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하지 말아라.
밤마다 촛불을 밝힌 애절한
사랑이
세석에 흐드러진 철쭉 꽃으로 피어나는
날
촛대봉에서 말없이 흐느끼는
달빛을
푸른 초목의 바다 위를 떠갈
때
검은 구름이 초목의 푸른 빛을
거두고
굵은 장대비 위에서 몸부림치던 암울한 뇌성과 지리산의
울음소리
그리워 하지 말아라
들국화 핏기 없는 얼굴로 울먹이는
날
유전되는 슬픔을 서러워하는 원추리 측은한
눈물과
당단풍에 떨어지는 가을 빛의 가엾은
추억을
황량한 흰 눈밭을 돌아온 칼바람이 쇳소리로
울고
비수처럼 텅 빈 가슴을 뚫어
사무친 세월의 거친 뺨을 사정 없이
후려치는
그 매운 지리산 바람 맛을
올해는 태극종주에 대한 집착이 내내 따라
다녔다.
특히 인월의 바래봉구간과 동부능선의 미답의 길은 지리산의 그리움에
새로운
갈망을 보탰다.
폭우로 인한 지리산 주능종주 실패와 서부능선 종주길에 그들과 합류하지
못하고
나서 그저 안달이 났다.
2006년 8월 12일
지리산 장터목 산장을
예약했다.
마음이 동할 때 저질러
버려야한다.
그래서 주사위를 던져버렸고 이제 8월 5일과 12일, 13일
,19일은 나의 첫 태극
종주를 위해 완전히 비워져야 했다.
휴가를 내어 여유롭게 지리산의 품속에서 몇 일을 보내고도 싶었지만
집사람과의
해외여행을 위해 휴가는 남기기로
했다.
그래서 무릉객의 태극종주는 수 많은 달인들이 인간의 한계와 자신의
체력을
실험하기 위해 구사했던 왕복종주나 무박종주와는 거리가 멀다.
그저 내 체력에 맞게 우리의 산하의 비경을 즐기고 탐험해가는 여유로운
태극
종주 이어가기라 이름 붙이는게 나을 듯
싶다.
이어가기 일정
8월 5일(토) :
인월-바래봉-고리봉-정령치- 성삼재의 서부능선을 종주
8월12일(토) :
성삼재-노고단-반야봉- 천왕봉의 주능선종주
8월13일(일) : 천왕봉에서 일출을
본 다음 중봉,하봉을 거쳐 밤머리재 까지
의 동부능선
8월19일(토) :
밤머리재-웅석봉-수양산-덕산교.
태극종주 첫째날 (2006년 8월 5일
토요일)
날씨는 무지하게 덥고 약 1시간 10분 정도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폭우
약 10시간 30분 소요
06:25 구인월
마을회관
06:33 시멘트 도로에서 좌측산길
들머리
07:57 덕두봉
08:37 바래봉 (약 20분
휴식)
09:20 팔랑치
09:59 부운치
10:53 세동치
중간 소나무 그늘에서 인천 산님과 약 30분
휴식
11:05 세걸산
12:18 세걸산 1.2km 정령치 2km
이정표
능선 바람 좋은 곳에서 약 20분
중식
13:14
고리봉(1305)
14:28 정령치 1km
이정표
14:59 만복대 (정령치 2km 성삼재
6km)
15:48 성삼재 3km, 먼복대
3km이정표
16:21 성삼재 2km 만복대 4km
이정표
17:07 성삼재
장마 후 한꺼번에 몰아치는 폭염이 걱정되어 마눌이 선선한 가을에
가라고 한다.
지리산 종주는 6월의 철쭉 시즌이나 여름이 제
맛이다.
8월의 야생화가 흐드러진다.
산아래 사람들이 더위에 허물어질 때 1년 내내 담아왔던 세속의 진폐를
굵은
땀으로 뱉어내고 어디서나 솟아 나는 지리산의 청수로 몸과 마음을 씻어낼
수
있다.
그리고 뜨거운 가슴과 유랑의 열기를 식혀줄 투명한 고원의 바람을
만난다.
출발준비
정령치에서 물을 보충할 수 있지만 35도를 오르내리는 요즘 날씨가
날씨인지라
0.5리터 생수 3통과 1리터 주스 한통을
얼렸다.
고원 레스또랑의 식단은 마눌 주방장 특선 된장
고추장과 함께 비비는 열무
김치 비빔밥 그리고 간식용 빵.
장비는 디카와 헤드렌턴 그리고 등산용 스틱
1개
기타준비물은 하산 후 갈아 입을 옷, 헤드밴드, 선탠로션
다른 것들은 모두 배낭에서 빼어
버렸다.
인월 가는
길
알람이 새벽 세시반에 운다
준비한 배낭에 마눌이 싸 놓은 도시락을 챙겨 넣고 부산 떠는 소리에
잠에서 깬
마눌의 배웅을 받으며 어둠속을 떠난다. 새벽
4시
CD에서 흘러 나오는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대진 고속도로를 타고
함양을 거쳐
인월로 간다.
내가 다운 받아 저장한 80년대 서정적 노래들은 지나간 시절의 추억에
잠길 수
있는 감미로운 여행 길을 만든다.
무주를 지나고부터 고속도로에 자욱한 안개가 끼어 있는 구간이 많아
비상깜박
이를 넣고 서행을 반복해야 했다.
함양에서 국밥으로 조금 이른 아침식사를 하고 휴게소를 나서니 날이
밝아 온다.
88고속도로로 접어 들어 지리산 고속도로를 빠져 나가려는데 아침 해가
떠오
른다.
덕두봉 정산에서 해돋이를 볼까도 생각했는데 초행길 인월에서 들머리를
찾지
못할까 걱정되어 출발 시간을 좀 늦추어서 인월 들녘에서 해돋이를 맞는다.
잠시 길가에 차를 세우고 떠 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본다.
구 인월 마을회관 (현 노인정) 쉽게 찾았다. 촐게이트
빠져나와 곧장 마을로
직진하여 다리를 하나 건너면 유리로 창을 만든 육모정이 있는데 등로는 마을
위 재각을 지나 콘크리트 길로 이어진다.
회관 앞에 차를 세우고 조용한 시골마을의 풍광을 감상하며 덕두봉을
오른다.
6시 30분
부지런한 농부는 벌써 작물에 약을 치고 있고 아낙은 밭을 메고
있다.
인월 마을길 모퉁이에서 오늘의옥수수 장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열심히 살아가는 부지런한 사람들 앞에서 베짱이처럼 베낭을 메고 지나려니
미안하기도 하다.
덕두봉 가는 길
여기저기 폭우의 자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큰 비는 없었는지
강원도처럼 심각
한 훼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슬이 발목을 적신다.
붉은 햇살아래 초장부터 땀이
배어난다.
후덥찌근 해도 무수히 피어 있는 야생화들에 기분이
좋다.
바지와 등산화는 흠뻑 졌었는데 그래도 누군가 먼저 이슬을 털어낸
흔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얼굴에 척척 감겨야 할 거미줄이
없다.
7시 15분
내려오는 젊은이 하나 있다.
덕두봉을 찍고 내려 온다고
했다.
오늘 만난 또 하나의 부지런한
사람이다.
덕두봉 가는 길은 단조롭다.
덤불 숲과 칙칙한 수림을 지나 능선에 올라서서도 시계가 트이지
않는다.
큰 소나무가 지켜서 있는 두번째 능선에서도 무성한 나무 잎들은 시계를
열어
주지 않는다.
7시 40분 처음 시계가
트인다.
1시간 만이다.
바람도 친정 가고 집 나갔던 굵은 땀만 돌아
온다.
조금 더 진행하니 덕두봉 봉우리가 코 앞에
보인다.
시시하다 덕두봉
심플한 덕두봉은 1시간 만에 시계를 한 번 허락하고 한참 후 봉우리
한번 더
보여 주고 나더니 아무도 없는 쓸쓸한 정상을 홀연히 열어
주었다.
정상에서 바라본 마을과 산그리메가
은은하다.
붉은 기기 약해져 가는 태양빛이 제법
강렬해졌다.
그래도 태양신은 아직 워밍업하며 몸을 풀고 있는
중이다.
덕두봉에서
태양 빛에 노출된 정상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 잠시
휴식한다.
초장에 물이 많이 켜는 걸 보면 바람한 점 없는 오늘 날씨 장난이
아닐 것
같다.
어둠의 긴 밤을 달려
해뜨는 벌판을 지나
처음 덕두봉에 올랐다.
아름다운 산그리메에 마음이 차분해
진다.
새로운 곳에서 마주한 낯 설은 고요가
좋다.
세월이 이리 빠르니 덕두봉의 오늘은 또 빨리 과거의 강으로 흘러
들게다.
처음의 기대와 신비가 사라지고 난 다음 다시 내 마음을 잡아둘 수
없어
누군가와 바래봉을 다시 찾게 될 그날에도 덕두봉은 그저 잊혀질게다.
다시 올 일이 있을까?
8시에 바래봉으로 출발이다.
바래봉에서
외로운 산객하나
앞으로는 연하를 산허리에 품고 있는 산릉의 모습이 신비롭고 가야 할
방향
쪽으로 부드럽게 구비치는 능선과 푸른 초원이 아침 햇살에
싱그럽다.
봄이면 사람들이 몰려들긴 해도
지금처럼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오래 전 정령치 능선을 따라
바래봉 철쭉
화원을 거닐고는 천상의 화원이라고
했다.
그 다음해 뇌리에 남겨진 잔상을 꺼내 들고 마눌과 어린 아이들을
바래봉으로
재촉했었다.
세월은 아이들을 고등학생과 중학생으로 키웠고 바래봉엔 봄마다 더 많은
사람을
들끓게 만들었다.
꽃에 물리고 사람에 지치는 게 싫어 오랜 세월 다시 찾지 않은
바래봉은 아직
매혹적인 처녀림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젊은이는 아랫마을에 사는데 지리산 천왕봉도 가보질
못했단다.
요즘 산에 매력에 빠져 홀로 가끔 산행을 한다고
했다.
산에 대한 이러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산에 대한 수 많은 이야기들이 재미 있었던지 많은 것들을 물어보고
대답하느라
신명을 풀어 내다 보니 20분을
지체했다.
반바지 차림으로 등산샌들을 신고 배낭에 등산화를 달아맨 한 사람이
바래봉
쪽으로 지나갔다고 했고 정령치 방향 좌측 등로로 700~800m 지점에
시원한
샘물이 있다는 고급정보도 얻었다.
정령치 가는 길
폭염의 위력을 안다.
계절을 태울 듯 연일 불방망이를
내려치며
열대야의 긴 밤의 여운마저 음미하려는
듯
태양은 스스로 휴식하는 밤조차 잠 못 들게
한다.
그래 오늘 진검 승부를 한 번
펼쳐보자.
백화점 가는 마눌이 멀리 떨어져 오랄까봐 두껍게 선탠로션을
바르고
모자 아래 드리운 손수건으로 진군의 깃발을
올리고
이제부터 옛추억이 남겨진 길을 따라 정령치로
간다.
바래봉 아래에서 긴 능선을 넘어온 사람들이 샘터를
묻는다.
방금 수집한 고급정보를 흔쾌이 알려주고 가는데 원추리 꽃 밭이
반긴다.
철쭉과 인적이 사라진 능선에는 벌과 나비가
붕붕거리고
붉은 꽃의 화려함을 대신하는 야생화의 소박한 채색으로 푸른 초원의
화폭은
순수하고 정겨워 졌다.
초원의 빛은 여전히
눈부시다.
길섶에 주저앉은 아가씨 힘없이
웃는다.
더운 날 무슨 사연으로 이렇게 힘들게 산을 타고
있는지…
고통을 상쇄하는 마음의 기쁨을 누리고
있을까?
아직 남아 있는 나무계단과 밧줄 난간이 지나간 봄날의 영광을
증거한다.
한바탕 일장춘몽처럼 꽃 잎이 바람에 날리어 가고 그저 철쭉은 다소간
쓸쓸함
으로 초원의 빛 속에 동화되어 있다.
사람의 일 들도 다 그렇듯
살아가다 보면 한바탕 기쁨과 슬픔이 찾아
온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불행이 삶의 끝이 아니고 기쁨은 한 없이 계속되지
않는다.
가끔 불행의 골이 없으면 기쁨은 스스로를 기쁨이라 하지
않는다.
꽃 핀 철쭉만이 철쭉이 아니
듯
향기와 개화를 준비하는 시간에도 수더분한 아름다움이 남아
있다.
영광이 사라진 쓸쓸한 길에서 태양 빛은 너무 심술을
부린다.
사색과 명상은 떠나고 갈증과 원초적인 욕구의 충족에
골몰한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육체와 영혼을 흐믈거리게
한다.
폭염이 내리 찌는 세걸산을
지나
나무 그늘에 쉬는 이 있다.
제법 바람이 좋은 능선
쉼터다.
배낭에 매달린 등산화 인상착의로 보아 바래봉 산객이 이야기하던
산님이다.
인천에서 사는데 지리산 역병이 도져서 혼자 태극종주길에 나섰다고
했다.
오늘 뱀사골 산장에서 자고 내일은 장터목 산장에서 머무른 다음 새벽
세시쯤
출발해서 응석봉 거쳐 수양산 까지 태극을 완성
한단다.
오늘 같은 날은 계곡산행을 하고 알탕을 해야 하는데 날을 잘못
잡았다고 했다.
으레껏 나오는 산꾼의 엄살
시원한 그늘에 바람도 살랑거리고 길동무도 있으니 퍼질러
앉았다.
나 역시 혼자 가는 길에 그다지 시간에 쫓길 일 없고 그 역시 해가
떨어지면
시원해서 길 가기가 더 수월할 것이다.
정령치는 3 km 정도 밖에 남지 않았으니 물도 실컷 마시고 여유로운
담소를
나누며 오랫동안 휴식했다.
여전한 폭염길을 간다.
정령치 2km 전 이정표를 지나고 모처럼 정령치에서 오는 산님을
만난다.
동부능선 수양산에서 시작해 4일째 태극을 마무리 한다고
했다.
비쩍 말라 군살 없는 체형은 장거리 산행을 위해 최적화되어
있다..
동부능선에서 알바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어서 길이 어떤가 물으니
자신은
길눈이 밝은 편이어서 그런 적은 없다고
했다.
중봉에서 물을 보충할 수 있고 하봉 아래 계곡에서는 알탕을 할 수도
있단다.
귀동냥으로 얻어들은 귀중한 정보인
셈이다.
그에게 축하의 말과 아울러 동류의 하이에나 습성에 경의를
표했다.
5시가 못되어 아침식사를 했으니 배가 넘고파서 식사를 하고 가겠노라고
했다
길동무는 바래봉 아래서 좀 늦은 식사를 해서 정령치에 가서
먹는단다.
불볕의 산하가 내려다 보이는 고원
레스또랑
아름드리 소나무가 그늘을 끌어주고 고원의 산바람이 분위기를
띄운다.
주방장 특선 요리 (열무비빔밥)에 전원의 낭만적인 분위기
매미 악사는 긴 장마에 일정을 펑크 냈지만 대자연의 서비스가 훌륭했던
점심
식사는 여행길의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움과 휴식을 가져다
주었다.
고리봉에서
구름이 반야봉을 휩싸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간다.
예기치 않은 동행과 길동무하고 또 바람길 레스또랑에서 식사를 하고
나서
바람은 이제 뻔질나게 날 따라 다니고
있다.
정령치에서 올라와 일대를 굽어보며 감탄사를 날리고 있는 수 많은
산객들은
지리산의 장엄함에 취하고 있다.
뱀처럼 구불거리는 사람이 만든 길이 너무 보기
싫다.
1000고지에서 내려다보이는 휴게소의
주차장도.
몸만 오르면 모든 게 만사형통 일 텐데 사람들은 굳이 땀의 가치를
외면하고도
절경을 탐하려는 욕심을 위해 수 많은 나무를 베어내고 동물들을 그들의
세상
에서 몰아내 버렸다.
성삼재 도로가 관통한 날 산신령님은 목놓아 울었을
게다.
정령치
갑자기 사람들이 북적이는 지리산이 오히려
낯설다.
내가 대통령이면 정령치 휴게소와 성삼재 휴게소는 폐쇄시키고
성삼재 도로는
자동차 통행을 금지 시키겠다.
그 길은 새와 동물들 그리고 두 발 달린 사람들에게 다시 돌려
주겠다.
콘크리트를 뜯어내고 양쪽에 고도에 따라 잘 적응하는 가로수들을 심어
노고단
까지 길게 이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산책로를 만들어
주겠다.
그리고 나이드신 분들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중국처럼 가마꾼을 허가해서
연로
하신 분들의 비경 산책을 돕겠다
그래서 난 정치가가 될 수 없는
거다
하지만 이런 空約하면 우리 산님들 쌍수(?) 들어 환영해 주지
않을까?
부족한 물을 채우고 길동무를
만났다.
등산화가 한 짝 떨어져
나갔단다.
위에 떨어져 있는 등산화를 보지 못했는데 어느 골짜기에서 빠뜨렸나
보다.
등산용 샌달 하나로 태극종주를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을까?
근데 정령치 물은 왜이리 미지근
한겨?
만복대 가는 길
만복대를 바라보는 능선 길을 오르는데 날씨가
무덥다.
오름길에 바람 길도 막혀 있는데 더운 날 물을 많이 마셔 배가 꿀럭
거리고
몸이 무거워 진다.
지리산 호랑이 장가 간다.
햇빛이 나 있는데 가랑비가
내린다.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가느다란 빗방울이 피부에 닿는 느낌이 좋아
나뭇잎이
터진 길목에 앉아서 빗물을 받는다.
40분쯤 올랐을까?
빗줄기가 점점 약해지고 오름 길 그늘이 좋은 곳에 길동무가 휴식하고
있다.
땀나고 더워서 못 가겠단다.
휴식하면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 길동무를 남겨두고 먼저
떠난다.
능선에서 구름이 몰려드는 모습을
본다.
멀리서 천둥이 그르렁 거린다.
흐르는 바람결에 차가움이 묻어오고 비릿한 흙 냄새가 실려
온다.
멀리서 비가 달려 오고 있다.
만복대를 오륙백 미터쯤 남기고 맑은 날이 순식간에 어두워 지고 굵은
빗방울이
쏟아진다.
폭염의 하늘에서 쏟아지는 단비
내 딸래미 이름이 은비인데 단비라 지을 걸
그랬나?
농부에게만 단비가 있는 줄
알았다.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는데 굵은 소나기를 맞으니 그렇게 시원하고
후련할 수
없다.
정말 소나기가 쏟아져 주기를
바랐는데
비하고는 전혀 거리가 멀 것 같은 땡 빛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소나기가
들이친다.
대자연의 변화무쌍한 조화에 경외감마저 인다.
지리신령님이 태극종주 길을 지켜주고
있다.
만복대
표석과 이정표만 비에 젖고 있고 굵은 비가 쏟아지는 만복대에는 아무도
없다.
만복대에 가까이 가면서 뇌성벽력이 장난이
아니다.
벼락을 맞을까 두려운 마음에 만복대 사진만 급하게 찍고서 조금이라도
낮은
곳으로 피신 하려 능선 길을 내려간다.
아무도 없는 능선에서 완전히
쫄았다.
컴컴한 날씨에 번개불이 번쩍이고 천둥치는 굉음에 깜짝 깜짝 놀라면서
간이
오그라 붙는다.
오늘이 내 제삿날인 모양이다.
귀를 안 막으면 고막이 터져나갈 것 같은 천둥소리가 쉴새 없다.
마치 포탄이 여기 저기서 터지고 있는 전쟁터를 가 듯 분위기는
살벌하고 비장
하다.
천둥소리가 이렇게 큰 줄을 예전에
몰랐다.
만복대 아래 능선에는 숨을 곳이라곤 눈 씻고 봐도
없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아니고 일이 어쩌다 순식간에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어안이 벙벙하다.
천둥소리가 무서워서 더 가지 못하고 나무계단에 앉아 귀를 막고 최대한
자세를
낮춘다.
얼마 전 백두산 천지에서 한 사람이 벼락 맞아 죽고 두 사람이 큰
부상을 입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오금이 저려서 움직일 수가
없다.
스틱은 멀리 아래 쪽으로 내던지고 디카는 배낭 깊이
묻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길동무가
왔다.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을 들켰는데 그도 놀라기는 많이 놀란 모양이다.
만복대 사진을 찍는데 갑작스런 엄청난 천둥소리에 자신이 벼락 맞은 줄
알았
단다.
어짜피 벼락이 떨어지면 숨을 곳도 없고 아직 길이 남았으니 그냥 갈
길을
가잔다.
등산화에서 찌걱이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우뢰와 같은 뇌성을
들으며
만복대 능선길을 간다.
무시무시한 대자연의
오케스트라였다.
한 여름에 머리털이 쭈빗쭈빗 서는 공포를 느끼며 대자연의 광포한
연주회를
감상한다.
배째라!
벼락맞아 죽을 팔자면 오늘
죽겠지…
그러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고
담담해진다.
미친놈이 정신 없이 부딪히는 심벌즈 소리 같은 굉음도 자연의 소리로
귀에
들어 왔다
산과 자연이 무슨 대화를 하는 지도
몰랐다.
자연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리셉션인지
경고인지도…..
성삼재 가는 길
산을 하나 넘으면서 번개와 천둥은 많이
줄었다.
지나가는 비가 아니라 한 시간이 넘게
내렸다.
흠뻑 젖어 후련해 본 날이
있는가?
달아 오를 몸이라 1000고지의 빗물도 차갑지 않고
시원하다.
마루금의 등로가 순식간에 작은 개울을
이루고
흡사 늪지대를 탐험하 듯 폭우속에 물길을 따라
간다.
여유로운 내리막길에 시원한 비를 맞으며 가는 길이 유쾌하고
즐겁다.
이런 날도 있구나….
불볕더위를 만나고
시원한 바람을 만나고
억수 같은 소나기에
산을 집어삼킬 듯한 뇌성을
만났다.
비가 그친 능선에서 잠시 휴식하며 만복대를
돌아본다.
언제 폭우가 쏟아졌느냐는 듯 벌써 머리 위에 흰구름을 걸고
있다.
비에 씻기운 계곡은 맑은 모습으로 드러나고
잔잔한 바람에 운무가
흩날린다.
또 한 사람의 종주자를
만났다.
인월 마을회관에서 혼자 비박하고 새벽 4시에 출발했다는데 2시간 반
늦게
출발한 내가 따라 잡았으니 나보다 더 세월아 네월아 하는
사람이다.
사진 찍으며 천천히 다닌단다.
폭우가 들이치는 정령치에서 만복대 구간엔 태극 종주자 우리 셋만
있었다
비는 멎었지만 나뭇잎에 남겨진 빗물이 계속 쏟아져 내려 성삼재 가는
길 내내
흠뻑 젖었다
멎었던 비가 내려가는 길에 다시 뿌리더니 성삼재 도로에 내려서자 다시
비가
멎었다.
고생을 각오하고 폭염 속을 뛰쳐나갔던 산행길이 갑작스런 소나기로 고통
없이
즐겁게 마무리 되었다.
한편의 공포영화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듯 가슴이 벌렁거리고 간담이
서늘해
졌다.
지리신령님의 익살에 피서 한 번 제대로 한 멋진 태극
길이었다.
인천 길동무의 전화번호를 적어 놓고 태극종주 무사히 마무리 하라고
인사를
건네며 우리는 헤어졌다.
노고단을 향해서 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산 사나이의 황홀한 고독을
보았다.
길동무가 있고 멋진 반전이 준비되어 있었던 태극 1구간은 아직 짱짱한
체력인
상태로 10시간 30분의 긴 시간여행으로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온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자동차 무임편승은
생각도
못하고 택시기사에게 3만원에 양해를 구한 후 인월 까지
갔다.
산행의 마무리에 으례껏 따라 붙는 뿌듯함에 후련함 까지 더했던 혼자
만의 멋진
산행길 이었다.
서남부 능선길이 수미산 이었다
내 안의 불국정토
언젠가 읽은 책에서 그랬다.
“당신은 자신의 영혼에 필요한 양분을 공급하고 있습니까?
자신을 기분 좋게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자신을 사랑할 때 스스로를 미소 짓게 만드는 일들로 삶을 채우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영혼을 노래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좋은일 이라고 배운 것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일
뿐입니다.”
삼복 무더위에 강행하는 10시간 이상의 거친 산행이 나를 기분 좋게
한다.
그 고통과 역설적인 기쁨이 나의 영혼을 노래하게
한다.
태극종주 둘째 날 (2006년 8월 12일
토요일)
날씨는 무덥고 약 30분 정도 게릴라성
폭우
12일 노고단 ~ 장터목 약 13시간 14분
소요
13일 장터목~천왕봉~장터목~백무동 약 3시간 40분 소요
(해돋이 체류시간 제외)
02:20 구례구역
도착
03:24 성삼재 매표소
통과
03:57 노고단
산장
04:08
노고단
05:17
임걸령
05:50
노루목
06:15
삼도봉
06:45
화개재
07:29
토끼봉
08:34
명선봉
08:40 연하천
산장
09:02 벽소령 가기전 전망대
1
09:36 벽소령 가기전 전망대
2
09:50
형제바위
10:40 벽소령 (1시간
식사)
13:26
칠선봉
14:17
영신봉
14:27 세석
갈림길
14:44
촛대봉
15;33 조망바위
16:20
연하봉
16:38 장터목
04:10 장터목
출발
05:10
천왕봉
06:50 장터목
09:00 백무동 버스 정류장
지리산 품속에서 이틀을 보내려고 출발준비를 하는 금요일 저녁은 마음이
붕
떠서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마눌은 무더운 날 무리하지 말고 귀연과 함께
가란다.
지난번 폭우로 벽소령에서 발길을 돌렸지만 그 실패의 길 끝에서 태극을
잇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천왕봉 일출도 보아야
하고….
출발준비
헤드랜턴,스틱, 디카,썬탠로션,헤드밴드,손수건 두장, 코펠,
가스연료, 라면2
개 , 김치한 통 , 고추와 고추장, 마늘짱아치,쏘세지, 쵸코파이 7개,
양갱 2개
우의 , 갈아입을 속 옷 , 반바지 와 긴팔상의, 자켓 빈물통
3개(1.2l 1개,
500ml 2개)
밥은 햇반으로 해결하고 반찬만 가져
간다.
물은 빈통만 가져가서 샘터에서 생수로 채운다.
구례구 가는 길
무더운 날 한 낯의 뜨거운 열기의 잔상이 아직 살아
있다.
서대전역에서 마눌과 아들의 배웅을 받으며 11시 45분 우등 열차
탑승
여름 휴가의 막바지라 열차를 타고 떠나는 산객들이
많다.
열차의 3분이 2는
등산객이다.
0시가 넘어 출발하는 열차도 마찬가지 일 테니 내일 지리산에 들어갈
사람의
수는 엄청난 셈이다.
머리만 붙이면 잠드는
내가
잠을 청할 수
없다.
지리산으로 떠나는 열차에서는 언제나 하얗게 밤을
세웠다.
작은역으로 파도처럼 쏟아져 나가는
사람들
돌림병처럼 해마다 늘어나는 지리산 열병이 늘어만
간다.
바쁜 사람들은 삼삼오오 편승하여 노고단으로
가고
전주 식당에
앉았다.
2시 30분에 마주하는
아침식사
그 시원한 재첩국 한 그릇을 후딱 비우고 노고단으로
갔다.
붉은 수은등이 졸고 있는
노고단
노고단
휘영청 달이
밝았다.
어둠 위에 엷은 베일을 두르고 있는 달 빛은
몽환적이다.
교교히 흐르는 달 빛이 사람을 달뜨게 한다는
건
백두대간을 휘영청 밝힌 보름달 빛에 길을 묻던 산길에서 알아
버렸다.
어슴프레함을 걸고 있는 신비로운 밤길을 따라 노고단으로
간다.
감미로운 야반의 서정을 카메라의 눈으로
잡았는데
카메라의 시력이 내 눈보다 더 나쁠
줄이야
신라의 중흥을 기원했던
노고단
시조의 알을 품었던 仙桃聖母님은 지켜보고
계실까?
시원한 바람이 불어 가는 노고단은 달 빛 아래 잠겨
있고
사람들은 달 빛이 쏟아낸 새벽 공기를 마시며 지리산을 깨우고
있다.
임걸령
아직 어둠에 쌓여 있는 林傑嶺에 도착
했다.
구례에서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올라 왔는지 어둠 속에 이마의 불
빛으로 취사를
하는 산객들이 있다.
여전히 변치 않는 건 지리산 만이
아니다.
임걸령이 물 맛
어둠속에 남겨진 갈증을 후련하게
풀어헤친다.
의적 林傑은 그래서 배산임수의 요충지에 산채를 꾸릴 수 밖에
없었다.
노루목
긴 목을 한 노루의 기다림으로 새 아침이
밝았다.
반야봉에서 일출을 보려
했는데
능선 위에 머무는 구름 사이로 붉은 빛이 새어
나온다.
노루목 바위에서 달려오는 푸른 새벽과 능선에 감기는 구름의 모습이
눈에 시려
반야봉 오름 길을
접었다..
능선 어디선가 떠오르고 있을 붉은 태양의 모습을 보려고 반야봉을
오르는 대신
능선을 따라서 가는 길을
재촉한다.
삼도봉
삼도봉 얼마 남지 않은 곳에서 능선 위로 떠오른 붉은 태양을
만났다.
구례구에서 재첩국 한 그릇을 비우지 않았으면 반야봉에서 일출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어짜피 능선에 걸릴
태양이었다.
반야봉 낙조라
했거늘
내 인생의 황혼 쯤엔 반야봉의 아름다운 낙조를 바라볼 수
있을까?
서산을 붉게 물들이겠다던 노정객도 말 없이 사라져
갔듯이
머지 않아 다가올 황혼 길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어떤 느낌을 가져다
줄까?
삼도봉에서 운무에 쌓인 신비로운 계곡을
바라본다.
안개가 바람에 거칠게 흐르고 아침 해는 안개 사이로 눈부신 햇살을
초록의
수림 위로 던지고 있다.
산이 열리는 새벽은 언제나
장엄하다.
투명한 고원의 바람을 타고 흐르는 수림의 향기는 맑고 깨끗한 지리산의
아침을
깨운다
그래서 불면의 밤길을 걸어 그 아침의 한 가운데 설 가치가 있는
거다.
화개재
피곤이 몰려
온다.
전번에 비가 몰려오던
화개재에서
(눈 한번 붙이지 못했으니 졸릴 만도
하다)
오른쪽 계단으로 내려가 벤치에
누웠다.
아직 이슬이 마르지 않아 축축한
벤치
15분 정도 선잠이 들다가
깼다.
조용하던 화개재가 왁짜지껄 해지고 몇몇 산님들이 내 옆에서 아침
술상을 본다.
토끼봉
아침 햇살에도 무더위가
느껴진다.
토끼봉 나무 난간에서 내려다본 파란하늘과 뭉게구름이
평화롭다.
연하천 산장
하루 종일 깨어 있으니 점심 때가 훌쩍 넘은 것 같은데 이제 08시
40분
태양은 아직 붉은 기를 거두지
않았다.
지난번 비 오는데 붐비는 취사장에서 먹었던 열무 비빔밥이 꿀 맛
있었지
미지근해진 임걸령 샘물을 연하천 물로 갈고 잠시 엉덩이를 땅에
붙여본다.
못 보던 이원규님의 시 한 자락이 허공에 걸려
있다.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 하시면 제발 오지
마시라”
얄궃다.
사람의 마음 변덕스러워도 산을 찾는 마음은 한
마음인데
박절하게 오지 말라
한다.
그렇게 오지 말라 하는데 해마다 지리산을 찾아 오는 사람이 늘어나기만
하니
사람들은 이래저래 험한 세상 살아 가면서 쏟아내고 싶은 것이 많은
모양이다.
형제봉
날씨가 뜨거워도 태양이 구름 속을 들락날락 하고 가끔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니
서부능선 때 보다 한결 산행길이 수월하다.
형제봉에서 바라보는 능선이
유장하다.
산릉은 벽소령 산장을 품고 세석을 향해 기운차게 오르고 멀리 옆으로
뻗은
능선은 푸른하늘 아래서 흰구름을 휘감고
있다.
익숙한 풍경에 구름은 새로운 변화를 만들고
있다.
형제바위
형제바위 위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가?
바람이 있고
자연이 만든 석부작이 하나
있다.
바위사이 가파른 절리를 오르면 멋진 소나무 한 그루 서고 일대가
후련하게
조망된다.
오르지 못할 것 같아도 오른쪽 바위 구멍을 통과하면 형제바위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오를 수 있는 길임을
알고
그 위에서 흐르는 바람 맛을 알고
있기에
그예 또 아해의 마음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ㅋㅋㅋ 무릉객 아직
청춘이다.
굳이 비좁은 바위 틈새를 올라 바위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아야
직성이 풀리니…
오늘 갈 길이 바쁘지 않으니 돌아 내려 소나무 그늘아래 나른한 시간을
걸었다.
바람이 좋고 풍경이 좋아 발길이 그렇게
밀린다.
벽소령
지난 6월 폭우로 인한 회군의 현장
오늘은 무더위가 점호를 취하고
있다.
벽소령 달이 지리산
10경이라는데
음정 이장님은 해마다 늘어나는 등산객의 발길을 묶어두기 위해 달빛과
청정
지리산을 패키지로 묶는 달빛축제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달밤에 만들어가는 산골의 추억과 달빛으로 길을 내는 가족동반 야간
산행은
목가적이고 낭만적일 것이다.
난 깜깜한 밤에 이마에 후레시 불을 끄고 한계령에서 달빛을 따라
대청봉에
오른 적이 있다.
얼마나 황홀한 경험이었던지 세월이 가도 달 빛에 잠긴 설악의 무채색
낭만을
잊을 수 없다.
달은 사람을 달뜨게 하는 마력이
있다.
노고단에서 휘영청 밝을 달을 보았는데 뜨거운 태양은 달빛 처연한
벽소령의
풍경을 비웃고 있다.
오는 길에 이것저것 빼어 먹었는데도 배가
고프다.
조선족은 역시 빵과 주전부리로는 허기를 때울 수
없다.
햇반을 하나 사고 남은 물을 끓여서 날 더운 날 라면을
먹는다.
그래도 국물이 있으니 좀 나은
편이다.
물도 보충하고 여유로운 휴식을 마치고 출발하려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노는 시간은 일하는 시간보다 더 빨리
흐른다.
그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핵심이다.
선비샘
1시간 거리쯤에 샘이
있다.
물 무게를 늘리지 않아도
된다.
순전히 내 주관이지만 임걸령 물맛이 최고요 그 다음이 선비샘
아닐까?
장마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물을 많이 품고 있을
터인데도
선비샘 수량은
줄었다.
쭐쭐거리다 그래도 기분이 좋으면 물을 왈칵왈칵 쏟아내는 신비로운
격정은 변치
않았다.
영신봉
칠선봉을 지나 영신봉 기는 길에 지리산이 눈살을
찌푸린다.
배낭 무게에 눌려 내 인상이 찌푸러 드는
모양이다.
슬슬 신호가
온다.
내일 일정까지 소화할 물량을 지고 가는 길이 만만 하지는
않다.
넉넉한 시간을 갖고 여유롭게 움직여 가는 길이라도 무거운 등짐이
순례와 탐미
의 여정에서 잊었던 고통의 의미를 일깨우고
있다.
그래도 뜨거운 날씨보다 오히려 산행하기 좋은 걸 보면 저번처럼
산신령님이 또
배려해 주심이다.
영신봉 오르는 철게단 아래 전망대에서 자욱한 안개만 보고 솟구치는
시원한
바람만 맞았다.
힘겹게 철계단을 올라와
널부러졌다.
철퍼덕 앉아 안개 바람을
맞는다.
그 시원함이라니
멋진 조망 대신 온몸의 열기를 순식간에 걷어가는 그 안개바람에 한참
동안
몸을 맡겼다.
후련한 바람
맛이다.
세석평전
영신봉을 떠나면서 비가 조금씩
뿌린다.
피부에 와 닿는 차가움이 지친 발길에 새 힘을 실어
준다.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1000고지의 드넓은 고원
철쭉이 지고 난
후
작은 관목과 들꽃 들의 조용한 속삼임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이루지 못할 사랑이 있었다
한다.
소망의 촛불에서 떨어진 촛농이 촛대봉을 이루고 그 피터지는 아픔이
세석의
붉은 철쭉 으로 피어난다고
했다.
슬픈 사랑이 전설을 기억하는 듯 낮은 구름을 걸고 세석은 조용히
묵상하고
있다.
촛대봉 완만한 오름길이 힘겹게
느껴진다.
쏟아질 듯 한 비는 멈추었다.
다른 때 보다 2시간 정도 천천히 가는
여정인데
속도를 늦추는 것이 힘겨움을 덜어주는 건
아니다.
몇 일간 금주와 몸관리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 했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같지
않게 빌빌대는 걸 보면 글쎄 세월 탓인지 날씨
탓인지….
아직 돌아 보아야 할 세상의 아름다움은 너무도
많은데..
아직은 짱짱하다고 말하고 싶어 배낭 무게 때문이라고 애써 자위
해본다.
촛대봉
썩어도 준치라고 그래도 관록이
있어
안개 속에 피어난 들꽃들과 평화로운 고원의 감회에 젖으며 오르다 보니
촛대봉
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휴식하고
있다.
출출해진 배를 채우고 바람 시원한 촛대봉에 비스듬이
누웠다.
촛농이 녹아 만든 바위가 울퉁불퉁하여 엉덩이 대기가 불편하긴
하다.
한참을 바람 길에서 운기 조식하다 보니 온몸이 으실으실
춥다.
한여름에
추위라니!
지리산 꼭대기에서 한여름에 제대로 된 피서를 하는
셈이다.
조금 있다가 난리가
났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예비동작 없이 갑자기 소나기를 퍼붓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아도 추운 판에 깜짝 놀라 우비를 입는데 떨어지는 물방울이
얼마나
큰지 소나기를 맞는 등허리가
따갑다.
지난번 서부능선처럼 뇌성벽력은 동반하지 않았지만 흡사 양동이로 퍼부어
대며
한여름 장마비를 방불케하는 게릴라성 폭우는 순식간에 등산로를 물길로
만들어
버리고 시뻘건 황토물이 쏟아져 내리게 한다.
우비를 입고도 흠뻑
젖었고
등산화로 쏟아져 들어온 빗물의 수위는 점점 높아져
간다.
촛대봉 폭풍과 장대비를 피해 삼신봉 쪽으로 내려서서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
숨었다.
촛대봉에서 안개바람으로 이미 냉장처리가 된 터라 우비를 입고도 너무
춥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8월 인데 지리산 능선이 길다 보니 별일이 다
많다.
30분쯤 대차게 내리던 빗발이
가늘어진다.
방수가 되기는 되는
모양이다.
와장창 들어온 빗물은 나갈 생각을 않은 채 등산화안에서 파도치고
개구리
노래를 한다.
흐물거리는 육체와 흐리멍덩해지는 정신의 날을 또 비가 세워 준
셈인가?
삼신봉
삼신봉 가는 길 철계단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
장관이다.
구름의 아래 쪽이 걷히고 햋빛이 비치는 산릉의 푸른 모습이 드러난다.
한바탕 소나기는 콧구멍이 상쾌한 대기를 가져다 주고 지리의 화폭에
구름이
펼쳐내는 멋진 대자연의 향연을 그려내고
있다.
그 변화무쌍함이야말로 무수히 변하는 가운데 변함 없는 지리산의 진면목
아닐까?
그래서 잊을 수 없는 시간의 기억은 고통의 순간을 정제하고 걸러내어
그리움만
남게 하는지도 모른다.
순례의 길을 마친 사람들은 행복한 귀환을
하고
그 잔상이 사라지는 어느 날 사람들은 또 그리움의 열병을 앓다가 다시
발작과
충동으로 지리산으로 떠나고야 마는
것이다.
삼신봉 바위에 걸터
앉았다.
등산화 물을 버리고 양말을 짜내고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시시각각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공연의 막은 오르고 사람들은 기립박수를
칠 생각
도 없이 그저 주저 않아 탄성을 지르고 찰라의 영상을 붙잡으려 애쓰고
있다.
1807봉
연하봉 가는 푸른 빛 능선이
싱그럽다.
순식간에 안개가 걷히고 다시 자욱하게 들어
찬다.
안개란 언제나 보이는 물상 위에 한자락의 신비를 깐다
연하봉 이름처럼 안개는 부드럽게 이어지는 암릉의 봉우리를 감돌고
무수히
피어난 이름 없는 야생화는 푸른 초원 위에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시새우며
산객의 눈길을
잡는다.
장터목
해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는 지리산
종주
장터목 바람 맛은 유명했다.
올해는 8월 이지만 6,7월의 날 선 장터목 바람에서 늦가을의 추위를
느끼지
않은 날이 없었다.
폭우에 흠뻑 젖었던 옷은 시나브로
마르고
안개 흐르는 장터목에서 마주하는 8월의 바람은
시원하다.
갑자기 사라진 목표에 긴장이 풀리고
나른해진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주저 앉아 취사를 준비하고
있다.
산다는게 무어야?
자꾸 가슴한구석이 딱딱해지고
허물어지고
가을 바람에 낙엽
마르듯
점점 감동이 메말라 가는
것
사람의 고향은 자연인
모양이다.
자연 속에서 이렇게 푸근한
걸
삶 속에서 잃어버린
감동들이
나뭇가지에 아무렇지도 않게 걸려
있고
길 위에 저렇게 구르고 있는
곳
정말 멋지게 나이 든다는
건
여전히 튼튼한 두다리를 잃지 않는
것
자꾸 무디어 가는 감상의 날을
세우고
떠나려하는 감동의 뒷덜미를 놓아주지 않는
것
반야봉 낙조를
보았나?
장터목에서 떨어지는 해는 반야봉 감동만 하지
못할까?
대자연의 감동은 도처에 널려
있다.
거기 서 있는 것만으로
황홀하고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 가슴
시리다.
다시 고동치는
가슴과
전율처럼 혈관을 타고 흐르는 감동을
느껴보라
황혼이 지는
장터목에서
천왕봉 일출
다행이 올해는 코를 심하게 곤다고 깨우는 사람이
없었다.
9시쯤 취침해서 3시쯤 술렁이는 사람들 때문에
깼다.
6시간은 시체처럼 잔
셈이다.
동부능선으로 내려 설 거면 빨리 밥을 해 먹어야
한다.
어제 배낭의 무게 때문에 힘이 들어서인지 온몸이 찌부둥하고 몸이
가볍지가
않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오늘 하루 염천의 10시간 이상 산행이
두려워진다.
게다가 초행길인데…
나서면 또 가긴 가겠지만 체력적인 무리로 심산주유의 기쁨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오늘은 장인어른
생신이다.
처가집 식구들이 모여 점심식사를 함께 한다는데 5남 1 녀중 막내
딸의 유일
무이한 사위가 또 빠진다고 했던
것이다.
지난번 장모님 제사 때도 지리산에 갔다가 너무 늦게 오느라 제사
참석도 못했
었다.
이래저래 장인어른께 면목이 없는데 마눌은 입장이 난처하고 서운해도 별
말을
안 했다.
오래 살아오면서 나와 나의 세상을 너무도 잘 이해해주는
마눌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동부능선 구간은 귀연팀과 함께 하기로
했다.
그래서 컨디션 난조를 빙자해서 종주계획을 수정하고 장인어른
생신행사에도
참석을 하기로 했다.
이제 일출을 보는 일만
남았다.
올해도 산신령님이 허락할 거라는 느낌이
온다.
자욱한 안개가 오락가락 했는데 천왕봉에 길을 내면서 오히려 날씨가
좋아 지는
것 같다.
연속 삼년 지리산 종주에 일출을 보았다면 믿을 수
있을까?
백두대간 마무리하는 날 세상에서 가장 감동스런 해돋이를
만났고
재작년 청계님이하 7명의 산우들이 함께했을 때는 노고단과
천왕봉에서 모두
일출을 보았다.
처음 한국의 산하에 산행기를 올렸는데 축하 댓글이 많이도
달렸었다.
작년에 혼자만의 종주 때도 당근 멋진 일출을
보았다.
디카를 잃어 버리는 바람에 공들여 표구한 비뿌리는 세석의 멋진 철쭉도
천왕봉
의 환상적인 일출도 일거에 날아가 버리긴
했지만…..
내가 택일을 잘 하는 게 아니라 지리 신령님의
보살핌이었다.
대전 가기 가장 빠른 백무동 하산을 예상하고 배낭을 산장에 놓고
오르는 데도
발걸음이 너무 무겁다.
작년에는 종주하고 그 다음날 천왕봉에서 날라
다녔는데….
붉은 여명이
뜬다.
흩어지는 운무는 없지만 천왕봉의 실루엣에는 톱니바퀴처럼 사람의 모습이
물리고 붉은 무지개 띠가 캄캄한 하늘을 물들이고 있다.
구름 층이 있어 시간은 다소 걸리겠지만 다시 천왕봉 일출을 대할
것이다.
4년 연속 지리산 일출보기를 기원하며
지리산 주능선 종주를
마무리하고
바람 시원한 천왕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기다린다.
백두대간이 끝나는 곳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언제나 장엄하고
경건하다.
신비스럽고 성스러운 천왕봉
일출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다는 일출을 나는 오늘 또 만나고
있다.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저 빛나는 태양의 축복이 언제나 기쁨과 희망을
가져다
주고 남은 인생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기를…”
넉넉한 여백이 있는 공간에서 대자연의 황홀함을
만난다.
나는 상류층이다.
구름 위를 거닐고 높은 곳에서 떠 오르는 태양을 맞이하고 상류에서 몸
씻기를
즐겨하는 나야말로 상류층이
아닌가?
마음이 시리면 치유되고 있는
거다.
선홍 빛 핏물이 구름 위를
흐르듯
메말라 가고 굳어가던 가슴으로 감동의 피가 흘러가는
거다.
나는 다시 천왕봉에
서서
오늘 하루 영혼의 자유를 꿈꾸며 훨훨 날아 가는 거다.
지리산의
아침
하늘 빛은 푸르고
먼산에는 구름이 걸려 있다.
황금빛 햇살이 고원에 드리
운다.
죽은 채로도 제석봉을 떠나기 싫은
고사목처럼
그냥 주저 앉아 눈부신 아침을 배웅하고
싶다.
백무동 하산 길
아침은 먹지
않았다.
새벽 일찍 먹었으면
몰랐을까
장터목의 식수는 이제 점점 줄어들어 수도꼭지 2개에서 졸졸 나오는데
한번
받으려면 1시간씩 줄을 서야
한다.
참샘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날아간다는 건 그런걸 두고 하는
말이다.
배낭은 아직 무거웠지만 9시 30분 함양행 버스를 탄다는 생각으로
바람처럼
계곡을 흘러 내렸다.
참샘에서 취사를 하렸더니 계곡에서는
취사금지다.
등산객들이 휴식하는데 김치찌개 냄새를 피우는 파렴치한이 되기 미안해서
그냥 백무동 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내려가다 계곡의 외진 곳에서 몸을
씻었다.
알탕하기엔 수량도 시간도
부족하다.
환속하는데 야생의 냄새가 걱정되어 웃옷을 빨아
입었다.
갈아 입을 옷을 가져오긴 했지만 젖은 옷을 걸쳐야 시원할 것
같아서…
하산 길은 두 시간
걸렸다.
다시 뜨거워 진 태양은 내 웃옷을 감쪽같이 말려
주었고
지리산의 정기는 고요한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9시 30분 버스를 타는 시간이 30분 정도 남아서 요기도
했다.
함양에서 대전행으로 갈아타고 대전을 도착해서 식당에 도착하니 시간이
늦지
않았고 산에 미친 사위가 왔으니 장인어른도 형님들도 모두 좋아했고 마눌의
면목도 섰다.
모든 것이 잘
되었다.
지리산 종주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열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오랫동안
계속되어
질 순례의 의식 이었다.
그리움과 감동은 오랫동안 남아 있어야 할 것들
이었다.
그것은 세상의 혼탁함으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누군가 “작은 숲은 신의 성전”이라고 했던가?
흐르는 세월이 덧없이 느껴지고 살아 간다는 의미가 희미해 질
때
누구라도 여름에는 무심히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고 치자나무 향기를
맡아야
한다.
천왕봉 일출을 보면 더 좋지
않겠나?
지리산은 항상 거기서 넓은 가슴으로 기다리고
있다..
지리산으로 가라
그저 방탕한 얼굴로 지리산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말 없이 거기 있는
것들
바람과 구름과 산과 들꽃을 묵묵히
바라보라
계곡의 물소리를 새들의 지저귀는
들어보라
영혼을 탁하게 하는 그 수 많은 21세기 정보들을 비워내고 잠시
세월의 짐은
내려 놓고푸른 공기와 녹색의 바다를 가슴에 한 번
들여보라.”
잃어버린 것들
세월이 창문너머 던져버린 것들을 한 번
찾아보라.
그리고 다시 그리워하지
마라
또 살아 갈 날이 많고 돌아볼 것이 많은
날에
그리움의 병을
얻으면
다시 지리산에 들지 않고 배길 수
없느니…
다시 어머님 품에 가슴을 묻고 울지 않을 수
없느니
(후기)
태극 그리기를 완성하고 연결된 산행기를 올리려는 계획을
바꾸었다.
지난 주 한산지계곡을 따라 올라 천왕봉을 거쳐 새재 대원사를 아우르는
귀연
팀의 동부능선 1차 출정 길에 합류했다가 산신령님의 2차 경고를
먹었다.
퍼붓는 폭우로 지리산에 발을 들여 놓지도 못한 채
회군했다.
지리산은 입산 통제되고 사람들은 산장에 고립되었다고
했다.
가을쯤에나
이어야겠다.
여름이 가기 전에 설악의 내밀한 곳도 돌아 보고 싶고 그냥 지리산의
가을
이야기도 듣고싶다.
지리산 산신령님의 화가 언제 풀릴지도 잘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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