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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앙코르와트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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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7일~11일(5일간)

 

일년에 한번은 물 건너 가야 된다고 굳게 마음먹었는데

시나브로 12월을 맞이했다.

그렇게 세월이 빠른 것이다.

이래저래 일정이 뻑뻑해서 봄에 울릉도 간 걸로 물 건너 간 걸로 치나 했는데 기어이 캄보디아로 떠난다.

 

어차피 언젠가 순서대로 한 번씩 거쳐갈 곳들이지만 자주 나가기가 어려우니 여기저기 물망에 올리며

마눌과 설왕설래하다 결국 바이욘의 미소로 낙점했다.

 

최고액의 여행자보험을 가입하고 유고시 유언과 재산목록을 비치한 곳을 딸래미에게 알려주고 9시50분

발 씨엡립 행에 몸을 실었다.

 

캄보디아에 대해 아는 것이 무언가?

킬링필드

진시황이나 히틀러 같은 또라이 한 명이 있었고 정권유지를 위해 100만명 이상의 국민을 학살 했다는 거

아주 가난한 나라로 앙코를와트 유적지 하나로 벌어들이는 관광수입과 농업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나라

라는 것 정도 밖에 아는 게 없다.

하지만 올해 들어 앙코를와트에 대해서는 다자이너 심인보가 쓴 앙코르의 미소를 읽은 적이 있다.

그 때 받은 느낌과 언젠가 돌아볼 것이라 정리하고 스크랩해 둔 자료가 있기에 앙코를 와트에 대해서는

그다지 낯설지 않고 사전지식도 충분한 셈이다.

 

 

(항공기에서)

날짜가 맞지 않아 국적기를 타지 못했는데 러시아 항공과 대한 항공의 수준은 천지차이다.

우선 비행기가 너무 작아서 좌석이 불편하고 난기류에 들어갈 때 불안하기 짝이 없다.

기내는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고 담요도 누군가 덮었던 걸 그대로 내어 준다.

오는 날은 그나마 쓰던 담요도 한 장 지급 받지 못했다.

담요 한 장 달라니 더 이상 없단다.

스튜어디스들 눈이 부리부리하고 표정도 엄숙하고 별 하는 일도 없이 너무 바쁘니 말 붙이기도 어렵다.

오렌지 쥬스 달라고 하니 빈 프라스틱 통을 흔들며 떨어졌다고 한다.

그걸로 끝이다.

그래서 맥주 한 캔 달라면 그것도 없다.

기내에 아얘 맥주는 잦다 놓지도 않는다.

알코올 중독자였으면 큰일날 뻔 했다.

오는 날은 반팔티를 그대로 입고 담요도 못 받아 서늘한데 내 머리위의 에어컨이 계속 나오는데 돌려도

멈추질 않는다.

아줌마 스튜어디스에게 이야기 했더니 엔지니어를 불러준다고 했다.

20분 후에 제복을 입은 남자 승무원이 왔길래 상황을 부연설명하니 나처럼 손으로 몇 번 돌려보고 조정

하다가 슬며시 돌아간다.

잠시 후 뻰치 한 개를 들고 와서는 한참을 실강이하더니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또 간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가지고 올까 기다렸는데 그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어깨를 으쓱한 건  안되니 할 수 없다 그냥가라 였다.

 

그래 러시아 넘들 비행기 타보니까 대한항공 경쟁력 대단하다.

우리 스튜어디스 너무 이쁘고 상냥하고 친절하다.

앞으로는 무조건 대한항공 탄다.

캄보디아 까지는 네시간 30분 걸리고 현지 시간은 우리보다 두 시간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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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앙코르를 여행하는 수많은 여행자 상품중에서 우리가 선택한 패키지는 전국에서 마눌과 나 단둘이다.

마눌한테 모든걸 맡겨서 인터넷으로 좀더 좋은 패키지를 선택한다고 했는데 비용대비 효율이 영 아닌

모양이다..

장고 끝에 잘못 둔 마눌의 악수

우린 가이드도 없고 현지에서 가이드와 접선해야 한다. 

일정표와 비행기 티켓 교환권을 받고 나니 어쨌든 배낭여행 기분도 나고 스릴이 있다.

신문 좀 보다가 기내에서 주는 대로 받아 먹고 비몽사몽하다 비자와, 입국 신고서, 세관신고서를 작성

하고나니  씨엠립이란다.

 

나가서 짐을 찾고 두리번 거려도 우릴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수속을 마치고 공항 로비로 나가자 마눌과 내이름을 크게 쓴 피켓을 들고 있는 이 있다.

크크! 캄보디아 미아는 면했네 그랴

현지가이드라 해서 한국말 좀 하는 현지인인 줄 알았더니 모양만 캄보디아인을 닮은 순수 토종이다.

 

호텔은 괜찮은 편이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3시 30분이 넘었으니 잠잘 시간을 훌쩍 넘겼다.

샤워하고 누워도 말똥거린다.

마눌과 잠 못 들고  뒤척이다 보니  밤이 너무 길다.

 

도마뱀이 우는 소리도 들었다.

오늘 푹 자야 내일 제대로 구경 할 텐데…”

 

 

뒤늦게 약간 눈 좀 붙이고 훤하게 밝아오는 들창을 보며 깨어났다.

현지 시간으로 7시 정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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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울던 도마뱀을 찾아 보려고 커튼을 젖혔다.

자그마한 녀석이 아침햇살을 받으려는지 유리창에 붙어 있다.

이 나라에서 도마뱀은 행운의 상징이고 집집 마다 도마뱀이 있다고는 했는데

에어컨 빵빵하게 돌아가는 이 깨끗한 호텔에서 이놈들 도대체 뭘 먹고 사나?

탁상 위 호텔소개 브로슈어 사이에서 새까맣게 오글거리는 작은 불개미를 먹고 사는 지도

모르겠다.

 

요즘이 캄보디아의 겨울이라 그런지 씨엠립의 아침은 서늘하다.

머리를 감을 겸 샤워를하고 7시 30분쯤 호텔 부페로 가서 식사를 했다.

김치도 있고 볶음밥도 있고 흰죽도 있으니 수 많은 한국 관광객을 위해 배려를 한 셈인데

다른 음식들도 내 입에는 잘 맞았다.

항상 부페에서 지불한 대가를 받아내지 못하는 아까운 사람중의 하나가 마눌이고 보면  환경이 바뀐

탓에 접시가 작아진 건 아니다.

그래도 둘의 평균을 내면 손해는 아닐 거다.

 

하여간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먹고 로비로 나갔다.

약속 시간이 좀 일러 호텔주변을 둘러 보고 호텔 앞 큰 길가로 나가 보니 자전거와 오토바이들 많이

니는 모습이나 거리의 풍경이 베트남을 닮았다.

 

일행은 모두 열명이다.

서울에서 여자형제 4명이 각각 부부동반을 한 사람들과 한 팀이 되었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현지 원주민 가이드와 운전수가 1명 그리고 한국인 가이드까지 도합 열세명의

오붓한 앙코르 유람단이다.

중국처럼 의무적으로 현지가이드가 배정되어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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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띠아이 쓰레이

일단 공원관리국인가로 가서 사진을 찍고 출입증을 발급 받은 다음 차로 1시간 남짓 달려

반띠아이 쓰레이 유적지로 갔다.

반띠아이는 城을 의미하고 쓰레이는 女子를 의미해서 여자의 성이란 뜻이라 한다.

10세기 후반에 축조되어 시바에게 바쳐진 힌두사원이다.

아즈바라하라는 바라문의 승려가 축조했다는데 왕실을 눈치를 보느라 규모는 작게할 수 밖에

없었으나 대신 문양이나 조각은 무척 정교하고 섬세하게 정성을 들였다.

외벽의 조화로운 부조는 보존상태도 양호하고 예술적인 가치도 대단해 보인다.

마치 진흙으로 빚은 조각품처럼 돌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았다.

비록 사암이긴 하지만 돌로 조각했다고 믿져지지 않는 아름다운 사원이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고대의 유적지 한 가운데 내가 서 있음이 마치 꿈처럼 몽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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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속에 유적지를 둘러보고 다시 호텔로 돌아온다.

호텔근처 한국 식당에서 식사하고 호텔에서 두어 시간 휴식을 취한다음 롤레이 사원으로 간단다.

수 많은 유적지가를 빨리빨리 돌아보면 좋겠는데 로마에 가서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지 바쁜시간에

오침까지 해야 한다니.

 

호텔에 들어 왔다.

마눌은 피곤해서 잠이 들었는데 웨이크업콜은 해준다 했지만 낮잠은 버릇이 들지 않아 그냥 책을

보면서 시간을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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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레이사원

다시 버스를 타고 롤레이 사원으로 갔다.

다 쓰러져가는 사원이다.

담벽은 허물어졌고 탑의 위 부분의 훼손은 심하다.

다만 전탑의 측면에  붙어 잇는 조각들은 예사롭지 않다.

시체를 태우는 화장터라 했다.

롤레이 사원을 보노라면 고대의 찬란한 문명이 원형 그대로 보존될 확률은 거의 희박했다.

사실 경주의 우리나라 유적지에 비하면 캄보디아의 사원들은 그 스케일이 너무 크고 웅대하다.

냉정하게 판단해서 내가 제3국의 관광객이라면 당연히 캄보디아로 발길을 돌릴 게다.

그러나 복에 겨운 캄보디아 후손들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의 엄청남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

하다.

문화재에 대한 개념이나 관리상태를 보니 이건 숫제 시골동네 산신각 수준에도 못 미친다.

탑 위에서 자라나는 나무는 그렇다 치고 석상이나 조각품은 부서진 채 아무데나 나뒹굴고 허물어진

벽체와 내부는 사람의 접근과 훼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무너진 석축은 다시 쌓으려 하지 않고 그저 폐허처럼 황량한 상태로 관광객을 맞는다.

우리 조상들이 저런 사원들을 지었으면 소중한 유적지는 제대로 보존되고 관리되면서 우리나라에

엄청난 관광수입을 안겨 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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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사람들은 GNP가 500불이 채 안될 정도로 못 살아도 행복지수는 세계 10위 권에 든단다.

돈과 부에 대한 집착과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하고는 너무 다르다.

나라가 훨씬 부자여도 삼천리 금수강산엔 자살하는 사람도 많고 사는 게 힘들어 아이도 낳으려 하지

않는데.

가진 게 많아도 더 많이 쌓고 모으기 위해 모두들 두 눈을 부릅뜨고 길길이 뛰는데.

하여간 아깝다.

제대로만 관리되면 자손대대로 홍복을 가져다 줄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그들은 마치 소 닭 보듯이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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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리아꼬

쁘리아란 신성하다는 뜻이고 꼬란 소란 뜻이다.

흰두교에서 소란 신성한 숭배의 대상인데 소가 무릎을 꿇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자야바르만 2세와 그의 왕비 그리고 조상들의 위폐를 모신 곳이라 한다.

자야바르만 7세가 자신을 관세음보살이라고 한 것처럼 자야바르만 2세는  스스로를 흰두의 최고신

시바라고 했다.

그래서 숭배의 대상인 신성한 소를 무릎 꿇린다는 것이다.

마치 신에게 도전하기 위해 바벨탑을 쌓아 올리던 인간들처럼 탐욕과 그릇된 미망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인간의 안하무인과 오만방자함의 극치다.

절대권력 앞에서 억겁의 굴욕을 이어온 꼬들은 말이 없다.

 

 

                                                                                                                                자료화면

 

 

바콩사원

바콩사원 가는 길에 가이드가 한마디 한다.

경주와 씨엠립이 자매결연을 맺고 문화엑스포를 개최하는 중이란다.

어제 노무현 대통령이 다녀가는 바람에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씨엠립 중앙 도로가 1시간 30분간 통제

되었단다.

사람들 노대통령 무지하게 욕했다고 했다.

꼬라지 보기 싫어서 캄보디아 까지 도망 왔는데 쫓아와서 괴롭힌다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노예를 동원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신전을 세우는 절대왕권은 무수한

세월이 지나 초라해지고 한국에서는 걸핏하면 국민들 입으로 난도질 당한다.

그 한바탕 웃음이 우리가 캄보디아 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힘이 아닐까?

 

 

바콩사원에 갔다.

무뢰한의 눈에도 걸작의 예술품이고 그 분위기에 압도된다.

넓은 사원의 한 가운데 들어서자 고대의 숨결이 느껴졌다.

바람에는 그 시대의 향기가 묻어 왔다.

엄청난 곳에 왔구나!

대자연 한 가운데서 받았던 감동과는 다른 또 다른 감동이 내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사진과 그림에서 보던 사원에서 느낄 수 없었던 서늘한 비장감과 가벼운 전율이 거대한 돌길을 따라

사원 위까지 내내 따라 오는 통에 계속 경건하고 숙연할 수 밖에 없었다.

 

바꽁은 피리미드 형식의 힌두사원이다.

9세기 후반 인드라바르만 1세에 의해 지어졌으며 하리하랄라야 도시 중심에 위치한다.

중앙탑으로 이르는 4개의 층은 신화의 세계에 나오는 네신인 나가(NAGA) ,가루다(GARUDA), 락싸싸

(LAKSASA), 약사(YAKSA)를 의미한다.

이런 형식의 사원을 마운틴템플이라고 부르는데 산처럼 높이 기단을 쌓아 올린 형태로 힌두신화의

메루산을 상징한다고 한다.

메루산.

산스크리트어로 수메르 불교에서는 수미산이라 부르는데

불국정토가 있는 땅으로 우주의 중심이다.

물이 가득한 해자를 건너야 세상의 중심으로 간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한국의 풍수지리설에 근거한다면 최고의 명당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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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바켕

오늘의 마지막 코스다

일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지 몰랐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해에 마주하는 일출에 열광하는데 이곳은 일몰을 보기 위해 매일 이렇게 초만원

이란다.

그래도 광활한 평야지대에서 유일한 언덕에 있는 사원이라 제법 산에 오르는 기분이 난다.

일대를 내려다 보는 조망도 훌륭하다.

사실 걸출한 사원이 아니라면 풍경도 일몰도 의미가 없었다.

내가 보았던 그 숱한 일몰의 고혹적인 아름다움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여긴 아득한 시간을 거슬러

가는 태고의 신비가 온몸을 휘감아 온다.

강력한 에너지와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자연 풍경 위로 떠 도는 알지 못하는 힘이 경건함과 엄숙함으로 다가오고 있다..  

 

앙코르의 삼성산(三聖山)중의 하나인 바켕산에 지어진 신전이다.

중앙 사당을 중심으로 사방에 4개의 탑이 있다.

남동쪽으로 멀리 앙코르와트가 보이고 서쪽으로 발라이호수가 보인다.

이 호수에 드리우는 낙조가 일품이라는데 마눌은 복잡한 사람들 틈바구니에 앉혀놓고 발정난 당나귀

처럼 길길이 뛰며 4면의 풍경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건기의 맑은 날이지만 항상 구름이 지평선위에 남아 구름 없는 일몰을 보기가 어렵다 한다.

풍경 때문이 아니라 태고의 함성 때문에 성스러운 이국의 설레임을 만난다.

 

오랜 세월 끊임 없이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았을 프놈바켕은 허허로운 모습으로 아득한 세월의 영광을

보여주고 있다.

그 때의 사람들은 모두 한 줌의 흙으로 사라지고 나서도 여전히 태양은 성호를 그으며 프놈바켕의 서쪽

으로 떨어진다.

세월의 풍상에 지친 모습일망정 담대한 바위의 성은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서 있다.

사람의  인생만이 한 줄기 바람과 같은 거다.

이 신전을 오갔을 수많은 군상들처럼 나의 존재 역시 찰라의 시간 속에  바람처럼 사라지겠구나.  

세상의 수 많은 의미와 아름다운 것들은 오랫동안 날 기다려 주지 않을 텐데 나는 손바닥 만한 나라의

잿빛 도시에서 늙어 가고 있다.

일몰을 보면서 더 역동적으로 살아야 할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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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현지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고 압싸라 춤을 구경했다.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고 절제된 춤이다.

손과 발이 만드는 선의 흐름은 섬세하고 우아하다.

옛날에는 상반신을 드러내고 추었다고 한다.

지금도 지방에서는 그렇게 춘단다.

보기에는 물흐르 듯 힘들지 않게 추는 춤 같아도 춤을추는 사람들은  빠른 춤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 같다.

 

느린 템포의 춤에 흥미를 잃었는지 일행들이 가자고 한다.

아깝다.

그래도 다른 나라의 전통 문화와 의상들을 볼 수 있는 기회인데

 

 

오일마사지 받으러 갔다.

마눌이 오일 마사지가 포함되어 있는 패키지를 계약하는 바람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른 사람들은 안 받겠다고 해서 마눌과 나만 가이드와 함께 뚝뚝이를 타고 맛사지 받는 곳으로 갔다.

우리나라처럼 화려한 밤거리 문화란 없다.

그저 골목은 으슥하고 컴컴하고 큰 길은 네온싸인이나 불 빛이 밝기는 한데 왕래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리고 다시 마눌과 도마뱀과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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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톰

앙코르 톰으로 갔다

54명의 신과 54명의 악마의 영접을 받으며.

고대 캄보디아 왕국의 도성인 앙코르톰 남문으로 가는 길에는 신들의 상과 아수라의 상이 도열해 있다.

자야바르만 7세가 12세기말에서 13세기 초에 걸쳐 축조한 사원인데 7개의 머리를 가진 뱀 나가가 호위

하고 있다.

바이욘의 미소와 자비가 넘쳐나는 곳이다.

그 미소는 세상을 달관한 관조의 미소라고 했다.

216개 바이욘의 미소띤 얼굴이 모두 다르다고 하는데 지금은 37개만 남아 있단다.

바이욘의 사원은 수미산을 상징하고 성벽은 히말라야 영봉 환호는 대양을 의미한단다.

모든 것이 왕권의 신격화와 결부된 크메르의 우주관에 연결되어 있다.

 

 

                                                                                                       자료사진

앙코르톰이란 큰 도시란 뜻이다.

위대한 도시

3km의 정방형 형태의 도시로 8m높이의 성곽에 동쪼게 2개 ,서,남,북에 각 1개씩 성문을 만들고 성벽

밖으로 넓이 100m의 인공호수를 만들었다고 한다.

전성기에 100만 인구가 살았다 한다.

당시 런던 파리의 인구가 10만을 넘기지 못했다니 정말 위대한 도시였다.

 

어느날 그 사람들이 흔적 없이 사라졌단다.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게다

천 년을 넘는 세월이란 인간이 흔적을 더듬어 가기에 너무 아득한 세월일 수도 있다.

역병이 창궐하여 사람들이 죽어가고 남은 누군가는 어디론가 떠났을 지도 모른다.

언제나 떠나가고 사라지는 것은 사람이고 태양과 바람과 물과 나무와 돌은 거기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대자연 속에서 사람은 언제나 客일 뿐이다.

그래서 내 이름이 武陵客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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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 그리고 살짝 흘리는 미소까지

고혹적인 자태의 압살라와 데바타(devata)이다.

압살라는 암리타(감로수)가 만들어지기 직전에 생긴 바다거품에서 태어난 존재로 인간과 신 사이의

중간급 정령으로서 위대한 남신이 출현할 때 나타나 춤을 추며 분위기를 살리는 역할을 맡았다 한다.

아름다운 무희들인 셈이다.

이에 비해 데바타는 사원 본존의 공양녀라는 지위를 가진 하급 여신이라 한다.

압살라와 데바타는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앙코르와트 사원에 부조된 압살라와 데바타상만 해도 1700여개가 넘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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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의 피라미드 바푸온 사원

시바

창조의 신이자 죽음과 파괴의 신

그리고 술과 음악을 사랑하고 섹스(생식)을 관장하는 로맨티스트로 흰두교 절대 권력의 신 삼총사 중의

한명이다.

흰두교의 3신 : 브리흐마,바슈뉴,시바

바푸온은 시바에게 바쳐진 힌두사원으로 11세기 중반에 만들어졌다 한다.

청동으로 지은 건물이라는데 당시에는 같은 무게의 청동과 황금이 동일한 가격이라고 한다.

들어갈 수가 없다.

50년 째 공사중이라지만 공사하는 인부의 모습도 없고 마치 건설업체의 부도로 방치된 건물 같다

네덜란드의 아나스틸로스 공법인가 무슨 공법인가를 적용하여 순서대로 번호를 붙여 해체하고

역순으로 다시 조립해 간다는데 해체 후 조립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넘들이 지원한다는데

과거의 건축술이 그렇게 복잡하고 정교한건지 프랑스 넘들이 실력이 없는건지.

하여간 50년 지나도록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니 해도 너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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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미아나가스

하늘 위의 궁전이란 이름의 왕실사원이다.

소마공주의 전설이 깃들어 있단다.

옛날옛적 머리가 9개 달린 뱀이 신통력이 출중하여 여자로 변신하여 신전에 살았단다.

아름다운 소마공주로

매일 밤 왕이 왕비의 침실로 가기 전에 소마공주와 잠자리를 함께 해야 했다는데.

그것을 어기면 죽는데나 어쩐데나

하여간 왕들은 할머니뱀과 잠자리를 한 셈이고 크메르 왕가의 혈통에는 신성한 뱀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앙코르 신전의 어디에나 머리가 여러 개 달린 뱀 나가가 수문장처럼 입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초기 건축에는 머리가 9개 달린 뱀이었다가 후반부에서는 머리가 7개로 줄었다고 한다.

 

소마공주의 체취라도 느껴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신전에 올랐다.

뜨거운 날씨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가고 넓은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신전의 바위에 앉았다.

어깨에 슬며시 손을 올리는 이가 있다.

마눌.

난 소마공주가 환생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자료사진

 

코끼리 테라스  & 문둥이테라스

넓은 광장이다

평소에는 정원으로 사용하고 외국사신을 영접하거나 국가의 공식행사를 진행하는 곳이란다.

전투에 출정하는 군대를 전송하는 등 왕이 일반군중과 접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길을 따라 720km를 가면 베트남과의 국경을 만난다고 한다.

거대한 석축부조로 된 조각공원이다.

왕도 가고 노예도 가고

그 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늦지 않게 주토를 밟았다.

무수한 노예들은 거대한 작품을 남기고 세월 속에 먼지로 흩어졌고

그들에게 그 작품을 만들게 한 제왕은 이름을 남겼다.

뜬구름 같은 인생길에서 권력도 영화도 모두 한낮의 일장춘몽이었고 한 바탕 광란의 춤이었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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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께오 미완성사원

건물이 형체는 완성되어 있는데 심플하다.

다른 사원에 비해 조금은 허전한 이 느낌은 왜일까?.

아하 벽체를 장식하는 현란한 조각들이 없다.

무슨 이유로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걸까?

수 많은 미스터리 중의 또 하나 일 뿐이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결국 모든 성채에 만들어진 조각은 돌을 쌓은 후에 조각한 것이었다.

허기사 하나하나 조각한 다음 맞추어 간다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울 것인가?

마완성이란 아직 구체화 되지 않았다는 것 만으로 수 많은 가능성과 변화의 지평을 유보하고있다.

 

 

                                                                                                                               자료사진

 

  

 

 

 

따프롬

12세기 중역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님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원이다.

밀림 속에 숨겨진 신비스런 성전으로 가장 유명세를 타고 잇는 사원이지만 머지 않은 장래에

사라져갈  사원이다.

영겁의 세월을 증거하는 외계인 같은 나무들의 대 습격을 받는 사원

안젤리나 졸리가 툼레이더를 찍어서 더 유명해진 사원이다.

우리나라 전쟁 호러물 알포인트도 여기서 찍으려 섭외했다가 돈이 너무 비싸서 시골의 사원에서

찍었단다.

새들이 날아가며 싼 똥이 사원의 담벼락에 떨어지고 거기서 나온 씨앗이 뿌리를 아래로 뻗어

내리면서 온 사원을 휘감고 있다.

그래서 열대무화과에 속하는 스퐁나무의 엄청난 굵기와 길이에는 사원의 돌 벽만큼 장구한

세월이 잠겨있다.

나무 뿌리를 조심스럽게 잘라내거나 성장억제제를 투여하는 방법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단다.

결국 어느 날 인가는 허무하게 허물어질 사원인데 세월의 무게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사원의

모습에 안타까움과 애석함을 금할 길 없다.

 

 

통곡의 방에 들어서서 가슴을 치자 북처럼 가슴이 울린다

자야바르만7세의 어머니가 문등병에 걸린 아들을 슬퍼하며 가슴을 치면서 울었던 방이다.

신과 같은 권력을 가진 왕이 몹쓸 문둥병에 걸렸다.

세상 부러울게 없는 절대권력과 부귀와 영화도 무너지는 가슴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삶이란 그저 가벼운 바람 결에 날리는 가벼운 새털 같아야 한다.

바람 없는 날 호수의 잔잔하고 고요한 수면의 평화 같아야 한다.

맑고 투명하고 깨끗해서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는 한가로운 물길 같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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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의 방으로 들어섰다.

자아바르만 7세가 어머님을 위해 만들고 내벽을 빙 둘러서 주먹덩이 만한 보석들을 박았다는데 누군가

다 빼어가고 빈 구멍들만 남아 있다.

캄보디아의 루비광산은 알아준다는데 아마 대부분이 루비였겠다.

아침햇살이 성채의 구멍으로 들어오면 그 한줄기 빛이 보석에 산란되어 오묘하고 영롱한 빛으로

어두운 내부를 밝혔다고 했다.

절대 제왕이 만들었던 화려한 효심의 바벨탑이었다.

기록에는 이 사원에서 3140개 부락을 통치했고 79386명의 관리인, 18명의 고승, 2740명의 벼슬

아치,2202명의 노예,그리고 615명의 무희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뿐이 아니다.

35개의 다이아몬드,40620개의 진주, 4540개의 보석, 0.5톤짜리 황금접시 한 쌍, 그리고 512개의

비단침대가 있었고 한번에 12,640명을 잠재울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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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

앙코르와트가 가장 크다고 했다.

지금 보았던 사원들도 너무도 웅장하고 방대해서 내게 장대한 감동을 가져다 주었는데

얼마나 더 큰 사원 이란 말인가?

이제 앙코르의 미소의 마지막 피날레였다.

성벽을 두른 해자의 물길로도 그 위용의 전율이 전해져 왔다.

 

긴 다리를 건넌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

수미산

엄숙함과 경건함 속에 영겁의 다리를 건너 태고의 신비 속으로 침잠해 간다.

1858년 나비채집차 캄보디아에 왔다가 앙코르와트를 처음 발견하고  서구에 알린 앙리 무오도 그

이듬해  라오스의 밀림에서 싸늘한 시체가 되었고 그 외에도 400년 동안 잠들었던 앙코르와트의

저주를 깨운 사람들도 늙은 사원지기의 예언대로 죽었다고 한다.

 

앙코르의 저주는 이미 600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했다.

어느날 갑자기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타이가 침공했을 때  앙코르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멀쩡한 유적과 유물만 남기고 제국이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다.

크메르제국은 앙코르의 화려한 문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그 제국의 영혼들은 앙코르의 저주를 불러내어 100만이 넘는 사람들을 다시 단발마의 비명 속에

사라지게 했다.

우리는 그것을 킬링필드라 부른다.

순환되는 역사의 운명인지 앙코르의 저주인지 나는 수많은 영혼들이 떠돌고 있을 앙코르 와트로 간다.

 

 

앙코르와트는 사원의 도시란 뜻으로 앙코르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신의 화신으로 여긴 왕의 무덤으로 수르야바르만 2세의 통치아래 1113년 무렵부터 30년에 걸쳐

건립된 사원이다.

중앙탑은 메루산을 상징하고 해자는 바다를 뜻하는 사원자체가 하나의 우주로 형상화 되어

있다.

신전의 주신은 비슈뉴신이다.

 

넓은 광장을 지나 앙코르와트의 5개 탑이 모두 보이는 연못가에서 사진을 찍고 우측광장을 긴

부조가 조각되어 있는 회랑을 따라 간다.

벽면에 조각으로 표현한 웅대한 서사시다.

왕도 있고 장군도 있고 병사도 있다.

춤추는 여인도 있고 불로장생의 영약 암리타를 만들기 위해 젖의 바다를 젖고 있는 88명의

신과 92명의 악마도 있다.

고대의 삶과 전쟁 그리고 신화가 회랑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풍우를 피할 수 있는 건물 안의 내벽이니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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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대기 기단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간담이 서늘하다.

신에 대한 경배를 강요하는 신전은 너무도 가파라서 반듯이 선 채 올라가기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얼마나 위험한지 해마다 관광객들이 사고를 당한다는 데 안전시설은 없다.

잔뜩 긴장한 채 두려움에 떨며 올라오는 마눌을 도와 줄 방도가 없어 애써 외면하고 신전의 다른 쪽에서

서성인다.

온통 진땀에 눈물까지 글썽인 채 올라 온 마눌을 보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내려가는 쪽 계단으로는 쇠줄이 하나 연결되어 있는데 오르는 쪽 계단들에는 왜 안전시설을 하지 않는

것일까?

가난해서라기 보다는 신 앞에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존재를 일깨워 주려 함인가?

기단 위에는 신전에 예를 올리기 전에 몸을 씻기 위한 목용탕이 사방으로 4개나 있다.

그 높고 큰 목욕탕에 물을 채우는 방법이 궁금해서 물어보니 모두 노예들이 퍼 올렸단다.

네발로 기어 올라가기도 버거운 그 계단으로 물통을 지고 물을 퍼 올렸다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세상의 장대한 유적들이란 모두 민초와 노예들의 피와 땀이었다.

신이 되고자 했던 가증스런 인간들의 광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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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 말 없이 묻혀간 그들의 환영이 눈 앞에 어른거렸다.

그 시대에도 엄청난 인간의 역사가 있었다.

전쟁과 평화가 있었고 종교와 사랑이 있었다.

 

앙코르엔 사라지는 것과 남아 있는 것들에 관한 위대한 교훈이 있었다..

그 시대의 함성과 향기를 느껴본 것 만으로도 행운이었다.

앙코르는 내게 말했다.

누군가 사는 게 행복하세요 물어볼 때 자신 있는 목소리로 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가슴이 울리는 대로 조용히 살아가는 날의 기쁨을 노래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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