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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 트랜드

세상을 바꾼 룸메이트들

세상을 바꾼 룸메이트들, 수천억을 벌었지만
  2006/07/19 15:01
백강녕      조회 103994  추천 5

1991년 대전 카이스트 기숙사. 5~6평 남짓한 방에 두 젊은이가 부대끼며 살았다. 두 사람은 가끔 통닭을 사먹었다. 한 친구는 입이 짧아 한 조각 먹으면 그만이었다. 나머진 다른 친구가 해치웠다. 한 명은 나날이 살이 불었다. 다른 친구는 앙상한 자신의 몸매를 보며 친구의 살 가운데 절반은 내 몫인데 빼앗겼다고 생각하곤 했다. 이 뚱뚱이와 홀쭉이 콤비는 통닭 때문에 언쟁을 벌이기도 한 모양이다.

 

15년이 지난 지금 통닭을 가지고 티격태격 하던 두 사람은 나란히 한국에서 최근 가장 성공적인 회사를 만들었다. 두 사람의 이름은 이해진과 김정주. 지금도 NHN 이해진 사장은 마른 편이다. 많이 빠졌다지만 넥슨 김정주 사장은 아직도 살집이 좋은 편이다. 당시 기숙사에 같이 살았던 친구들은 정주가 해진이 몫까지 다 먹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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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 사장>                                      <이해진 사장>

 

두 사람이 가진 주식 평가액을 합치면 6700억원 정도다. 그것도 작게 잡은 것이다. 게다가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두 회사는 평가액보다 휠씬 큰 회사다.

 

국내 부자들이 가진 보유주식을 데이터베이스화 해 놓은 에스엔제이가 지난 4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김정주 넥슨 대표이사가 가진 주식 평가액은 3807억원. 넥슨은 비상장업체이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잡은 숫자다. 지금 시장에서 떠도는 소문대로 넥슨이 일본 증시에 상장 한다면 조 단위로 불어날 수도 있다.  

 

비슷한 시기 코스닥상장사협의회는 NHN의 이해진 전략담당임원(CSO)이 가진 주식 가치가 2878억원이라고 발표했다. NHN은 이제 따로 소개가 필요 없는 인터넷 재벌기업이다.

 

버림 받은 지방 기숙사 구석구석에서 거부들이 자라나다

 

90년, 91년 카이스트 기숙사는 특별한 곳이었다. 90년 카이스트 대학원에 들어간 젊은이들은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생활했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은 버림받았다. 카이스트는 그해 서울 홍릉에서 대전으로 이사를 했다. 신입생들은 대전 기숙사에 들어가야 했다. 교수와 대학원 선배들은 서울에 있었다.

 

고등학생들에게 대학 학생증은 놀이공원의 자유 이용권과 비슷하다. 부모님, 선생님, 나아가 우리 사회가 대학생에겐 관대하다. 공부하라는 압력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대학은 사람을 자유롭게 만든다. 서양 중세 도시의 공기는 사람을 자유롭게 만든다는 속담이 생겼다. 우리 나라 대학이 그렇다.

 

그러나 대학원은 좀 다르다. 대학원 새내기들은 분명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들이키지만 주변 공기가 무거워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학 땐 우습던 선배, 교수가 무서워진다. 보통 인문계보다 이공계열이 더 심하다. 선배, 교수들 연구실에 들어가 온갖 힘든 일을 다 해야 한다. 개인 시간이 확 줄어든다. 조직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그런데 90년 카이스트 석사 과정에 들어간 학생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90년 카이스트 전산과 입학생인 넥슨 김상범 이사는 1년은 그냥 놀았다고 생각한다. 교수들이 강의 시간에 맞춰 대전에 왔다가 서둘러 서울로 갔다. 혹은 서울에 일주일에 한번 정도 강의를 들으러 갔다 다시 내려가면 그만이었다.

 

황량한 벌판에 세워진 건물에서 늘 같이 생활해야 하는 카이스트 전산과 학생들은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버림 받은 것 같은 불안감이 서로를 꼭 묶는 보이지 않는 끈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시간이 남아도는 학생들은 쓸데없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쓸데 없는 짓이 한국 정보기술(IT) 환경, 산업을 확 바꿔버렸다. 나아가 사회도 변했다.

 

당시 학교엔 컴퓨터가 있었지만 거기선 한글을 쓸 수가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운영체제가 아닌 유닉스 계열 운영체제를 쓰는 컴퓨터였기 때문이다. 당시 유닉스에선 한글을 쓸 수 없었다고 한다. 한가한 학생들이 직접 문제를 해결했다.

 

따분해 죽을 지경이었던 어느 방 룸메이트 두 명이 잡담을 하다가 유닉스에서도 한글을 쓸 수 있도록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친구의 이름은 송재경, 다른 친구의 이름은 김상범이었다. 김상범 이사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송재경>

<송재경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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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 이사>

 

재경아 이런 거 만들면 재밌겠다, 니가 만들어라. 그래서 한텀이란 프로그램이 태어났다. 시간은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외국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가져다 손을 본 것이지만 한텀은 원래 프로그램보다 휠씬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처음 작품보다 훌륭한 속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현재 XL게임즈 대표인 송재경 사장은 천재로 불리는 극소수 프로그래머 가운데 하나다. 국내 최대 온라인 게임인 리니지 개발자로 유명한 송 사장에겐 유명한 일화도 많다. 엔씨소프트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사장이 송재경 부사장과 같이 미국에 갔다. 두 사람은 미국 게임업체 관계자와 만나 게임개발에 대해 협의했다. 미국 업체 담당자는 엔씨측은 이런 부분을 맡아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고 이야기했다.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있는데 재경이가 말은 안하고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더라구요. 엔씨 김택진 사장은 사실 좀 화가 났다. 중요한 미팅이었는데 저 친구가 자기 성격 이상하다고 자랑하나 이런 심정이었다. 송 사장은 독특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예를 들어 엔씨소프트에서 일하던 시절 직원들은 회사에서 송 사장 얼굴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아주 가끔 출근을 했다. 그래도 회사에선 별 불만이 없었다. 아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그가 해결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개발할 내용을 적어 놓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의가 끝났을 때 송재경은 미국에서 요구한 프로그램을 내밀었다. 개발팀이 달라붙어 보름쯤 걸릴 일이라고 말했는데 회의 하는 도중에 그걸 만들었더라구요. 송 사장이 천재성을 보여준 다음 상대 회사는 엔씨소프트를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천재 한명이 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는 나름 근거가 있다.

 

쓸데없는 생각은 시간낭비지만 어떤 쓸데 없는 생각은 세상을 바꾼다. 김정주 사장이 그런 망상을 했다. 어느날 정주가 파이널판타지를 여러명이서 동시에 하는거야. 재밌겠지, 죽이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파이널판타지는 일본이 만든 세계적인 게임기용 게임이다. 김상범 이사는 당시 자기는 도저히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천재 송재경도 인정하는 뛰어난 프로그래머 가운데 하나가 김상범 이사다. 김 이사가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당시 기준으로는 워낙 황당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게임은 당연히 한 명 아니면 두 명이 서로 상대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여러 명이 게임을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김정주 사장도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을 떠든 것일지도 모른다. 쉽게 말해 헛소리였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송재경 사장은 할 수 있다고 했다. 여러 명이 동시에 채팅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채팅 엔진에 그래픽을 얹으면 될거야.

 

특정 단어가 나오면 게임 속 사람이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세계 최초의 온라인 그래픽 게임 바람의 나라. 말하자면 바람의 나라는 좋게 말하면 요즘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나쁘게 말하면 사회문제인 온라인게임(MMORPG)의 원조다.

 

쓸데없는 망상이 세상을 바꾸다

 

심심해 미칠 지경이던 90년, 91년 카이스트 입학생들이 한 이상한 상상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예를 들어 요즘 어린이날 선물로 가장 인기 있는 품목 가운데 하나가 게임 아이템과 게임에서 사용하는 돈이다. 넥슨이 만든 게임 메이플스토리를 주제로 책으로 펴낸 출판사만 6개다. 요즘 책을 내는 출판사들은 3000부만 팔려도 행복하다. 사람들이 점차 책을 사거나 읽지 않기 시작했다. 그러나 메이플스토리를 만화로 만든 책만 400만권 이상 팔렸다.

 

넥슨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다른 예를 보자. 한때 초등학생 사이에선 강냉이란 욕 아닌 욕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욕이 애자였다. 장애자를 줄여 놓은 말로 바람의 나라를 하던 초등학생들이 이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넥슨은 게임에서 누군가 게임을 하다가 애자란 단어를 쓰면 강냉이로 바꿔서 화면에 뿌렸다. 그 이후 게임에서 상소리가 크게 줄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면 꼭 부작용이 나타난다. 풍선을 위에서 억지로 누르면 옆구리가 부풀어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 넥슨이 만든 정책도 이상한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강냉이야를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까진 좋았다. 그러나 넥슨이 가진 힘은 위험할 정도였다. 이런 현상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넥슨은 일반적인 욕설을 친구야로 바꿔 놓았다. 게임을 하다가 야 이 XXX야라고 말을 하면 상대는 야 이 친구야란 단어를 본다. 김상범 이사는 나중에 보니 초등학생들이 친구란 단어를 욕처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예컨데 동무란 단어를 생각해보자. 남북 대립은 한반도 남쪽에서 동무란 단어를 죽였다. 넥슨은 게임을 통해 그런 힘을 발휘한 것이다.

 

이제 넥슨은 다국적기업이다. 한동안 일본에서 살았던 김정주 사장은 요즘 중국에 가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중국, 일본, 한국 등 전세계 9개국에서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비엔비 등 넥슨이 만든 게임을 한다. 비엔비를 즐기기 위해 넥슨 사이트에 가입한 중국 회원이 1억3000만명. 전세계 회원을 합치면 1억8000만명에 달한다.

 

전세계 메이플스토리 회원이 3900만이다. 국민게임으로 불리는 카트라이더 국내 가입자 숫자만 1500만명이다. 마비노기, 바람의 나라, 어둠의 전설, 일랜시아, 테일즈위버, 빅샷, 워록, 제라 등 회사가 만든 게임 가입자 숫자를 다 합치면 3억명이다. 물론 여러가지 게임을 동시에 가입한 사람이 많아 중복이 있다. 그래도 엄청난 숫자란 것은 분명하다.  

 

당시 카이스트 기숙사에 모여 있던 일군의 재능 있는 젊은이들은 우리가 세상을 이렇게 바꾸어 놓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심심해서 즐거운 상상을 하고 그것을 현실로 만든 것이다. 그게 큰 돈으로 변했다. 그러나 이 한편의 소설 같은 일련의 성공 스토리에는 행복한 이야기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리니지는 엄청난 돈을 거둬 들였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NHN은 사실상 한국 인터넷의 대부분을 점거했다.  너무 커진 덩치가 만든 그늘이 다른 인터넷 기업들을 가릴 정도다. 그 결과 네이버에 반감을 가진 기업과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넥슨이 만든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부모 대부분이 속이 탄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고 넘어갈 것인가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온 듯하다. 단순히 벤처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같이 풀어야 할 숙제다.

 

 /백강녕기자 young10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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