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의 미소
난 대자연의 조화와 아름다움에 더 관심이 있고 마눌은 인간의 조형과 작품에 더 관심이 있다. 그래서 장가계와 만리장성, 자금성은 절충으로 함께 댕겨왔구
유럽은 마눌혼자 친구들과 다녀왔으며 그 대가로 난 황산을 돌아볼 수 있었다. 직장후배가 한권의 책을 건네주었다. 심인보라는 디자이너가 쓴 “앙코르 기행” 사라진 제국과 불가사이한 유적에 관한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유적지 하나로 한 권의 책을 낼 수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동한다. 언젠가는 한 번 둘러보아야 할 곳이라 그래서 흐린 날을 감수하고 괴산 군자산을 오가는 버스 안으로 들고 갔는데 독자를 고려한 디자이너의 편안한 사진 배치와 많은 여백으로 인해 오며가며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디자인하는 사람이라 조형물의 디자인적 시각과 예술적 관점에서 유적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 유적들을 돌아보며 느끼는 단상들도 간결하게 삽입된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많은 정보들을 얻어낼 수 있겠지만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 그가 들였을 정성과 많은 문헌조사를 생각하며 훗날을 위해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놓기로 했다. 책은 다시 리뷰하고 독후감을 써야 오래 가슴에 남을 수 있는 법이라 많은 책을 읽으면서 느낌과 단상을 정리를 해야지 하면서도 쉽지 않은 시간투자와 다시 반추하는 기억의 번거로움 때문에 번번히 밀어 놓다 지나가 버리기 일쑨데 비오는 일요일이 잦아 다소 생뚱맞은 책으로 엉뚱한 시도를 해본다. 욕심일지도 몰랐다. 책은 돌려주어야 하고 훗날 여행을 위해 18,000을 내고 사기는 아까우니… 어쩌면 세계일주에 대한 열망과 가까운 시기에 일어날지도 모를 여행에 대한 기대가 제대로된 여행을 위한 기록본능을 자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쨋든 그건 우연한 시간이 내게 보여준 앙코르의 미소였다. 여행은 아는 것 만큼 보인다고 했다. 언젠가 가게 될 여행길에 오늘 하루의 작은 수고가 더 많은 기쁨과 감동을 몰고 오길 바라면서 산으로 가지 않은 오늘 책상머리에 앉는다.
심인보의 앙코르 기행 출판사 :새로운 사람들
이 글은 독후감이 아니다. 그저 훗날 내가 참고하기 위한 요약서 라고 해두자 사진은 책의 저자가 찍은 사진과는 관련이 없다.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개인블로그나 기사화된 관련사진을 되는 대로 배치를 했다. 사진 무단사용의 한계를 나는 잘 모른다. 이 글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글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으리라는 막연한 생각인데 혹시라도 문제가 된다고 이야기 해준다면 기꺼이 사진을 빼 버릴 것임을 이야기 해둔다. - 무릉객
앙코르톰
유적지가 아니라 성으로 둘러 쌓인 도시, 위대한 도시 12세기 후반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한 톰은 3km 정방형 형태의 도시로 8m 높이의 성곽, 동쪽에 2개 ,서,남,북에 각 1개씩 성문을 만들고 성벽 밖으로 넓이 100m의 인공호수를 만들었다고 한다. 전성기 때 100만 인구가 살았다. 당시 런던 파리의 인구가 10만을 넘지 못했으니 위대한 도시였다.
앙코르톰 남문
정면에 거대하게 솟아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향한 거대한 얼굴, 그 앞에 양쪽 으로 길게 늘어선 7개의 머리를 펼쳐 들고 있는 신비의 뱀 ‘나가’ 뱀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54개의 석상이 있다. 남문을 들어서는 사람은 54명의 신과 54명의 악마로부터 환영의 영접을 받는다.
바이온의 미소
관조적인 앙코르의 미소 자아바르만 7세의 얼굴이자 관세음보살의 얼굴 이른아침 사선으로 비켜 들어오는 태양빛을 받을 때가 제일 경이롭다 216개 바이욘의 미소 얼굴이 모두 다르다고 한다 *자야 바르만 7세 우리의 광개토대왕과 비견된다. 앙코르 왕국의 전성시대를 연 영웅 참족(베트남)과의 톤레샵 전투에서 승리하여 직계가 아님에도 왕권을 이어 받았다. 힌두교 영향하에 있던 사회에 대승불교를 장려하고 중생구제 빈민구제 정책을 펴고‘내가 늘 관세음 보살’ 이라고 했으니 루이14세나 궁예에 비견될까?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와 가장 많은 유산과 치적을 남긴 위대한 지도자 54개의 탑사면에 새져진 216개 얼굴중 지금은 37개만 남아 있다.
바이욘의 사람들 바이욘의 수호여신-데바타(DEVATA) 한쪽 가슴과 다리를 잃었다. 신전을 수호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출입구 마다 서 있는 사자상과 일곱 개의 얼굴을 가진 뱀,나가와 그리고 아름다운 여신 데바타이다.
오마이 뉴스의 김정은 기자의 묘사가 탐미적이다. “화려한 머리장식과 잘록한 허리, 막 솟아오른 듯 부푼 가슴을 살짝 가린 잠자리 날개 같은 하늘하늘한 옷자락이 어쩌다 바람이라도 불면 그만 날아가버릴 것같이 위태해 보인다. 투명한 옷자락 아래로 비치는 손과 발은 음악이라도 나오면 금방이라도 너울너울 춤을 출 것 같은 고혹적인 자세다. 낯선 여행객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 아름다운 여인들은 압살라와 데바타라는 힌두신화의 여신들이다. (감로수)를 얻기 위해 힘을 합친다는 내용의 힌두설화 중 암리타가 만들어지기 직전 생긴 바다거품에서 탄생한 존재이다(유해교반, 본 여행기 5편 참조). 수라고 하기엔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중간급의 정령으로서 항상 위대한 남신이 출현할 때 함께 나타나 춤을 추며 분위기를 살리는 역할을 맡았다.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사원 내에 워낙 이런 저런 여인들의 조각이 많다보니 어떤 게 압살라 이고 어떤 조각이 데바타인지 설명하는 자도 보는 자도 헷갈리기 싑다. 앙코르 와트 사원에 부조된 압살라와 데바타상만 해도 1700여개가 넘는다고 하니 말이다”
앙코르 사원의 문지기 압살라와 데바타 있는 것은 1인 내지는 2, 3, 5인이 조를 이룬 압살라와 데바타 부조들이다. 여신상들은 신전건물 첫째 입구에 문지기처럼 맨처음 배열되어 있지만 또 다른 대형 부조작품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융화되도록 조각되어 있다. 압살라와 데바타는 앙코르 사원에서 가장 자주 친근하게 볼 수 있는 문지기라 할 수 있다. 앙코르와트 유적지 내에서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다지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같은 모습이 하나도 없다. 표정은 물론, 머리장식이며 옷 주름 등 모두 조금씩 다르다. 또한 조각기법이나 건축연대에 따라 각각 다른 이미지의 여인상 들이 탄생했다.
*바이욘의 부조에 보이는 사람들 턱수염에 제대로 의관을 갖춰 입은 중국병사 훌러덩 벗은 모습에 귀가 부처님귀처럼 기다란 크메르병사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장군들 코끼리를 타고 지휘관중 제일 많은 파라솔을 쓰고 있는 사람 캄보디아의 겨울이라 제법 선선한 계절 12월 1월 2월이 관광하기 가장 좋다고 한다. 오토바이 관광은 하루 5불이고 택시는 20불 승합차는 35불이다 물론 기사딸린…
시바의 피라미드 –바푸온
시바! 힌두교 시바파 최고의 신 창조의신이자 죽음과 파괴의신 10개의 팔과 4개의 얼굴을 지닌 광포한 성격의 시바는 미간에 눈이 하나 더 있다. 이 제3의 눈에선 모든 걸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레이저를 내 뿜는다. 호랑이 가죽을 두르고 황소를 타고 활과 창을 들고 히말라야를 누비는 시바 그러면서 음악과 술을 사랑하고 섹스(생식)를 관장하는 로맨티스트로 힌두교 절대권력의신 삼총사 중이 하나 브리흐마 ,바슈뉴,시바 바푸온은 시바에게 바쳐진 힌두사원으로 11세기 중반에 만들어졌다. 앙코르 건축물 소재 사암과 라테라이트 사암- 건축물의 외관기둥,조각품 (퇴적암으로 우리의 화강암에 비해 경도가 낮아 잘 부섲고 풍화작용에 약하다.) 라테라이트- 적갈색 점토로 건물의 기초 다지는데 사용 파미아나까스
마름모꼴 피라미드 “천궁 또는 하늘 위의 궁전이란 이름의 왕실사원이다. 대 앙코르 왕국의 수도 앙코르톰 내에서도 왕과 왕비가 거주하는 궁전과 맞붙어 왕이 수시로 드나드는 실제적인 왕궁 부속사원으로 왕이 뱀의 여인과 동침하는 비밀스런 궁전 이어서 하늘의 궁전(Aerial Palace)라 불린다. 파미아나까스엔 소마공주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옛날 옛적 머리가 아홉개 달린 뱀이 있었다. 나이가 한 구백년쯤된… 이 뱀의 정령이 여자로 변신하여 신전에 살았다. 그 이름이 소마공주 매일밤 왕이 왕비나 후궁의 침실에 들기전에 반드시 이 뱀할머니와 잠자리를 해야했다. 만약에 이를 어기면 죽는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크메르 왕가의 혈통에는 신성한 뱀의 피가 흐른다는 거 뱀이 정력을 증강시켰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아마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다.”
나가
앙코르 유적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머리 아홉달린 뱀조각 사원을 수호하는 수호천사 (후반에는 머리가 7개 달림) 나가는 힌두교 신화와 불교신화에 고루 등장하는 영물로 부채처럼 펼쳐지는 일곱 개의 머리와 뱀의 꼬리를 하고 있다. 힌두교 신화에선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승녀가 잉태했다고 하고 강이나 호수, 바다속 낙원에서 매일 가무를 즐기며 산다고 한다. 건국설화에도 등장한다. 나가왕의 딸 소마공주와 칸부왕자가 결혼하여 태어난 칸부차가 캄보디아의 시조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결국 뱀의 자식인 것이다. 우리가 곰의자식인 것처럼 그래서 캄보디아 사람들은 뱀을 신성시 한다. 사라진 왕국,사라진 제국 1296, 원나라 사신 주달관선생이 앙코르에 일년 머물고 간 후 “진랍풍토기”에서 남긴 앙코르 묘사 “왕국의 중앙에 하늘을 찌를 듯한 황금탑이 있고 그 주위에는 수십개의 탑과 수백개의 석실이 둘러싸고 있다. 이 사원 동쪽에는 황금다리가 있고 다리 양쪽에 두개의 황금사자가 지키고 있다. 석실에는 여덟개의 황금 붓다가 있다. 황금탑에서 북쪽으로 가면 청동탑이 있는데 황금탑보다 더 높고 웅장하다. 여기서 북쪽으로 가면 왕궁이 나온다. 왕궁에는 또 다른 황금탑이 있다. 왕은 밤마다 황금탑에서 잠을 잔다. 왕궁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왕은 황금창문이 나있는 방에서 국사를 본다. 이곳에는 엄청난 보물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보지는 못했다. 왕궁 곳곳에 경비가 삼엄했다. 왕은 황금 왕관을 썼으며, 황금 왕관 대신 재스민 나뭇잎으로 머리를 두를 때도있었다. 약1.3kg무게의 진주 목걸이를 하고, 팔에는 금팔찌, 발에는 호랑이 눈으로 장식한 황금고리를 찼다. 왕은 황금으로 만든 검을 들고 외출을 했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제국,왕궁, 그 많은 보물들,백만의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그럴수 있을까. 왜?
코끼리테라스
코끼리 테라스는 평소에는 정원으로 외국 사신을 영접, 국가의 공식행사, 전투에 출정하는 군대를 전송하는 등 왕이 일반 군중과 접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흰두교 신화에서 세상에 처음 나올 때 날개가 있었다고 한다. 코끼리에 날개라니? 하여간 날개가 있는 코끼리는 날아다니기도 하고 나무에 앉기도 했다나. 또 날아다니니 구름과 친해졌고 그러던 어느날, 나뭇가지에 앉았던 코끼리가 나무가 부러지는 바람에 떨어져 나무 밑에서 수도 중이던 성자를 깔아 뭉겠다. 아마 죽었겠지. 화가 난 성자들은 코끼리의 날개를 꺾어 버렸다고 하는데 그래도 구름과 친한 덕에 그 정도로 끝났다. 즉 비를 내리게 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그 후로도 여러 사람에게 숭배를 받았다고. 또 시바의 아들로 ‘기네샤’라고 불리는 배불뚝이 코끼리 신을 숭배하는데 이 코끼리 신은 쥐를 타고 다니며 쥐의 도움을 받는다고. 바푸온에서 문둥이 왕 테라스 까지 곧게 펼쳐진 코끼리테라스는 잘 다듬어져 있어 조각 공원에 온 것 같은 인상이다. 남측 계단에 있는 코끼리 조각은 계단 양쪽에 있다.멀리서 볼 때는 세마리씩 여섯 마리의 코끼리로 보였는데 사실은 머리가 셋 달린 코끼리란다. 이 곳에서 뭔가 한가닥 하려면 머리가 하나로는 어림도 없는 모양이다. 머리가 일곱인 뱀 머리 다섯의 말 머리가 셋인 코끼리
절로 가는 길 – 쁘리아 칸
쁘리아 칸으로 들어가는 길은 마치 어느 조용한 산사를 닮았다. 입구에 늘어선 경계석(boundary stoneds) 때문인가 보다. 우리나라 부도탑과 비슷한 돌기둥이 길 양쪽에 한 줄로 늘어서 있다. 물론 이 돌기둥은 우리의 부도하고는 다른 것이다. 사원 지역임을 알리는 경계석이고 사원 입구를 유도하는 돌이가도 하다. 돌기둥 하단에는 특이한 형태의 몬스터가 조각되었는데 얼굴은 사자,몸통은 사람,다리는 가루다의 모습으로 아마도 가루다를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가루다는 힌두 최고의신중 하나인 ‘비슈누’가 타고 다닌다는 불사조 인데 “나가’와는 친척이고 불교에선 금시조라고 한다. 쁘리아 칸은 가루다 사원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가루다 조각이 있다. 쁘리아 칸은 자야바르만 7세가 그의 아버지를 위해 지은 사원이다. 그는 어머님을 위해서 타프롬을 지었다. 그래서 그런지 두 사원의 구조나 분위기는 비슷하다.
쁘리야 칸에서는 여지없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이 사원은 중앙으로 갈수록 출입문의 높이가 낮아져 고개를 점점 숙일 수 밖에 없다. 신을 영접하러 가는데 어찌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가겠는가? 신에 대한,왕에 대한 복종의 의미라고 한다. 동쪽 출입구는 그렇지 않다. 문의 높이가 낮아지지 않는다. 왕만이 다닐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사라진 것과 남아 있는 것 연꽃 잎에 둘러싸여 있는 감실은 텅 비어 있다. 부처는 어디로 갔을까? 감실 위로 보리수 인지 재스민인지 모를 나무가 참 근사하게 조각되어 있다. 나무를 표현한 부조는 사람들이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아마 배경으로 조각된 탓일게다. 그러나 바람 불면 바람결 따라 일렁이고 햇살을 받으면 금방이라도 싹을 틔울 것 같은 모습의 나무 조각은 보던 중 일품이다.
링가와 요니
‘링가’는 일종의 남근 상이다. 요니를 꿰뚫고 우람한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링가. 이것을 남근 숭배사상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재 이것을 남근이라고 여기는 힌두교도나 불교도는 없다. 그저 시바신을 대신하는 상징일 뿐이다. 인도 신화를 보면 시바는 세상을 파괴하고 바닷속으로 잠수, 수만 년 동안 새로운 세상 창조의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그를 기다리던 브라흐마가 참지 못하고 나름대로 세상을 창조했다고 한다. 이에 격분한 시바,다시 세상을 파괴하기 시작했고 창조의근원인 자신의 남근을 빼버렸다 이에 놀란 브라흐마 ,시바에게 참아달라고 간청을 하니 시바는 파괴를 멈추고 하늘로 올라 갔다. 남근을 남겨두고. 세상 사람들, 버려진 시바의 거시기를 주워다 숭배하기 시작했다. 시바의 부인인 삭티의 그것(요니)을 받침으로 하고 매일 재스민 향과 연꽃씨 기름을 붓고 꽃잎을 띄우고 때론 양젖까지 부었다고. 여기서 흘러내리는 액을 받아 마시면 무병장수에 강쇠 형님이 부럽지 않게 된다는 믿지 못할 우스개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비밀속의 비밀
쁘리아칸 불사리탑 크메르 역사에 전설로 남아 있는 신성한 보검 이야기. 9세기 경 자아바르만 2세가 신성한 보검을 물려주었는데 이 검을 받은 왕자가 왕이되고 나라를 지킨다는 내용이다. 쁘라아칸이란 뜻도 바로 신성한 검이란 의미이다. 앙코르의 모든 유적들은 한결 같이 사각 기둥으로 지어졌다. 기둥 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와 구조가 대부분 사각이다. 동서남북 정 방향으로 사가의성벽을 싸고 사각의 기둥으로 크고 작은 사각 건물을 지었다. 사각의 비밀 사원인 것이다. 그런데 쁘리아 칸의 별채처럼 독립된 이 건물의 기둥은 원형이었다. 왜 이 건물 기둥만 원형일까?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비밀을 풀수가 없다. 혹 신성한 검을 보관했던 것과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발 세월이란 놈의 예술성은 신기에 가깝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 해도 오랜 시간 세월의 손때가 묻으면 그럴싸해진다. 앙코르의 유적들이 그랬다.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돌덩이 하나, 부서진 석조,바람에 씻겨 희미해진 조각, 어느것 하나 감동을 주지 않는 것이 없었다. 발을 보는 순간 스스로에게 섬뜩하다. 그들의 잃어버린 발이 여기 있다. 실체 없이 남겨진 발 누가 서있었을까? 기억만 남겨 놓고 사라진 인연들을 생각한다. 전쟁의 고통을 안고 사는 뚜올슬랭의 사람들이 생각났다. 부활을 꿈꾸며 천년을 기다려온 신화이거나 억압의 삶에서 떨어져 나온 고통의 흔적이거나 오만한 인간의 화려한 유산이거나 이 땅의 사람들이 거는 마지막 기대이거나,상관없이 나무와 바람과 햇살과 돌은 놀고 있는 아이의 자리일 뿐 -쁘리아 칸의 침묵과 정적속에 혼자 놀고 있는 아이를 보고
닉뽀안
물위에 든 연꽃 모양의 신전 당시에는 라쟈스리(rajasri)라 불림 신전의 형태가 뱀이 똬리를 틀어 만든 계단의 모습을 따서 “또아리를 튼 뱀” 이란 이름의 닉뽀안이라 명명 유적이라기 보다 신비한 섬의 이미지 책에는 세상이 모든 깨달음을 위해 부처에게 바쳐진 사원으로 순례자들이 이 호수에 몸을 씻으며 세상의 번잡함을,흐려진 마음을 다스렸다고 한다. 닉 뽀안의 호수는 히말라야 꼭대기에 있는 아나바타프타호수, 우주의 근원이고 문명의 시발지인 사대강의 원류,아나바타프타 호수를 의미한다고 했다.
삶의 끝-쁘레 럽
쁘레럽 일몰
쁘레럽은 벽돌과 라테라이트로 만들어진 10세기 중엽(961)의 힌두 유적이다. 사밥으로 탁트인 벌판에 위치하고 있어 일출이나 일몰을 보기에 알맞다. 또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띠고 있어 일출 무렵의 풍경이 좋다고 한다. 쁘레럽의 전설은 그 이름으로 시작한다. 영어로 ‘turnning the body’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죽은 육신의 그림자라고 멋들어진 표현을 한 자료도 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정원사에 의해 살해된 왕의 피라미드란 전설과 함께 쁘레 럽을 장례의식을 치렀던 곳 ,즉 화장터로 믿고 있다고 한다. 살아 있는 자의 몫으로 보는 또 하나의 삶의 끝 아직 하늘엔 삶의 여운이 남아 있다. 내게 땅은 아무 소리도 들려주지 않았다.
풀은 돌탑 위에서 자라고 – 롤레이 롤레이는 원래 아일랜드 템풀이다. 매우 큰 호수가 있었다. 옛날 수도의 식수원 이었고 이 일대 농업용수를 충당하는 호수였다. '빅레이크’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지금은 없어졌다. 멀리서 바라 본 롤레이 사원은 너무 쇠락한 모습이다. 담벽은 모두 허물어졌고 네개의 전탑중 윗부분은 없다. 나머지 역시 무너져 내릴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탑 위로 무수히 자란 풀들 때문에 얼핏 잡초더미로 위장한 벙커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원 규모가 작아 더더욱 그 모습이 애처럽고 측은하다. 전탑 벽면에 간신히 붙어 있는 조각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삼면의 가짜 문의 조각들은 앙코르 전성기 유적에 두질 것이 없다. 어쩌면 893년에 이 사원을 축조한 야소바르만 1세가 흙에서,흙으로 돌아올 롤레이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배꼽-로레이 부조의 신상에서
전탑 벽면에 데바타(여신)와 드바라팔라(남신)가 당당한 모습으로 내려다 본다. 꽃을 들고 서 있는 데바타 , 풍만한 가슴과 부드러운 허리를 요염하게 드러내 놓고 역시 미소 짓는 여유로운 모습이다. 사원을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여유로움이다. 데비타와 드바라팔라. 이 한쌍의 남녀는 결혼식장에 서 있는 듯 했다. 온갖 화려한 보석과 꽃으로 장식한 무대에 서서 행복한 미소를 가득 머금고 약간 시선을 깔아 수줍음을 대신하며, 조금은 음탕한 시선으로 데바타의 몸매를 훔치던 내 눈은 그녀의 복부에서 멈추었다. 좀 어색할 정도로 배꼽이 컸다. 남신을 바라 봤다. 아니 거긴 더 크지 않은가? 아니 크기뿐 아니라 아예 구멍을 깊게 뚫어 놓았다. 인체의 중심, 생명의 통로로서의 상징성. 옴파로스(세계의 중심)라는 단어가 움비리커스(배꼽)에서 나오지 않은가?
무릎 꿇은 소 –쁘리아꼬
쁘리아라는 말은 성스럽다. 신성하다는 뜻 꼬는 소라는 의미 . 소를 숭배하는 사원인가? 그러나 기록에는 크메르의 시조로 추앙 받는 자야바르만 2세와 그의 왕비,그리고 왕의 조상들의 위패를 모신 사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신성한 소라고 이름 지었을까? 오히려 무릎을 꿇고 있는 세마리의 소 조각상이 중앙 탑 앞 광장에 있을 뿐이다. 아마 암소일 것이다. 숭배의 대상이 무릎을 꿇고 있다? 자야바르만 2세는 스스로를 힌두 최고의 신 ‘시바’라고 했다 한다. 바이욘을 축조했던 자야바르만 7세가 자신을 관세음보살이라 했던 것처럼. 크메르 왕국의 시조이자 최고의 신 시바인 자야바르만 2세가 죽자 왕권을 이어 받은 후대의 왕은 그이 신성까지 이어 받기 위해 쁘리아 꼬를 짓고 숭배의 대상인 황소를 무릎 꿇렸던 것이다. 자야바르만 무덤 앞에. 최고의 신이 그냥 죽어 사라진다고 해보자. 누가 그 후계자를 따를 것인가? 죽은 자를 확실하게 신으로 만들어야 그 핏줄, 즉 새로운 왕 역시 시바의 환생이 되는 것이지. 쁘리아 꼬는 그 말의 의미처럼 신성한 소의 사원이 아니라 시바의 사원이다. 말하자면 자야바르만 2세의 사원이다. 시바가 타고 다닌다는 ‘난디’라는 이름의 세마리 소는 천년의 세월이 넘는 동안 쁘리아 꼬 광장에 무릎을 꿇고있다.
쁘리아 꼬는 880년에 축조된 사원이라고 하니 롤레이 보다 10년 앞선 유적이다. 이 사원의 벽돌로 만들어진 전탑 양식과 사원의 구조는 후대 앙코르 건축의 기초가 된다. 두 둘로 서 있는 여섯기의 중앙 탑 중 앞줄의 것은 왕의 위패를 ,뒤는 왕비의 위패를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앞줄의 전탑에는 남자 수호신(드바라팔라), 뒷줄의 전탑에는 여신 (데바타)이 지키고 있다. 전탑의 동쪽에 문이 하나 있고 나머지 세 방향에는 가짜 문을 만들어 놓았다. 문처럼 생겼지만 실제 출입할 수 없는 모양만 문인 문.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주변의 장식은 매우 훌륭하여 앙코르 조각의 백미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천국의 계단-바꽁
바꽁, 최초의 마운틴 템플이라고했다. 앙코르의 유적들의 건축 양식을 보면 크게 두가지 형태로 나뉜다. 평지에 그대로 축조된 것과 기단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탑이나 건축물을 지은 양식, 즉 쁘리아 칸, 쁘리아 꼬 , 따 쁘롬, 반띠아이 스레이 등이 평지에 세워진 것들이고 앙코르와트, 바이욘, 바푸온, 쁘레 럽 등이 피라미드 형태로 돌과 흙으로 기단을 쌓아 축조한 양식이다. 바꽁은 피라미드 형식의 힌두 사원인데 이런 형식의 사원을 마운틴 템플이라 부른다. 산처럼 높게 기단을 쌓아 올린 형태와 힌두 신화에 나오는 메루 산을 상징한 다고해서 그렇게 불리는 듯하다. 메루산, 우주의 중심, 세상의 중심,세상의 중심에 있는 산, 정상에 있는 하늘의 신이자 번개의 신인 인드라가 지배하고 있는 신들의 세상. 불교에서는 수미산이라고 부른다. 같은 산이다. 불국정토가 있는 땅을 의미한다. 산스크리트어로 수메르라고 하는데 이것이 수미로 음역된 것이다. 인드라 역시 불교에선 불교를 관장하는 제석천으로 불린다. 같은 신이다. 메루산,도솔천이 있는 상상의산, 쉽게 말하면 천국인 셈이다.
단아한 아름다움-쁘라삿 끄라반
어느 귀족이 개별적으로 축조한 사원으로 단아한 매력이 돋보인다. 벽돌로 축조된 쁘라삿 끄라반은 외부에는 거의 조각이 없다. 중앙 탑 입구 양쪽에 수호신의 조각이 눈에 뛰는데 이 역시 드러내놓고 자랑 하질 않는다. 중앙탑 안에 링가가 보였다. 벽면에 비슈누(힌두 3대 신 중 하나,보호의신),연꽃을 든 여인, 묵상하는 사람,가루다(비슈누가 타고 다니는 전설의새, 금시조)가 마치 동화의 이야기 처럼 흘러 다닌다. 배경에 물결무늬가 있어 더 몽환적이다. 북쪽의 탑 안에는 락쉬미 여신(비슈뉴의 아내, 연꽃의 신)이 같은 느낌으로 조각 되어 있다. 이 조각들은 원래 벽돌 위에 조각을 한 다음 다시 토분을 바르고 채색을 하였다고 한다. 921년에 비슈누가 봉안되었다는 기록이 중앙 탑 기둥에 적혀 있다고 하니 색깔은 남아 있지 않지만 부부의 사랑은 천 년을 넘어왔다.
이보다 더 넓은 목욕탕이 있을까? – 쓰랑쓰랑
쓰랑 쓰랑은 그 규모만으로는 분명 세계 최대라고 할 만큼 장대하다. 탕의 넓이가 가로 300m 세로700m이니 상상하기가 힘들 것이다. 국제 규격 축구장 20개가 들어가고도 남는다. 쓰랑 쓰랑 앞에 섰을 때 ,헛헛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누가 쓰랑 쓰랑을 목욕탕이라 말할 수 있을까. 커다란 호수,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여진다.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로운 정경이 오히려 경건하기까지 한 그런 풍경이 내 앞에 펼쳐져 있다.
사람이 없어 아름다운 – 반띠아이 끄데이
반띠아이 끄데이 부조
반띠아이 끄데이는 바이욘 양식과 앙코르와트 양식이 혼재한 사원이라 한다. 바이욘 양식이란? 바이욘 사원처럼 고푸라(입구 탑)나 탑에 관음보살의 얼굴이 크게 조각되어 있으면 바이욘 양식이라 하고 사원구조가 앙코르와트와 비슷하면 앙코르와트 양식이라 한다. 즉 사방으로 담을 쌓고 동서남북 네 방향에 고푸라를 만들고 몇 개의 문을 통과하면 중앙 사원이 있는 구조. 12세기 자야바르만 7세 때 축조된 사원들은 대대 그런 모습이다. 따 쁘롬,쁘리아 칸의 스몰버젼이라 말하는 이유도 그렇다. 반띠아니 끄데이 같이 구조가 비슷한데 규모가 작은 유적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반띠아이 끄데이의 숨죽인 고요는 사람들 짜증 덕에 얻어진 풍경이다.
느림의 미학,압싸라
한 없이 느리기만 한 동작 느리다는 말보다 순간 순간에 머물러 있는 동작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듯 싶다. 화려한 의상과 무표정한 얼굴, 때때로 손 끝에 도는 긴장감의 의미도 알 수가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은 너무 느려서 부드럽고 우아한 선이지만 속에 숨겨진 것은 고난한 근육의 힘이다. 땅의 중력을 근육 하나로 버티고 그 위에 느림과 섬세함을 표현하는 것 압싸라는 추는 자의 춤이 아니고 보는 자를 위한 춤이 아닐까? 앙코르의 유적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왕족들 앞에서 가슴을 드러내 놓고 아주 천천히 그 미세한 떨림까지,배꼽에 흐르는 땀까지도 볼 수 있는 춤. 천상의 여신이 추는 춤이라 미화되었지만 ,여자 노예들의 고통스런 몸짓은 아니 었을까? 그래서 결혼 까지 금지시킨 것은 아닐까?. 아름다운 선을 위해
아름다운 여인- 반띠아이 쓰레이
크메르 예술의 극치라는 반띠아이 쓰레이는 여자의 城 이라는 뜻이다. 10세기 후반에 축조되어 시바에게 바쳐진 힌두 사원이다. 앙코르 유적중인도 영향을 많이 받은 건축물로 인도를 여행했던 사람들은 인도 사원과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 반띠아이 쓰레이는 바라문교 승려가 전축했다고 한다. ‘야즈바라하’라는 이 승려는 자기 동생과 함께 반띠아이 쓰레이를 지으면서 왕실의 눈치를 보았을 것이다. 왕실의 눙에 거슬리지 않으려고 선왕들의 유적보 규모는 작게,작게 하지만 크기에서 줄어든 열정은 자연스럽게 표현에 응축된다. 아주 작은 것도 세심하게. 조각 하나하나에 혼을 실어 만들었다. 첫 느낌은 아주 조그만 캄보디아 여성처럼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다. 붉은색 장미석 (pink sandstone)으로 지어진 반띠아이 쓰레이는 수 많은 사람 들을 받아 들이면서도 여전히 수줍은 듯 홍조를 띠고 있다. 그러나 사원 구석구석, 빈틈없이 조각된 부조는 보면 볼수록 신비하다. 신화에 나오는 조각은 물론이고 건물 전체를 장식하고 잇는 구름, 꽃, 물결 문양들이 매우 깊고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몸통이 반즘 잘려나간 황소가 있다. 잘려나간 자리가 칼로 자른 듯 반듯하다. 무릎을 꿇고 뒷다리는 한편으로 모은 채 누워 있는 모습이다. 꼬리 까지 리얼하게 조각된 황소 . 잘려나간 부분의 추상성은 관념과 사실을 절묘하게 융화시킨다. 현재와 과거가 뒤범벅 됐다. 긴장과 이완의 극적인 대비다. 예술이다. 빌딩 앞마당에 의무적으로 설치한 유치한 조각 작품들을 보다 밀림 속에 널려 있는 걸작을 만나니 기분이 묘하다.
번개머리 관음보살 – 따프롬
따프롬사원 정문 12세기 중엽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원. 따프롬은 고푸라에서 (입구탑)에서부터 그 느낌이 다르다. 앙코르 톰과 비슷한 양식의 고푸라의 담과 연결되었던 양 옆의 구조물은 다 허물어지고 남아 있는 돌들도 틈이 벌어져 위태위태하다. 문 위에 커다란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관음보살이다. 세상을 굽어보고 있는 관음보살의 머리에 잡목이 무성하게 자랐다. 번개머리 관음보살. 나무관세음 보살 이유가 뭐든 복원하지 않은 유적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이곳이야말로 천년 세월 기록이 문자가 아닌 사실로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따프롬은 앙코르와트,바이욘 사원과 함께 앙코르 3대 유적지로 소문이 났다.. 앙코르와트는 규모와 조형성으로, 바이욘은 얼굴 사원의 매력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그런데 따프롬은 규모도 조형성도 아닌 밀림 속에 숨겨진 신비스런 성전의 발견 이라는 호기심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기록에는 이곳에서 3140개 부락을 통치 했고 , 79,365명의 관리인, 18명의 고승, 2740명의 벼슬아치, 2202명의 노예, 그리고 615명의 무희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뿐이 아니다. 35개의 다이아몬드, 40620개의 진주, 4540개의 보석, 0.5톤 짜리 황금접시 한쌍, 그리고 512개의 비단침대가 있었고 한번에 12,640명을 잠재울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단다.
미완성의 사원 – 따 께오
미완성이란 말 한마디에 끌려서 간 따 께오 무엇이 미완성일까? 다른 사원들하고 다른 점이란 왠지 좀 시원해 보인다는 것 찬찬히 살펴보니 돌의 표면이 그냥 돌이다. 손을 대지 않았다. 그 흔한 조각이 어디에도 없다. 아 이래서 미완성이라구
아! 앙코르와트
앙코르의 다른 사원들은 정문이 동족으로 나 있는데 앙코르와트는 서편이 정문이다. 캄보디아나 우리나라나 동은 양이고 생명이다. 서는 음이자 죽음이다. 다른 사원들은 다 생명의 문인데 왜 이곳만 죽음의 문일까? 여러 설이 있는데 그 중 수리야바르만 2세의 장례를 치르기 위한 사원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그럴 듯하다. 수리야는 힌두교에서 태양신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태양신이 죽었으니 당연히 정문은 태양신이 가신 서쪽방향이다. 다른 왕들은 죽어 다시 환생해야 하니 생명의 방향인 동쪽에 정문을 냈을 것이고.
다리를 건넌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인간의 세상에서 우주의 바다를 건너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 (수미산)으로 가고 있다고 잘난 척을 떨고 싶지만 내가 가는 길은 나도 알 수 없는 길이다.
오락가락하는 마음으로 다리를 건너니 처 번째 관문이다. 정문인 셈이다. 담벼락 둘레가 5.6km나 되는 사원의 고푸라이기도 하고 , 시간을 거스르는 시간의 문 이기도 하다. 정문을 들어서니 양쪽에 통로가 있다. 통로에는 축축하고 서늘한 어둠이 가득 들어차 있다. 사람들 발길이 모두 우측으로 향한다. 그 발길을 따라 간다. 힌두 최고의 신 중 하나인 비슈누이다. 비로소 신의 나라에 온 것을 실감한다. 비슈누는 넓은 우주를 관장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여러 화신(abatara)으로 등장한다. 부처도 그 화신 중 하나라고 힌두 사람들은 생각한다. 두 번째 문을 들어섰다. 3개 층으로 이루어진 앙코르와트의 첫 번째 세계로 들어가는 길이다. 비로소 앙코르와트 품안에 들어선 것이다. 회랑이 부조들 높이 2m 길이 800m 정도의 부조 벽면에 전설, 신화, 경전, 역사가 가득하다.. 앙코르와트의 불가사이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진군하는 병사,처절한 전투, 찌르고 목을 베고, 왕과 조카의 전쟁이다. 말은 살아서 날뛰고 죽음을 맞는 병사의 울부짖음이 생생하다. 동쪽회랑에는 그 유명한 ‘유액의 바다 휘젓기’ 부조가 있다. 인도 창조 설화 중 하나인데 악마와 신이 서로 힘을 합쳐 불로장생의 영약 ‘암리타’를 만들기 위해 젖의 바다를 휘젓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88명의 신과 92명의 악마의 합작품이다.
드바라팔라상
1925년 여행가 끌로텔은 저주받고 사악한 악마의 사원이라고 말했다. 이곳을 찾아온 사람은 4년 안에 모두 죽었다. 앙코르와트를 처음 서구에 알린 앙리 무오도 그 이듬해 라오스의 밀림에서 싸늘한 시체가 되었고 코마유,모리스롱, 노스 클리프 경도 늙은 사원지기의 예언대로 죽었다 한다. 앙리 무오는 400년 동안 잠들었던 앙코르와트이 저주를 깨웠던 것이다. 앙코르의 저주는 이미 600년 전에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백만이 넘는 앙코르 사람들이 사라졌다. 타이가 침공했을 때 앙코르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제국이 사라졌다. 프놈펜으로 이어진 크메르 제국은 앙코르의 화려한 문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앙코르의 저주는 최근까지 계속됐다. 우리는 그것을 킬링필드라고 부른다. 멍청한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나라에 마지막 남은 희망이 저주의 사원이었던 앙코르와트다. 크메르 사람들의 600년 간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고 있다. 텅 빈 지성소를 보며 생각한다. 저주와 축복은 신의 몫이 아니라 인간의 몫이라고…. 앙코르 미소는 내게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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