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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산행

진호와 보문산 산책

 

사실 코로나는 핑계였다.

주말에 대전 내려가니 시간을 빼기 어려웠기 때문에 코로나를 빙자 했을 뿐

산행과 가족들을 우선 순위에 놓은 습관으로 인해 계속 밀린 일정

그깟 밥한 끼 먹는 먹는 시간을 내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었던 나의 무성의 일뿐

진호는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36년 직장생활하고 퇴직했다.

선생친구들이 모두 퇴직했으니 이젠 교수 친구들만 셋 남았나?

 

성격이 외골수고 개성과 소신이 뚜렸해서 사교의 스펙트럼이 넓지는 않지만

몇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배울 것이 많은 친구다.

 

요즘은 한국어 교사 과정을 수강하면서 낭만농부로 열심히 농사를 짓고

또한 열심히 운동을 하면서 여유롭고 유유자적하게 살아가고 있다.

 

 

원래 시내에서 죽치고 밥맛 먹는 것은 내 적성에 맞지 않아서 보문산 트레킹을

하자고 제안했다.

사실 보문산을 잡은 건 워낙 자신의 몸 관리를 철저히 하고 기름진 음식이나

술을 멀리하는 친구이기 때문이었다.

 

거기 까지는 괜찮았는데 세부 일정까지 내가 확정해서 통보했다

보문산성 찍고 시루봉거쳐서 사정공원 쪽 보문산 임도를 연계하는 3시간 산행을

하자고

친구가 산은 잘 타지만 농사짓느라 바쁘것 같아 나름 배려하다는 풍신이었는데

그것이야 말로 친구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은 나의 독선 이었다.

진호가 만나기 몇시간 전에 농사일 힘든 상황이라 산을 타지 말고 가볍게 둘레길을

걸었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다.

 

물론 노플러블럼이지

친구와 밥 한끼 하자는 자리니 먼저 친구의 의견을 물어 보는 게 도리였는데

내가 경솔 했던 거다.

친구가 많이 피로한 모양이다 싶어 조금만 걸으려 배낭도 놓고 모자도 놓고,

물도 안 가지고 비무장으로 약속장소에 가다.

그랴도 진호는 완전히 정식 산행 복장을 하고 왔다. .

진호는 농사짓느라 요 몇일 중노동하고 매일 아침 만보를 걷는 친구가 있어

아침운동을 하고 온 상황이었다.

 

하여간 오랜만에 만나 버섯찌게 우린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한가롭게

보문산 둘레길을 소요 했다.

햇빛이 났으면 지난 번 친구들과 봄볕에 까맣게 탔을 얼굴을 더 태웠을 텐데

한 번 빠끔이 구름 밖으로 내다보던 햇님은 구름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고

시원한 바람이 마구 불어주어 봄날의 산보로는 최적이었다.

 

근데 다 내려와서 또 문제가 생겼다.

핸드폰이 없는 거다.

내 가방 안에 얌전히 있어야 할 핸드폰이

마지막 임도 정자에서 시간을 보다가 의자에 놓고 온 모양이다.

 

핸드폰 잃어버리면 여간 골치 아픈게 아니다.

거기 카드 3장이 있고 모든 연락처에 회사 출근처리와 시스템 사용 까지 연결되어

있다.

어쩔 수 없이 같이 동행 하겠다던 진호를 보내고 길을 되짚어 가다.

가는 중에 혹시 핸드폰을 가져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만나는 사람들에게

수소문 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는데 중간에 집 나간 핸펀 소식을 알고 있는

부부를 정통으로 만난 거다

 

정자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핸드폰을 보고 어떻게 하느냐고 묻길래 그대로 그 자리에

놓아두라고 얘기 했으니 거기 가면 있을 거라고….

3km 지점에 도착하니 그 정자 그 자리에 핸펀이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 좋은나라!

대한민국 국민수준 정말 높은 나라여 !

그렇게 치악산에 이어 두 번째 집 나간 핸펀을 회수하여 산길로 집으로 돌아 오다.

 

핸드폰은 사진 몇 장 찍는 것 말고는 별로 꺼내지도 않았는데 왜 거기 두고

왔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처럼 보문산에 왔는데 산 옆댕이 길만 조금 걷다가 훌쩍 간다 하니

보문 산신령님이 서운해서 소맷부리를 잡아 댕기신 거지 …….

 

 

 

 

 

 

 

 

 

사월의 마지막 날 

2022년 4월 30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