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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

 

 

멀리 시골 마을이 보이고

길은 개울을 따라 다리를 건너고 밭둑을 지나 낮은 산허리로 넘어갑니다..

초록이 번져가는 들판 위로 산들 바람이 불어 갑니다..

무수한 꽃 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산자락에는 나비들이 나폴거립니다.

 

소풍 가는 날

어릴적 설렘과 즐거움으로 길 떠나던 그 날처럼

우리는 아이들처럼 들뜨고 즐거웠습니다.

익숙하고 편안한 풍경들이 삶에 가위눌린 동심을 돌려 주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고

사느라 잊어버린 고향이 풍경이 되살아 옵니다.

 

그 길을 걸으며 물기 없이 메말라 가던 가슴에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맑은 하늘과 흰구름이 조용히 가슴으로 들어 왔습니다.

정겨운 우리 산하의 풍경들

그 풍경을 바라 보는 우리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합니다.

그 소박하고 사소한 것들이 기쁨과 감동을 몰고 옵니다.

 

우린 길을 걸으며 어릴적 그림책을 한 장씩 넘깁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 세월의 짐을 조금씩 내려 놓습니다..

 

몸이 가벼워지고

걸음이 가벼워지고

나중에는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가벼워진 마음은 벌써 들판 저만치 앞서 달려가고

막 잠에서 깨어나는 싱그러운 대지 위로 감미로운 삶의 음악이 흐릅니다.

 

누군가는 삶을 전쟁터라 하고

누군가는 삶을 놀이터라고 생각합니다.

 

삶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삶을 전쟁터와 놀이터로 규정하게 하지만

한 발걸음 비켜 걸으면  우린 이렇게 쉽게 전쟁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느릿 느릿한 구불거리는 그 길은 우리에게 삶의 방식을 가르쳐 주는 듯 합니다.

우린 왜 그렇게 충혈된 두 눈을 부릅뜨고 늘 쫓기는 듯 삶을 살아야 하는지 

우리는 무엇이 그리 바뻐 빌딩 숲을 관통하는 대로를 쉬지 않고 빨리 달려야 하는지

 

우린 늘 묵중한 삶에 눌려 피로의 바다에 허우적 거립니다.

그 삶의 무게는 자신이 꾸린 배낭의 무게입니다.

가볍게 할 수 있는데 더 폼나게 꾸리고 더 많은 것을 집어 넣습니다.

바람 좋고 물 맑은 곳에서는 목을 축이고 다시 가면 되는데

늘  내리지 못하는 욕심으로 노심초사,  전전긍긍하면서

고작 한 평의 방을 향한 여행길을 스스로  고행의 길로 만들어 갑니다.

 

느리게 넘어가는 곡선의 길

급할 것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 가는 길

도시의 소음 대신 맑은 물소리와 눈 덮힌 산기슭의 고요가 가슴을 적시는 그 길은

자신의 삶을 위로하고 천천히 걸으면서 삶을 되돌아 보라고 굽어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깨알 같이 적힌 내 삶의 비망록

그 한 귀퉁이에 남아 있는 하얀 여백처럼  

그 길은 오랫만에  내 영혼에  휴식과 고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이런 시간이 참 좋습니다.

풍경을 감상하면서 느리게 걷고

친구와 가끔 편안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잠시 먹통이 되었던 소프트웨어는 봇물처럼 

잃었던 시간의 무수한 상념들을 떠올립니다.

우리가 살던 세상을 아득하게 잊은 것처럼

굳이 걷고자 한 구간의 끝,  그 종착지에 대한  집착도 사라졌습니다.

길이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여행이란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가 아닌 도달해가는 과정이라고...

 

잊고 살았던  향기가 다시 살아 옵니다. 

아득한 고향의 향기

아련한 친구의 향기

살아 가면서 잃어버린 소중한 것

그리고 무심코 창문너머로 던져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운 향기 

 

하루라는 시간은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확연히 다른 하루를 보내겠지만

자연과 함께하는 평범한 하루만으로도

힘겹고 답답한 삶의 응어리를 날려버리고 다시 희망과 의욕에 부풀 수 있습니다.

종달새처럼 즐거워질 수 있습니다.

딱딱하게 굳은 심장을 부드럽게 하고 메마른 가슴을 축축히 적실 수 있습니다.

오늘 같은 하루 !

이 평범하고 소박한 하루가 비범한 내일과 연결될 수 있음을  아시는 지요?

 

떠나라!

어디라도 ! 어디로라도! “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말입니다.

새로운 곳 가보지 않은 곳, 아름다운 곳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먹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움을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닐련지요?

 

길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아름답지만

그 길을 걸으며 무수한 느낌표와  감탄사를 흘리며

아름다운 풍경에 아이처럼 즐거워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지리산 길은 지워진 메모리의 소중한 부분을 재생시켜 주었습니다.

그 위에 스토리를 입히고  상상력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그 길이 치유의 길입니다.

그 길은 어떻게 길을 걷는 것이 가장 좋은 건지를 가르쳐줍니다.

우린 아이처럼 즐겁게 그 길을 걸으며 삶에 대해 감사하고 아름다운 자연에 경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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