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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텔레비젼 - 전자신문 월요논단 -최지성(삼선전자 DM 총괄사장)

최지성 삼성전자 DM총괄 사장

 

 최근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이 선정, 발표한 ‘21세기를 위한 50개의 위대한 아이디어’에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 등이 주도하는 민간 자선사업이 포함됐다. 이는 개인화된 삶의 질과 환경, 도덕적 가치 등이 중시된다는 점에서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특징지어지는 20세기의 위대한 발명품들과 차이가 크다.

 21세기 위대한 아이디어 가운데 ‘블록버스터 텔레비전’도 있다. 원래 블록버스터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공군이 사용한 4.5t짜리 폭탄이다. 한 구역(block)을 통째로 날려버릴(buster)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녀 이런 이름이 붙었단다. 요즘은 흥행을 목적으로 막대한 자본을 들여 제작한 영화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아마도 여름방학 등 특정 시즌을 겨냥해 기존 영화계를 초토화한다는 점이 닮았기 때문일 게다.

 영화판을 흔들어 놓고 있는 블록버스터가 등장한 계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영화산업의 위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 이후 컬러TV가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할리우드 영화산업은 극장 관객이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드는 위기를 맞았다. 당시엔 마치 TV가 극장을 모두 망하게 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할리우드는 TV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영화만의 스펙터클을 대안으로 찾았다. 그 결과 블록버스터의 시초로 불리는 ‘벤허’를 시작으로 ‘죠스’ ‘스타워즈’ ‘타이타닉’ 등 대작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고 관객들은 다시 극장으로 몰리게 된다.

 그렇게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영화산업은 전유물이었던 블록버스터가 드라마로까지 확대되면서 TV로 인해 또 한 번 위기를 맞는다. 실제 편당 제작비가 400만달러에 이르는 ABC의 ‘로스트’와 NBC에서 7년간 방송됐던 ‘웨스트윙’ 등의 블록버스터급 드라마는 할리우드 영화를 압도했다. 우리나라도 ‘주몽’과 ‘연개소문’을 비롯해 웬만한 영화 제작비를 훌쩍 뛰어넘는 블록버스터급 드라마가 줄줄이 나오고 있다.

 이런 드라마들이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LCD·PDP·DLP 등 대형이면서도 화질이 뛰어난 평판TV와 생동감 있는 사운드를 들려 주는 홈시어터가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다는 점이 한몫 했다. 이미 71인치 DLP 프로젝션 TV가 판매되고 있고, 100인치를 넘는 제품도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또 디지털 5.1채널을 기본으로, 기존 35만 화소급 DVD를 대체할 200만 화소급 풀 HD 화질의 블루레이 플레이어를 우리가 세계 최초로 내놓으면서 극장을 그대로 집으로 옮겨 놓을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극장은 정말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다. 이는 집에서 밥을 먹는다고 외식의 필요성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히려 영화와 TV의 상호 의존적인 관계가 심화되지 않을까. 영화가 TV나 DVD, 블루레이 등을 통해 생명력을 더욱 연장해 나가고 그렇게 만들어진 재원은 더 좋은 작품을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작품을 더욱 리얼하게 보여 주기 위해 TV는 풀 HD급이나 그 이상의 고해상도 제품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또 10.1채널 등 ‘임장감’을 더욱 높여 주는 음향기술 발달과 더불어 실물대를 추구하기 위한 대화면화 진전으로 온 거실 벽면을 TV 화면으로 덮을지도 모를 제품으로 끊임없이 진화해 나갈 것이다. 여기에 방송 프로그램을 VOD 방식으로 제공하는 ‘TV포털’과 영화의 디지털 배급이 활성화하면 이젠 극장과 거실의 구분이 무의미해질지도 모른다.

 
gschoi@samsung.com

○ 신문게재일자 : 2006/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