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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가는 대로

또 하나의 이별

 

 

 

 

 

또 하나의 이별 

 

동섭 간다,

그래도 곁에 있어 든든했는데

퇴직하기 전에 공장에서 얼굴 몇 번 보고 내가 영업소장으로 복귀하고 나서 3년 전

경원지역 신용관리 요원으로 배정되어 같이 근무하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 조직개편이 되면서 내 직속 상관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인사발령으로 그 친구가 다시 비서실장의 옛 업무로 돌아 간다.

한 번 그 일을 하고 현업에 복귀하였다가  다시 돌아 가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인데

나름의 고충과 속 깊은 생각도 있었다.

뜻대로 흘러가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스스로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흐름도 있고 그 유불리야 시간이 지나야 어느정도

짐작이 될 뿐이다.

하지만 선택을 하는 순간 그 것이 자신의 길과 운명으로 굳어진다.

신이 소맷부리에 준비하고 있는 패를 우린 짐작할 수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길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일 뿐이다.

그래도 임원 부속실을 거쳐간 많은 친구들 중에 아파트도 주고 또 차량도 지원되는

파격적인 대우까지 받았으니 회장님이 그 만큼 아낀다는 뜻도 될 것이다,

 

동섭은 영업소 관리에 관한 한 모든 일을 내가 맡기고 자신의 고유업무에만 충실했다.

내가 한 일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고, 일일히 확인도 간섭도 하지 않았다.

서로가 공유해야 할 업무 사안만 협의하고 올리는 결재는 모두 가차 없이 승인했다.

소장님에게 모든 걸 믿고 맡기고 문제되는 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나는 그가 알고 있어야 할 업무 상황과 문제점에 관해서만 레포팅을 했고 다행스럽

게도 영업소는 공장이나 본사의 이목을 끌 만한 별다른 문제 없이 잘 돌아가서 우린

그렇게 나름 태평성대를 구가 했다.

그런 동섭이 가는 것이다,

 

돌아보면 좋은 선배들과 좋은 동료들이 많았던 우성사료 였다.

내가 근무하던 때는 우성의 전성기이자 호시절이었다.

사업이 잘되고 근무여건과 처우도 좋았다.

직원들간의 끈끈한 유대감이 있었고 잦은 여행과 회식등으로 사기도 높았던 시기였다.

말년에는 많이 밀렸지만 내 젊은 날에는 업계의 1위까지 달성하고 항상 업계 수위를

유지했다.

요즘은 대한민국 제조업이 다 어렵지만 회사도 업계 내에서 경쟁력을 많이 상실했다.

 

그 때는 직원들도 많아서 직급이 올라 갈수록 관리만 하면 되니 일이 편했다.

요즘은 조직이 슬림화되어 관리도 통합되고 임원자리도 많이 없어져서 올라갈 자리

가 별로 없다,

기존의 진급체계는 유지되지만 호봉도 연공사열도 사라졌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그렇게 변해갔다.

나이 들고 현업을 내려 놓는 순간 자리가 위태로워 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예전에는 본사에서 밀리면 공장으로 보내고 퇴직이 얼마 남지 않으면 봉급을 전혀

깍지 않고 영업소 소장으로 발령을 내어 상대적으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퇴직

하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모든 영업소 관리소장직은 비용 절감의 대상이 되어 오래전에 계약직으로 바뀌었으니

요즘 같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서구화와 효율화를 지향하는 조직문화의 변화로 인해 직장내에서 구성원간의 끈끈한

유대감은 사라지고 능력주의 원칙을 표방한 성과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

더구나 수익구조가 악화되고 있는 회사라면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조직은 축소되어 올라갈 자리는 없고 업무량은 많아지는데 임금 상승은 제한적이다,

그런 조직 내에서의 세대 갈등은 심화될 수 밖에 없고 경영진의 고뇌도 깊어 질 수

밖에 없다,

물꼬를 터주지 않으면 능력 있는 젊은이들은 회사를 떠나 간다,.

사세가 기울어 가는 회사에서 나이를 먹는 다는 건 명예로운 일이 아니라 가슴 한

구석이 늘 서늘하고 허전 할 수 밖에 없다.

 

우성은 아산 공장 준공 이후에 물량도 많이 늘어 의미 있는 변화와 고무적인 성과를

통해  반전의 기회를 잡았는데 급변하는 대외 여건과 국내 상황으로 인해 다시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사료시장의 60%이상을 농협이 장악하고 있는 것은 넘어서기 어려운 커다란 벽이다.

시장기능에 맡기기 보다는 관치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정부이다 보니 농협을 통해

시장을 쥐락펴락하면서 사료 업계를 어려움 속으로 내몰고 있다.

거기다가 계속되는 경제불황으로 소비까지 위축되는 상황이라 회사는 회사 대로 축산

농가들은 농가대로 다 어려운 시기 이다,

 

내가 누리던 직장생활의 여유와 즐거움을 회상하면 격세지감이다

가정생활이나 회사생활이나 모두 녹록치 않은 그들의 척박한 삶이 안스럽다,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여 우성이 다시 옛 영광과 중흥을 되찾고

몸담고 있는 후배들이 모두 행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렇게 정들자 또 이별이다.

연륜에 비해 심지가 굳고 생각이 깊은 친구였다.

살아오면서 수 많은 이별을 겪었지만 또 하나의 아쉬운 이별이다.

일년에 두어 번은 만날 수 있겠지만 안보면 멀어진다.’는 말처럼 각자의 주어진

길에서 열심히 살다 보면 모든 이별처럼 우린 그렇게 조금씩 잊혀갈 것이다.

 

여직원과 이사장과 함께 조촐한 송별회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헤어지는 아쉬움과 그의 건승을 빌며 축배를 들었다.

잊지 않겠네 !

어디에서나 당당하게 존재를 드러낼 수 있고 회사 내에서 승승장구 할 수 있기를

기대하네 !”,

 

잘가라 동섭  !  잘가라 이부장 !

 

202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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