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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패밀리

추억사진

 

 

 

 

 

오래전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동생이 중학교 2학년이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집 근처에 학교가 있어 걸어 다녔던 저와는 달리
동생은 학교가 멀어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동생은 늘 어머니가 차비를 주셨는데
어느 날 동생이 버스를 타지 않고 학교까지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다음 날도 어김없이 동생에게 차비를 주는
어머니에게 볼멘소리로 말했습니다.

“차비 주지 마세요. 버스는 타지도 않아요.
우리 집 생활도 빠듯한데 거짓말하는 녀석한테
왜 차비를 줘요.

하지만 어머니는 먼 길을 걸어 다니는
동생이 안쓰러우셨는지 내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동생에게 차비를 쥐여주며 말했습니다.

“오늘은 꼭 버스 타고 가거라!

그 차비가 뭐라고 전 엄마한테
왜 내 얘긴 듣지도 않냐며 툴툴대기
일쑤였습니다.

며칠 학교 갔다 집에 돌아와 보니
 집안이 맛있는 고기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주방으로 얼른 뛰어가 보니
맛있는 불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집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기는 특별한 날 먹을 만큼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저녁 식사 때 고기를 크게 싸서 입에 넣으며
미소 가득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그러자 어머니께서 동생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날은 무슨 날…
네 동생이 형이랑 엄마 아빠 기운 없어 보인다고,
그동안 모은 차비로 고기를 사 왔구나!

동생은 그 먼 길을 가족이 오순도순
고기를 먹는 모습을 즐겁게 상상하며 힘들어도
걷고 또 걸었다고 했습니다.


가족은 그런 것 같습니다.
형이 못하면 동생이
동생이 부족하면 형이
자식에게 허물이 있으면 부모가
부모님이 연세가 들면 자식이
그렇게 서로 감싸며 평생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것.
가족은 그런 것 같습니다.

 

                                     좋은글

 

 

 

 

 

 

세월은 거침없이 흘러갔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함께 살던 사람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할아버님 가시고 할머님 가신지는 참 오래 되었다.

아들 딸들은 가정을 꾸려 또 아들과 딸을 낳고

세상의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려 제 살기 바쁜 사이

아버님이 먼저 떠나시고

홀로되신 어머님마저 먼 길을 떠나셨다.

 

이 풍진 세상에 기댈 곳이라고는 가족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세월은 한 번씩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좋은 아들이었고 좋은 아버지 인가?

좋은 형이고 좋은 동생인가?

 

문창동 집은 우리와 같이 낡아가며 아직 거기 서 있고

효동집은 아버지가 어느 날 홀연히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

긴 밤 어머니의 외로움을 위로하고 달래 주다가

이젠 고독한 밤에 불을 켜는 것도 잊었다.

 

한 번 흘러간 강물은 다시 돌아 오지 않는다.

금강경 독경소리를 들으며 불국으로 떠나신 어머님도 다시 돌아 오지 않는다.

 

가족이 기거하는 항구의 불빛은 있어 여전히 따뜻하지만

나는 오래 그 불빛 속에 머물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내 걸었던 깃발은 뜨거운 태양과 세찬 바람에 그렇게 낡아갔고  

내가 내 걸었던 등불은 이제 밤을 밝히지 못한다.

 

세월의 파도는 내 작은 쪽배를 자꾸 먼바다로 밀어내고

벌써 항구의 불빛은 아득하다.

누군가 등대 불을 켜 주면 좋겠지만 항구를 밝히는 것도 힘에 부칠 것이다.

 

세월은 오늘도 내가 가진 소중한 무언가를 내놓으라고 으름짱을 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젠 물고기를 잡을 생각이 없고 주고 싶은 것도 없다네  

그냥 나는 내 바다의 고요와 낭만을 즐길 테니  

구태여 밤바다를 밝히지 않아도 좋으이…

폭우와 풍랑이 거센 어느 날  조용히 날  어머니 계신 곳으로 데려가도 좋으이….

 

 

 

2025년 4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