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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겨울을 보내며 (치악산)

 

 

산행일자 : 2005년 3월 13일

산행코스 : 절골-상원사 남대봉-영원사-함박골

동    행 : 충일 산악회

 

산행시작 : 10:40   남대봉 4.9km , 상원사 4.2km

상원사   : 12:15

남대봉   : 12:48

영원사   : 14:39

주차장   : 15:17

 

 

 

 

봄바람이 불었습니다.

따뜻한 햇살 아래 오솔길을 걸으며 다가 오는 봄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갑자기 준비 없이 떠나 보내는 이 겨울의 아쉬움이 마음을 찡하게 합니다.

올 겨울 대전엔 많은 눈이 내리지 않았고

나는 무엇이 바빠서 인지

나뭇가지에 피어나는 화사한 눈 꽃과 장쾌한 설국에서 하늘 가득 춤추며 내려오는 그 눈을 잊었습니다.

가슴 까지 시려오는 고산설릉의 칼바람을 어떻게 잊을 수 있었는지

수 많은 시간을 떠나 보내고

봄바람이 이렇게 내 귀 밑을 간지르고서야 훌쩍 떠나는 겨울이 안타까워지고 쇳소리를 내며 불어대는 차가운 바람이 그리워 집니다.

올해가 처음 입니다.

단 한 번도 펑펑 내리는 눈을 맞지 못했고

흰 눈을 가득 이고 선 나무 아래

무릎 까지 빠지는 눈 길을 걸어 보지 못한 날은.

 

나답지 않게 도심 속에 웅크리고 있었나 봅니다.

아직 겨울를 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봄의 기대를 간직한 채 남도로 떠나는 여행길을 접었습니다.  

서슬 푸른 겨울이 아직 어느 능선에서 서성이고 있을 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아니 떠나는 겨울의 서글픈 뒷모습이라도 돌아 싶다는 생각에

치악산으로 가는 차에 올랐습니다.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던 겨울이 이미 골짜기를 떠나버린 건 아닌지

 

  

 

강원도로 오길 잘했습니다.

태양은 밝게 떠 올랐지만

차가운 바람이 불어 가는 날씨는 기세 등등한 겨울 날씨 그대로 입니다.

 

아래 쪽 산비탈에 눈들은 벌써 모두 녹았고

아직 얼어 붙은 계곡엔 버들 강아지가 피었습니다.

얼음 아래로는 벌써 봄이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오늘이 가면 아마 봄은 성큼 다가와 얼어 붙은 계곡을 녹이고 경쾌하게

흘러 내리는 물소리를 들려 줄 태세 입니다.

 

떠날 차비를 차리고 있는 겨울의 모습이 쓸쓸해 보입니다.

곧 떠난 다는 소식을 듣고도 바빠 찾아 보지 못했던 친구

어깨가 처진 채 떠나는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서글픈 아쉬움에

남겨집니다.

언젠가 또 다시 만나겠지만

변화는 세상엔 이미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람도, 자연도.

올해 내 마음에서 겨울의 추억이 없었으니

봄의 애틋함과 그리움에 남겨지질 않습니다.

아직 다가 오지 않은 봄을 맞으러 마음이 제 먼저 남도의 들판으로

달려가질 않습니다.

 

기온은 차가 와도 바람이 산에 막혀 오롯이 봄볕만 스며드는 계곡 길

어떤 곳은 녹아 내려 질척거리고 어떤 곳은 여전히 빙판인 채 미끄럽습니다.

중턱을 지나 계곡은 여전히 얼어 붙어 있고 눈이 제법 쌓여 있습니다.

그나마 이 겨울 조차 바라보지 못한 채 보낼 뻔 했습니다.

 

 

 

 

 

 

까치의 전설을 간직한 상원사를 다녀온 건

벌써 몇 년이 되었습니다.

치악산 종주의 막바지에 처음 만났던 저물던 날의 상원사

겨울은 종루에 달려 있는 고드름으로 녹아 내리고

추억은 대웅전 처마 끝 작은 종에 매달려 흔들거립니다.

신을 벋고 올라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습니다.

항상 굽어 살펴 주심에 오늘도 이렇게 건강하게 산천을 주유하고 있습니다.

어딜 가나 따라 다니는 추억이 있어 여행길은 언제나 아름다운 상념입니다.

 

 

 

 

마지막 겨울

 

 

남대봉 가는 능선에 선 제법 세찬 바람이 불어 갑니다.

나뭇가지에서 결빙된 채 흔들거리는 눈 꽃

아직 바람에 날려 가지 않고 나무 등걸에 남아 있는 흰 눈

이것이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가는 겨울의 뒷모습 입니다.

 

 

 

 

남대봉 정상

 

 

멀리서 흘러가는 능선엔 아직 눈의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영동지방을 강타한 3월의 엄청난 폭설 소식에 고립된 사람들을 걱정하기에

앞서 철 없이 마음이 들떠 있었지만

먼 발치엔 갈 수 없는 나라의 그리움만 떠돌고 있습니다.

 

 

 

 

내려가는 계곡의 경사가 장난이 아닙니다.

아이젠 없이는 도저히 내려갈 수 없는 길

올 들어 두 번째로 아이젠을 발에 대어 봅니다.

많지 않은 눈이 아직 덮여 있고 계곡은 온통 얼어 붙어 있습니다.

이 길은 내가 처음 가 보는 길 입니다.

가지 않는 길에 남겨진 개대와 호기심.

움직임 없이 얼어 붙은 계절이 황량하다 해도

나목과 눈이 조화된 겨울 계곡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고요하고 적막합니다.

 

 

 

얼어 붙은 계곡

 

 

 

해빙1

 

 

해빙2

 

 

 

 

서두를 것 없이 느린 걸음으로 조용한 명상을 즐기며

천천히 계곡을 흘러 내립니다

편안한 목재 다리가 설치 되어 있는 넓은 개울은 응달진 곳이라

아직 꽁꽁 얼어 붙어 있어

동심으로 돌아가 썰매라도 한 번 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합니다.

 

 

 

 

 

영화사는 상원사 보다 해발이 더 낮은데도 번잡에서 한 켠 밀려나

언덕 위에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대웅전 뜰을 지나 다시 부처님 앞에 섰습니다.

소망이란 구체화 되지 않은 채 언제나 숙연하고 경건한 마음 뒤에서

서성일 뿐입니다.

넓어진 계곡 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가면서 다가오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못한 채 다가 오는 봄의 숨결을 다시 느껴 봅니다.

얼어 붙은 계곡은 고도를 낮춰 가면서 얼음 틈 사이 조금 더 큰 소리로

흘러 내리고 버들 강아지를 피워내고 있습니다.

가끔씩 변화 속에 남겨 지지만

큰 흐름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일 뿐 입니다.

 

 

 

 

 

어쩡쩡 하지만 조금은 마음이 정리될 수 있었던 마지막 겨울 여행은 그렇게

조용히 마무리 되었습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생각해 봅니다.

여전한 울림으로 자연과 교감하는 가슴을 간직하게 해 주셔서 부처님께

고맙다고 말할 걸 그랬습니다.

자연을 아름다움을 탐하는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사라지지 않는 동심과

그리고 작은 가슴떨림이 언제 까지나 남아 있게 해달라고 빌 걸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