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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8월의 뱀사골 - 장마와 태풍 사이

 

 

 

 

지난주 세우가 뿌리던 날에는 친구와 엄청난 수량의 대야산 계곡을 거슬러 올라 갔다.

이번 주는 대학 친구들과 지리산 뱀사골 탐방이 예정되어 있다.

사람들이 많은 비가 오고 계곡이 불어 위험한데 왜 가냐고 한다.

 

낸들 알았나?

오래 전에 잡아 놓은 한여름 피서 약속이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여름에는 원래 큰 산의 계곡에서 노니는 거다.

공사판 인부처럼 땀과 먼지로 얼룩지고 나서 물개처럼 검푸른 소로 자맥질 하는 거다.

그리고 목젖이 얼얼한 차가운 맥주 한 잔

그게 불타는 여름과 제대로 한 판 뜨는 거구 닝닝하고 끈적이는 삶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켜 스스로 리프래쉬 되는 거다

여름에 이만큼 후련한 카타르시스가 또 어디 있는가?

 

살아 가면서 굳이 예측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계획은 늘 변경될 수 있는 거구 우린 단지 판단하고 대응하면 된다.

그 기준은 오늘 그리고 카르페디엠

 

계곡 탐방이 어려우면 근처 풍경 좋은 곳을 우산 쓰고 걷다가 술 한잔 치면 되지

지리산 둘레 길은 일부 계곡 구간을 제외하고는 땡 빛 아래 에서는 걷기 힘든다.

여름엔 비가 오락가락 하는 때가 지리산 둘레 길을 돌아보는 최적의 타이밍이다.

마음이 없으면 몰라도 시간도 있고 친구도 있는데 문제될 일이 무에 있을까?

혼자라면 청승이라 하겠지만 동행도 있겠다.

우산 쓰고 우아하게 그 목가적인 풍경에 제대로 젖어 드는 것도 꽤나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큰 비에 계곡의 물이 불어나면 공단 측이 알아서 탐방을 제한한다.

그러니 가니 안가니 왈가왈부 할 것도 없고

산신령님이 부르시면 하고 대답하고 가면 된다.

가장 깝깝한 건 비온다고 떠나지 않고 거실에 죽치고 않자 리모콘 이리 저리 돌리는 거

친구들이야 무주 우중산행의 경험도 있으니 웬만한 비에는 취소하자는 얘기를 꺼내지도

않을 것이다.

 

거친 물살의 뱀사골 추억이 하도 많다 보니

그래도 지리산 둘레길 보다는 최적의 타이밍이 기대되는 뱀사골 계곡에 마음이 더 간다.

너무 물이 많아 뛰어들지는 못하고 발만 담구면 또 어떠랴?

그 길은 호젓하고도 웅장한 계곡미의 진수를 돌아볼 기회가 될 것이다.

어제 오후에 탐방길이 열리구 나서 아침 출발 전에 전화를 하니 날씨는 좋구 문은 활짝

열려 있다고 했다.

 

약간 흐린 하늘을 이고 출발을 했는데 뱀사골 가까이 가면서 날씨가 확연히 좋아 졌다.

미리와서 기다리면 태성을 만나 우리는 와운 마을로 갔다.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배부터 채우고 시작하자고 와운골 식당부터 찾았다.

천년송에 기댄 깡촌 산골마을의 변화가 가히 놀랄 만하다..

그래도 여기는 지리산 깊은 자락이지만 차가 들어 온다.

 

꺼먹돼지 두루치기에 나물무침 , 막걸리 한 통 그리고 공기밥 2

태성이 부침개에 필받은 항식이가 막걸리 두통을 더 시키고 우린 지리산 터줏대간 천년송을

만나기도 전에 불콰 해졌다.

 

통산 세번 째

2011년 지리산 옛길 탐방 때 만나고

20148월 마눌과 아들과 같이 찾았으니 벌써 6년이 흘렀다.

먼 발치 모습으로도 와락 반가움이 인다.

 

같은 할배인데 이 할배는 아즉 짱짱 하네.!”

대대적인 가지치기와 수액공급으로 영양 치료를 한다더니 세월에 눈에 뛰게 낡아간

나보다 훨씬 더 싱싱하다.

 

변화무쌍한 세상의 한 모퉁이에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거기 서 있는 것들을 만나는

것은 늘 감동이다.

인자 할배 더 자주 보것네 !

허구헌 날 지리산을 빠대다 이렇게 늙었으니 이젠 계곡에서 죽치고 앉아 풍류나 즐기고

시나 읊으면서 세월을 보내야지….

어머니나 지리산이나 늘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즐겁게 살아라 !”

가장 함축적인 삶의 조언이 아닐까?

그려 우리 나이엔 잘 노는 게 잘 사는 거다.

언젠가는 할배와 사진을 찍지 못하겠지만 그 때 까지는 아직 내 세상이여….

 

뱀사곡 계곡

계곡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그 어느 여름날의 장엄한 계곡에 비하면

우린 오랫동안 닫아 두었던 비밀의 문을 열어 우리의 삼발라에 둥지를 틀었고

차가운 계곡에는 전환이 가장 먼저 뛰어 들었다.

 

한번씩 자맥질과 수영을 하고 나서 물가 반석위에 앉아 각자 가져온 음식들을

펼치고 술 한잔 친다.

일찍이 친구와 더불어 시간을 보내는 기쁨이 선인들의 인생삼락에서 빠진 적이

없거늘 그림 같은 풍경에 한 잔의 술이 있고 천상의 눈물이 빚어낸 화음은

계곡을 가득 메우고 있으니

신선 놀음이 따로 있나?

여기가 무릉이고 우리가 신선이지

 

명상과 수행이 따로 있는가?

속인에게 도가 멀리 있는가?

번뇌와 미망을 내리고 고요한 맑은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으면 그것이 곧 명상이고

수행이지

내 마음속에서 기쁨이 넘쳐나면 그 것이 도에 가까이 다가감이지

우리 나이에 인생 모 있나?

남은 시간 건강하게 잘 놀다 가면 되는 거지

친구도 만나고

건강한 자연도 만나고 ,,,

 

세상이 시끄럽고 어수선 해도

내 마음 고요히 하고

세상과 세월이 가끔 심술을 부려도

그저 훌훌 털어버리고 허허 웃으며 사는 거지

 

물에 짜입은 팬티와 웃옷은 30분이 채 안되어 모두 마르고

우리는 혈기방장하여 뽀송뽀송해진 채 무사히 대전으로 배송되었다.

 

전 날까지 지리산 계곡에서 말술을 마실 것처럼 설레바리 치던 양표는 오지 않았다.

우리는 예정보다 좀 늦게 대전에 도착했고 옛 추억을 떠 올리며 비 내리는 유성을

홀로 거닐던 지호와 반가운 해후를 했다.

근데 친구들 힘이 너무 빠졌어 !

노구를 이끌고 지리산 왕복 4시간 차를 타고 10km 넘게 계곡 길을 왕복하고

차안에서는 떠드느라 잠도 안잤고

계곡에서는 수영하랴 막걸리 마시랴 바빴으니

오늘 하루 과로에다 취흥이 아직까지 도도한 터라....

사는 게 다 그렇다.

계산하믄서 살면  정신이 피곤하구  몸가는 대로 마음가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기분은 좋은데

몸이 말을 잘 안 듣는다.

친구 얼굴을 보러 불원천리 멀리서 달려온 지호에게 예의가 아닌데 우짜것노 친구야 ?

다 양표 때문이다.

 

 

하루 해가 넘어 갈 때 노을은 더 아름답고

한 해가 저물어 갈 때 귤은 더 잘 익어 향기롭다.

그렇게 많은 세월을 보냈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았다고 여유부리고 게으름 부리는가 ?

건강 잃지 말고, 마음 잃지 말고 이렇게 가끔 만나면서 즐겁게 살아가세

친구들!!!

 

 

 

 

 

핸펀사진 & 동행 사진첩 

 

 

 

2014년   천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