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의 산수에 경악했다.
간헐적인 빗속에 운무가 흐르는 이국의 산하는 동양화 화폭을 눈앞에 그대로 옮겨다 놓은 감동이었다.
흥분과 감탄으로 점철된 한 나절은 참으로 그 비경이 중국 땅이었음이 애석했고 난 망설임 없이 그 희한한 세상이야 말로 죽기 전에 꼭 돌아보아야 할 절경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안개비가 내리던 공룡능선
그 몽환의 구름 위로 떠 가는 듯 설악의 자락을 흘러가던 시간의 기억이 살아오고 깊은 산중에 길을 잃고 홀연히 무릉원에 들어선 신비와 외경에 남겨진다.
거기에도 아킬레스 건은 있다.
화창한 태양의 날을 보기가 어렵고 아열대 기후라 가을에 단풍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항상 축축하고 우울한 산천은 산보 하듯 걸어가며 바라보는 산이었다.
한국의 산처럼 땀 흘리고 거친 숨을 몰아 쉬면서 내가 산의 일부분이 되어가는 그런 격렬한산이 아니라 표구되어 벽에 걸린 한 폭의 그림 같은 산
지금까지 만난 산들과 개념을 달리하는 참으로 부럽고 아름다운 산이었지만 돌아 오는 길에도 그 잔상과 감동이 내 눈 앞에 너울거리지만 채워지지 않은 이프로가 남아 있었다.
난 여전히 신토불이 토종인 모양이다.
의자 말고는 다 먹는다는 세계 최고의 음식 나라 중국에서 수 많은 종류의 요리들을 편식하지 않고 두루 섭렵하는 불가사리 먹성의 위력은 여전했는데….
좀 걸은 것 말고는 절대적인 운동량이 부족하니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던 남사시러운 애슬픔이 안스럽던 날은 거칠게 일어나 앉아 있는 산릉을 숨이 턱에 차도록 올라 채지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내려 온 후유증 이었다
지리산엘 가기로 했다.
유월의 하늘을 걸고 떠나던 유랑 길을 올해는 좀더 앞당기기로 했다.
귀연팀들과 유월 둘째 주 함께 하려 했는데 작년 같지 않게 동행이 없어서 노고단에 올라 마지막 봄의 화원을 거닐다 떠나는 오월의 봄을 천왕봉에서 전송하기로 했다.
중국 여행 길에서 채우지 못한 이프로를 찾아서…
지리산엘 혼자 가느냐고 한다.
“왜 외로울 것 같아서?”
“산이 친구고 바람이 친군데… 산을 찾은 누군들 길동무가 되지 않을까?”
왜 산엘 가냐고 묻는 건 궁색한 대답이 돌아가는 우문이다.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누구의 삶에서나 느슨한 이완과 완충은 필요하지 않을까?
오래 전부터 산은 방황하는 내 영혼을 위한 순례지고 내 그릇 안의 작은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길이었다.
그 길 위를 그냥 조용히 걸어가면 그저 가슴이 따뜻해 오고 운이 좋으면 사유와 사색의 뒷길에 숨어 있는 삶의 지혜와 철학을 만날 수도 있다.
산길을 걸으면서 잊혀진 아쉬운 추억과 그리움을 펼쳐 볼 수도 있고 바람에 날리는 기쁨과 희망을 바라 볼 수도 있다.
내가 대자연 한 가운데 서 있다는 것만큼 신나고 황홀한 일이 얼마나 더 있을까?
그 길은 언제나 무릉원으로 이어져 있었다.
점액질의 끈적한 밤을 질러 가는 기차 속에서 깊이 잠들 수 없다.
익숙한 목소리의 객실 방송이 자장가처럼 비몽사몽으로 빠져들게 하더니 별로 오래되지 않은 시간에 구례구역의 가로등아래 붐비는 인파에 남겨졌다.
새벽 3시 30분
서두를 것 도 없는 칠흑의 새벽길이라 버스를 타고 버스터미널에 가서 새벽식당에 앉는다.
노고단으로는 20분에 출발 한다고 했다.
세상에서 다시 먹고 싶지 않은 우거지 해장국
여기가 전라도가 맞는가?
전천후 애피타이트의 혹평이라면 아줌마의 음식솜씨는 거의 빵점이라는 얘기다.
새벽 5시에 성삼재에 새벽공기를 마시고 홀로 산길을 걷는다.
어둠을 깨고 푸른 새벽이 달려오는 지리산 길
작년에 3번 지리산에 있었고 1년 만에 다시 오른 종주길이라 감회가 새롭다.
새벽을 깨우는 새소리는 하염 없이 따라오고
새벽의 휘장을 걷고 꿈처럼 다가오는 연초록 빛 신록의 싱그러움
그리고 길섶에서 아직 봄의 뒷꼬릴 여전히 잡아 채고 있는 화사한 철쭉들
그 잊었던 지리산의 숨소리를 다시 듣는 것 만으로도 행복한 하루의 시작이다.
어느날 아카시아 꽃 향기의 여운을 남긴 채 내 곁을 훌쩍 떠나간 봄은 여기 지리산 용골마루에서 이렇게 서성이고 있다.
임걸령 샘물 맛
거기에도 지리산의 그리움이 녹아 있다.
사람마다 미각이 다르겠지만 연하천 ,벽소령, 선비샘, 세석 ,장터목 물맛 중 임걸령 물맛이 으뜸이다.
내 발을 타고 오르는 지리산의 정기로 가슴을 틔우고 염천에 한발의 땀으로 속세의 진폐를 걸러낸 연후에 다시 한말의 청수로 오장육보를 세척하면 지리산의 맑은 기운이 내 몸 안에 고인다.
자연! 그 살아가는 날의 기쁨으로
반야봉을 오르는 길엔 철쭉이 흐드러지고 꽃 잎을 채 열지 않은 철쭉도 보인다.
봄을 아직 기다리고 있는 꽃이 있으니 삼월 사량도 물길에서 건져올린 봄을 난 참으로 오래 동안 만나고 있다.
사진 찍던 부부만 있던 반야봉에서 피곤이 밀려와 바위 위에서 누웠는데 40분이나 자버렸다.
선잠을 자고 나서 다시 길을 잡으니 한결 컨디션이 좋아지긴 하는데 중국에서 망가진(?) 몸이라 오늘의 여정은 다소 힘이 부친다.
연하천의 쉬파리 떼의 급습
수 많은 사람이 모여 식사를 하는 연하천에는 사람보다 더 많은 파리떼가 극성이다.
식사를 하고 산장 앞 벤치에서 또 하염없이 졸고 있는 나 .
동행이 없다는 건 한 없이 나태하고 해이해 질 수 있는 게으름
벽소령 가는 길 바람 바위 위에 다시 올랐다.
청산가경
우아한 노송의 자태와 일대를 굽어보는 멋진 풍광은 변치 않았다.
작년에 올랐던 그 곳에서 우측 바위틈새로 더 높은 곳으로 오르는 이 있어 따라가 본다.
인간의 내면 속에는 어딘가에 끊임 없이 오르고자 하는 욕망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유전자에 이미 프로그램 되어버린 상승 본능이 죽음과 남겨질 자의 고통도 아랑곳 않은 채 젊은 피를 들 끓게 하여 히말라야의 고봉으로 내모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해저 심해는 아직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바위 위에서 맞는 바람이 더 시원하고 눈에 담아내는 풍광은 더 수려하다.
멀리 구비치는 능선 사이 세석대피소가 보인다.
벽소령에 잠시 휴식하다 세석으로 간다.
가는 길에 나물을 뜯는 이 있어 한 수 배웠는데 참나물이라고 했다.
걷는 것 말고 또 할 일이 생겨 길섶에 참나물을 찾느라 바빠진 바람에 어딘가에 디카를 남겨두고 왔다.
카메라의 눈으로 붙잡아 맨 아까운 기억들을 다시 들춰낼 수 없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지리산 주릉이다 보니 등산로 훼손이 심하다.
작은 땅에 딱히 갈만한 데도 별로 없고 답답한 일은 더 많으니
자연의 자정능력을 넘어설 정도로 이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품속에서 기쁨과 위안을 찾는다.
인간과 자연은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있지만 수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공유시킨다는 대의명분은 항상 자연의 황폐함을 가속화 시켰다.
그래서 성삼재 까지 버스로 오면서도 산을 칭칭 감고 올라가는 아스발트가 안타깝고 강제로 고속도로가 나버린 고등학교 시절 내 머리 모양을 한 덕유산이 항상 아쉬워 진다.
백두대간 길목에서 좌절한 모습으로 허물어져 버린 자병산의 모습은 떠 어떤가?
손바닥 만한 땅덩어리를 이렇듯 까마귀 똥 파헤치 듯 들쑤셔 놓으면 우리 후손들은 어느 언덕에 올라 풍진 세상의 시름을 위안 받을까?
장님이 코끼리 만져보고 유전자 조작된 코끼리를 다시 만들어 내 듯이 한 번 갔다 온 중국 장가계 얘기만 해서 뭣하긴 하지만 거긴 훼손이란 없는 듯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부에 오르면 마천루 같은 기암봉들 사이에 평평한 산책길을 돌을 깔아 만들어 놓았다.
파노라마처럼 물결치는 무수한 기암의 봉우리들
그 오르지 않고 바라 보는 산은 훼손 없이 천년만년 후손들에게 관광수입을 안겨줄 것이다.
이미 중국은 프랑스 ,스페인 ,미국,이탈리아에 이어 관광수입 5위의 관광 대국이다.
그들은 또다시 북경 올림픽을 겨냥해서 장씨 마을 옆 양씨가 사는 마을도 개발하여 양가계를 만들 거창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들의 무수한 땅은 필요에 따라 조금씩 개발해가며 수많은 한국사람들과 세상사람들의 호주머니를 열게 할 것이다.
우리는?
조막만한 땅뙤기를 대책 없이 갈아 엎고 생태계를 황폐화시키는 골프장,스키장을 부지기수로 만들어 대고 심원의 수림을 관통하는 길을 만들어내 심산의 가슴까지 유린하고 있질 않은가?
아무런 책임감과 죄책감 없이….
관광수입은커녕 무성한 나무들을 죄 베어버리고 태워버려 훗날 우리의 자손들이 휴식할 수 있는 한 평 그늘마저 빼앗아 가고 있다.
“내가 오늘 또 왜이리 비분강개하나?”
다소 흐려 있긴 해도 마른 하늘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난다.
새석고원을 오르는 나무계단을 지나면서 비가 내린다.
날씨는 맑다고 했는데 우짜 이런 일이…
빗방울이 크지 않아 그저 몸으로 받아 내는데 지쳐 있는 터라 차가운 비가 오히려 반갑다.
노고단에서 시작하는 지리산 종주란 그다지 힘겨울 건 없는데 그래도 긴 여정이라 이것저것 주섬주섬 넣다 보면 배낭무게가 상당해진다.
오늘 종주엔 버너와 코펠도 빼어 버렸는데도 왜 이리 무거운지…
세석고원에 올라서자 빗줄기가 세차진다.
배낭에 방수포를 씌우고 빗물을 온몸으로 그어내니 고원을 불어 내리는 바람에 온몸이 얼어 붙는 듯 하다.
우중화원
절정을 시새우는 고원의 철쭉
연초록의 나뭇잎들과 대비되는 세석의 화사한 철쭉을 처음으로 대한다.
빗물에 곱게 씻기운 고원의 꽃 밭은 보는 이 별로 없는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자랑하고 있다.
제암산과 바래봉처럼 지천에 널린 붉은 화사함과 대비되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지친 가슴을 흔든다.
없는 살림에 잃어버린 디카가 더 애석하고 아까워 지는 시간이다.
촛대봉에서 비는 멎었고
부는 바람은 내 옷에서 물기를 조금씩 거두어 갔다.
장터목은 오늘도 어김없이 1시간 30분 거리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지친 나그네가 쉼터를 찾아들 듯 그렇게 지리산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산에서는 한 껏 자신을 낮추어도 좋았다.
아니 작아진 채로 그 길을 걸어 가면서 만날 수 있는 기쁨들 그리고 멀리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그 뻐근한 휴식과 새롭게 채워지는 영혼의 느낌이 좋았다.
온갖 욕심과 집착의 굴레를 벗고 편안함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
보통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그 산의 유혹을 떨칠 수 없어 나는 오늘도 심산
을 구름처럼 떠돈다.
다른 때보다 힘들었지만 혼자라서 스스로의 컨디션과 페이스대로 천천히 움직여간 여유로운 산행 길이었다.
그 길을 걸어 내리며 훌쩍 떠내 보낸 줄 알았던 봄을 다시 만났고 무상한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함 없이 넓은 가슴을 열고 상심과 슬픔을 보듬어 주는 큰 산의 넉넉함을 다시 만났다.
식사를 마치고 개와 늑대의 시간이 오면 산장에서는 날건달이 된다.
해가지고 사물의 윤곽이 흐려질 무렵 친숙한 개가 늑대처럼 낯설어 보인다는 개와 늑대의 시간은 역설적으로 따뜻하고 부드럽고 감미롭게 다가 왔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시간
이제 큰 산마루에 등을 기대어 잠들면 심산의 정기는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세상의 시름과미망을 거두어 내 영혼을 맑고 투명하게 정제해 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의욕과 기쁨이 충만한 채 산을 내려가게 될 것이다.
자리를 배정 받고 마루 침상에 앉아 졸다가 모포를 지급받자 마자 누워 잠들었는데 누군가 깨운다
”저 코를 너무 심하게 고시는 통에 잠을 못 자겠는데…. ”
9시쯤 넘었으니 1시간이 좀 넘게 잔 셈인데
하지만 난들 어떡하우
황당한 일이라 좀 기다렸다 그 아저씨 코고는 소리를 듣고 다시 잠들었다.
Zzzzzzzzzzzzzzz-Zzzzzzzzzzz
너무도 주위가 소란스러워 잠이 깼다.
3시가 좀 넘었는데 천왕봉 해돋이 보러 가는지 대부분 일어나서 벌떼 같이 웅성거린다.
해 뜨는 시간이 5시 20분 쯤이라 4시 30분에 가면 충분 할 텐데…..
“아뿔사” 다시 잠들었다 일어나니 4시 50분이다.
산에서 7시간도 넘게 잔 셈이다.
모포를 개고 옷을 후다닥 입은 다음 장터목 길을 내니 희미하게 새벽이 달려오고 있다.
5시 20분
천왕봉에 다다를 때 쯤 하나 둘 씩 사람들이 내려온다.
예상했던 대로 오늘은 구름이 많아 해가 뜨지 않는단다.
5시 30 분쯤 세찬 바람이 불려가는 천왕봉 표석 앞에 섰다.
새벽 일찍 와서 추위에 떨던 사람들은 30분 까지 기다려 해가 여전히 구름 속에서 나오지 못하자 무리지어 아쉬운 마음으로 하산했고 천왕봉에는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너무 바삐 올라 오느라 턱에 찬 숨을 몰아 쉬면서 그 시원한 천왕봉 바람으로 달아오른 온몸의 열기를 식혔던 것이다.
천왕봉 태양은 사람들이 죄 내려간 다음 구름 사이로 잠시 얼굴을 보였다가 구름위로 유유히 찬란한 모습을 드러냈다
2005년 5월 29일 5시 50분 현재
나는 올해도 어김 없이 남단의 고봉에 서서 떠 오르는 태양을 향해 두 팔을 높이 들었다.
니체가 그랬나?
“폭풍을 이르키는 것은 가장 조용한 언어이다.”
“비둘기처럼 고요한 사상이 우리의 세계를 뒤흔든다.”
바람결이 시린 천왕봉에서 깨어나는 고원의 아침과 붉은 태양이 고요함 속에서 세차게 나를 흔들고 있다.
나는 대자연의 축복을 온 몸에 받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지리산 순례의 장정을 마무리하였던 것이다.
내 마음의 성지 , 그리고 다시 찾지 않을 수 없는 목이멘 그리움
애초에 웅석봉이 하봉에서 멀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천왕봉에서 웅석봉까지 거리가 지리산 주능선
보다 더 멀다는 사실에 아연할 수 밖에 없었다.
어제 같이 몸이 무겁다면 동행이 있다 해도 11시간의 산행은 무리가 될 것 이다.
게다가 지도한 장 가지고 지리산 오지의 초행길에 뛰어들 용기를 내기란 더욱 쉽지가 않다.
나는 나처럼 혼자 산행을 즐기는 전주 산꾼을 동행으로 이러저러한 산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침 햇살이 무성한 초록 잎 위로 눈부시게 쏟아지는 백무동 계곡 길을 느리게 걸어 내렸다.
숲은 아침의 향기를 진하게 피워내고 새들은 시끄럽게 운다.
흐르는 물길에 언뜻 언뜻 부서지는 눈부신 초록의 너울이 나른한 아침
햇살이 눈부신 날 푸른계곡을 물처럼 흘러내리며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황홀한 아침인가?
눈부신 지리산의 아침 속에 있어서 인지
자는 사이 산신령님이 내 가슴에 담겨있던 아쉬움과 미련을 훌훌 털어내고 속세의 찌꺼기
를 쓸어내 주었는지 기분은 상쾌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발길이 가벼워 진다.
삶이란 조용히 스쳐 지나는 바람 같아야 한다
수 많은 세상의 번뇌에 흔들리지 않기를 ….
언제나 아름다운 대자연 한 가운데 넋 놓고 그 감동에 목놓아 울 수 있기를 ….
조용히 나 혼자만의 의식으로 2005년 지리산 순례의 길을 그렇게 마무리 했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대지를 스쳐가는 풍경들을 좀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여행길에서 돌아왔다.
지리산 순례는 내 마음에서 곧 잊혀져 갈지 모르지만 그 따뜻한 기운은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함께 있으면 그 향기가 짙어 오고 멀리 있으면 그리움이 향기에 배어 올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사람으로 늙어 갈 수 있다면 .....
내 삶을 사랑하고 항상 산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오는 여행길에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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