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조사장을 살리다.
이번 4월 산행은 5월의 소백산행을 대비한 전지훈련으로 연석산 운장산 종주로 그 코스를 잡았다
6시간 30분 제법 빡센 산행.
나중에 알고 보니 조사장 마음고생이 컸다.
셋째 토요일이 출정일인데 그 전날 금요일에 거래선과의 피할 수 없는 골프 약속을 잡힌 거다.
골프치는 건 좋은데 뒤풀이 술좌석을 마다하기 어려운 상대이고
술을 빼서 분위기를 깨는 것도 실례가 될 것이다 보니 미룰 수가 없어서...
한 달 건너 뛰자고 하면 그 뿐일 텐데 또 함께하는 산을 거르는 것도 부담스럽고….
토요일 전국 비가 예보되었다.
빗속 연석- 운장 종주는 무리라 조사장에게 연락을 했다.
일요일로 미루던지 근교산으로 대체 하던지 하는게 어떠냐고?
가뭄에 단비 소식 이었을 게다.
술독이야 하루 쉬면 어느정도 빠지기야 하겠지만 상대가 운장산이다 보니 평소 같은
컨디션 유지는 어려울 터
당근 조사장은 근교산 산행을 택했다.
그랴요!
이런 날을 대비해서 조금은 장단지에 힘이 실리는 근교산 몇 곳을 마련해 두었다.
5 시간 이상 산행 가능한 곳들
이번에 뽑은 카드는 수통골 환종주에 서부능선을 연결 산장산 까지 휘돌아 가는 코스다.
조사장에게는 4시간 반쯤 걸린다고 이야기 했는데 아침에 만나고 보니 조사장 상태가
별루다.
근교산 산행으로 바꾸니 그나마 마음 놓고 허리띠 풀었던 거다.
게다가 늦은 과음에 잠까지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
그래도 나와 가는 산행이니 허리띠를 다 풀어제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제 술이 과했으면 무리하지 말고 수통골 종주나 한 바퀴 하고 끝내지요?”
잔뜩 찌푸린 날씨인데다 조사장이 어제의 과음과 수면부족을 부담스러워 하니 먼저
제안을 했다.
조사장이 한자락 깐다.
“비가 오면 수통골을 돌아 빈계산으로 하산하고 비가 안 오면 끝까지 가보지요…!”
사실 수통코스는 도덕봉 올라 칠 때 하고 막바지 빈계산 오를 때 말고는 별달리 힘든
구간이 없다.
빈계산 이후 산장산 까지는 6 km 정도 유유자적한 힐링 능선이다.
능선의 낙차가 별로 없이 평탄한데다가 흙산이라 발바닥이 편해서 비가 온다고 해도
우산 하나 바쳐 들면 산행에 아무런 무리가 없다.
우리는 7시에 등산을 시작해서 10시 10분 쯤에 빈계산 정상에 도착했고 그 때 까지는
비가 오지 않았다.
빈속에 나온 조사장은 빈계산 정상에서 내가 가지고 온 찰떡과 베지밀로 아침을 먹고
나는 친구가 가지고 온 사과 반쪽과, 침외 반 쪽을 먹고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그 길을 걸으면서 땀과 어제의 끈적한 노폐물을 쏟아낸 조사장은 오히려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
늘 느끼는 것처럼 산이 기를 불어 넣어 깨어진 신체의 리듬을 리셋 시켜주는 거다.
조사장은 전진을 외쳤다.
그리고 30분을 채 못 가서 잔뜩 찌푸렸던 잿빛 하늘은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의 허가 낸 날궃이
나는 우산을 꺼내 들고 이미 땀으로 온몸이 다 젖은 조사장은 추위를 의식해서 우비를
꺼내 입었다.
숲체원 인근을 걸을 때 까지는 그래도 간간히 우비 입은 산객들을 만났지만 능선을 따라
남으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한 명의 산객도 만나지 못했다.
모두들 서둘러 하산한 모양이다.
촉촉히 내리는 봄비 그리고 조용히 젖어드는 호젓한 산길 !
조사장은 말 수가 줄었고 후반부의 밀어닥치는 피로감에다 우비까지 걸친 불편한 산행에 힘든
기색을 보였다.
비가 와서 기온이 떨어지긴 했지만 우비를 입은 조사장은 비가 아닌 땀으로 힘뻑 젖은 상태에서
한여름 무더위 산행을 이어갔고 나는 작은 우산으로 비를 그으며 봄날의 시원한 낭만 산행을
즐겼다.
산장산 정상 정자에서 우린 한숨을 돌렸는데 우비를 벗고 시원한 바람을 쏘인 조사장은 비로소
살 것 같은 표정으로 되돌아 왔다
우리는 서늘한 바람이 부는 정자에 앉아 뜨거운 한 잔의 물로 오늘의 즐거운 날궃이를 자축하고.
나서 6시간에 걸쳐 풀코스 우중 종주를 무사히 마치고 예정대로 진잠초교로 내려섰다.
산행을 종료하고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비를 맞지 않았지만 땀으로 흠뻑 젖은 조사장은 영락없이 비를 다 맞은 행색이라 택시 승차
거부를 당할 것 같아 점심을 먹고 수통골로 되돌아 가기로 했다.
진잠초교 근처에 김치찌게 하는 집,아구찜 집 그리고 칼국시와 수육을 하는 식당이 있었다.
속풀이를 위해 어떤 메뉴가 좋으냐 물으니 칼국수와 수육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우린 비오는
날에도 꽤 많은 사람이 북적이는 칼국시 집으로 들어 갔다.
평상시 차가운 맥주도 잘 마시지 않는 조사장이 목이 많이 말랐던지 맥주 한 병을 나누고도 한 병을
더 주문했다.
비 오는 날에 우린 맥주 두 병을 마시고 칼국수 2인분에 수육 중짜배기 한 접시를 깨끗이 비우고
비 맞은 티 안나게 옷매무새를 단정히 한 채 카카오 택시를 호출해서 수통골로 되돌아 왔다.
나름 아름다운 봄 날 이었고 즐거운 산행이었다.
어려운 여건에도 굴하지 않고 즐거운 날궃이에 기꺼이 함께 하며 변함없는 산에 대한 열정을
과시한 조사장을 위해 오늘의 밥값은 무릉객이 쏘다 ..
2023년 4월 15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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