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묘개장 필증 발급을 위해 유천면사무소를 방문한 기호가 5월 8일 찍은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
좌측은 할아버지 묘소, 우측은 할머니 묘소
,
할아버지 윗대와 형님들이 모셔진 사촌 선산
어머니는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가 아랫 쪽 귀퉁이에 모셔져 있는 게 늘 불만이셨디
한달 사이에 풀이 무성해진 묘소
파묘전 제사
제물은 그자리에서 먹지 못한것은 모두 묻어야 하는 법이라 간단한 젯상 준비
삼촌이 제주로 파묘의 죄스러움을 사죄하는 술잔을 올리고 참배자 전원이 이배와 반절
술을 묘소 주변에 3번 씩 나누어 붓고 삼촌께서 다시 잔을 드리고 예를 올림
브이아피장묘측 제례 사회자에 따르면 성묘 때는 막걸리를 올리지 않는 것이 좋다함
멧돼지가 먹걸리를 너무 좋아하여 그 냄새를 맡고 묘를 파헤친다고 ..
뒤이어 나와 영수 그리고 기호와 기수 순서대로 파묘의 불경을 사죄드리는 잔을 올리다
마지막 참사자가 잔을 올린 다음 삼촌이 첨작하고 참사자 전원이 다시 이배와 반절을 올림으로써 제래를
마무리 한다.
이어 제주가 파묘를 시작 하니 너무 놀라시지 말라고 묘소 주변의 풀을 쓸어내리며 작업시작을 알려드리고
포크레인으로 파묘 개장 작업을 진행하다.
할머니 시신을 비교적 얕게 매장
돌아가신 지 20년 된 할머니 유골 (2003.12.23 일 매장)
부패도 잘 진행되었지만 생전 모습처럼 유골의 양도 작은 상태
당시 석관을 사용하여 석관속에는 많은 물이 차있었으나 너무 깊게 매장되지 않아 유체이탈이
잘 된 상태
돌아가신 지 43년 된 할아버지 유골 (1981.12.7 매장)
마찬가지로 석관을 사용하여 많은 물이 차있었고 관이 깊게 매장되어 뼈와 살이 썩지 않고 많이 보존된 상태
당시에는 석관이 더 비쌌던 것으로 추정되나 석관의 경우 석고로 완전 밀폐 봉인이 안되면 대부분 스며든
물이 빠져나가지 못한 채 관 안에 남게 된다고 함
주변의 토질은 좋은 데 가득 관을 채운 물속에 누어 계시느라 많이 답답하시고 불편하셨을 것 같아
송구한 마음
43년된 붉은색 나일론 천도 썩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음
시신 발굴을 위해 깊이 파야 했던 할아버지 묘소
오래걸리지 않아 유해 발굴 작업이 끝나고 석상과 비석 그리고 제물을 묻고 평탄화 작업
유해 운구 안동 상사 문화공원 화장장에 도착
교통 윤택형님네 방문 (경북 예천군 유천면 율현리 교동 193-1)
할머니 할아버지가 머무르셨던 집
그 때는 안 채에 마루도 높고 지붕도 높았는데 이젠 다른 사람이 살면서 집의 형태가 많이 바뀐모습
윤택 형님은 병원 진료차 대구에 가셔서 형수님만 보고 뵙고 커피 한잔 마시고 돌아 오다.
한달 전에 작은집 기호와 기수가 돌아가신 어머니 묘소 이전을 위해 마련한 시골 땅
할아버지 할머니 유해를 시골 산에 뿌리고 돌아 오려 마음이 무거웠는데 추후 이곳에 숙모님 유골
모실 때 다시 수목장 조성하기로 하고 바위 한켠에 목함 채로 가묘를 쓰다.
기수가 나중에 정식 수목장 조성 후 쓰기 위해 예천에 나가서 만들어 온 표지석
바위 아래 위치를 잡아 목함에 습이 차지 않도록 비닐로 밀폐하고 상석과 함께 가묘 조성
다시 할머니 할아버님께 죄스러운 마음으로 예를 올리다.
올해 윤년 더워지기 전에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 개장을 빨리 해야 한다고 밀어 부쳤으면서도
막상 그날이 오니 마음이 착잡하다.
투병 중이시던 어머니 캐어 핑계로 몇 년 째 형제들과 산소 벌초를 댕겨오지 못한 것도 마음이
걸린다.
동생들과 약속을 잡아 나서면 되는 일이었지만 기호네 까지 다섯명이 약속을 맞추고 벌초로
하루를 보내는 부담을 회피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부담을 덜어 주시고자 4년전 윤년에도 계속 묘소 개장후 화장을 을 종용하셨지만
내가 서두르지못했다.
그리고서는 49제가 지나고 5월에 들어서야 날짜를 받고 부산을 떨다가 6월 7일로 날짜를 확정했다.
영수와 새벽 다섯 시 20분 경에 출발하여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7시 40분 경 덕계리 마을회관에
도착하다.
묘소를 올라가는 길을 불도져가 막고 있다고 기수가 회관 쪽에서 차주를 찾아보려 내려 왔는데
회관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
회관 옆집으로 들어가 마을이장 번호를 받아 통화하고 방송요청하렸더니 마침 주인이 블도저
주인을 아는 눈치다.
도성기 라는 사람이 주인이라는 데 마을에 도 성기가 두 명 있고 전화번호는 잘 모른다고 한다.
도성기 한 명은 내가 안다.
벌초를 부탁하던 먼 친척 동생뻘
전화를 거니 자신이 블도저 주인 맞다고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를 돌봐주던 친척이 파묘를 반대하며 불도저 시위를 하고 있는 형상이었다.
나는 촌수를 잘 모르니 벌초를 부탁하고 송금 할 때 아재라고 부르며 통화를 했었다.
어느 날은 그게 마음에 걸렸는지 성기 친척은 내가 형님 뻘이니 말을 놓으시라고 먼저 얘기를 해왔다.
바로 포크레인이 길을 내며 먼저 올라가고 우리도 뒤 따라 올라갔다.
젯상을 차리고 파묘제를 지내는데 죄스러움과 만감이 교차 한다.
방학 때 가면 호롱불 아래서 겸상하던 할아버지
그리고 어릴 적 내내 날 업고 키우신 할머니 ….
“할아버지 할머니 정말 죄송해요 ,”
요 몇 년 새 많이 늙으신 삼촌이 잔을 올리는 모습도 짠하고 안스러웠다.
20년 된 할머니 유해는 잘 삭아서 유해의 양도 적었는데 정작 43년 된 할아버지 유해는 유골도
선명하고 커다란 뼈들도 원형이 많이 보존된 상태로 살도 붙어 있었다.
관을 묻은 깊이 차이라고 한다.
토질도 좋은데 목관을 쓰지 않고 석관을 써서 물도 많이 차 있는 상태였다.
당시에는 비싸고 더 좋은 관으로 모셨을 텐데……
그나마 답답하고 불편한 물속에서 해방시켜 드린 것으로 위안을 삼아 본다.
평탄작업 까지 완결하고 안동 장사 문화공원 화장장으로 이동해서 남은 할아버지 할머니 육신을 한 줌
재로 되돌려 드렸다.
20년 , 40면 전에 갈린 생과 사는 다시 한 번 빛을 보고 영원한 안식으로 되 돌아갔다.
할아버지 사시던 교동 뒷산에 화장한 유골을 뿌리고 돌아 오는 게 마음에 많이 걸렸는데 기수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한달 전 어머니 묘소 이전을 위해 밭으로 사 둔 땅에 모시는 방법을 제안했다.
우리 땅이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일단 밭 한 귀퉁이에 가묘를 쓰기로 했다.
숙모님 유해를 화장해서 모셔 올 때까지 두 분을 바위 아래 모셨다가 훗날 위치가 잡히면 정식으로 모시는
걸로 결정했다
두분 묘소 표지석은 화장할 동안 기수가 부랴부랴 예천에서 새겨 가지고 왔다.
.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실 땅에 가기 전에 교동 윤택 형님네 들렸다,
저장된 전화 번호가 틀려서 어머니의 부고를 전하지 못한 터라 겸사겸사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
였는데 공교롭게 대구로 병원 검진 가셔서 형수님만 보고 차한 잔 마신 후 작은집 밭으로 이동했다.
한쪽 귀퉁이 바위 아래 구덩이 두 개를 파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유골함을 비닐로 완전히 밀봉하여 안치하고
제를 올렸다.
“할아버지 함자인 점자와 석자 같이 바위를 점유하신 걸 보니 여기가 할아버지가 계실 곳이 맞는 것 같다”
는 기수의 뜻풀이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어쩌면 할어버지 할머니는 생시에도 그랬듯이 돌아가셔도 작은집에 위탁할 운명이었던 모양이다.
가까운 자손 누군가 잊혀져 갈 존재의 흔적을 돌봐 드릴 수 있다는 건 위안이 된다.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실 때 죽음이란 그저 먼 나라의 아득한 전설 같았다.
그리고 수 많은 죽음이 내 곁을 스져 지나고 사신은 점점 내 가까이로 다가와 구체적인 종말에 관해 이야기
한다.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숙모가 돌아 가시고 고모가 돌아가시고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젠 머지 않아 삼촌도 떠나실 것이다.
죽음은 산자에게 교훈을 주고 또 산자들이 같이 자리에 모여서 그 얘기를 나눌 때 의미가 있을 뿐이다.
죽음이란 허망하지만 우린 이렇게 모여 죽음에 바라보고 그 죽음에 기억하고자 노력함으로써 우리 역시
쉽게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줌 바람에 흩날리지 않고 표석 아래 모셔드리고 갈수 있어서 한결 편안했다.
영수를 통해 삼촌 용돈 20만원 챙겨드리고 사촌동생들과 헤어져 귀로에 올랐다.
2024년 6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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