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시작하는 가 싶더니 벌써 두 달이 지나 간다.
이런 속도면 70도 멀지 않았다.
고희 (古稀)
뜻대로 해도 어긋나지 않는 나이란 의미에서 종심 (從心)이라고도 하나 삶의 역동성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 나이는 어쩌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동적인 삶에서 순리와 세월의 흐름에
따라가는 수동적인 삶으로의 변화를 의미할 것이다.
평균 나이로 계산하여 살아갈 날이 15년쯤 남은 시간
15년 이란 세월이 터무니 없이 짧아서가 아니라 그 세월이 내포하는 무기력함과 더불어
상실된 이상과 삶의 의미 때문일 것이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60살 정년 퇴직한 최부장은 퇴직 한지 2달도 채 안되어 30군데 이력서를 넣고 …
물려 받은 재산이 많아 서울에다가 아들 둘 집까지 한 채 씩 다 사준 호동이는
여행도 심심하다고 빌딩 경비 할거라고 갑성이 일하는 데 견학을 댕겨 왔단다.
도대체 이 친구들은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고 또 무엇을 위해 살아 가는가?
자신의 삶이 그렇게 무료하고 심심한 건지 ?
일 없는 노후는 빨리 늙는다는 말에 현혹되어 마지막 남은 젊음과 삶의 아까운 시간을
그렇게 떨이로 넘겨도 아깝지 않은 건지?
그 날 까지 겨우 6년 남았다.
나 역시 이오십보 백보 아닐까?
나는 살아가면서 무얼 아까워하고 애석해 하고 있는가?
나는 아직도 바보 같은 미망과 욕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왜 나는 머릿속으로 복잡한 계산만 늘어 놓고 아무 것도 행동으로 옮기자 못하고 있는가?
바야흐로 남아 있는 내 인생의 마지막 황금기의 시간은 건조한 모래시계처럼 줄줄
흘러 내리고 있는데…
3월 1일은 문막에 머무르기로 했다.
오랜만에 혼자만의 명상 길에 오를 수 있으니 또한 귀한 날이다.
제천 쪽 백운산을 가렸더니 수리봉 까지 아우르면 7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아 아직 본격적인
회복기에 들어서지 않은 몸에 무리가 될지도 모른다.
미륵산을 가기로 했다.
일반 등산로가 3시간 정도면 좀 길게 연결하면 4시간 이상 걸릴 것이다.
무리하지 않기 위해 수면 리듬을 깨지 않도록 출근과 같은 시간으로 일정을 잡았다.
7시쯤 동일한 간편식 아침을 먹고 출발하여 황룡사 인근에 차를 주차하니 7시 45분이다.
시골의 차가운 아침 공기가 코를 뻥 뚫어 주니 기분이 상쾌하다.
지난주에 이어 연속 고즈녁한 산사를 들머리로 하는 2차 명상 산행이다.
그 어느때 보다도 부처님의 자비와 평화가 필요한 때 일지도 모른다.
황룡사는 생각보다 절터가 컸다.
풍수에 문외한이 보기에도 미륵 산자락을 등에 엎고 포근히 산세가 감싸는 명당에 위치한
절인 것 같다.
사람의 발자취와 인기척도 없는데 절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동자승 입석들만이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안냐세 !”
경내 뒷편으로 미륵불이 보인다.
“오늘 하루 즐거운 산행을 허락 하소서 !”
미륵불상 좌측으로 등산로 표시가 되어 있다.
그 친절함은 그 이후로 미륵산 지능선 언덕에 설 때 까지 일언 반구도 없었다.
원래는 황산 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려 했는데 들머리 찾기도 어려울 것 같고 나중에 하산하여
도로를 걸어 차량을 회수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황룡사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지도상 황룡사부터 시작해도 미륵산의 암릉지대는 모두 돌아 볼 수 있었으니 나름 최선의
선택이었다.
근데 황룡사 뒤의 미륵산 지능은 나무가 모두 벌목되어 황폐해진 상태로 산길 자체가 남아
있지 않았다.
미륵산을 가늠하면서 헐벗을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무엇을 위한 개발인지는 모르겠지만
훼손한 산의 규모가 어마어마 하다.
좋은 의미의 변화였으면 좋겠다.
당장은 뼈아픈 상실이겠지만 훗날 더 좋은 나무들로 울창한 수림이 만들어져 후손들이 고단한
삶을 위로 받을 수 있는 좋은 곳으로 탈바꿈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황량한 사막 같은 산이든 울창한 숲길이든 내가 그동안 걸어보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건 설레
이는 일이다.
혼자 걷는 이 시간이 좋다.
내가 걸어 가는 저 먼 길 어딘가에서 날 걷지 못하게 할 시간의 사자가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을 것이다.
내 걸음은 그냥 단순한 걸음이 아니다.
성찰을 위한 명상이고 깨달음을 향해가는 영혼의 순례라면 너무 거창할까?
그래도 참으로 다행인 것은
남들보다 10배는 더 쓴 내 도가니가 아직도 싱싱하다는 것이고 남들 눈에 참으로 심심하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비칠 이 시간이 내겐 즐겁고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노후의 일에 대해서도 아직 까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코로나도 풀렸고 하늘 길도 열렸다.
먼 나라의 여행을 위한 시간이 원할 때 확보될 수 있는 일자리라면 문제될 것도 없지만 아무리
아까운 일자리라도 시간의 함수를 고려한다면 계산이 쉽지만은 않다.
우리 삶은 늘 무언가를 얻으면 무언가는 잃는 것이 있다.
그 득실의 계산은 사회적인 통념과 공식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달린 일이다.
주능선 가는 길
선답자의 트랙파일도 없이 달랑 지도 한 장 가지고 떠난 길이지만 들머리는 정확히 찾았으니
길이 없어진다 한들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오랜 세월 산을 떠돌며 체득된 감각은 멀리 미륵산의 산세만 보고도 파헤쳐진 산 속의 길을
가늠케 한다.
한 굽이 능선 위에서 서 있는 갈림길 이정표를 정확히 만났다.
신기하게도 마치 자로 잰 듯 파헤치고 뭉개진 산의 골짜기들을 가로 질러 정확히 그 위치에
도달한 것이다.
미스는 엉뚱한 데서 일어났다.
희미한 길은 거대한 암괴의 우측으로 이어지는데 나는 그 봉우리에 발도장을 찍겠다고 길도
없는 70도 경사의 산비탈을 치고 올라간 것이다.
올라 갔는데 봉우리가 하나 더 나타나고 나는 그 봉우리마저 올라타고 미륵산 능선은 더 아랫
쪽부터 휘돌겠다는 욕심에 좌측 고라니길 비탈사면으로 진행한 것이다.
능선에 올라서니 산객들의 무수한 표지기가 나부끼고 봉우리 삼각점이 나타났다.
역시 대단한 무릉객 !
황룡사를 들머리 기점으로 한 어느 산객도 올라보지 않았을 산봉우리에 나는 서 있다.
성공적인 능선 안착에 고무되어 의기양양하게 진군을 해나가는데 아뿔사 능선이 자꾸 아래로
자지러지는데 시야가 드러난 곳에 내려다 보니 아랫쪽 먼 들판에서 능선이 아얘 주저 앉는다.
지도를 펼쳐서 확인하니 나는 봉우리를 너무 크게 휘돌아 미륵산의 주능선에서 갈라진 뒷 쪽
지능선으로 올라섰고 그 쪽 능선을 주능선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다행이 큰 알바가 아니라 별다른 문제 없이 지능선을 따라 올라가 주능선 방향으로 올라섰다.
아까 지능선 봉우리 정상에 나부끼던 표지기는 내가 내려가려던 방향에서 올라오는 산우들을
위한 시그널들이었다.
이 또한 부처님의 뜻이려니 …
이제 다시 오지 못할 길의 갈림길의 풍경도 한 번 돌아 보고 가라시는….
미륵봉 가는 길
꾼들이 아니고는 이곳으로 사람들이 올라 올 일이 없겠다.
들머리 산길은 파헤쳐 지고 능선에 도열한 바위봉길은 험하고...
야생이 살아 있는 원시의 산 위로 이어지는 흔적이 희미한 산길과 인적 없는 고요함이 너무 좋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위봉들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치마바위봉, 신선봉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바위 능선의 카리스마는 내 예상을 훌쩍 뛰어 넘었다..
흙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 볼 수도 없는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고 푸른 잎을 피워낸 소나무들은
감동 이었다.
그 부근의 소나무는 자태도 우아하지만 솔 잎의 때깔도 좋다.
자연이 조화롭게 가꾸어 낸 신의 정원은 어느 인간의 정원이 흉내 낼 수 없는 기품과 깊이가 있다.
간간히 버거운 삶을 견뎌내지 못하고 일찍 삶을 마감한 어린 소나무도 눈에 뛴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삶은 치열하다.
애초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람에 날려 바위 사이에 둥지를 튼 소나무나
태어나고 보니 가진 것 없는 흑수저 이거나 모두 다 같이 살아내야 하는 한 세상이다.
더러는 죽고 더러는 죽음보다 더 힘든 사람을 살아가지만 척박한 환경에서 이렇듯 더
아름답고 고고한 삶을 노래하는 나무도 있고 흑수저의 역경과 고난을 딛고 성공을 이룬
사람들도 많이 있다.
어짜피 살 바에는 잘 살아 야지 …
살아보니 인생 별거 아니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자기 능력만큼 아름다운 한 세상 누리다 가면 그 뿐이다.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인가?
나 이외에 누가 감히 내 삶을 평가할 수 있는가?
내가 만족하는 삶이라면 잘 사는 인생이고
내가 “참 잘했어요!” 써주고 동그라미 다섯개 그리면 그 삶이 최고의 삶이 되는 것이다.
영감과 교훈으로 가득찬 산 길이었다.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한 세상 !
아무도 보아 주는 이 없는 외로운 산 길의 암릉 위에서도 자신의 기품과 색깔을 잃지 않 조화
로운 자연을 이루며 살아가는 나무들
나무는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할 소중한 인생을 깨우치며 거기 서 있었다.
.
선답자들은 위험한 바위봉 능선이라고 겁을 잔뜩 주어 나름 긴장하고 나선 길인데 바위 사이
이렇게 로프를 잘 달아 놓았으니 내 기준으로는 전혀 위험할 일이 없다.
가장 난코스라면 장군봉을 우회하지 않고 치고 오르는 코스 정도
그래도 지레 겁먹고 힘들게 계곡 아래로 우회할 필요 까지는 없는 길이다.
딱 한 군데 로프가 끊어진 한 곳은 일반 등산객들이 난감할 만한 코스가 있긴 한데 한 때는
설악산 비등도 날아다니던(?) 무릉객 아닌가?
깎아지른 집채만한 바위 봉도 어느 방향에서는 올라 갈 길이 있었다.
어렵사리 그 바위봉에 오르면 등로를 그냥 따라가다 보면 놓칠 수 밖에 없는 수려한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딱 내 적성이네!”
아무도 없는 호젓한 곳에서 나 혼자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감추어진 비경 !
장군봉 암릉 난간으로 조심스레 올라가서 풍경사진을 찍는데 먼 발치 봉우리에서 사람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저쪽이 경천사에서 올라오는 가장 보편적인 산행 코스에 있는 미릉봉 정도 되는 모양이다.
내가 올라 온 길은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원시의 포스가 워낙 강하고 선답자들이 쓸데 없는
겁을 많이 준 덕분에 호젓하고 낭만적인 산행 길이었다.
미륵봉
미륵봉 오르는 길은 가파른 바위 길이다.
튼튼한 로프가 매달려 있어서 경사가 급해도 오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봉우리 안부에 올라서니 이정표가 서는 데 황룡사 까지가 2km 황산사가 1.8km라고
표기되어 있다.
둘러 오긴 했어도 2km는 훨씬 넘을 것 같은데 거친 바윗길이라 시간소요는 많지만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황산사와 황룡사 중 어디를 들머리로 하느냐에 따라 차이는 극명하다.
황룡사를 들머리로 하면 치마바위와 신선봉,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원시의 암봉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고 황산사를 들머리로 하면 그 등로 역시 굴곡과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주릉의 암릉지대를 바이패스 한 채 미륵산의 하이라이트 미륵봉으로 곧바로 연결된다.
미륵봉은 넉넉한 공간이 이고 쉼터와 같은 침대 바위와 인상적인 황금솔이 있다.
황금솔의 자태는 우아하다.
어느 신의 정원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고 이목을 집충시킬 수 있을 정도의 기품과
카리스마에 충만했다.
황금빛 솔나무 가지 사이에서 시들어간 밤색 솔잎은 마치 새치인 듯 세월의 연륜마저 묻어났다.
마륵봉에서는 장군봉의 웅장한 자태가 건너다 보이는데 침대 바위에는 부부산님 둘이 앉아 있었다.
아까 장군봉 바위 난간에서 내가 사진을 찍는 모습을 계속 지켜 보았다고 했다.
제법 싸늘한 아침에 침대 비위에서 오래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원주에 사는 데 자주 운동삼아 황산사로 올라 이 미륵봉에서 풍경을 감상하고 휴식하다가 하산
한다고 했다.
두 분은 오래 앉아 있었다고 내게 떡한 덩이와 침대바위를 내어주고 하산의 인사를 건넸다.
나는 치마바위에 앉아 망중한을 보내다가 안부로 내려서서 반대편 바위봉에 올라 역시 가슴이 후련
해지는 수려한 풍경 까지 감상했다..
그 때 황산사 쪽에서 학생들인 듯 젊은 남녀들이 올라왔다.
올라 와서 내가 있던 바위봉에 놀던 6명 젊은이들은 안부로 내려서서 정작 미륵산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미릉봉은 오르지 않고 미륵산 방향으로 진행하려고 했다.
미륵산이 초행인데 아마도 미륵봉 바위를 오르려면 좁은 바위 사이로 로프를 타야하기 때문 여자들이
꺼려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들을 돌려 세웠다.
“미륵봉의 멋진 조망을 보지 않고 가는 것은 진수성찬을 받아 놓고 된장찌개 만 먹고 가는 겪이다.”
“여기오면 황금솔과 침대바위는 꼭 보고 가야 한다 !.”
같은 미륵산 초짜 무릉객의 설득력 있는 기조 연설에 한 껏 고무된 그들 !
사실 황금솔과 침대바위도 내가 붙인 이름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나로 인해 미륵봉의 진면목에 경탄해 마지 않으며 침대바위에 걸터 앉아 오래
히히덕 거리며 젊음과 퓽류를 즐겼으리라 !
미륵산 가는 길
비륵봉에서 표석이 있는 미륵산은 1.5km 거리에 있다.
미륵산 능선은 미륵봉 이후에 환골탈퇴하여 편안하고 부드러운 산 길을 이어 간다.
미륵산의 가장 일반적인 등산로가 경천묘가 있는 황산사에서 미륵봉에 오르고 능선을 따라
미륵산 까지 진행한 후 새터 고개로 내려서는 등산로이다.
능선 올라오는 길이 가파르긴 해도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 듯하다.
미륵산 .
고독한 미륵산에는 인증샷을 해줄 이가 아무도 없다.
난 표석에 배낭과 짝짝이 스틱을 내려 놓고 사진을 찍어 주었다.
“느덜두 고생혔다.”
지나 온 미륵봉이 더 정상 같고 표석하나 우두커니 서 있는 오히려 정상이 더 쓸쓸하다.
어쩌면 우리 삶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늘 더 멀리 있는 행복과 성공을 꿈꾼다.
그리고 그 곳으로 가는 길의 풍경과 그 길에 아무렇지도 않게 굴러다니는 행복엔 별다른
눈길을 주지 않는다.
우리 삶의 원대한 목적지란 없다.
다만 그 인생의 끝에는 더 이상 깨어날 수 없는 꿈과 절멸의 고요가 있을 뿐이다.
삶이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분투가 아니라 그 여정을 즐기는 여행이어야 한다.
내 인생 말미에 한 방 제대로 터뜨리는 게 아니라 그 곳으로 가는 과정의 기쁨을 누리고
그 작은 행복들을 쌓아 가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되 돌아보면 세월의 어느 시점에서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바빠졌다.
사실 진짜 바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쫒긴 것이었다.
인디안은 가다가 자주 멈춰서서 뒤돌아 본다고 한다.
지신의 영혼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 옛날은 부족하고 가난했어도 그렇게 사는 제 힘들지 않았는데 더 풍요로워진 지금
사람들은 오히려 사는 걸 더 힘에 부쳐 한다.
우리는 어느때부터인가 열심히 일하고 부를 축적하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우리
삶의 부분들을 배제하는 나쁜 습관이 들었다.
그리고 세상은 우리가 멈춤 버튼을 누르고 아름다운 세상을 감상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계속 세뇌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100을 채우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99를 잊는다.
그 1을 내려 놓으면 더 값지고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을 텐데 1%를 채우기 위해 더
고단하고 힘든 사람을 살아 간다.
그 1%를 위한 99% 욕심이 우리 인생의 판도를 바꾸어 놓는다
너무 빨리 차를 몰지 마라 !
우린 살면서 내가 잘 가고 있는지, 중요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가끔은 뒤돌아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발견할 수 있는 인생의 수 많은 아름다움과 삶의 의미를 많이 놓치게 될 것이다.
그러건 말건 세월은 제 속도로 지나가고 그 1%로 때문에 너의 99%는 머지 않아 아무런 흔적
없이 허공으로 사라지리라 !
오늘의 여행도 다시 나를 돌아 보는 내 영혼의 여행이다.
아직 시간도 많이 남고 이쪽에서 새터 고개 하산길로 내려 가는 것은 영 아쉽다.
능선의 흐름을 보니 미륵북봉으로 크게 휘도는 산세라 하산지점에서 차량회수 지점까지
걷는다 해도 한 시간 이면 족할 것 같아서 내쳐 미륵북봉 까지 발도장을 찍고 서낭고개로
크게 돌아 내리기로 했다.
미륵북봉을 거치는 지능선 하산 길
미륵북봉 까지는 다시 굴곡이심해지고 산길이 원시의 모습을 되찾았다.
거대한 바위 암괴인 미륵북봉 이후에 산세는 우측으로 크게 굽이 도는데 그 곳부터 산 길의
흔적은 희미해지고 간간히 나타나는 바위들 말고는 잡목이 우거진 전형적인 심마니
산길 이었다.
신기하게도 미륵북봉 이후의 지능선의 바위들은 마치 누가 칼로 베어낸 듯 반듯하게
갈라진 바위들이 많았다.
선계의 장군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인가?
내림길에서 배가 고파졌다.
간편식 아침을 먹고 나선 길이라 4시간이 다 되어 가면서 계속 허기를 느꼈다.
능선의 어느 지점 비탈길 난간 바위에 여장을 풀었다.
바위 난간에 보온병과 음식이 든 팩을 올려 놓았는데 그 것이 벼랑길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헐~~~
내 충실한 신하들의 반란 이었다.
"시방 주모자가 누구냐? "
“가방이냐? 물병이냐? 고구마와 계란이냐?”
산 비탈 경사가 심하다 보니 이 넘이 산골짜기로 50미터는 족히 굴러 내려 갔다.
“우짤기고?”
수납가방도 새로 산 비싼거구 거기에 뜨거운 물과 음식이 다 들어 있는데..”
고라니도 못 다닐 산 길을 조심 스럽게 내려가서 골짜기 아래서 가방을 회수해 오는데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랴도 혼자만의 화려한 식단을 펼치고 시장을 반찬 삼아 만찬을 즐기고 다시 하산의 길을 잡았다.
한참을 내리던 능선이 두 갈래로 분기된다.
지도를 보니 좌측 길을 따라야 크게 돌아 서낭재로 내려서고 우측으로 분기되는 능선은 안쪽으로
휘어지는 데 등로가 없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 서낭재로 내려서면 가파른 차 길을 30분은 더 걸아야 하게 생겼다.
지나온 길과 비슷하다면 기대할 만한 풍경도 별로 없는 하산길이 될 것이다.
난 우측길을 하산 길로 잡았다.
대한 민국 산등성이는 웬만하면 길이 다 있다.
예상대로 산 등성이를 따라 희미한 길의 흔적이 나 있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 보면서 산길의 방향을 가늠하고 널널한 시간을 감안 어떤 알바도 문제삼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유유자적하게 능선을 걸어 내렸다.
마지막 도로와 인가가 보이는 지점에서 희미한 산길은 사라졌고 나는 개짖는 소리 요란한
어느 음식점 뒤의 산길 아래로 내려서서 두 마리의 개가 거칠게 환영해 마지 않는 음식점
마당을 가로 질러 도로로 올라 섰다.
5시간의 여유로운 여정이었다.
난 미륵산으로 출근해서 5시간 만에 일 처리를 마무리 했다.
이젠 차를 회수하러 가야 하는데 안쪽으로 휘도는 능선을 따라 내렸으니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 편안한 마음으로 도로를 따라 진행했다.
귀래면 소로 길의 풍경도 돌아 볼만 했다.
멋들어진 전원 주택이 있고 팬션이 있고 잘 정리된 밭들도 있다.
여기 저기 전봇대에는 매물을 구한다는 복덕방의 전화 번화가 있고 밭 한가운데 땅을
판다는 주인의 전화번호가 적힌 곳도 있었다.
전원 주택이란 도시에서 답답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로망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 속에 어울려서 살아야지 .
산 좋고 물 맑다고 그 속에 묻히면 산 좋고 물 좋은 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외롭고
고단한 삶이 먼저 한자리를 차지하는 법이다.
아무리 맛 있는 고기도 연달아 먹으면 물리고 좋은 풍경도 매일 보면 질리는 거 아닌가?
그래야 이렇게 한 번씩 코에 바람을 넣으면서 새로운 풍경을 돌아아 보아야 리프레쉬 되고
그래야 또 우리 살아가는데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난 30분 남짓 걸어 차를 회수했다.
도로변의 풍경도 구경거리가 많이 지루한 줄 몰랐던 길이다.
재작년 3월 조사장과 함께했던 양각산- 흰대미산과 -수도산 능선 7km를 4시간쯤 걸어가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알바해서 내려갔다.
1.4km 정도를 알바지점에서 되돌아 올라가자니 조사장이 그냥 하산해서 택시를 부르자고 했다.
그랴서 수도암으로 내려서서 택시를 부르는데 7만원을 달라는 거다.
놀래서 거리를 검색해보니 그 거리가 50km에 달한다.
몇 시간 능선을 걷다 내렸을 뿐이데 시작점으로 회귀하려면 도로를 따라 50km를 가야했던 것이
다..
어짜피 걸으러 나왔는데 좀 걷는 들 문제 될게 무에 있겠는가?
혼자라면 산길 3km 이내 알바면 두말 없이 되치고 올라가고 10km 이내 차량회수 거리면 즐겁게
걸어 갓을 것이었지만 리바이벌을 싫어하는 조사장 덕분에 달라진 산행스토리 였을 뿐이다.
물론 택시비는 조사장이 냈지만 어의 상실 했던 그런 길에 비하면 오늘 같은 날은 5시간 능선을
길게 타고도 차량 회수에 걸어서 30분 밖에 안 걸렸으니 거의 원점회귀 산행이나 진배 없다.
산행의 멋과 맛도 펄펄 살았던 미륵산은 마지막까지 내게 좋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난 원주에서 가장 좋은 사우나에 들려 2시간 목욕으로 쌓인 피로를 풀고 슈퍼에서 돼지고기와
막걸리를 사서 집에 돌아갔고 비장의 레시피로 수육을 삶아 내고 산나물과 과일의 사이드 디쉬
까지 갖은 구색을 맞춘 떡 부러진 술상으로 성공적인 미륵산행을 자축했던 것이다.
2023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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