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도 쬐끔 따따무레한 날
날씨만 놓고 보면 큰 산에 들어 땀 한 번 쭉 빼고 계곡물에 뛰어들어야 하는 거
여름 대청호반 길
시원한 풍경을 바라보는 건 좋은데 그 푸른 물이 그림에 떡이라.
게다가 포장도로가 많은 구간이면 달아오른 땡 빛에 지열 까지 올라와서 거의 반숙이 된 채 걸어야
하는 게 단점이여..
그랴도 잠도 충분히 자고 느즈감치 길을 나서면 반가운 얼굴들이 반겨주고
별로 힘들지 않는 길을 느릿느릿 걷다 보면 그 재미란 넘도 꽁무니를 슬금슬금 따라오는 것이제..
지난 달에 왔었던 남대문 공원은 천천히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중이다.
모여서 단체 사진 한 장 급하게 찍고
난데 없는 화장실 공사로 볼 일도 보지 못한 채 잰 걸음으로 떠난다.
남대문리 버스 정류장을 지나고
길 따라 쭉 직진
건너편으로 남대문교도 보인다.
여긔 나무들은 다 죽은 것이여?
우짜 초록 잎새가 하나도 안 났능가?
남대문 삼거리도 지난다.
거구리 경로당
선두는 벌써 우회전 하여 거구리 마을 쪽으로 들어서고...
거구리 마을 이정표
신작로 큰 길을 따라 가다 요서 우회전 해요
길은 남대문리를 지나고 남대문 삼거리를 지나 거구리 방향으로 진행한다.
이 거구리 마을은 옛날 아홉사람의 부자가 살고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민마루, 남대문과 함께 남대문리에 있는 자연부락 중의 하나이다.
만마루는 최영 장군이 이곳에서 만지장을 만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남대문은 호점산성 남문 밖에 위치해 있는데 남대문리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길 섶에 좀 찌질한 오디가 영글어 가는데 몇 깨 따서 잎에 넣어보니 옛날 그 맛이 아니다.
날이 가물어서 그라는가?
오디가 통통하지도 않고 단맛도 별루여..
계곡으로 접어드니 바람도 출장 나가고 은근한 무더위가 슬며시 따라 붙는데….
그래도 좀 더 진행하니 숲 속 길이라 그늘이 좋다.
대청호 둘레 길을 할 때는 역으로 거구리로 내려 왔었다.
흐미 어디서 많이 맡아 본 요냄새가 뭔 냄새다냐?
.
임도가 잘 나 있고 수풀이 무성하여 선두팀을 따라 계곡 갈림길을 지나쳐 내쳐 갔다.
후미팀에서 계곡 갈림길에 500리길 표지판이 있다고 전갈이 왔다.
리본이 아니라 오리지날 대청호 표지판이…
7년 전에는 거꾸로 내려와 임도 중간으로 나온 기억이 있기는 한데 그 때 벌랏마을에서 소금골을
거쳐 거구리로 가는 산길이 험했고 길이 뚜렷하지 않아 헤맸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내가 내려왔었던 그 길인 것 같다.
표지판이 있으니 아래 길이 당연히 맞는 거지만 임도가 이리 좋으니 그 길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다.
대청호 둘레길과 500리길은 많은 곳에서 겹치지만 500리길이 더 넓고 길게 마을을 잇는다..
하지만 벌랏마을에서 거구리로 넘어어는 이 길은 둘레길과 500리길이 동일한데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으니 자꾸 길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이다.
잠시 추이를 지켜 보는데 대장과 선두그룹은 계속 가자는 분위기여서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새로운
길을 걸어볼 기회가 생겼다.
임도는 문중 납골묘에서 끝이 났다.
고성 박씨 납골묘..
이 곳 까지 잘 임도를 닦아 놓은 걸 보면 방귀깨나 뀌는 집안인 듯….
임도가 끊어진 그 곳에서 산대장님과 선두그룹이 계속 치고 가자고 한다.
“좋지요~~~!”
지난 번처럼 뚜렷했던 임도가 갑자기 끊어지고 산비탈이 막아 설 수도 있으니 원래 500리 제 길을
찾아가고 일행들 고생을 안 하자면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 길을 한 번 지나 보았고 대청호 길은 훗날에도 나의 놀이터가 되어야 할 곳이라 이 번
기회에 능선 길을 한 번 파악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조용히 침묵했다.
큰 산이라면 당연히 확실한 길을 찾는 게 맞겠지
헌데 여긴 내 사는 곳 가까이에 있는 야산이l고 오늘은 비교적 짧은 구간이라 시간도 널널하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대한 민국 어지간한 능선에는 다 길이 있다.
그리고 이런 길은 능선을 바라보면서 목측으로 어림해도 등로의 연결이 그려진다.
그려 ! 500리길 신루트를 한 번 개척해 보는 거지.
파묘한 비탈을 올라서서 바로 능선 길을 찾아 다행이다 싶었는데 뒤따르던 일행들이 합류하여 조금 더
진행하자 길이 갑자기 희미해 지면서 봉우리가 하나 더 길 앞을 막아 선다.
흐름을 보아하니 저 봉우리를 올랐다가 좌측으로 휘돌아 내려야 계곡 쪽으로 올라오는 원래 길과
만나게 될 것 같다.
봉우리로 오르는 길이 명확하지 않는데다 좌측 산허리에 작은 길의 흔적이 있어 답사겸 홀로 그 길을
따라 갔더니 중간에 길이 끊어진다.
다시 뒤돌아 나와 일행들과 봉우리를 치고 올랐다.
390봉 가는 길
390봉
봉우리는 일대에 우뚝하여 나뭇가지 사이로 대청호의 수려한 풍경들이 내다 보인다.
사계청소 하고 정자만 하나 세워 놓으면 대청호의 멋진 전망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지금 대청호 500리길을 다시 그리고 있는 거다.
기존의 잣대에 따르면 엄밀히 알바라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멋진 조망을 끼워 넣을 수 있다면 다시
그리기를 해도 좋지 않을까?
비록 굴곡과 낙차는 심하지만 그 또한 단조로운 길에 포인뜨가 되어 길의 멋이 더 살아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봉우리에서 잠시 완만한 하강이 진행되더니 길은 갑작스런 급경사로 이어지면서 길의 흔적이
없어졌다.
앞으로 쏟아질 것 같은 가파른 산비탈.
그렇구나!
길의 조성자도 이런 빈틈과 난해함 때문에 500리길의 원래 취지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이 길을
유보한 모양이다.
무장공비들의 난입….
곧 다시 지워지겠지만 우리 일행 20명은 고라니처럼 낙차 큰 능선을 빠대며 그렇게 새로운 길을
만들어 놓고 아래로 내려서서 원래의 500리 길로 복귀했다.
그리고 계곡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능선 안부에서 화려한 식단을 펼쳤다.
시원한 그늘아래 바람이 술술 지나다니는 능선 길목 한 켠에는 오늘 그렇게 보기 힘들었던 대청호
500리길 표지판이 떡 허니 붙어 있었다.
오늘은 취사팀이 없으니 소박한 산채 식단이다.
11시 30분
시간은 좀 이르지만 거친 산행 길에 체력소모도 있었던 터라 허기는 벌써부터 동하던 차였다..
모처럼 참석한 로그인이 상추와 쑥갓 쌈장을 잔뜩 가져와서 맛있는 성찬을 즐겼다.
나는 허겁지겁 상추쌈을 싸먹기에 바빠서 마눌이 싸준 총각김치를 내 놓을 생각도 못하고 산우들의
찬으로 점심을 모두 해결했다.
오디 갔었어? 뎐화해도 없데?
식사 하는 곳 나무 등걸에 떡허니 붙어 있는 500리길 이정표.
즐거운 식사 시간이 지나고 능선 길을 따라가다가 죄측으로 내려서니 소금골 밭으로 내려선다.
뻭빽한 수림을 벗어나 훤한 개활지로 나서니 마음이 다 후련해 진다.
비로서 누런 이를 드러내고 익살스레 웃고 있는 태양을 마주했는데 그 뜨거운 열기가 자못 강렬하다..
대전의 오지
누가 이런 골짜기에 이 넓은 밭을 개간 했을까?
잔둘이 많은 산간 땅이라 유실수나 나무를 심어 놓으면 좋을 듯 한데 깔끔하게 정리된 단정한 밭은
그 누구의 거친 땀방울이었으리라?
나는 대한 민국의 산하를 빠대며 다니느라 땀을 흘리고 그 눈군가는 산속에서 땅을 일구기 위해
굵은 땀방울을 쏟아내고…
매미의 놀타령과 농부의 흥타령 중 어느 것이 더 구성지고 신명이 날까?
굳이 비교할 필요가 있으랴
모두가 자기 목정으로 이 풍진을 한 세상을 노래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어늘…
불현듯 대전 가까이 이런 공기 좋은 곳이라면 농막을 짓소 나무을 가꾸며 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하고 고창으로 귀농한 용수와 고향으로 내려가 멋진 짐을 짓고 있는 차하사 생각이 났다.
더 나이가 들었을 때 도시와 시골 중 어는 곳이 노후의 삶을 살아가기에 더 좋은 곳일까?
나이가 들면 자연 속에 소요하는 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아직 까지 나의 생각은
도시가 답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시골은 마음의 평화를 누리기에 좋은 곳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골은 관계의 구조조정이 너무 빡세서 나와 자연만이 삶의 대부분이 될 것이다.
자연 속에 묻혀 살지만 새로운 세상의 더 넓은 자연을 찾아 나서는 발길은 더 더디고 힘들어 질
것이다.
내 삶에서 귀연을 구조조정 한다는 것 자체가 또한 큰 상실이 되지 않을까?
도시는 안정된 주거, 가족과 친구들을 허락하고 문화와 의료혜택을 제공할 것이다.
부족한 자연은 철저한 건강관리를 통해 매주 발품을 팔면 될 것이다.
아침에 버스타고 나가서 대청호 500리 길을 걷고 풍경 좋은 전원레스또랑에서 수제 정성도시락을
먹고 느릿느릿 돌아와 유성에서 온천하고 저녁에는 가족들과 주말 연속극을 시청한다.
다음날은 도서관에 가서 지난 여행에 관한 글을 쓰고 도서관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오후에는 여러 분야의 잡지를 구독하고 그 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빌려 읽는다.
그리고 저녁에는 친구들과 만나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밀린 이야기를 나눈다.
결국 노후 행복의 관문을 지키는 건 건강이다.
그리고 안채와 사랑채를 통하는 문은 열정과 궁핍하지 않은 경제력이 좌우할 것이다
땡빛 아래서 사진도 찍고 농도 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오미자 터널을 지나 벌랏마을과
벌랏 선착장 갈림길로 나왔다.
오미자 터널
벌랏 선착장 갈림길
.
벌랏 선착장
한 켠에 벤취도 있고 버스 정류장처럼 선착장 정류장이 있는 걸 보면 그 옛날엔 이 물길을 통해 배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선착장이 멀리 부강에서 소금을 실어 나르던 곳인 모양이다.
이 지역에는 염티재, 소금재, 소금골 등 유독 소금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염티(鹽峙) : 보은 일대의 소금 수송을 부강에서 운송하였는데 수송과정에 염티리 부락을 통과하기
위해 넘던 고개로 일명 소금고개로 소수의 소금장수들이 모여서 함께 넘던 고갯길이다.
부강~보은간 거리가 원채 멀어서 본 염티재에서 교대하기로 상호간 약속 장소로 이용되었다..
웃 염티 마을은 1980년도 큰 장마에 부락이 쓸려 가운데 염티로 이주하고 지금은 3집만 거주 하고 있다.
염티리를 크게는 웃염티, 가운데염티, 아래 염티(점촌)를 합하여 염티리라 부르고 있다.
몇몇만 나루터를 구경하고 모두들 벌랏마을로 올라 갔다.
벌랏 선착장 대합실
나루터에서 돌아오니 벌랏 마을은 뜨거운 태양아래 사람의 흔적이 없고 시원한 정자가 반겨 준다.
7년전 마눌과 대청호 둘레길을 걸을 때 버스 안에서 버스 안에서 인근마을 아저씨가 예전 잘 나갈
때의 벌랏마을에 대해 어러저러한 설명을 해주었었다.
벌랏마을은 원래 버랏마을이 맞는 이름이라고 했다.
(글쎄 인터넷의 모든 표기는 벌랏 이던데…)
예전에 한지가 많이 쓰이던 70년 대에는 대단히 융성했다고 하는데 한옥이 아파트로 대체되고
창호가 유리문으로 대체 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한다.
7년전이나 지금이나 사실 과거의 영화가 실감나지 않는다.
첩첩 오지에 길은 좁고 산 허리를 구비 구비 돌고 돌아 확장과 발전의 한계는 너무 명백해 보인다.
당시 아저씨는 한지 체험마을로 거듭나 사람들이 꽤 많이 찾고 있고 2010년에는 농천진흥청이
주관한 살고 싶고 가보고 싶은 마을 100선에 속한다고 했었는데 지난번이나 이번이나 외지인의
출입은 거의 없어 마을의 역동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거구리 산길은 변함없이 수풀과 잡목이 무성하고 한지 체험관은 문을 굳게 닫은 채 건물
은 방치된 걸 보니 관광 벌랏마을은 지자체의 의도대로 진척되지 않은 듯하다.
벌랏 마을 정자
선착장을 다녀오던 사이 쉬던 일행들이 하나 둘 떠나고 나서도 후미팀들은 한 동안 정자에서 노닐다
다시 소전마을을 향해 길을 잡는다.
소전 1리
소전 1리를 지나 소전 2리로 넘어 가는 운치 있는 길.
소전 마을을 휘돌아 올라가는 도로를 따라 가면서 벌랏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뜨거운 태양아래서도 마을의 풍경은 정겹기 그지 없고 한적한 시골 길을 걸으니 마음도 푸근해 진다
소전 2리 가는 언덕 배기에 있는 대청호 표지판과 머무는 이 없는 정자
모투이를 돌아 가는 길 !
나여 !
하루 2번 벌랏 마을을 오가는 버스 !
벌랏 마을 만큼 오래 산 길 가의 느티나무 !
조망의 언덕 !
언덕배기 조망터에서 대청호를 조망하고 내려오는 선두팀들과 교행하면서 꼴찌로 조망의 언덕에
올랐다.
무덤가 그늘아래 아직 많은 산우들이 휴식하고 있다.
산자와 죽은 자의 교감이 이루어 지는 곳이다.
풍경 좋은 곳을 으레껏 차지하고 있는 망자들…
그들 삶의 흔적은 누군가의 머릿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
그들은 이 풍경 좋은 길목에서 아무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익명으로 누워 있을 뿐이다.
그들 역시 살아 있던 날에는 뜨거운 호흡을 뿜어내며 산자의 기쁨을 누렸을 것이다.
그들은 살아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누렸을까?
죽어서 차지한 아름다운 땅은 단지 후손의 사랑이거나 욕심일 뿐
살아 있을 때 더 많이 움직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더 많이 누려야 한다.
그것이 삶과 죽음의 명확한 의미이다.
그 곳에서 멀리 대청호를 바라 보면서 한참을 휴식하다가 소전2리 마을로 길 따라 흘러 갔다.
소전 2리 가는 길에 !
소전 2구 !
마을 가까이에서 아줌마를 뒤에 태우고 경운기를 몰고 가던 아저씨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에게 묻는다.
“오데서 오시오?”
“남대문리에서 출발하여 거구리와 벌랏마을을 거쳐서 왔어요”
하고 내가 답을 하니 동네 뒤로 흘러가는 산릉을 가르키면서 그 산 길을 따라가서 끝에 있는 바위에
올라서면 진짜 조망이 멋지다고 덧붙인다.
그 산길로 남대문리가 연결된다시는데 그 좋은 산길을 두고 왜 땡빛 신작로를 걷느냐는 의미이기도 하다. .
염티재에서 연결되는 조망이 수려한 능선길로 다음에 우리가 그 길을 걸을 것이다.
다음에 저 산길을 따라 남대문리로 내려서는 루트를 알아 두어야 겠다.
동네 아줌마 두 분이 걸어 오길래
저 옆댕이 산을 가려면 어디로 올라가느냐 물으니 저 아래 언덕배기 근처라고 친절히 알려 주는데
막둥이처럼 대답은 “네”라고 하면서도 위치가 제대로 파악은 되지 않는다.
드디어 빨래 끝 !!
소정리 마을회관에서 물이 철철 넘치는 시원한 수박을 잘라 먹는다.
무더운 날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베어무는 한 조각 수박에 담긴 거룩한 카타르시스
그건 순례이 대미를 장식하는 멋진 피날레 였다.
백두대간 동창생 천사님이 쏘셨다.
“잘 먹엇어요!” 감사합니다.
소전2리 담벼락에 걸린 16구간 완주 기념 꽃다발
오디!
칠년 전에 왔던 나를 아는가?
오디 갔다 인제 왔니?
영화도 상을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보는 재미 있어야 하고
사는 것도 가오다시가 아니라 사는 재미 있어야 하는 거여
6년이 지나 다시 그 때의 글을 읽어 보니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난 대청호 둘레길의 이 구간을 걸으며 이렇게 적었었다.
그래도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서 어떤 길이라도 걸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 즐겁고 그 작은 발걸음이 삶의 새로운 변화와 충전의
시간이 되어 줄거라고 생각하는사람에게 대청호 둘레길이란 걸어 볼만한 길이다.
우리 가까이에 숨어 있는 거친 야생의 길과 내밀한 아름다운을 염탐해 보는 것만으로 그 시간은
충분한 의미와 가치 그리고 삶의 여유를 가져다 줄 것이다.
내가 가면 그것이 곧 길이다.
길도 없는 길을 걸었지만 그래도 호젓하고 즐거운 여행길이었다.
산 행 일 : 2019년 6월 16일 일요일
산 행 지 : 대청호 500리길 16구간 – 벌랏 마을길
구 간 : 남대문공원 -남대문리-거구리 - 벌랏한지마을-소전1리 - 소전2리 보건 진료소
거 리 : 약 10.5km
소 요 : 천천히 약 4시간 30분
날 씨 : 맑고 무덥다
동 행 : 귀연 21명
동행사진첩
돌아오는 길에 칸 교수가 산친구들을 집에 초대했다.
느닺없는 소고기 파티 !
상아님한테 술은 안 먹고 고기만 먹는다고 핀잔을 들었어도 (물론 고기를 훨씬 많이 먹긴 했지만 )
술도 고기도 엄청 먹었던 날이었다.
지난 주 이래 계속되는 연회고 여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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