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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칠보산 - 속세에서 놓여나 쌍곡에 노닐다.

 

 

 

 

 

 

 

 

 

이기자 전우들 문막 두 번 째 입성

 

우린 같은 곳에서 참으로 오래 살아 왔지만 이순을 지나서 살아가는 이 세상은 마치 딴 세상 같다...

한바탕 코로나 광풍이 휩쓸면서 경제가 절딴 날 것 같이 난리치더니 주식시장은 다시 폭등하고 집

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초유의 뜨거운 여름이 예상되어 냉방기와 무더위 관련 사업이 대박이 날거라 더니 무더위 특수는

고사하고 아얘 쪽박 차기 일보 직전이다.

하늘은 구멍 난 듯이 연일 비를 퍼부어 댔고 대한민국의 뜨거운 여름은 축축히 젖어 들다가 온통

물에 잠겼다.

 

일반적인 상식과 과거의 경험 그리고 축적된 데이터 조차 모두 무용지물이 되는 세상이다.

마구 퍼부어 대며 제멋대로 돌아다니던 게릴라성 폭우가 몇 번을 다시 돌아와 때린 데 또 때려도

슈퍼 컴퓨터는 그 길을 계산 못하고 신경통 도지는 할아버지 허리보다 정확도가 더 떨어진다.

 

그리고 얼마 후

물에 잠긴 세상이 흉한 몰골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하늘은 다시 뜨거워지고 그동안 절치부심, 와신

상담하던 코로나가 대 반격을 시작했다.

 

눈에 뵈지도 않는 것들 때문에 온 세상이 다시 난리 부르스다.

이자슥들 고마해라 ! 마이 묵었다 아이가 !”

모임을 취소하자는 카톡이 연일 날아오더니 끝까지 못먹어도 고를 외치던 가족모임 마저 어머님

말씀 한마디에 바로 전날 깨갱 깨갱 꽁지를 내렸다.

 

문막에 다시 친구들이 찾아 주었다..

순전히 산신령님 빽으로 강원도의 관문을 지키는 수문장을 하고 있으니 기분은 강원도 산들을 원 없이

빠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강원도의 웅대한 산들이 다 그림의 떡이다.

주말에는 집에 가서 마눌도 보고 손자도 보면서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데다 금요일 밤에 대전에서

설악으로 떠나는 산악회들 조차 코로나로 지리멸렬이다.

 

멀리서 친구들이 다시 찾아 주었지만 오대와 설악 그리고 두타와 청옥은 멋진 가을이나 겨울로 미루

어야 겠다.

문막에서 1박 하고 설악에서 하룻밤을 더 유해야 제대로 그 풍경 속에 녹아들 수 있을 것이다..

세월이 아무리 하수상하고 전광석화처럼 변화하는 세상이라도 변함 없는 가치들이 있고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들 것 있다.

우리 삶을 더 빛나게 하고 의미 있게 하는 것들 …….

메멘토 모리

시간의 전차는 날개를 단 채 굉음을 울리면서 등 뒤를 쫒아오고 있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갔지만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우리가 추구하던 그 많은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것들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우린 먼저 동화마을 수목원에 가서 2시간 코스 산길 트레킹을 했다.

내가 동분서주 하면서 개발한 산책길이긴 한데 집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 평상시 활용이 잘 되지

않는다.

 

내일의 산행을 위해 오늘 명봉산 등정 까지는 어렵겠지만

우리는 즐거운 식사와 뒤풀이를 위해 두시간여 에피타이징 트레킹을 마다하지 않았다.

몸과 마음을 편하게 이완할 수 있는 힐링 산책 길

이 시간대에 이 길을 걸으면 방해받지 않는 황홀한 고독을 누릴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며 기분 좋게 산책을 마치고 위장이 조금씩 쪼그라 붙고

서서히 땅거미가 밀려 올 때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6km의 그리 만만하지 않은 산길에서 흘린 땀을 씻어 내고 뽀송뽀송해진 상쾌한 기분으로

문막골 정육식당에 마주 않으니 무릉이 따로 있나? 여기가 바로 문막 신선골 아닌가?

세월은 도도한 강물처럼 흘러 갔고..

우리가 그려 낸 삶의 그림도 원래 우리의 의도와는 많이 달라졌다.

걷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 보다는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에 대한 사랑이 남은 삶을 더 풍요롭게

할 것이다.

우린 삼겹살과 함께 지나간 세월을 구어 댔고 한 잔의 술잔에 추억과 살아가는 날의 기쁨을

타서 마셨다.

그리고 돌아와 다시 맥주 대짜배기 한 병과 소주 2병을 마저 비우고 조용히 잠들었다.

 

 

다음 날

칠보산을 가기로 했다..

칠보산을 낙점한 건 어제 2시간 산행을 했으니 무리하지 않는 게 나을 듯 했고

내려가는 길목에 위치한 산이고

수량이 풍부한 쌍곡 계곡을 끼고 있는 여름 산이라 땀 한 번 쭉 내고 뛰어들 수 있는 물 좋은 곳인

데다 8년이 지난 내 기억에도 아직 남아 있는 바위와 노송이 조화로웠던 기억들 때문이다.

 

차하사의 트럭을 쌍곡 휴게소에 두고 엄하사의 승용차로 떡바위 등로 입구로 이동했다.

떡 바위 들머리에서 친구들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고 계곡을 따라 올라 간다.

세월에 풍화된 기억으로도 능선으로 이동하는 갈림길이 나와야 하는데 길은 계속 계곡을 치고 오른다.

갈림길이 이리 멀리 있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

이 길은 분명 8년 전 산친구들과 올랐던 그 길이 아니다.

 

그래도 편안한 등로와 귀에 거슬리지 않는 계곡의 물소리와 매미 소리가 살갑고 가끔 불어 주는

골바람이 고맙긴 한데 그 길의 단조로음이 마음에 잔상처럼 남아 있는 풍경의 아쉬움을 들쳐 낸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기억만큼 불안정 한 것도 없다.

5년쯤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 산을 갔다 왔는지 기억이 희미해지고 그 길의 추억과 기쁨이 바람에

훨훨 날아 간다.

오래 간직하고 싶은 아쉬운 추억들이 빨리 사라지고 나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의 기억들 만이 남아

우리의 낯빛을 흐리게 하는 것이다.

행복에도 나름의 내공과 현명함이 필요하다.

우리가 아름다운 세상을 누려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또한 그 아름다운 추억과 기쁨이 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야 하지 않을까?

내가 사진 찍기와 기록 남기기에 집착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어찌 보면 기쁨을 불러내고 오래 잡아

매어 놓기 위한 내 삶의 방식일 뿐이다.

누구는 비싼 그림과 부동산을 사 모으고 나는 추억과 감동을 모으고…. .

 

사진을 찍을 만한 풍경이 별로 없는 평범한 산 길에서 몇 컷 누르지 않았다.

마지막 찍은 사진의 영상은 계속 나타나는 바람에 사진기에 메모리 카드가 없다는 걸 뒤 늦게

알아 차렸다.

산행 계획을 미리 잡아 놓았으니 지난주에 큰 카메라를 가져 왔는데 지난 번 찍은 사진작업을

위해 카메라에서 메모리카드를 빼 놓았다가 다시 끼워 넣지 않았고 오늘 따라 예비카드조차

가방에 넣어두지 않았다.

 

무릉객 요새 왜 이러니?

자난 번에는 치악산 정상에 어깨걸이 가방을 놓고 건들건들 내려오질 않나….?

어쨌든 등산은 몸보다 정신에 더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정작 내 정신줄이 느슨해지고

있으니 세월에 장사 없고 나이는 못 속이는 모양이다.

 

능선과 올라서면서부터 풍경은 눈에 뛰게 달라 졌다.

멋드러진 소나무와 바위가 나타날 때 마다 사진기의 아쉬움이 더 커진다.

먼 걱정이래?”

내년 여름에 디시 오면 되지

마눌과 같이 오든 친구와 같이 오든….

 

그래도 망각과 인간 기억의 한계가 좋은 점도 있다.

나쁜 기억으로부터 마음을 보호하고 오래 전에 본 아름다운 풍경이 마치 처음 보는 아름다운

절경인 듯 다시 탄성을 올린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멋진 조망이 또 새롭게 다가오니 이건 어쩌면 축복 아닌가?

행복이란 기억과 망각처럼 그렇게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기쁨은 죽죽 늘려서 꼭꼭 씹어 삼키고 슬픔일랑 개무시해서 유통기간을 더 짧게 하는 거

하지만 입 안에 들어와 모래알처럼 서걱거리는 슬픔을 뱉어 내는 건 삶의 내공이다.…

 

뜨거운 태양에 잔뜩 달구어질 각오로 정상에 올랐는데 마치 가을인 듯 가슴 까지 시원하게 하는

바람이 불어 주었다.

옥바람 !

우린 오늘 횡재한 것이여

여름날에 시원한 가을과 아름다운 절경을 다시 만난 오늘….

내 누누이 말하지만 이런 바람은 속세에서 줄어든 건강 수명을 1년은 더 늘릴 수 있다.

 

우린 능선의 옥바람과 절경을 음미하며 활목재를 휘돌았고 쌍곡계곡 절말 까지 휘돌아 물길 따라

여유롭게 흘러 내렸다.

하산 길은 편안하고 물이 풍부한 계곡의 풍광은 수려했다.

센스쟁이 칠보산 신령님이 가끔 태양을 불러내 주시고 바람을 거두어 땀이 조금씩 솟아 났고

인적에서 놓여난 계곡의 시원한 물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 들었다.

우린 마무리 알탕까지 제대로 하고 다시 환속했다.

 

구도자들은 수 많은 해탈을 통해 비로소 도의 경지에 오른다.

범인이 도의 지경에 가까이 가기가 쉬우랴만

걷기 또한 동적이고 명상이고 등산 또한 깨달음의 경지에 다가가는 수행의 과정이 될 수 있다면

보통사람들도 등산을 통해 도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난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몇 번의 해탈을 했는가?

명봉산 둘레길 산책하고 샤워 하면서 1

멀리서 찾아 준 친구와 술 한잔 치면서 두 번

그리고 오늘 칠보산 정상에서 옥바람에 심신을 씻고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면서 또 한 번

하산 길 계곡 청수에 온 몸의 진폐를 씻어 내면서 또 한 번

이미 난 무릉객이고 이런 추세라면 몇 년 안에 선계 입적은 따 놓은 당상이다.

 

칠보산은 7개의 보석을 간직한 산인 줄 알았는데 아름다운 7개의 봉우리를 가지고 있어서

칠봉산으로 불리웠다가 7개의 보물 같은 봉우리란 의미로 칠보산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린 칠보산에거 분명 7개의 보물을 만나고 왔다.

가슴을 씻어 주는 맑은 바람,

수려하고 후련한 풍경

멋들어진 바위와 조화로운 노송

거침없는 계곡의 청수

자연이 주는 셰례, 몸과 마음의 정화 - 알탕

친구

 

 

우야튼 칠보산은 내년 여름에 다시 와야 할 것 같다.

8년이 지난 내 기억은 정확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능선을 따라 오르는 코스는 금지구역으로 폐쇄 되었단다.

지도를 확인한 결과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떡 바위 들머리 바로 위에서 갈림길이 있다.

속리산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능선길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 버린 것이다.

내년에는 혼자 새벽에 날 새기 전에 와서 절경의 사진을 찍으며 능선 길을 따라 올라 정상에 올라

해돋이를 만나고 청석재 지나 보배산 찍고 돔마재로 하산해야 겠다.

 

차를 보배식당 마당에 주차하면서 내려와 옻닭을 먹기로 예약했는데 내려가면서 전화를 하니 

닭을 다 팔아 버려서 준비가 안 된단다.

고객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이런 식당은 오늘도 내일의 입소문과 단골들을 많이 잃어

버렸을 터이니 앞으로도 크게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우린 공짜 주차를 했고 닭대신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인 버섯 찌게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산 행 : 칠보산

산 행 : 2020822

산행 코스 : 떡바위- 청석재-정상-활목재-절말,쌍곡

소요 시간 : 4시간 30

: 흐리다 맑다 흐리다.

: 이기자 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