면 꼬박 2년이 걸린 셈이다.
이 길이 아니더라도 또 다른 어느 길을 걸었겠지만
우리가 만들었던 또 하나의 작은 시작이 끝을 맺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우리가 그 길을 걸으며 만났던 사람들
밟고 지나간 추억과 기쁨들
그건 우리 인생길의 작지만 또 하나의 아름다운 마무리로 오래 가슴에 남을 것이다.
또 많은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가 늙고 귀연이 늙어가도
먼 길을 걸을 수 있는 건강과 떠날 수 있는 자유와 열정이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인생의 아름다운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11월 17일 비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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