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둔의 꿈을 꾸었나? 가끔 세상살이가 답답한 날에… 설악의 봉정암 위 어느 깊은 곳 어쩌면 지리산 도솔암이라도 좋다. 문명을 모두 격리시키고 세상의 무게는 죄 내려놓고 그저 홀로 불타던 석양이 조용히 스러지면 칠흑의 어둠 사이로 쏟아질 것 같이 초롱한 별들이 찾아오고 휘영청 달그림자가 산방의 들창가에 서성이는 곳 그런 깊은 산중에 홀로 살고 싶다는 그런 꿈을 꾸어 보았나?
매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에서 그냥 우두커니 앉아 산과 바람과 구름을 바라보고 뜬구름 같은 세상에 무심한 채 아쉬움과 두려움 없이 세월을 보내는 꿈 나른한 아침 햇살이 산방을 찾아들 때 차가운 새벽공기와 이슬의 촉촉함 속에서 깨어나서 휘적휘적 산 안개를 헤치고 계곡의 물을 길어 그곳에서 게으른 아침을 지어먹는 꿈 세월이 감과 나이듦을 의식하지 않고 변하고 흐르는 것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대자연의 깊숙한 한 자락에서 계절을 따라 피어나는 무수한 감동과 기쁨을 만나고 스스로 한 점의 황홀한 풍경이 되는 꿈 한 줄의 시가 되는 꿈 이루어 지기 힘든 그런 꿈을 꾸어 보았나?
산행지 : 설악산 화암사- 수봉-신선대-상봉-신선봉-화암사 산행일 : 2006년 9월 3일 동 행 : 새여울 산님들 10:16 화암사 주차장 등산로 출발 10:23 수봉 10:58 능선 11:16 신선대 12:47 샘 13:15 상봉(식사 약 20분) 14:05 화암재 14:20 신선봉 좌봉 14:30 신선봉 14:50 화암재 회귀 16:13 알탕 1&:15 화암사 주차장
내 꿈은 아직 이루어 질 수 없어 내우주의 책임이 아직 남아 있지 이제 겨우 고등학생인 딸과 중학생인 아들의 교육을 책임져야 하고 나에게 인생을 맡긴 마눌의 편안한 노후를 보장해야 하고 부모님께 노년의 적적함을 덜어 들이는 아들 이어야 하지 그래서 내가 속세를 떠날 수 있는 시간은 잠시일 뿐 그 꿈과 현실의 완충지대를 오가며 무수한 귀향을 반복해야 하지 갈수 없는 나라의 꿈도 아름다운 거야 꿈이란 간직한 것 만으로도 아름답고 작은 실낱 같은 가능성에도 항상 희망과 기대에 부풀게 하지 언제나 다시 그릴 수 있는 미완의 그림처럼 다시 꿀 수 있기에 더 아름답기도 하지
신선의 나라엘 간다기 한자리를 받았다. 그 속에 머물 수 없어도 내가 꾸는 작은 꿈의 언저리를 돌아보며 다시 돌아 오겠지 그 꿈에서 곧 깨어나겠지만 꿈꾸는 시간의 기쁨을 알까? 아하 이 사람들은 모두 알겠다. 새벽 5시에 어둠을 깨고 길을 나서 거친 능선을 종횡하다 밤 12시쯤 돌아올 수 있는 이 사람들 나는 그래도 행복을 말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다는 거 일주일 하루쯤은 가슴이 울리는 대로 살 수 있다는 거 흔들리는 버스에 기대어 잠들고 설악의 능선에서 대자연을 꿈꾸다 나른한 눈으로 창밖에 밀리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으로…
수봉 참 아름다운 바위들 집채만한 바위에서 내려다 보는 화암사는 숲 속 한 폭의 그림 같다. 그냥 멀리서 바라만 보구 남겨 두었다. 마눌 델구 한 번 와야지 수봉에 올라 바닷 쪽 설악이 얼마나 넓은지 보여주고 북설악의 끝자락 화암사는 찬찬히 돌아 보아야겠다.
신선대 신들의 놀이터 인가? 웅장한 암릉이 두둥실 허공에 떠 있다. 바다와 연결된 초록이 벌판이 그렇게 넓은 줄 몰랐다. 푸른 하늘을 이고 뜨거운 태양아래 웅장할 울산 바위는 없다. 조금 흐린 날 알몸이 남사시러워 장대한 기골을 그저 구름에 감추고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신선의 쉼터를 창졸 간에 점거했으니 신들의 벨이 뒤틀렸나 보다. 아쉽다. 그 모습 바라보러 왔는데…
대관령에 구멍이 나고 미시령에 구멍이 나서 설악세상은 절딴이 났는데 구름은 상처를 가려주지 않고 산은 말 없이 그 아픔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간다.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에는 집채 같은 바위와 넓은 동해바다의 풍광이 있고 바람과 구름이 흐르고 있다. 설악세상에는 아직 이런 감동이 남아 있다.
너덜 바위와 소나무 풍경 너덜 바위들 사이 안개가 흐른다. 심술이 난 신들은 시계를 닫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암릉 사이 한쪽으로 갈기를 세운 소나무의 푸른 빛이 안개 속에 은은하다. 거센 풍상을 견뎌낸 눈물겨운 모습의 나무들 그 안개 속으로 두 여인이 사라진다.
샘 백두대간의 그 뜨거운 열기를 식혀 준 하늘 빛 물 맛 태양이 잠시 고개를 내밀고 목젖을 꿀럭이며 시원한 물을 마셨다. 그 옛날 백두대간에서 거친 숨을 몰아 쉬던 추억을 마셨다. 백두대간의 길목을 지키며 묵묵히 기다려 준 그 샘이 고맙다. 수 많은 변하는 것들 중에서 변치 않고 남아 있는 것들이 작은 기쁨을 가져다 준다.
상봉 가는 길 신선봉은 구름에 쌓여 있다. 푸른 하늘 위로 솟아 있는 바위 위에 걸터 앉았다. 바람이 오락가락하더니 홀연히 구름을 거두어 간다. 잠시 신들의 세상을 엿볼까 했는데 또 자욱한 안개가 존재를 감추어 버린다.
상봉 누가 무슨 소원을 빌며 쌓았을까? 암릉에 흩어진 돌들을 죄 모아서 쌓았나 보다. 바라고 원하는 게 많아도 높은 데서 설악 세상을 한 번 굽어보고 나면 아무 생각 없어 지는데…. 살아가는 황량함도…. 풍류아의 거친 숨소리와 허기진 삶의 욕심도 바람에 훌훌 털면 되지 긴 호흡으로 깊은 숨 한번 들이마시면 되지 그러면 되지 더 바랄게 무어야?
신선봉 좌봉 길을 잘못 들었는데 그 바위 위에도 멋진 풍경이 걸려 있다. 세찬 바람이 흐르는 바위에 주저 앉아. 바람에 날릴까 봐 모자를 거꾸로 눌러 쓰고 사방을 둘러 본다. 아래엔 푸른 산주름 사이에 흰 구름을 가득 채워져 있고 북으로는 첩첩의 산들이 어디론가 흘러간다. 신선봉은 더 높은 곳에서 푸른 하늘을 이고 담대히 서 있다. 여기도 신들의 세상이다.
신선봉 제일 높은 곳에 올랐다. 푸른 화폭의 여백에는 바람이 그려 넣은 흰 구름이 무상히 떠 돌고 있다. 물으라? 지금은 무슨 시간이냐고 지금은 취하는 시간이어라 설악에 바람에 구름에 아! 한잔 술이 없다. 신선주 대자연의 오묘한 섭리다. 구름에 잠긴 산릉을 넘어 멀리 대청봉이 보인다. 구름 위 도시 속초도 보인다. 할 수 없는 신선들은 황철봉으로 떠나 가고 그렇게 신선나라에 서서 오랫동안 설악세상을 내려다 보았다.
물과 같이 흐르는 길 생각 보다 수량이 많다. 아직 내려 갈 길이 많이 남았는지도 모르고 미안함으로 두 분을 먼저 보내고 그 차가움 속으로 다시 뛰어든다. 탕탕히 흐르는 물에 또 세속의 진폐를 씻어 내고 구름 걷힌 신선봉을 바라 본다. 내 발길이 닿았던 봉우리는 아련한 꿈처럼 또 멀어져 있고 나는 흐르는 물길 따라 다시 속세로 돌아간다.
환속하는 길에 부도는 말 없이 지나간 세월을 이야기 하고 그제사 울산바위는 얼굴을 내보이고 손을 흔든다.
미시령 터널을 지나 오는 길에서 아직 저물지 않은 날에 사람의 폭포를 바라본다. 어딘가 좀 부자연스러운 폭포
아 벌써 날이 저물고 간다. 귀환의 긴 여행이 남아 있어 저녁을 한술 뜨고 나오니 하늘이 어두워 졌다. 등대 달도 자주 떠 주질 않으니 사람들이 아얘 산 위에 등을 걸었다. 어두워도 그 불 빛으로 길을 잡으라고…. 그리곤 긴 어둠의 길목을 따라 귀향이 긴 목을 늘인다. “뭐할라고 그랴? 산 7시간 타고 버스 9시간 타고…”. 호전될 기미 없는 한결 같은 병세를 익히 알고 있는 마눌이 내심 무사귀환을 안도하면서 졸리는 목소리로 던지는 별 의미 없는 인사였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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