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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눈 오는 빙원의 추억 - 둔주봉

 

 

 

 

내가 그랬지 ?

내 재산은 내가 번 돈이 아니라 내 머리 속의 보물지도 라고…

 

사회생활 초년생일 때 내 소망은 아파트 한 채와 차 한 대…

이미 내 소망은 오래 전애 다 이룬 셈이야

사실 그거 빼 놓으면 소유에 목말라 할 게 무에 있을까?

솔직히 내 것으로 만드는 데 욕심 내고 싶은 것은 이제 없는 것 같아

 

다 같은 집과 차가 아니라고?

집은 따뜻하고 잠 잘 오면 되고 차는 목적지 까지 잘 굴러 가면 되는 거지 

서재와 정원은 내 것이 훨 더 크고 훨씬 더 비쌀 걸?

 

나이가 든다는 건 어쩌면 갖고 싶은 것보다 가슴에 담고 싶은 것이 더 많아지는

건지도 몰라 …

내 식탁 화병에 꽃아 놓은 꽃보다 초원이 들 꽃이 더 사랑스러워지는….

 

내가 아끼는 애장품을 꼽아보라면 집과 회사에 하나씩 있는 파카 만년필

그리고 대전집과 문막집에 있는 등글개와 귀 후지개

하나 더 꼽으라면 아직 시간 잘 맞는 36년 차 론진 결혼시계…

 

생일날 무얼 사줄까 내게 물으면 딱히 갖고 싶은 게 없어 대답이 망설여 지지..

이번 생일에는 아직 고쳐 쓸만한 그레고리 배낭을 새것으로 샀다네…

실용에 기반한 것들인데 굳이 명품이나 새것을 고집할 마음만 없으면 사용에

아무런 문제나 불편이 없는 것들이지.

앞으로 더 사고 싶은 건 여행을 위한 자전거나 고성능 버너정도…

텐트는 허여사가 준거 써도 한동안은 별 문제 없을 것 같고….

 

난 돈이 더 많이 있어도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 두루두루 구경하는 거 말고는 별로

쓰고 싶은 데가 없어 …

물론 세상 구경 하다가 허기지면 맛 있는 것도 먹어야지 .

 

이 일을 계속하는 동안 물 건너 가는 건 제주도 말고는 물 건너 간 거지

 

오늘 같은 날 돈 많은 친구는 어딘가에 가서 펑펑 쓰면서 재미 있게 놀겠지….

(근데 놀아 줄 친구가 없으면 돈도 소용 없다네)

별로 부럽지 않고 거기 낑기고 싶지도 않아.

내 머리속의 지도를 따라 가면 돈 재마 보다 훨 재미 있는 일이 벌어지지….

적어도 내게는 ….

 

 

몸이 좀 회복되어 근질 근질 해지니 가슴이 먼저 울고 내 머릿속 보물 지도가 알아서

로딩되네.

영하 10도를 들락거리는 추운 날씨가 3일 이상 계속되면 가야할 곳이 있지

둔주봉

도시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강원도 산간 오지의 빙원

 

그려 이번 둔주봉은 1타 2피여 !

잊지 못할 한파의 추억을 떠 오르게 하는 제 철 풍경이고    

코로나한테 한 대 재대로 쳐 맞아서 오래 산에서 멀어져 있었으니

몸에 열 한번 후끈 올려서 내 몸에 남아 있는 감기 잔당들을 깨끗이 몰아 내야지

코로나 씨즌에 거의 8시간 이상씩 자서 요즘 내 평균 잠시간이 7시간은 족히되는데 

일요일 아침  6시간쯤 자고 눈이 떠졌다.

주섬주섬 여장을 꾸리고 고구마와 계란을 삶고 떡과 사과를 준비해서 6시쯤 출발
지하 주차장에서 느껴지는 싸한 날씨로 보아 오늘은 등주봉 산행의 길일 임에 틀림없어.


이정도 추위면  피실나루 까지 얼음 길도 열릴 것이다.

어제 아침이 영하 14도 , 오늘 아침은 영하8도

오늘의 여정은 그 옛날의 500길 추억과 강원도 산천어 축제의 추억을 소환하는

멋진 날이 될 수도 있고 가야 할 거친 산을 위한  가벼운 워밍업으로  안성맞춤일 듯


6시에 출발해서  7시가 다 되어 안남면사무소에 도착했다.
날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고 나는 훈훈한 차안에서 준비해간 음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바나나만 빼면 문막에서  아침 먹는 시간 그리고 먹는 식단 그대로다.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차가운 공기가 몸을 절로 움츠러 들게 한다.
“그래 이정도 되어야 겨울 맛이 나지.!”

이 추위가 나를 웅크리게 하지 않는 걸 보면

입맛도 다시 돌아오고 새벽 길을 열기 위해 배낭을 메고 싶어 지는걸 보면 코로나 이넘들

이제 방대 놓은 게 확실한 거 가터 

 

하여간 대단한 넘이긴 하다
수십 년 잔병과 감기 란걸 모르고 살았던 나를 한 방에 때려눕혔으니.

30년 전통에 빛나는 야외 활동의 맥을 끊고  3주를 칩거하게 만들었으니 …

오늘은  독락정을 거쳐 금정골 까지 가서 피실나루까지는 얼음길 트레킹하고 다시 금정골로

돌아와 등주봉과 한반도 지형 전망대에 올랐다가 차가 있는 안남면사무소 하산하는 코스다..
천천히 거러도 3시간 30분이면 충분할 거라… .

친구들과  자주  올랐던  독락정에는 7시40분 도착 했다.
20년 안팎의 세월이  참 아득하다 .

아름다운 시절 이었다.

회사에서는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친구들과 새로운 풍경을 찾아가는 기쁨에 들뜨고 …
그 친구들과 함께 누린 멋진 풍경들과 함께 밟고 지나간 기쁨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강변 길을 따라 걷는다.

강물은 꽁꽁 얼었다.

그래도 얼음에 갇힌 저 배들이 다시 고기잡이에 나갈 날도 멀지 않았다.

얼음의 강도를 확인 하기 위해 강으로 내려가 강가의 얼음을 지쳐 보지만 얼어붙은 강은

이래저래 수척해진 내 체중이라 그런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요 몇 년을 놓고 보면 올 겨울이 가장 풍성한 겨울이었다.

속리산에서 11월에 첫 눈을 맞고 가히 눈사태와 같은 많은 눈을 맞으며 대전과 문막에서  

동화 같은 설국을 배회 했다.

 

금정골 가는 길에 갑자기 함박눈이내리기 시작한댜
우짜 이런 일이 ?

인적 없는 이른 아침 강변의 비포장 도로를 따라 걷는 길 자체가 낭만적인데
거기에 함박눈이 조용히 내린다.

독락정에서  금정골 가는 풍경은 마치 강원도 깊은 오지 같다..

하얗게 쌓인 눈 밭에 다시 눈이 내리면 엘리사의 겨울 왕국에 진배 없다.

가장 추운 겨울의 가장 따뜻한 역설…

내리는 눈 속으로 수 많은 추억이 휘몰아 치고 수 많은 상념이 물 안개처럼 피어 올랐다.

 

가슴은 이미 따뜻해 졌다.

날씨는 차도 바람이 불지않고 거기다 혼자 열씸히 걸으면서 자가발전을 하니  외부의

기온과 체온이 적당한 균형을 이루어 쾌적한 트레킹 여건이 만들어 진다.

 

그 멋진 풍경에 풍류와 가락이 마구 살아오는데  아이쿠야  갑자기 속이 부글거리면서

아랫배가 살살 아퍼 온다..

흐미 시방 당최 이거이 무신 일이더냐 ?

분위기 팍삭 깨는 것도유분수지 포스트코로나 이후로 감각기관은 정상으로 돌아 왔는네

내부 소화 기관이 보이코트를 하자는 거네...

 

새벽 출정에 아침 대사를 거르고 나와도 늘 눈감아 주던 얌전히고도 충실한 나의 동반자

이자 든든한 후견인인 오장육보가  말일시

오늘은 할 거 다 하고 볼 거 다 보고 나왔는데 왜 삐졌는지 당최 몰것네 !

이노무 눈치 없는 자슥아 우짤끼고 시방 ?
껄쩍지근한 기분으로 이 산촌을 배회할 무릉객이 아니란 걸 너도 알쥐?

내 지론은   큰 거는 24시간 참을 수 있다는 건데 그렿다 하드라도 오늘 가튼 날은

상황이 다르지..
그걸 참아 내느라 분투하면서 이 목가적인 풍경을 포기하란 건 말이 안돼지..

 

고요한 아침 풍경과 낭만적인 눈이 내 영혼의 깊은 고독을 흔들어  깨울 수 있는  날에.

모처럼 평화로운 사색과 명상에 심취할 수 있는 날에…

 

인적 없는 강변 길이고 길 옆은 다 산 인데…

내가 한 마리 노루처럼 눈 오는 산 기슭에 주저 앉아 볼일을 봐도  풍경에 크게 누가

될 것 같지는 않아 .

“아 긍게 누가 쳐다 보기나 하냐구?”

“노루 똥 누는 거 본 적 있냐구?”

 

근데 사소한 문제가 또 겹치네
배낭도 새 거, 어깨 걸이 가방도 새 거다 보니 양쪽 모두에 휴지가 없어!

 

눈은 펄펄 날리고

나타샤는 사랑을 하고

백석은 소주를 마시며 흰 당나귀를 타고 나타샤와 산골로 들어갈 생각을 하는데

난 한 장의 휴지가 없네…..

아미타불 !  색즉시공, 공즉시색 !

세상 만물이 단절되고 막혀 있는 듯 해도 결국은 다 통하고 연결되어 있는 법이라
어깨 가방을 뒤져보니 비상연락망  A4 용지 한 장이 있다.
이거면 충분 하지라 !
4조각 내서 부드럽게 만들고 한 조각으로 3회씩 닦으면 12회 까지 됫물이 가능하니

가히 한 장의 종이가 고성능 비데와 진배 없으리.


길괴 강이 내려다 뵈는 눈오는 산자락에서 볼 일을 보는게 월매나 낭만적이여 ?
그 애슬픔을  다 쏟아내고 나서는 얼마나  후련하고 상쾌하것어 ?

전화위복을 넘어서서

크라이 막스에

엑스터시에

찐한 카타른시스까지

 

내 영혼은  50년의 시공을 가르고 동심으로 돌아가

그치지 않고 내리는 함박눈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그 옛날 막춤을 추어댔지.

 

일종의 유체이탈 이었어.

나는 한 폭의 그림 속을 걸어가며 지나간 시절의 향기와 그리움에 젖고

마음은 높은 곳에서 풍경을 내려다 보며 야생의 질감으로 살아나는 기쁨을 느낀다.

풍경이란 텍스트 행간에는 수 많은 의미와 감동이 숨어 있음을 다시 일깨워

주는 그 길.

 

금정골에서 피실나루 가는 물길은  예상대로 꽁꽁 얼어 있었다.

얼음 위를 걸어 본적이 몇 년 이더냐?

어릴적에는 매년 겨울에는 대전천에서 썰매를 탔는데 

철들고 나서의  빙원의 추억은 참 궁하다.

 

이기자 전우들과  산천어 축제 호슷 위를  걸었었고
마눌과 이 얼음 길을 걸은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나는 어릴적 썰매를 타던 기억을  떠올리며 꽁꽁 언 강물길를 따라 한잠 얼음을 지치다가
다시  그 빙원을 되짚어  금정골로 회귀하여 둔주봉에 올랐다

같은 장소에 다시 오는 건 추억하기 위함이었다.

내 젊은 날 내가 어느 산모퉁이 나무 등걸에 걸어 놓았던 기쁨과 행복들 …

그 추억 속에 실려 오는 그리운 시절의 향기와 그동안 내가 잊고 살았던 아름다운 것들이

다시 내게 다가와 조근조근 이야기 하면 추운 겨울은 그렇게 훈훈하고 따뜻해진다.

 

가끔은 고요함 속에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참 먼 길을 걸어 왔지만….

어느새 시간은 그 길보다 더 많이 흘러 갔다.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아쉬운 그 시절

세월이 아름답게 채색한 추억이란 그림 한 구석에도 우수가 깃들어 있다.

 

그래도 괜찮다.

그 때는 함께 어울리는 기쁨이 있었고

지금은 혼자 누리는 황홀한 고독이 있으니 ..

그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으므로 오늘도 여전히 나는 늙지 않는 나를 만날 수 있다.

극단적 패시미스트만 아니라면 늙어도 살 만한 세상이다.

지나간 추억이 이렇게 잊고 살았던 기쁨과 감동을 돌려주니 늙는 거 한탄 말고

오늘도 씩씩하게 혼자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 일이다.

 

둔주봉에 오르는 것보다  눈 오는 강변을 바라보고 강으로 내려가 얼음 위를 트레킹한

것이 더 인상적이었던 날

칩거하고 웅크리던 내 가슴이 다시 기지개를 켜는 걸 느낄 수 있던 날이었다.

 

이제 막 시작한 한 해의 가슴 뛰는 모험을 위해 파이팅 !

 

호동아! 너의 충고는 고맙게 받아 들인다.

등산은 이제 우리 나이에는 너무 과격한 운동 이라는……

하지만 등산이 꼭 과격한 것만은 아니고 자신의 체력에 맞추어 즐길 수 있는

심신운동 아닐까?

그래도 난 어쩔 수 없군

내게 등산은 단순히 산에 오르는 게 아니라 내 역사와 문학에 심취하는 시간이고

고독에 의미를 부여하고 삶에 철학을 깃들게 하는 수행의 과정이라…

 

그것이 노회한 늙다리의 아집과 편견일지라도

그 것이 오랜 내 삶의 방식이었고 흥얼거리는 내 영혼이 부르는 노래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 이었으니

내가 내 젊은 날 백두대간 종주를 두 번하고 몽블랑과 안나푸르나를 다녀올 수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던 것처럼 …

여기까지 먼 길을 왔지만 여기서 얼마나 더 멀리 가고 얼마나 더 높이 오를 수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르지...

앞으로도 산이 내가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한다면

내 마음이 몸 보다 먼저 늙어가지 않는다면

힘 닿는 날 까지 더 멀리 가고 또 더 높이 오르고 싶네..

 

내린 눈이 제법  쌓인 둔주봉에서 조심조심 하산하여 전망대에 올라  반도 지형과 갈라진

물길을 감상하고 면사무소로 내려왔다.
금정골예서 산길을 올라 칠 때 슬며시 눈이 그치더니  안남초등학교 내려가는데  눈부신

태양이 구름밖으로 나왔다

행복한 아침 산책 이었다.

돌아 오는 길에  옥천 이지당에 들러 그 추억도 함께 돌아 보고 이평이 정자나무 식당에서

염소탕으로 기력이 떨어진 몸을 보양하고  집으로 돌아오다.

 

 

산 책  일  : 2023년 1월 29일 일요일

산 책  지  : 안남 둔주봉 일원

산책코스 : 안남면사무소- 독락정–고성-금정골-피실 –금정골-둔주봉-

                 안남초등학교-안남면사무소

경 유 지  : 옥천 이지당

점심식사 : 이평리 정자나무 식당   

소요시간 : 산행 3시간 30분 / 이지당 경유 및 식사 : 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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