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기

가을로 가는 길목 - 덕유산

 

살아가는 어느 날 가슴이 후련해지는 맑은 바람을 맞고 가슴을 흔드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는 것은 삶의 힐링이고 위안이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에, 건조한 삶에 메마른 가슴이 축축히 젖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음은

살아가는 날의 감동이다.

 

그 곳에서는 눈과 귀가 맑아 진다,

고요하고 맑은 풍경이 나의 잠자는 감성을 깨우고 시심을 흔든다.

난 그 곳에서 어께 춤을 추는 내 얀의 젊음을 만나고 흥겨운 내 영혼의 콧노래 소리를 듣는다.

 

시인이 따로 있더냐?

표현할 수 없는 이 응어리와 탄식이 시가 되고

혈이 뚫리는 가슴으로 아름다움에 교감하는 내가 시인이지

 

 

신록과 철쭉이 함께 하는 봄도 지나고

여름 원추리 산행도 아니고

가을 단풍은 아직 이른 어중간한 여름의 끝자락

코로나는 여전히 엄중하고 10호 태풍 하이선이 북상중이라는데 우린 덕유로 떠났다.

 

설천에 들어서니 날씨가 가을날처럼 서늘하더니 곤도라를 타고 설천봉에 오르자 마치

겨울바람인듯 찬 바람이 휘몰아 치는데 그 갑작스런 한기에 몸이 잔뜩 움츠러 든다.

그래도 마눌은 긴 옷에 우비도 준비하고 자켓까지 가져왔으니 다행이다.

나도 여름 바람막이 하나는 챙겼다.

 

설천 하우스에 들러 오뎅꼬치 우동 한그릇 씩 비우고 출발이다.

그래도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몸에서 열이나 추위가 가시는데 사위가 드러난 향적봉에

도착하자 초장에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듯 바람의 위세가 자못 기세등등하다.

 

 

향정봉에서

인적은 드물고 세찬 바람길 한 가운데서 향적봉은 고요히 묵상하고 있다.

산의 적막을 깨는 건 세찬 바람소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보온용으로 입은 우비가 바람의

서슬에 가위 눌려 사시나무 떨 듯 떠는 소리다.

 

바람이 가까운 운무를 모두 날려 보내고 난 후

하이디의 고원 초지에는 뭉게구름 피어 오르고 아름다운 꽃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우짜든 큰 산이란 이래서 좋다.

 

계절을 구분하지 않고

날씨를 아랑곳 하지 않는 풍경

수많은 변수의 조합으로

예측을 불허하고 예상을 뒤엎는 새로운 감동으로 늘 우리를 맞이한다.

 

오늘 맑고 투명한 덕유의 풍경은 한 폭의 맑고 깨끗한 수채화 이고

심금을 울리는 한 편의 시고

오감을 깨우고 정신을 맑게 하는 대자연 의 영험한 기운이었다.

 

그 것도 내 복이다.

오늘 이 시간에 여기 서서 세상에 단 한나 뿐인 내가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그 풍경을 만나는 것도

복불복이지만

당연히 자주 산에 오르는 사람에게 그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중봉에서

 

내 생애 이렇듯 아름다운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산이 또 있으랴?

그 능선에는 한줌의 땀과 지난 시간의 추억과

내 삶의 아름다운 상념과 미완의 꿈이 남아 있다.

그 능선을 따라 무수한 세월이 지나 갔다.

난 그 능선을 걸으며 세상과 인생을 배우고 삶의 이치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도록 중봉에 서서 그 시린 풍경을 감상하며 지난날들의 감회에 젖는다.

가끔 태양이 구름 밖으로 나와 인사하고 이곳의 바람은 가을인 듯 시원하다.

눈길이 끝 닿는 먼 곳까지 덕유 세상은 웅혼하게 파노라마 치고.

초록으로 맑게 씻기운 유장한 능선은 꿈틀거리며 남으로 흘러간다.

목이 멘 그리움인지.

함께 했던 뜨거운  시간의 기억들 때문인지

덕유 화폭에 걸린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맑고 고요한 능선으로 갑자기 운무가 밀려 들었다.

순식간에 밀려드는 운무의 모습은 장관 이었다.

갑자기 평전을 뒤덮을 기세로 다가오던 운무는 능선 위에 유리벽이라도 가로막힌 듯

결국 산릉을 넘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살아가는 동안 무수한 대자연의 경외와 경이를 보여주신 덕유 산신령님의 깜짝

이벤트 였다.

다이나믹하고 변화무쌍한 덕유의 멋진 공연을 감상하고 다시 향적봉으로 돌아와

하산의 길을 잡았다.

 

 

하산길

내림길 백련사가 가까원지면서 양쪽 골짜기에서 계곡 물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계곡 물이 많이 불은 모양이다.

돌배 할배 나무에 인사하고 백련사에 들려 삼배를 드렸다.

백련사 아래서 물길 따라 어사길로 진행하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표효하는 계곡의 모습과 물소리 또한 장관이다.

마눌은 우비를 입고 나는 우산을 쓰고 계곡길로 계속 진행을 하는데 아무래도

굴곡이 있는 비에

젖은 길이 미끄러울 것 같아 다시 포장된 도로로 나와 남은 길을 걸어 내렸다.

 

내 사는 곳 가까이 있는 곳이고 그다지 마음이 급하지 않아

세월아 네월아 물길 따라 흘러내리다 보니 삼공리 탐방지원 센터에 도착하자 날은

어둑해 졌다.

코로나 때문에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되지 않는다.

우리는 콜택시비 만원을 주고 리조트로 회귀했다.

 

인근 맛집에서 버섯전골로 저녁식사를 하고 대전으로 돌아오다.

곤라도라 비용에 택시비까지 그래도 비용이 꽤 들어갔지만 힘들었던 만큼 마눌

만족도도 높았던 즐거운 여행길이었다..

 

 

산 행 일 : 202095일 토요일

산 행 지 : 덕유산

산행코스 : 리조트 만선하우스 곤도라 이영 설천봉 도착

설천봉-향적봉-중봉 향적봉-백련사-삼공리

산행거리 : 11km

소요시간 : 천천히 5시간 40

: 흐리고 바람 시원 그리고 비 조금

: 마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