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 2005년 9월 24일~25일 (무박2일) 동 행 : 산장 에델바이스 산님들 산행코스 : 오색온천-대청봉-공룡능선-마등령 -설악동 소요시간 : 12시간 20분 오색온천- 대청봉 : 4시간 10분(03:30~07:40분) 대청봉 : 20분 대청봉 -희운각 : 1시간 30분 (08:00 ~09:30분) 중식 : 20분 공룡능선 : 3시간 20분 (09:50 ~13:10분) 마등령-비선대 : 2시간 (13:10 ~15:10분) 설악동 : 40분 (15:10 ~15:50분)
대청봉가는 길 단풍
시어가 사는 가을이다. 이별이 어느 구석에나 마련되는 것처럼 만남의 기대와 갈망이 또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계절의 수심이 깊어 가고 모두들 어디론가 떠나는데 문득 잊었던 공룡의 가을과 지난해의 붉은 추억이 그리워 진다. 한 잔의 술이라도 앞에 두고 지난 이야기 나누고 싶다. 산과 가을과 그리고 그리움에 대하여…. 덧 없는 세월의 길목을 따라 다시 그 길을 허허롭게 걸어 내리며 가을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다.
소청봉 가는 길 단풍
대청과 중청에는 가을이 불게 물들어 가고 공룡에는 이번 주말 쯤 가을 편지가 도착 하겠다. 10월이 오면 붉은 가을은 설악의 능선을 줄달음쳐 내려가고 그 다음 주면 사람들은 설악 계곡에서 온통 가을 빛에 혼미해 질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가을을 탄다 ? 그저 말 없이 스쳐 지나갈 가을 인데 달떠오는 방랑기와 역마살은 어김 없이 계절의 변화를 알아 챈다. 근원을 알 수 없고 실체마저 모호한 그 한과 그리움을 삭히려면 그저 가을이 흘러가는 길목에서 서성대야 하는 수 밖에…. 그래도 또 어쩌랴 그것이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 가면서 소리쳐 행복을 불러내는 나의
주술인 것을…. 하지만 우리 삶에서 전적인 소모란 없음을 안다. 삶에는 얻는 것만 있다거나 잃는 것만 있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내게 있어서 한바탕 가을 병을 앓고 나면 인생이 더 깊어지고 아름다워진다
중청에서 대청 조망
(대청봉 가는 길)
비몽사몽의 수경을 헤맨 지 4시간 만에 둥근 불 빛 하나로 암흑 속에 버려 진다. 오색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오색에서 대청을 오르는 길은 단조롭고 지루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그 길을 오른다. 일출을 볼 욕심으로 한계령에서 오색으로 등로를 바꾸고 들어선 오색의 하늘은 옆으로 성처럼 구름을 두르고 하늘 한 가운데서는 반달이 웃고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이 초롱거리고 있다. 해마다 가을에 오색에서 대청봉에 오르면서 만난 인간 정체 중 가장 심각한 정체를 오늘
만난다. 새벽 3시 30분 산행시작 7시 40분 대청봉 도착 3시간 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는 거리를 4시간이 넘게 걸렸고 정체가 풀린 후 속도를 낸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인파와 정체였다. 초입에서부터 밀리고 설악폭포 전방 난코스 구간에서는 30분 이상 꼼짝 없이 기다려야 했다.( 한계령 쪽은 밀리지 않았다) 아마 이번 주말이나 다음 주말이면 2시 30분이 넘어서 산행을 시작한다면 일출을 포기해야 할 것이고 움직임 없이 1시간 이상의 기다림을 등로에 남겨 야 할 것이다. 다른 날보다 등로가 훤했다. 어둠 위에 내려 앉은 달 빛은 교교하고 능선의 실루엣은 낭만적이다. 수 많은 군중 속에서 고독했지만 한 굽이 언덕이 설 때 어둠 속에서 휘감겨 오던 그 시원한 바람결과 탕탕하게 흐르는 물소리가 있어서 외롭지 않은 밤이 었다. 푸른 새벽이 열리고 시야가 트이자 “억” 소리가 절로 난다.
완전히 다른 세상
보아라
산아래 세상은 구름으로 채워지고 능선에는 잰 걸음으로 가을이 달려 가고 있다. 시간이 늦어 대청봉 해돋이 대신 멀리 산모퉁이로 먼저 비추는 황금 빛 햇살과 수림 사이로 쏟아지는 붉은 태양을 만난다.
대청봉 가는 길 운해
대청봉 가는 길 수림사이 햇살
대청봉 가는 길 구름과 나무
대청봉 가는 길 (대청봉에서)
하늘이 높고 바람이 좋은 날 고원의 구름 위에 걸터 앉아 가을 편지를 읽는다.
“대청봉 산허리에는 붉은 가을이 한창입니다. 푸른 하늘엔 붉은 기가 사라진 태양이 떠 있고 바다는 구름이 채웠습니다. 사람들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넋을 내 놓고 가을 색이 깊어 가는 산릉은 어디론가 말없이 흘러 갑니다 찬 이슬과 바람 그리고 가을비를 맞으며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하얗게 밤을 새우며 당신에게 가을 편지를 씁니다. 이 가을엔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누군가 그랬다. “네 가슴에 항상 출렁이는 바다가 있게 하라 !” 가슴에 치미는 황홀한 고독 말이란 사치스럽고 언어란 구차하다. 아름다운 또 하나의 세상은 내 앞에 있고 가을은 벌써 가슴을 파고 드는데…. 대청에 서면 나는 언제나 출렁이는 감동의 바다를 만난다.
대청봉에서
(소청봉 가는 길)
올해는 단풍이 참 아름답겠다. 대청과 중청의 단풍이 곱고 소청으로 내려가는 길에 성급히 가을을 잡아 채는 나무 잎들이 저리 붉은 걸 그 맑은 푸른 하늘과 빛나는 태양아래 갑작스럽게 산 안개가 휘몰아 쳐서 가는 길에 자욱하게 깔리고 밝은 태양 빛을 가리워 버렸다. 순간에 표변하는 설악의 찡그린 얼굴도 여전히 아름답다.
소청봉 가는 길
(희운각 가는 길)
기다림의 미학 먼저 청각과 후각이 열리고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은 눈을 가득 채운다. 그 아름다움을 보는 눈으로 인생을 좀 더 따뜻하게 바라보고 그 아름다움에 울리는 가슴으로 인생의 외로움마저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기다림을 배운다 산에서 우린 먼 여명을 빛을 깨치고 조용히 다가오는 시간의 진리를 깨우치고 기다림에 배인 인내와 삶의 미학을 배울 수 있다. 그래서 산이 좋은 게다 목적지에 안달하지 않는다. 목적지란 숱한 산길과 봉우리들 가운데 내가 임의로 표시한 오늘 하루의 종지부 일뿐 숱한 인생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날의 소중한 하루와 같은 것
목적지는 달아나는 법이 없으니 묵묵히 걷다 보면 우리가 가고자 하는 봉우리는 그 시간이 흐를 때쯤 그곳에 어김 없이
나타난다. 산 안개 흐르는 산 골짜기에서 줄 서서 마냥 기다린다. 스산한 바람과 안개는 물들어 가는 나뭇잎을 흔들고 지나간다. 산 안개에 번쩍이는 나뭇잎들… 이 큰 산엔 길이 한 갈래뿐이고 산 안개 자욱한 그 길 위로 사람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다. 희운각 가는 길이 참으로 멀고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길은 하나고 이 가을을 탐하는 건 나뿐만 아닌걸 또 어쩌랴….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줌마도 더 늙기 전에 꼭 보고 싶은 절경이어서 오늘 큰 맘 먹고 먼 길을 나섰는데…. 그래도 어둠을 깨고 새벽의 길을 열어 여기에 선 사람들은 얼마나 맑은 사람 들인가? 새치지 하지 말라고 소리치거나 지루함을 투덜거리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지만 많은 세월 산과 함께라면 그들 또한 그렇게 산을 닮아 갈 게다. “막히진 않는 희운각을 가려면 평일에 설악에 가라”
희운각 가는 길
(공룡능선)
10월의 주말들이 이미 자물쇠로 채워져 있다, 가을이 이른 날에 공룡을 찾아 가는 명분의 설득력은 약하다. 10월은 바쁘고 한 해라도 공룡을 가지 않는다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다는 것이 주된 이유지만 가슴 한 구석에는 공룡을 통해 체력을 테스트 하고 싶은 거다. 내 삶의 나이테는 자꾸 늘어가고 있으니 예전 같지 않을 체력이 걱정되고. 그래서 애써 공룡에서 체력 테스트를 받고 다시 건재함과 장짱함을 인정 받고 싶은 거다. 우리 곁에 머무는 젊은 날은 얼마나 짧은 것인가? 세월은 화살처럼 빨라서 인생을 즐기고 살기에 시간은 턱 없이 부족하고 마음 은 쉬 늙어 더 멀리 떠나려 하지 않는다. 세월은 바삐 가는데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은데 …. 산이 있어서 더러는 세월을 잊고도 살지만 공룡을 찾을 수 없는 그 날엔 어느 길목에 서서 서러운 통곡 소릴 감추어야 할까? 매번 올 때마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날씨가 궂으면 천불동으로 내려서야지 하면서도 결국은 공룡을 타 버리는 나. 고단할 하루를 생각하면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다가도 정작 대청 용골마루 에서 설악세상을 한번 굽어보고 나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 지는걸… 대청을 따라 흘러내리면 거기 걸출한 산세와 경이로움이 가득한 산길이 있으 니 천하절경 천불동 계곡도 항상 뒷전일 밖에… 숱하게 공룡의 잔등을 오르내렸어도 천불동 계곡은 두 번 밖에 흘러 내리지 않았으니 공룡엔 그 거친 아름다움 이면에 사나이 투혼에 불을 댕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선홍의 가을이 내려 서고 있지만 공룡의 가을편지는 아직 배달 중이다. 갑자기 표변한 날씨가 자욱한 산안개를 몰고 오고 암릉들은 안개 사이로 여전히 기골이 장대한 채 청솔은 가을을 비웃고 있다. 대자연의 경외와 꿈틀거리는 태고의 자연을 본다. 공룡은 사시사철 새로운 얼굴을 들어 우릴 바라본다 변수는 무수하다. 계절,날씨,시간 ,내마음, 구름과 안개 그리고 바람….. 때이른 공룡의 축제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마등령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난코스 직벽코스에서 뒤늦게 마등령을 치고 온 일행들 때문에 잠시 정체가 있었을 뿐…. 고통의 땀과 거친 숨의 댓가로 엊어낸 소중한 것들 그 속에는 아직은 체력이 건재하다는 확인도 있으니 무엇을 하건 기초가 흔들릴 일은 없다. 한 번이라도 거르면 가슴이 허전한 공룡능선에는 운무가 날리고 허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공룡능선 에서
(마등령 하산 길) 마등령에는 추억이 있다. 신새벽에 마등령을 치고 어둠이 밀려 갈 때 만났던 만산홍엽 그리고 마등령 바위 위로 솟구쳐 오르던 산 안개와 동해 바다 위로 솟구치던 장엄한 해돋이 그 때 그 시간에 거기 있음으로 만날 수 있었던 붉은 단풍과 그 위로 위로 쏟아지던 눈부신 태양 빛의 감동으로 너무도 아름다웠던 세상. 백두대간 종주의 희망과 해마다 가을 설악의 설레임을 지켜온 마등령은 희운각 기점 3시간 20분 거리에서 나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항상 내 가슴 한가운데를 자리하고 있는 소중한 친구를 만나는 반가움에 마음이 바삐 간다. 신기하게도 마등령을 걸어 내릴 때 쯤 거짓말처럼 조망을 차단했던 안개가 사라지고 밝은 태양이 나타나서 코발트색 바다와 푸른 하늘을 내어 주었다. 마치 설악산신령님이 공룡의 다른 얼굴을 보여 주시고 나서 다시 잘 가라는 인사를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등령은 공룡의 시작과 끝에서 무수한 사람들의 희망과 한숨을 지켜간다. 마등령을 내리며 수림 사이로 바라보는 공룡의 위용은 장관이다. 날카로운 봉우리들과 장성처럼 긴 절벽 그리고 아직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들… 나는 말없이 가슴으로 인사하고 내가 걸었던 공룡능선을 올려다 보며 푸른 동해바다와 흰 울산바위 그리고 속초시가 바라다보이는 그 길을 따라 내렸다. 마냥 긴 산행 길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긴 시간들은 그렇게 말 없이 흘러 갔다.. 한 발 한 발 내딛였던 그 작은 발걸음이 오색의 능선을 지나 대청의 용골마루 에 족적을 남기고 공룡의 등줄기를 타고 마등령으로 흘러내리는 대 장정의 여정으로 마무리 되었다.. 모든 것이 하룻밤 꿈처럼 지나간 날 나는 다시 비몽사몽을 꿈길을 헤매며 집으로 돌아 왔던 것이다.
마등령 하산길
10월에 떠나는 공룡행 단풍선을 타려면 ? 가을 공룡을 만나려면 마음을 텅 비워야 한다. 어짜피 불타는 설악의 단풍 숲에서 푸른 하늘을 올려 보려면 잿빛 둥지를 박차고 날지 않을 수 없는 일 이동시간에 수면하고 하루쯤 단풍과 사람의 바다에 푹 빠졌다가 파김치가 되어 돌아 온다고 생각 하자. 힘겨운 만큼 가슴엔 가을의 여운을 남길 수 있으리라. 한계령과 오색에서 두시에서 ~두시반 사이에 올라 가면 날씨가 좋은 날 일출 을 볼 수 가 있다. 대청의 일출을 보아야 남은 한 해를 무탈하게 잘 보내지….. 해돋이를 보고 나서는 지체하지 말고 희운각을 내려서야 하고 너무 사람이 막힌 다면 우회로도 생각해 볼 일이다. 단풍이 한창인 때 공룡능선의 로프구간 역시 인산인해 적당히 우회하며 단풍선의 귀향 시간을 고려할 일이다. 가장 합리적이고 사치스런 선택이라면 새벽 3시에 설악동에서 마등령을 치고 올라 가는 것이다. 마등령 단풍과 해돋이 또한 장관인데 마등령을 올라 황홀한 단풍의 숲에 서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한 후 공룡의 잔등을 타고 불타는 천불동으로 내려서는 여정이야 말로 기암과 계곡 이 어우러진 단풍의 길을 따라 가는 멋진 가을 여행길이 될 것이다. 능선의 조망도 보고 계곡의 풍치도 감상하고 ….. 어쩌면 해마다 늘어나는 무수한 단풍놀이 인파를 비켜 가기 보다 단풍의 바다에 허우적거리고 사람과 단풍에 물려서 더 이상 가을의 열병을 앓지 않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천히 그리는 그림 - 지리산 태극종주 2 (동부능선의 가을노래) (0) | 2006.10.18 |
---|---|
설악의 북쪽 가을 (0) | 2006.10.04 |
또 다른 설악 세상 (0) | 2006.09.07 |
천천히 그리는 그림 - 지리산 태극종주 (0) | 2006.09.02 |
인월 회군 (0) | 2006.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