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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황산기행



 

 

무릉객의 황산 여행기 -- 2005년 가을

목이 멘 가을은 소리 없는 이슬로 통곡하고 빈 가슴을 헤집은 바람은 여명의

빛을 따라 코발트 빛 하늘로 간다.

축제

이 가을을 말 없이 보내면 다시 돌아 오는 가을엔 마음이 먼저 늙어 있지나 않을까?

가을 들판에 서서 바라보는 대자연의 황홀한 춤.

지천에 붉어지는 너울이 서러워

잠시 걸음을 멈추면

너의 향기와 빛깔에 가슴 시리다.

혼자 산을 타는 버릇이 남아 황산도 혼자 간다.

이 가을 주체할 수 없는 방랑벽이 도진 것으로 해두자

언젠가 한번은 가야 할 곳.

아직 시력과 기억력 그리고 체력이 괜찮을 때

배낭에 담길 추억이 더 많지 않겠나?

쓸쓸함 보다는 설레임과 기대가 먼저 가는 날

그렇게 마누라의 배웅을 받으며 다람쥐 숲을 날아 올랐다.

세상은 넓고 볼 것은 많다.

지난번 장가계에서 무수한 동양화 속의 절경이 실제로 있음을 보았고

이국의 풍광을 넋을 놓고 흘러 내렸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훨씬 많아 보이고 한국말과 한국 돈이 넘쳐나지만

애석하게도 그 산수는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한 아픔과 부러움 그리고 탄성이 함께 어우러지는 여정 이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넘들에겐 디따 넓은 땅덩어리에 저런 절경 까지 주고

우리나라엔 토끼모습을 한 채 애잔하게 매달려 있는 조막만한 땅덩어리 하나

허락하시다니

아직 개발되지 않은 비경이 헤아릴 수 없다는 소리에 배가 많이 아팠었는데

이번에 황산까지 돌아보고 나서는 아예 할 말을 잊었다

중국에서는 유서 깊은 유물과 유적은 내게 감동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

그것은 그들의 역사일 뿐

눈길이 닿는 산 등성이로 까마득히 흘러가는 만리장성도

대국의 자부심과 위용으로 내 가는 길을 막아서던 자금성도 대자연의 조화와는

비교될 수 없었다.

그 장대함과 웅장함은 수 많은 민초들의 피와 눈물이었을 것이다.

빼앗은 절대 권위와 영광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이 인간의 능력이라 믿겨지지

않은 역사를 만들었고 그 성 안에서는 권력의 암투가 난무하고 살육의 피비린

내가 등천했을 것이다.

역사의 현장에서는 떠오르는 것들은 감동이 아니라 내 희박한 중국역사 지식

으로 재구성되어 두서 없이 파노라마 치는 역사의 편린들이었다.

신의 영역을 넘보다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 오만하고 방자한 인간들이 추었던

한바탕 광란의 춤에는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았다.

(상해관광)

상해의 야경은 이국의 정취를 일깨운다.

동방명주라는 마천루에 올라 서울보다도 더 화려하고 역동적인 상해 시를

굽어 본다.

따발총 하나 가지고 전우의 시체를 넘어 물밀 듯 내려오는 그들의 환영이

어른거린다.

소리 없이 다가온 중국은 이제 전 산업 분야에서 메이드인 차이나의 기치를

걸고 걷잡을 수 없는 노도의 기세로 밀려들고 있다.

옛날부터 끊임 없이 우릴 괴롭혀온 뙈국놈들은 싼 가격 그리고 풍부한 물자와

자원으로 코리아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이제 천하절경의 천혜자연으로

한국사람들을 잔뜩 끌어 모아 시도 때도 없이 호주머니를 털어내고 있다.

아얘 대놓고 우리를 무시하는 일본넘들이나 이젠 칼과 창이 아니라 만물상

으로 들이대는 뙤넘들이나 참으로 질긴 악연이다.

 

 

 

 

 

 

 

100년의 역사와 10년의 역사를 함께 볼 수 있다는 외탄거리

강변엔 시원한 바람이 불어 간다.

강건너 불구경이다.

어둠 속에 명멸하는 네온이 밤바다를 가르고 현란한 불 빛으로 치장한 유람선

은 어두운 강물을 미끄러 간다.

 

 

 

 

 

 

 

인천공항에서 점심 소고기 국밥 한 그릇 비웠는데 비행기 안에서 또 기내식을

주는 바람에노니 장독 깬다고 심심한 차에 닭고기, 밥, 샐러드 죄 먹었다.

비행기에 버스에 하루 종일 차 타고 이동하느라 피곤해도 운동량이 없으니

배가 꺼지지 않아 걱정했는데 시내관광 후 중국요리가 테이블에 깔리자

식욕이 동하기 시작한다.

작은 수저며 밥공기 그리고 손바닥만한 접시가 감질나긴 해도 돌리는 작은

부페식 테이블은 내 적성에 딱이다.

후식 까지 배 두드리며 먹고 9시 20분발 황산비행기를 타러 상해 포동공항으로

갔다.

 

 

(황산시 가는길)

시끄러운 넘들

국내선 공항은 시설부터가 국제선과 다르고 떠드는 소리가 도때기 시장이다.

만만디 중국의 진면목을 만난다.

우리 비행기보다 늦게 출발 예정이던 비행기들이 죄 떠나고 나서도 우리를

실을 날틀은 올 생각도 않고 버스 대합실 같은 공항대합실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 흔한 안내방송 한번 나오지 않는다.

단지 전광판에서 DELAY 표시만 껌벅일 뿐이다.

당연하다는 듯 물어보거나 항의하는 사람 하나 없이 강제 징용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그렇게 묵묵히 기다리다 비행기를 탔다.

1시간 남짓 비몽사몽을 헤매다 도착 안내 방송이 나올 때 연착해서 미안하다는

스튜어디스의 콘멘트가 한번 나온다.

삶의 여유와 인생의 느긋함을 배우고 싶거덩 중국 공항을 벤치마킹 하라

12시를 넘겨 호텔에 도착해서 궁금해할 마누라에게 전화 한대 때리고 세수하고

발만 닦은 다음 잠자리에 들다.

혼자온 터라 가이드와 한 방을 쓰게되어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다 잘 자란

인사도 없이 잠잔 것 까지는 좋은데 아침 모닝콜에 놀라 깨어 가이드를 깨우니

그가 푸석푸석한 얼굴을 하고 볼멘소리를 한다.

아저씨 왜 그렇게 코를 고세요. 한잠도 못잤어요

아뿔사 밖에서 자면서 걸린 세번째 크레임이다.

지난해 설악 콘도에서 가족모임 때 여동생이 나 땜시 잠을 설쳤다고 했고

올해 지리산장에서는 코좀 작게 골라고 열쓈히 자는 나를 깨우는 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가이드 까지.

등만 대면 자는 통에 난 내가 코고는 줄도 모르는데.

그래도 미안해서 한마디 했다

우리 마누라는 그런 소리 안하고 잘 자는디. 좀 민감한 모양이네

낼은 내가 잠 늦게 잘 테니 오늘은 버스에서 좀 자소

조식은 호텔에서 부페로 했는데 빵과 만두가 주종이었다.

산행을 8시간 해야 하기에 만두, 새알,그리고 쌀과 옥수수 등을 닥치는 대로

먹고 나라 망신이 될 줄 모르지만 간식을 위해 비닐봉지에 빵을 몇 개 쌌다.

내가 하루 묵었던 황산시는 순전히 황산 때문에 만들어 진 도시라 했는데

우리나라 읍소재지 보다는 좀더 커 보이는 정도의 규모가 되겠다.

주로 호텔 같은 숙박시설이 많이 눈에 뜨이고 강은 도심을 관통해 흐른다.

 

(황산 가는 길)

황산 가는 길이 우리의 시골 풍경 같다.

집의 구조가 도심의 슬라브 형태인 것이 좀 다를 뿐 산세나 계곡을 흐르는

물이며 들풀 까지 우리의 산하와 별 차이가 없다.

다만 가끔 보이는 물소가 이국을 느끼게 한다.

이제 나 땜시 잠못 잔 가이드는 마이크를 현지 가이드에 넘기고 완죤 혼수

상태다.

황산 풍경구 초입에서 입장권을 끊고 셔틀버스로 갈아 타고 케이블카 운행지

까지 갔다.

멀리 보이는 산세가 범상치 않음이 본격적으로 황산 풍경구에 들어선 느낌이

온다.

어깨를 굽히고 있는 촌노들처럼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도 청솔과 함께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는 장쾌한 대나무들이 인상적이다.

굵은 대나무 들은 작은산 하나를 온통 채우고 언덕길 곳곳에서 절개와 기상을

시새우고 있다.

 

(황산- 구름 속의 몽상 )

자광각에서 케이블카로 옥병루에 오르는 길

수십대의 케이블카가 KTX처럼 빠른 속도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50대의 고속 케이블카가 운행하는데도 좀 늦으면 2~3 시간 씩 기다려야 한다

는데 무막지한 관광 인파를 실감할 수 있다.

긴 협곡 위를 가로 질러 황산의 봉우리로 간다.

오르는 힘겨움과 단조로움을 기계가 대신하고 여유롭게 일대를 조망하며 가을

바람 찾아 드는 능선 위에서 황산을 만난다.

옥병참에서 본 황산은 마음 속에서 상상했던 것을 뛰어 넘지는 않았다.

처음 장가계를 대했을 때의 충격과 전율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때는 동양화 속 산수가 실존함을 확인했던 경이로움이 있었다.

오후에 서해 대협곡에 들기 까지는 한국 산하의 비경에 비해 별스러울 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옥병루나 연화봉 그리고 오어봉의 오르면서 바라본 황산의 풍광은 그저 좀더

크고 웅장한 암릉과 청솔이 조화로운 산일 뿐이었다.


 

 

 

 

 

옥병루에서 영객송의 환영을 받고 천도봉을 바라다 보았다.

연화봉 가는 길의 가파른 돌계단 길을 가면서 순식간에 휘몰아 쳐오는 운무와

시원하게 목을 감기는 바람을 만났다.

참 무식한 넘들이다.

암반을 쪼아내어 발판을 만들고 심지어 벼랑 쪽 난간 까지 만들었다.

퇴각하는 신들이 얼마나 벨이 뒤틀렸을까?

연화봉 까지는 아랫사람의 정수리를 바로 아래 내려다 보면서 절벽을 감돌아

올라야 하는 급경사 길의 연속이다.

그래도 멋진 날씨에 전망은 굿이다.

청명한 푸른 하늘에 막힘 없이 시계가 트이고 가끔 변화무쌍한 운무의 조화에

휩싸인다.

가이드가 보기 드문 날씨라 했다.


 

 

 

오늘 여행객들이 평소 쌓은 덕이 많아 이렇게 좋은 날이 점지 되었단다.

쾌청한 황산의 하늘을 보기가 쉽지는 않다는데 연화봉을 오르는 길에서는

황산의 능선과 골짜기가 뚜렷이 다가서고 가끔 산비로운 운무가 소리 없이

다가와 절경을 감싸 안았다.

그렇게 名不虛傳이라고 쓰여져 있는 연화봉 정상에 올랐다.

멀리 광명정이 보이고 오어봉 암릉에 모인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도 들린다.

 

 

 

 

 

 

 

연화봉 까지 가는 길은 국수적인 관점을 경계하면서 그래도 북한산과 설악산을

섞어 놓으면 나올 법한 풍광이라고 애써 자위했는데

오후 서해 대협곡을 흘러 가면서는 탄성을 입에 붙이고 다녔고 나는 말 없이

내 기억에 남겨진 기존의 산과의 비교를 접었다.

서하객은 五嶽에서 돌아 나오면 볼 산이 없고 黃山에서 돌아오고 나면 오악을

볼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 황산 중에서도 서해 대협곡은 개발된 지 오래지 않아 아직 선이 그려지지

않은 등산안내도도 많이 있다는데 魔의 幻影 같은 경치라 하여 魔幻世界

혹은 魔幻景區 라고도 불리운다.

서해 대 협곡과 기암 그리고 건강한 초록 빛의 황산송

비인간 세상이 거기 있었다.

신선이 살았을 그 땅


 

 

 

 

 

 

 

 

오래도록 신의 세상으로 남아 있었을 그 땅은 12년간 설계와 9년의 공사기간을

걸쳐 2001년에 인간들의 땅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새도 오르기 어려운 까마득한 암봉 허리에 계단을 붙여 놓고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막다른 곳에서는 암봉에 굴을 뚫고 심지어 돌다리로 연결해 버렸다.

인간은 신의 나라에 침범하여 신들을 죄 몰아내고 신들의 정원을 세계인의

공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자연의 거대한 조각품에 인간이 덧칠한 형상이지만 황산에서의 인간의 덧칠은

조물주의 작품을 더욱 빛나게 했고 무수한 사람들을 신의 세상으로 가는 길로

인도했다.

망치소리가 들리고 또 수 많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던 날부터 이 땅을

포기한 신들은 지금도 아쉬움에 운무와 바람을 풀어 선계에 발을 들여 놓은

인간의 불경함을 못마땅해 하고 있다.

기암절벽 사이로 돌길을 내어 더 이상의 훼손을 막고 전세계인을 끌어 들여

관광수입을 올리는 고도의 전략은 거기 황산이라는 걸출한 대자연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백두대간 종주와 한국의 내노라 하는 비경들의 섭렵을 통해 한껏 사치스러워진

내 눈에도 황산은 산의 개념을 달리 하는 별세계였다.

그 심대한 계곡의 깊이

계곡에서 하늘을 향해 솟구친 장대한 암봉들에 걸터 앉아 기나긴 세월을

인내하며 푸르름을 잃지 않은 소나무들은 감동이었다.

서해대협곡에서 사람들의 왕래가 없어진 황산은 비로소 고산다운 정적을

되찾는다.

가파른 계단 길을 따라 가며 날카로운 침봉들을 오려다 보려면 목젖을 뒤로

젖혀야 하고 시시각각 바뀌는 풍광에 잠시도 오감을 휴식할 수 없다.

황산에 오르고 나니 천하에 산이 없더라라는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수많은

봉우리와 기암괴석 그리고 아름다운 청솔의 조화로운 풍광이 빚어내는 황산의

비경은 하루 종일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짱짱한 체력으로 이 절경을 돌아 볼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가는 길이 고행길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가득한 가운데

신비와 감탄이 절절한 길을 걸었다.

 

 

 

 

 

 

 

 

 

 

 

 

 

 

 

아쉽게도

배연정에 올라설 때쯤 날씨가 너무 흐리고 운무가 자욱해서 일몰을 볼 수가

없었다.

일몰을 기대하던 무수한 사람들은 조용히 다가오는 어둠 속으로 그렇게 사라

져 갔다.

어둠은 황산의 비경을 감싸고 말 없이 돌아 누어 버렸다.

갑자기 황산은 우리를 고립시키고 할 일이 없어진 사람들은 목적 없는 발길로

안개 흐르는 천상의 궁전을 배회했다

 

 

 

먼나라의 절경을 염탐하는 흥분되고 상기된 하루를 보내고 아직 감동에서

놓여 나지 않은 채 구름 속을 거니는 몽롱함 속에서 고량주 3잔과 맥주 두잔

을 마셨다.

자욱한 안개가 바람에 휘날리는 황산의 정상에서 중국의 이름 모를 요리들로

성찬을 갖고 1800 고지의 하룻밤을 준비한다.

아름다운 세상을 허락한 황산의 산신령님이 명산의 정기를 가득 불어 넣어

주기를 기대하면서.

한권의 책을 읽으며 길동무가 잠들기를 기다린다.

안개 휘몰아치는 차가운 산정에서.

이런 날도 있구나

깊은 산속 이렇듯 호화로운 호텔에서

푹신한 침대에 부드러운 이불을 덮고 잠들 수 있다니..

자다가 추위를 느껴 옷을 하나 더 껴 입고 잤다.

보일러를 더 올리고 여분의 이불을 더 가져다 덮어도 되었는데

그런 것도 모르고 한기에 떨며 오그리고 잤다.

가이드와 한방을 써도 방을 따뜻하게 할 줄을 아나 코골이 불평을 않나

게다가 모닝콜 까지 내가 해야 하니 도대체 득이란 없다.

 

 

 

 

 

 

 

 

.


 

 

(황산의 새벽)

어제보다는 안개가 많이 걷힌 산길을 걷는다.

둥그런 불 빛 하나 발아래 두고.

모두들 어디서 잤는지 사람들이 많기도 하다.

중국말 보다는 한국말이 더 많이 들리니 마치 지리산 천왕봉 해돋이 가는

듯하다.

날씨는 좋은 것 같은데 가이드가 김새게 일출을 볼 수 있는 확률은 10%란다.

자기가 10번 황산에 왔는데 단 1번 봤데나 어쨌다나.

 

 

 

 

 

 

 

 

40여분 갔을까?

시원한 바람이 목을 휘감는 능선에 올라섰다.

6시가 넘어 희미한 여명이 뜨고 푸른 새벽이 달려 온다.

전망대에서 마주한 황산의 새벽

청명한 공기는 가슴을 찌르고 바람은 거칠 것 없는 허공으로 불어 온다.

나는 독수리의 정수리를 타고 나르듯 신비롭게 열리는 태초의 아름다움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

필설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천상의 황홀경에 눈이 시리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일출맞이 명소라는 청량대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서 있었다.

태양은 떠 오르지 않았다.

옅은 붉은 빛이 떠 오르는 듯 하더니 갑작스런 안개가 들이 치고 청명함

속에 뚜렷이 열렸던 계곡의 아침은 꿈꾸듯 사라져 갔다.

일출의 아쉬움 보다 황산의 새벽 여운이 더 오래 남았다.

 

 

 

 

 

아침식사를 하고는 돌아본 비례석의 풍광은 잊을 수 없다.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싼 기암의 봉우리들과 눈을 맞추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계곡아래서 솟구쳐 오르는 운무와 바람을 맞으며 긴 세월에도 변함 없는

아름다움을 본다.

아름다운 자연이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주었을 영감과 교훈을 생각하며

운무가 오락가락하는 돌길을 따라 몽필생화 광명정을 거쳐 아쉬운 황산여행을

그렇게 마무리 했다.

그렇게 구름 따라 신선의 나라를 흘러가며 신의 창조에 경배하고 신의 정원에

가까이 가고자하는 인간의 노력에 한숨을 내쉬었다.


 

 

 

 

 

 

황산은 아름다웠다.

암벽에 기댄 청솔의 고고하고 우아한 자태가 우리 사는 세상의 또 다른 자연

의 감동을 이야기하고 나는 그 길 위에서 신선이 되었다.

내 가슴속에서 수많은 봉우리와 아름다운 황산송의 잔영이 얼마나 오랫동안

남겨질지 모르지만 그 추억으로 행복할 수 있는 멋진 여행길 이었다.

조물주는 왜 이 땅에 황산을 남기지 않았는가?

이 수려한 산이 왜 중국만이어야 하는가?

장탄식이 남는 길이지만 그 땅은 마음 한 번 먹으면 우리가 갈 수 있는 가까

운 곳에 있었다.

황산을 가려면 늙기 전에 가라

그리고 서해대협곡 종주를 하지 않고는 황산을 갔다 왔단 말을 하지 마라


 

 

 

 

 

자연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보아야 한다.

어줍 짢은 애국심과 이기심이 무슨 소용이랴.

내가 받은 무한한 감동이 거기 있고

내가 그 장엄함 앞에 서 있는데.

신의 영토를 떠돌 수 있는 자유가 이렇게 주어져 있는데.

세상엔 참으로 많은 아름다움들이 있다.

우리가 그 아름다움의 절대우위를 일일이 비교하며 살아갈 필요는 없으리라.

우리 곁에 있기에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아닌가?

그 속에서 함께 거닐고 노래할 수 있을 때 그 아름다움은 우리 가슴에 감동을

남길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나는 다시 한국의 산 어느 모퉁이에서 다시

붉은 단풍이 바람에 불어 가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볼 것이다.

우리에게도 또 다른 측면에서 황산에 못지 않은 신토불이 산하가 있다.

푸른 하늘을 이고 가슴 시리게 불타오르는 공룡과 용아의 가을이 있다.

청솔의 고고함이 살아 있는 충북알프스와 백두대간이 있고 돌길이 아닌 흙길을

걸으며 풍광에 취할 수 있는 지리산의 주릉이 있다.

그리고 무었보다도 전국 방방곡곡의 산에는 푸른소와 담을 이루며 붉은 단풍의

잔영을 담아 흐르는 멋진 계곡들이 있다.

한번 보고 지나 가는 황산의 절경이 아니라 가슴이 후련하도록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내달아 갈 수 있는 더 사람 사는 세상 같은 우리의 정겨운 산길이

있다.

인생은 참으로 짧다

그 짧은 인생에서 우리가 의욕과 희망과 기쁨 속에 살 수 있는 날은 그렇게

많지 않다.

세상에는 무수한 아름다움이 있고 그 아름다운 것들을 돌아 볼 수 있는 날은

쉬 지나가 버린다.

젊음이 지나고 난 다음에 추억이 없는 노년을 한탄하기 전에 그리고 젊음의

뒤안길에 남겨놓은 아름다운 것들을 아쉬워하기 전에 우린 먼저 떠나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는 강한 갈망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증이 내게 남아 있음에 안도한다.

배낭을 꾸리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설레임에 가벼운 흥분을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젊은 날을 아직 보내지 않았다.

무한의 느낌과 직감으로 나의 마음은 침묵 속에서

그 태고의 아름다움을 꿰뚫고 지나 갔다

그리고 한줄기 빛과 명징한 진리가 내 가슴에 남았다.

변치 않는 대 자연의 아름다움

교훈과 위안 그리고 살아가는 날의 기쁨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있는가는 중요치 않다.

자신과 혼자 있을 수 있는지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홀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지

집과 정원이 얼마나 잘 가꾸어져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가슴에 쌓아둔 그리움과 추억이 얼마나 되는지

붉게 타는 가을과 흩날리는 눈발이 아름다운 곳을 알고 있는지

몇 살인가는 중요치 않다.

아직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지

내일을 꿈꾸며 잠들고 새로운 기대와 호기심으로 다시 깨어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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