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선입관이라는 걸 쉽게 버리지 못한다.
비오는 날의 축축히 젖은 계곡을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어떤가?
아마도 위험하고.. 또 눈에 뵈는 것도 없는데 비 맞은 생쥐처럼 흠뻑 젖기라도 하면 낭패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지 않을까?.
내 어린 날에는 장마가 들면 대전천에는 큰물이 내려갔고 흐르는 물에 흽쓸려 내려오는 벌레를
잡아 먹으려는 날렵한 제비들의 무수한 비상과 하강을 반복하는 멋진 공중 공연이 있었다.
뚝방에는 구경꾼이 많았고 그 시절에는 으레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이 아주 많았다.
그 때는 지금과 같은 문화혜택이 없어 물구경과 불구경 그리고 써커스가 가장 큰 구경거리 였다.
그리고 철들고 보았던 화양동 계곡의 큰 물
장마비에 세찬 탁류가 휩쓸던 화양동 계곡의 모습과 그 때의 감동이 아직도 가슴에 선연하다
세월이 흘러 흘러 대한민국의 큰 산을 모두 섭렵하면서 무수한 심산의 계곡을 만났다.
비오는 날에도 하루종일 백두대간을 걸은 적이 있고
큰 비 내리는 계곡 산행의 스릴과 즐거운 추억도 셀 수 없이 많다.
산전 수전 다 겪은 이무기라고나 할까?
비가오면 수 많은 추억이 떠 오른다.
그리고 그날의 비릿한 물냄새와 짙은 수림의 향기 그리고 다이나믹한 날궃이의 격정이 함께
휘몰아 친다.
장한 빗 속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지나간 시간과 그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다.
장마라고 했다.
비는 연일 줄기차게 내리면서 여기 저기 무작위로 물 폭탄을 퍼부어 댔다.
남들은 수해를 걱정하고 철없는 난 그 와중에도 그 옛날의 장한 물구경을 떠올린다.
비는 감상을 자극하고 추억을 불러낸다..
지금도 다시 거리낌 없이 빗속으로 떠나고 싶은데 동행이 없다.
다들 세월보다 더 빨리 늙어가서 비가 내리면 떠날 생각을 접고 날개를 접는다.
혼자라도 가고 싶은 데 이젠 남들 눈에 비치는 청승이 바짓가랭이를 붙들고 적절한 타이밍에
시간을 맞추기도 쉽지가 않다.
몸이 매여 버리니 마음도 따라서 매이는 격이다.
조사장과 약속한 날에도 비가 온다고 했다.
폭염기의 산행이라 알탕하기 좋은 대야산을 낙점 했었다.
혼자 산행 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위험한 산행은 철저히 기피하는 조사장이라 비가 오면 당근
취소할거로 생각했다.
비가 안 오면 집으로 6시까지 가고 새벽에 비가 많이 내리면 다시 통화 하자고 통발을 하면서
내심 홀로 떠날 길을 떠 올렸는데 의외의 메시지가 날라 왔다.
“비가 와도 큰 비가 아닐 듯 하니 5시 30분에 만나는 게 어때요? ”라며 한 술 더 뜨는…
게다가 더덕도 캘 거라고 호미까지 가져 간다는데….
조사장이 우중산행을 불사한다니 하여간 해가 서 쪽에서 뜰 일이다.
알람을 새벽 4시에는 맞추어야 대충 요기를 하고 조사장 집으로 가는 데 4시 20분에 맞춘
탓에 시간이 바뻐 그냥 요깃거리만 주섬주섬 싸들고 새벽 속으로 질주 했다.
가는 비가 내리고 있는 …
우린 둘다 새벽형이다.
나야 새벽 일출을 만나러 갈 때는 새벽 3시에도 출발하지만 조사장은 일찍 내려와서 딱히
할 일이 없으면서도 새벽 출정을 고집한다.
단지 점심 때 맞추어 하산하여 주변 특산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일찍 귀가하여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우야튼 비오는 날에도 새벽의 들창을 열어젖히고 함께 날궃이 추억놀이를 할 친구가
있으니 난 좋은 거다…
대야산 계곡으로 가는 도중 조사장은 운전하면서 끊임없이 주절주절 애기하고
나는 가끔 맞장구를 쳐가며 계속 먹어 댔다.
빈 속에 산을 타는 것은 깡술을 마시고 산을 타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라 …
삶아간 오뎅을 먹고
추억의 보름달을 먹고
토마토를 먹고
옥수수 까지 먹는 나 ….
그라다 보니 7시가 채 안되어 세우가 흩어지는 대야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얼마 만인가?
2016년에 아들과 백두대간 하느라 조항산 거쳐 밀재에서 한 번 내려왔고 그 다음 달
버리미기재에서 대야산 거쳐 밀재로 한 번 더 내려 왔으니 벌써 4년이 지났다.
근데 오늘 예정한 등로인 피아골은 30년쯤 되었겠다.
산에 푹 빠지기 시작해서 발정난 들개처럼 혼자 대한민국의 산하를 빠대기 시작하던
즈음에 홀로 차를 몰고 찾았던 계곡이다.
예상 대로 였다.
갈수기에도 수량이 풍부하기로 유명하고 여름철이면 무수한 인파가 몰리는 대야산
계곡에는 인적이 없고 온 산에는 장한 계곡 물소리만 가득하다.
“큰 놈이여”
오랜만에 낚아 보는 월척이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큰물 맛이다.
미세한 입자의 물안개가 흐르며 축축히 젖어 있는 계곡의 공기는 청명하고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수림의 향기는 옛 추억의 냄새가 실려 있었다.
피아골
그 옛날 완전 원시의 계곡이었던 피아골은 잘 정비되어 있었다.
목교가 건설되어 있고 위험 구간에는 여지없이 데크와 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계곡과 같이 축축히 젖어 드는데도 등로가 점점 가파라 지면서 땀이 많이 났다.
30년 전의 추억이 어렴풋이 스친다.
오지의 험한 길을 로프를 잡고 힘들게 오르던 그날의 기억
세월이 많이 흐르긴 흐른 모양이다.
젊음 하나로 뛰어 오르던 거친 길의 힘겨운 기억이 모두 휘발되고 나니
곳추선 날 벼랑의 힘겨움도 이제 세월 탓으로 돌리고 싶어지는 모양이다.
“그 때 같기는 하것어?”
하지만 아직은 누가 뭐래도 싱싱하다.
.두 다리는 여전히 교각처럼 튼튼하고 마음은 늘 가지않은 길의 새로운 여행을 꿈꾼다
내 얼굴에서도 땀이 흐를 정도니 조사장은 마치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듯 땀으로
푹 젖었다.
어제 대전에 내려오자 마자 후배들과 술 한 잔 진하게 치고 10시쯤 돌아 와서 영화까지
한 편 때리고 잠들었으니 세 시간 남짓 잠을 잔 셈이다.
수면 부족으로 몸이 좀 찌뿌둥하긴 하지만 계곡의 청정한 공기와 시원한 물소리가
정신을 번쩍나게 해서 그런지 그다지 피곤한 줄을 모르겠다.
중간에 계곡에서 한 번 쉬고 나서 올라 치는데 쌩쌩하게 앞서가던 조사장의 발걸음이
눈에 보이게 밀리면서 힘들어 한다.
난 신나는 물구경과 그 풍경을 카메라의 눈으로 잡아 채느라 적절한 시간 안배가 되니
속도가 느리긴 해도 물 만난 가물치 격이다.
하여간 우리는 광천에 표효하는 대야산 계곡을 거슬러 올라 대야산 산정에 섰다.
눈에 뵈지 않는 잿빛 하늘에서 휘몰아 치는 바람은 완전 시원하다.
안개비가 흩어지는 정상에는 아무도 없다.
대한민국 대표명산 정상에 우리 둘의 인증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다니?
사진은 그렇다 치고 대야산 신령님 이 대목에서 안개는 걷어 주셔야 하는거 아닌가?
매년 시산제도 빼 좋지 않고 5년도 안되어 다시 인사드리는 건데….
“우짜 조사장하고만 오면 약속이라도 하신 듯 하늘 문을 문을 꼭꼭 닫으시나요?”
우리는 결국 함께 찍은 사진은 남기지 못한 채 서로의 머리를 깎아 주었다.
대야산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며 혹여나 올라오는 산님을 기다리고 마음이 바뀌신
산신령님이 큰 바람을 몰고와 대야 세상을 한 번 정도 열어주실 것을 기다렸지만 산
안개는 점점 더 자욱해 졌다.
멋진 바람의 공연을 감상하면서 좀더 기다리면 한 번쯤 사위가 열릴 것도 같은데 입술이
새파래진 조사장이 배낭을 둘러메고 떠날 채비를 한 채 은근히 하산을 압박해서 끝내
제대로 된 대야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하산의 길을 잡았다.
“언제 혼자라도 다시 또 한번 오지요 !”
밀재에 가다가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사위가 조금씩 열렸다.
조사장은 계속 가고 나는 사진을 찍느라 발길이 눈에 뛰게 지체되었다..
갈림길에서 조사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랫쪽으로 내려가는 길과 계속 진행하는 길
계속 진행하는 길에는 출입금지 표시판이 달려 있다.
밀재 방향은 아랫 쪽이 맞을 것 같은데 전화를 걸어 보니 계속 직진 했다고 한다.
그 길이 아니라고 했는데 아래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그 길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길을 잘못 들어도 같이 잘못 들어야지 !“
가다기 보니 길의 흔적은 있는데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다닌 길이 아니다.
다시 조사장에게 전화를 하고 절벽 난간에서 소리를 지르니 앞쪽 능선에서 소리가 들린다..
내 모습이 보인단다.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선 것을 직진했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우중알바!!
덕분에 나는 반대편 능선에서 운무가 걷히는 밀재 능선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나마 산신령님이 인도하고 열어주신 대야 나라였다.
다시 조사장과 만나서 내려오는 길에 한 쌍의 부부와 조우를 했다.
우리가 아침에 출발할 때 여장을 꾸리던 부부 였다.
밀재에 내려서기 전에 평평한 안부에서 요기를 하고 내려갈 준비를 하는데 산악회에서
왔는지 많은 사람들이 올라 오고 있다.
등로의 형태로 보아 이쪽으로 올라서 우리가 올라 온 방향인 피아골로 내려서는 것이
훨씬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밀재에서 상황을 보고 산을 길게 휘돌아 탈 것인지를 결정하기로 했었다.
밀재에서 바로 바로 내려가면 4km 정도
마귀할멈 통시바위로 휘돌아 내려가면 10km 정도 거리가 된다.
아마도 밀재에서 통시바위 까지 올라 차는 능선 구간만 오름길이고 나머지 구간은 내림길
이겠지만 2시간 30분 정도는 더 걸리니 4시간은 잡아야 하는데 세 시 정도는 되어야할
것 같다..
조사장의 의향을 물어 보니 밀재에서 그냥 하산 하잖다.
SO DO I
그만 내려가도 좋고, 더 가도 좋지만 오늘 같이 시계가 좋지 않은 날에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장마다 꼴뚜기가 아닌 바에야 사실 오늘 같은 날에는 눈에 뵈지 않는 능선길을 타는 것 보다
몇 년 만의 큰물을 흘려 보내는 용추골 물구경을 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밀재에서 내려가는 계곡이 피아골 보다 더 컸다.
당근 물소리도 더 우렁차고 수량도 훨씬 많았다.
양쪽 계곡에서 합수되는 물이 월령대와 용추로 내리 꽂히니 물보라를 날리며 흘러내리는
아랫 물길은 장관이었다.
내려오는 길에는 마치 유람하 듯 찬찬히 물길을 구경하면서 계곡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내다 보니 발길이 많이 지체되는 데 조사장이 목을 빼고 기다리는 월령대에 와서도
그 광포한 물굽이의 장관에 셔터를 누르느라 여념이 없으니 어이 상실
같은 요산요수 이지만 그 색깔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생각하겠다.
그래도 이제 조금씩 나에게 적응해가는 조사장이라 어느 길목에서는 묵묵히 기다린다.
월령대에서 용추로 내려가는 길은 계곡 양편으로 나누어 진다.
용추로 가는 건너편 길이 있는데 물이 불어 건널 수가 없고 지나온 길은 오리무중이니
오늘 알바사태도 있었던 터라 먼저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굳이 리바이벌 하지 않으려면 신발을 벗고 건너야 하는데 우린 다시 오던 등로를 따라
하산하기로 했다.
온 길을 되짚어 가니 좀 아쉽기는 했지만 얼마 내려가지 않아 반대편 계곡 길이 물이
불어난 지천에 의해 계속 끊어지는 모습을 보니 이쪽으로 온 게 오히려 천만 다행이다.
반대편 하산 길을 잡았으면 아마도 몇 번 더 등산화를 벗었어야 했다.
등로가 물길을 따라 같이 진행하지만 자세히 보면 여기도 알탕할 곳이 제법 많다.
그래도 오는 같은 날은 삼가는 편이 낫겠다.
계곡의 수량도 어마무시하고 조사장이 찬물에 멱감는 걸 아주 질색을 하니….
우리는 멋진 대야산 게곡을 만나고 물길 따라 무사히 내려 왔다.
조사장은 더덕을 캐서 몸보신 시켜 준다고 계속 계곡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내려 왔지만
빗속에 짙게 풍겨오는 더덕 냄새에도 결국 한 뿌리 더덕도 캐지 못했다.
대신 화양동 삼거리에서 향기 짙은 자연산 버섯 전골로 미각을 돋궈 주고 새벽 출정에 축난
심신을 보해 주었다.
이번 여행길에서도 코가 뻥 뚫리고 가슴이 후련해졌다.
가끔씩 가는 비가 뿌리기도 했지만 큰 비는 오지 않았고 비에 젖은 수림의 향기에 몸과 마음이
리프레쉬 되는 시원하고 상쾌한 여정이었다.
이 또한 평범하고 지루한 날에 불러 낸 신나는 변화의 바람이고 살아가는 날의 기쁨이었다.
산 행 일 : 2020년 7월 25일 일요일
산 행 지 : 대야산
산행코스 : 주차장 –용추-월령대-피아골-정상-밀재-월령대-용추-주차장
산행소요 : 5시간 20분 (정상에서 약 20분 휴식)
날 씨 : 흐림
동 행 : 조사장
경유지별 시간
06:55 출발
07:32 파아골 갈림길 // 대야산 1.9km , 밀재 1.9km , 주차장 2.3KM
08:56 대야산 정상 (약 20분 휴식)
10:51 밀재
11:31 월령대
12:20 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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