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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

괴물 - 봉준호감독 인터뷰 (이동진기자)

“괴물 등장 이후가 진짜 하고픈 이야기”
자신도 약자인 사람들이 더 약자인 떠돌이
어린이를 지켜내는 결말에선 희망을 담고 싶었다
글=이동진기자 djlee@chosun.com ·사진= 이덕훈기자 leedh@chosun.com
입력 : 2006.08.09 00:01 27' / 수정 : 2006.08.09 00:04 50'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괴물’의 흥행세가 여름 극장가의 화제를 독점하고 있다. 이 영화는 개봉 12일 만인 7일까지 7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들이는 괴력을 발휘하면서 폭발적 흥행 양상을 보이고 있다. 봉 감독은 뛰어난 완성도를 지닌 ‘괴물’과 ‘살인의 추억’으로 평단과 대중을 한꺼번에 사로잡으며 충무로의 양적 스펙트럼까지 크게 넓혔다. ‘괴물’에선 한강에 출몰하는 돌연변이 괴물과 사투를 벌이는 가족 이야기를 특유의 유머와 풍자로 다뤘다.

―흥행이 정말 기록적이다.

“‘광기의 스코어’라서 두렵기까지 하다. 나도 나름대로 예술영화 감독인데 정체성의 혼란이 온다.(웃음)”

―최근 일본에서 빡빡한 인터뷰 일정을 소화했다.

“일본 개봉을 앞두고 요미우리신문, 후지TV 등과 40여건의 인터뷰를 했다. 일본이 ‘괴수영화’ 장르의 본고장 같은 곳이라서인지 호응이 높았다.”

―무능력하고 부도덕한 권력과 사회가 구성원을 지켜주지 못해 비극이 커지는 얘기란 점에서 ‘살인의 추억’과 상통한다.

“시스템이 개인을 구원할 수 없다는 비관론이 내게 있는 것 같다. 독극물로 괴물이 생기고 그 괴물에게 더 큰 독극물인 독가스가 뿌려지는 악순환의 은유로 사회 모순을 그리고 싶었다. 자신도 약자인 사람들이 더 약자인 떠돌이 어린이를 지켜내는 결말에선 희망을 담고 싶었다.”

―탁월한 영화적 리듬과 유머, 높은 기술적 성취에 비해 현실비판 메시지는 투박하게 보인다.

“이 영화의 정치적 메시지가 울퉁불퉁한 것은 사실인데, 그게 괴물 장르의 특성이라고 본다. 투박하고 거친 풍자가 이 장르에 활력을 주고 드라마와도 잘 엮인다고 판단했다.”

―‘괴물’을 반미영화로 보는 견해도 있다.

“기획 당시 주한미군이 한강에 독극물을 무단방류한 ‘맥팔랜드 사건’이 보도되었다. 한강변 괴물 출몰 영화를 기획하던 나로선 이보다 더 절묘한 모티브가 없었다. 미국에 대한 풍자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상식적인 이 정도 풍자를 반미라고 한다면, 안톤 오노 사건 때 분노했던 한국인들을 반미주의자로 몰아붙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할리우드는 늘 타국인을 악당으로 만드는데 왜 미국은 다른 나라 영화에서 풍자 대상이 될 수 없나.”

―‘괴물’이 한국영화로서 높은 특수효과 완성도를 보여준 것에 대해 관객들이 일종의 ‘국민적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다.

“본격 착수도 하기 전에 ‘괴물’이 화두가 되어 ‘우리도 할 수 있다’와 ‘결국 안 된다’로 인터넷에서 치열한 논전이 벌어지더라. 국민적 CG(컴퓨터그래픽) 콤플렉스라고 할까. 한국 축구에 대한 논의와 비슷했다.(웃음) 최상의 결과를 위해 미국 특수효과 업체 오퍼니지와 일일이 논의했다. 예산을 덜 들이려고 어떻게 하면 괴물 등장 장면을 줄이면서 이를 창의적 표현으로 전환할까 내내 생각했다.”

―강두(송강호)가 괴물 입에 찔러넣고 손을 뗀 파이프를 부르르 떨리게 묘사한 장면이 그 예일 것 같다. 괴물을 제대로 등장시키지 않고도 절묘한 효과를 빚었다.

“정작 촬영 때는 우스꽝스러웠다. 아직 CG가 없는 상태에서 스태프가 파이프만 허공에 치켜들고 흔들어댔으니까. (두 팔을 들고 떠는 흉내를 직접 내가며) ‘이렇게요? 아니면 요렇게요?’라고 내게 물어가며 장시간 변주해서 떨어댔다.(웃음) 스필버그도 ‘죠스’를 만들 때 고무 상어가 자꾸 고장나자 이를 대체할 상어의 시점샷을 만들어 섬뜩한 효과를 빚지 않았나. 제한이 창의성을 촉진하는 경우도 있다.”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웃지 않으면서 남을 웃긴다. 하지만 그는 먼저 웃음을 터뜨리는 ‘치명적 약점’이 있는데도 특유의 재치와 상상력으로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이야기 밖에서 반응을 살피는 대신, 이야기 속에 뛰어들어 함께 웃기. 먼저 터지는 웃음에서 ‘인간 봉준호’의 심성을 보았다.)

―괴수영화 장르의 관습과 달리 극 초반 대낮에 괴물이 난동을 부리는 장면을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선 감독의 몇가지 노림수가 엿보인다. “괴수영화에서 이런 거 보고 싶으셨죠?” “하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화끈하게 보여줄 줄은 모르셨죠?” “그런데 처음에 다 보여드리는 건 괴물이 날뛰는 게 이 영화 전부가 아니란 뜻입니다.”

“셋 다 맞다.(웃음) 이 장르의 기본 재미를 충족시키면서도 장르 관습을 바꾸고 싶은 반항심이 있었고, 괴물 등장 후 가족 이야기와 사회적 도그마에 대한 풍자로 무게중심을 옮길 것임을 선언하고 싶었다. 매도 일찍 맞는 게 낫겠다는 판단도 있었다. 어차피 관객들이 내내 걱정어린 눈으로 국산영화 CG 수준을 염두에 두며 볼 텐데 초반에 정면승부하면 어찌됐든 그 다음부터는 CG에 신경 안 쓰고 이야기에 집중할 것이라 믿었다.”

―이 영화가 흥행하면서 스크린쿼터 축소를 반대해온 영화인으로서 부담도 적지 않을 듯 하다.

“‘왕의 남자’ 때 영화 흥행이 쿼터 축소 빌미가 될까 걱정했던 이준익 감독 심정에 공감한다. ‘결국 영화만 잘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들 하시는데, 사실 영화를 잘 만든다는 말 속에 이미 산업적 요소가 큰 비중으로 담겼다. 충무로 감독은 개별 영화를 지켜주는 스크린쿼터 속 한국영화산업의 건강함 속에서 비로소 작품을 잘 만들 수 있다. 영화 생산구조 자체가 개인적 작업인 소설과 다르다. 스크린쿼터가 대선공약이었는데 대통령이 왜 공약을 안 지키는지 실망스럽다. 공약에 없던 쌍꺼풀 수술은 하면서.(웃음)”

―특별히 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나.

“고생하는 영화 스태프들에게 미안하다. 더 좋은 조건에서 일하게 해야 하는데 감독이란 위치가 애매하다. 예술적으론 사용자 위치지만 제작에선 피고용인이니까. 꿈을 빌미 삼아 ‘싫으면 떠나라’란 논리를 스태프에게 언제까지나 강요할 순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