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내게 말했다.
산다는 것은 내 안에서 무언가 하나씩 허물어 지고 사라지는 것이다.
삶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지만 인식의 끈은 짧은 인생보다도 더 짧고 죽는다는 것은 너무도 아득해서
생각조차 쉽사리 그 끝에 닿을 수 없다.
살아감이 바쁜 우린 천천히 다가오는 그림자 조차 아랑곳 하지 않는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욕심과 집착은 마치 영생을 누릴 것처럼 만족을 모른다.
산 그림자려니 ….
그 그림자는 누군가의 외로운 노을과 함께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갈 뿐이다.
누구나 생각한다.
나의 황혼은 노을처럼 낭만적일 것이다.
하지만 늘 푸를 것 같은 청춘도 시들고 마냥 넘치던 샘물도 바닥을 드러낼 때가 온다.
가끔 내 주변을 흘끔 거리는 사신(死神)을 본다
죽음이란 세월의 바람에 내 안의 모든 것들을 날려 버리고 마지막 남은 나의 몸이 한줌의 재로 훨훨
날아가는 것이다.
열씸히 살아가는 어느 날 죽음이 손을 흔들며 내 옆을 지나간다.
우린 비로서 죽음의 존재를 깨닫고 그가 내게 조금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종인이가 찾아 왔다.
머리를 깎고 암투병 중이었던 친구는 모처럼 밝은 표정이었다.
요즘은 가끔 통원치료를 하는데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우린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맛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이틀 뒤 종인이 핸드폰에서 한 통의 메세지가 왔다.
“오늘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습니다.”
통 연락이 없던 친구는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았을까?
친구는 나와 한끼의 점심을 나누고 홀연히 먼 길을 떠나갔다.
마지막 인사는 딸에게 맡겨 놓고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채 피어보지 못한 꽃다운 생명들은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갈갈이 찢어 놓고 통곡의 바다에
침묵했다.
21세기 눈부신 과학과 세계 7위 경제대국 대한민국과 자랑스런 국민들은 눈 앞에서 뒤집히고
가라앉는 배와 사람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우리의 슬픔과 분노는 숨막히는 그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그 어처구니 없고 부당한 죽음을
무기력하게 바라보았을 뿐이다.
어느 날 입원 중이었던 남실장이 광덕산 시산제에 참석을 했다.
얼마 전 갑자기 기력이 떨어지고 몸이 안 좋아 건강진단을 받았는데 췌장암 3기로 판정이 되어
급하게 입원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갑작스런 산행 참여는 놀라움이었다.
요리의 달인이고 무쇠 같이 단단한 체력으로 산행과 엠티비 자전거를 즐기는 아웃도어 매니아
였던 그의 얼굴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큼 힘들게 병마와 투병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방사선 치료가 저런거구나! “
내 일찍이 암투병의 무서움을 알고 있지만 무표정한 세월의 폭력은 너무도 가혹하고 무자비했다.
다들 걱정을 많이 했지만 남실장은 아픈 몸으로 그 가파르고 험한 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고사상이 다 차려지고 고사를 위해 산우들이 도열해 있는 가운데 함께 동행해준 산우들과 마지막
으로 정상에 도착했다.
각자 준비해온 음식으로 고사상을 차리고 산신령님께 절을 하는데 고삿상 앞에 엎드리며 소원하는
남실장의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그냥 이만큼이라도 산을 다니게 해주세요 !“
그 말은 내가 허리를 다치고 거친 산을 오르지 못하던 때 부처님께 빌던 말을 생각나게 했다.
“욕심부리지 않겠습니다. 허리만 예전처럼 돌려 주세요”
그건 나의 상황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벼랑 끝에선 삶의 절박함 이었다.
그 말은 더 허약해진 채로 살아가야 하는 수 많은 나의 날들에 대한 절망과 두려움을 일깨웠다.
광덕산 시산제가 2월 23일 이었다.
그리고 3월 9일 지리산 둘레길 15번 째 길을 그와 함께 걸었다.
원래 지리산 둘레길 길동무가 아니었지만 이미 체력적으로 거친 산은 오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그는 산꾼들의 고향 지리산에 지친 가슴을 기대고 싶었던 것 같다.
귀연에 가끔 얼굴을 내밀다가 엠티비 자전거에 빠져 자주 오지 못했지만 힘든 현실을 마주하면서
산친구들의 따뜻함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나서 그는 4월 13일 지리산 16번 째 길을 함께 걷지 못했다.
4월 24일 그는 무쇠 같은 체력과 무수한 산상요리의 요리의 전설을 남긴 채 홀연히 먼 길을 떠났다.
난 임자도의 전설을 기억한다.
남실장에 고향 임자도에 산우들을 초대한 그 날
지금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절세 고수가 보여 주었던 미각의 진수
벌써 빛 바랜 내 추억록에는 그날의 기억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린 불갑산과 벙산을 지나 김제평야 같은 드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대광
해수욕장으로 내려왔지
금빛 사구에 뿌리를 내린 고사리를 바라보며
보리수 열매를 따 먹으며 ….
내려오니 난리가 났더군
풍차 앞 해변에서….
무신 큰 잔치가 벌어진 줄 알았어
점심을 빵으로 대신한 시장함과 갈증으로
난 소주를 타서 맥주 세 잔을 거푸 마시고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아니 말을 할 겨를이 없었어
갑오징어가 너무 맛있고
병어회는 환상이고
병어찜과 꽃게탕도 쥑였지
소림사 주방장이 금방 튀겨낸 튀김과
단비님의 순간배송은 미각의 감동이었어
물론 마실표 돼지볶음과 소고기조림도 일품이었고
정암표 가죽나물 무침도 너무 서러운 맛이야
난 할말을 잊고 오직 본능에 충실했을 뿐.
다른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어
내 잘못이 아니여
원래 분위기를 위해서 단체음식은 좀 맛이 없어야 되는데
땀을 흘린 시장함에
일품요리에
독감에도 꺾이지 않는 모진 입맛의 삼위 일체에
난 이방인처럼 말 없이 먹을 수 밖에 없었어
그리고 조용히 헐떡이며 버스에 올랐지…
돌아오는 길
우린 유럽 지중해의 한적한 어느 마을을 댕겨온 듯
가슴이 뿌듯하고 따뜻해 졌어
잔잔하고 아름다운 섬의 영상과
소박하지만 산 친구의 넘치는 인정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
감동을 먹는다는 게 이런 거야
살만한 세상이고
떠나야 할 이유가 다섯 가지도 넘는다는 걸 보여준 여행길이었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바라보면
온 세상엔 보물이 가득해
신안 앞바다에 보물이 가득 가라앉아 있다 하지만
임자도가 바로 그 보물이 아닐까?
찾아준 기쁨과 잘 먹어준 기쁨에 취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아이처럼 기뻐하던 남실장
임자도 여행길이 혹여 불편할세라 노심초사했던 그 인정이 너무 고맙더군
귀연이란 이름으로 기꺼이 살아가는 날의 기쁨을 함께 노래할 친구가 있어서 좋구
아직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서 좋다네
가슴엔 여전히 아름다운 길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살아 있으니
5월은 그냥 훌쩍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봄이야
살아 있는 동안 아직 찾아 낼 보물이 너무 많음을 새삼 감사하면서 돌아오는 길엔
하늘이 더욱 푸르고 기분 좋은 취기가 쉴새 없이 행복한 추억과 상념을 불러다 주더군
안녕 임자도
안녕 친구들
그 때가 5월 이었다.
5월도 되지 않았는데 남실장은 서둘러 떠났다.
그는 한 줄기 바람처럼 잠시 세상을 스치고 그렇게 지나갔다.
난 안다.
궁극에 그가 잊지 못한 건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고 가슴 시린 자연이었음을 …
그가 애절했던 건 우리 모두가 넘치게 누리면서도 알아 채지 못하는 소박하고 평범한 날의 하루 였음을 …..
지리산의 한줄기 맑은 바람과
따뜻한 햇살
환하게 웃어주는 산우들의 사심 없는 웃음 이였음을….
사촌형이 돌아가실 때도 그랬고
짱짱했던 친구들이 하루아침에 떠나갈 때도 그랬다.
그 모질 다는 삶은 모두 그렇게 허망했다.
죽음이란 경우도 없고 순서도 없다.
삶이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다.
그 흔적은 사랑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다 조용히 희미해져 간다.
굵고 뜨거운 땀으로 야생마처럼 질주하던 아쉬운 젊은 날의 추억을 못내 아쉬워하며 남실장이
떠났다.
나는 그가 행복한 인생을 살았으리라 믿는다.
누구보다도 산과 자연을 가까이 하고 산 친구들에게 무언가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그였기에 …
어쩌면 그는 훌쩍 떠나야 하는 아픔보다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에 더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죽음은 예측할 수 없고 죽는 자의 고뇌와 안타까움은 늘 남은 자들의 몫으로 확정될 뿐이다.
아픈 가슴을 안고 무책임하게 떠난 그가 이승의 모든 아쉬움 훌훌 털고 저승에서도 명복을
누리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남은 그의 가족들이 그의 공백에 실의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고 행복한 인생을 살 아갈
수 있기를 빈다.
오늘 하루 다시 그 죽음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어쩌면 누군가의 죽음은 신이 살아 있는 자들에게 보내는 경고 인지 모른다.
인생은 시간이 정해진 짧은 여행길이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그 여행길은 취소될 수 있다.
그래서 여행길은 좀더 홀가분해져야 한다.
배낭에 너무 많은 짐을 넣고 떠나면 즐거워야 할 여행길이 힘겨울 수도 있다.
우린 많은 짐을 진 채로 궁극의 먼 여행을 떠날 수 없다.
걷지 못한 무수한 갈래 길을 아쉬워 할 것도 없다.
어느 길에나 사랑과 기쁨과 있고 어느 길에도 기쁨과 슬픔이 등을 맞대고 있다.
길은 언젠가 끝날 것이다.
내가 더 이상 걷지 못하는 어느 날 …
하지만 여행길은 원래 신나고 즐거워야 한다.
카르페디엠 ! 현재를 즐겨라 !
죽음이 내게 말했다. 2014년 4월 어느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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