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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가는 대로

주말일기- 2월 넷째주 (애완동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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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은 토요일 이다.

휴일의 여유로움을 마음껏 누리려는 여유인지 아님 이젠 게으름이 고착화 되어 가는 것인지 평상시보다 좀 느릿느릿 여유를 부려 본다.

 

아침을 지어 먹고 마눌을 앞세웠다.

아직 허리에 붙어 있는 지난 연휴의 휴유증이 마음에 걸리니 다시 확인해 보고 싶기도 하고 또 몸이 근질 거리기도 하여 보문산을 갔다.

 

이렇게 게으르고 나태한 산행도 있다.

10가 넘어 아파트를 나서고 차창밖으로 한가로운 도로를  바라보며  마눌과 두런두런 살아가는 날의 이야기를 나눈다.

히말라야시이다 나무가 도열한 공원 도로를 따라 올라가 새로 생긴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천천히 포장된 도로를 걸어 오른다.

원길을 따라 오르는 왁짜지껄한 사람들 소리가 싫어서 샛길로 길을 바꾸었다.

 

공원에서 뿌연 안개 빛에 쌓인 도심을 바라 보았다.

얼마만인가

한가로운 시간을 목에 걸고 다시 보문산을 오르는 이시간이

갑옷 입고 오르는 두번 째 워밍업 산행 길이다.

나름대로 치밀하게 봄을 준비하는 시간인 셈이다.

 

형제들과 올랐던 보문산 공원에서 보문산성으로 올라서 대전시내를 내려다 본다.

따뜻한 날에 사람이 많기도 하다.

시루봉 정자에는 앉을 틈이 없다.

사람들도 벌써 봄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야외음악당으로 내려가려 했는데 별 무리가 없는 듯하여

사정공원 쪽으로 길을 잡았다

사정공원에는 벌써 목련이 꽃망울을 만들고 있다.

지지난 주 때이른 설악산에 핀 봄 꽃들을 보았고 지난주에는 달초롱님이 블로그에 올린 할미꽃도 보았다.

제주도에는 벌써 유채 꽃과 벚꽃이 피었다.

 

2007년 겨울은 너무 쉽게 퇴각하고 있다.

그 겨울의 초입에서 계룡산의 장한 눈을 한 번 만나고 나는 그렇게 어이 없이 이 겨울을 보내야

한다.

큰 눈이 온 다음 주 봉규와 지리산 속에서 이틀을 보내기로 약속하고 나서 바보처럼 주저 앉았다.

덕유산의 장쾌한 설경도

강원도 고산에서 늑대울음을 내는 칼 바람도 올해는 만나지 못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2007년 겨울

그 겨울이 가는 모습이 서글퍼지고 잃어 버리는  한 해의 겨울이 너무 아쉬워진다.

 

부러진 곳이 아니라 처음 가장 큰 충격이 있었던 부위로 둔중한 뻐근함이 전해 온다

흐이그 바보야.그 때 조심하지 않구…”

 

사정공원에는  별로 사람들이 없다.

잘 정돈된 잔디밭은 봄을 기다리고 빈 정자는 상춘객을 맞을 차비를 하고 있다.

오랫동안 오지 않아 식물원이 생긴 것도 몰랐다.

불쌍한 식물들은 겨울바람이 스스로를 얼마나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인지도 모른 채 인큐베이터에서 푸른 봄을 시새우고 있다.

 

황토 발맛사지 실도 생겼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 갈 수 있나?

벤치에 마눌을 앉혀두고 그예 등산화를 벗고 황토구슬이 담긴 맛사지 길을 걸어 갔다가 되돌아 왔다.

 

속리산 황토 맛사지 길보다는 길지가 않은데 그 길을 걷는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호젓한 아침운동 인 셈이다.

 

산친구 조사장과 속리산 능선에서 7시간을 보내고 발맛사지 황토길을 걸으며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살아 온다.

다음주 어머님 생신 때 형제들 가족이 모두 모이면 25명의 대군을 이끌고 이 사정공원에 서 새 봄맞이 함성이나 질러대야겠다.

 

포장된 길을 걸어 내려 공원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니 한시 반쯤 되었다.

세시간 반 산책한 셈이다.

 

마눌하고 보문산 보리밥집에서  점심식사를 맛있게 하고 돌아왔다.

 

은비와 태현이 비디오테입을 빌려왔다.

데스노트

아이들치고 데스노트 모르는 사람이 없다.

원래 데스노트  일본 만화가가 그린 만화인데 노트에 이름을 쓰면 그 사람이 죽는다는 다소 허무맹랑한  설정의 이야기로 일본과 한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했다 한다.

설날 태현이녀석이 겉장을 데스노트와 똑같이 만든 노트를 가지고 세뱃돈 많이 안주면 자신의 데스노트에 적는다고 삼촌과 고모를 협박하고 다녔다.

다른 형제들 같지 않게 이미 데스노트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막내동생이 오천원을 주고 그 노트를 사버렸다.

 

은비 말로는 만화가 훨씬 재미 있다고 했는데 영화도 어른들이 보기에 괜찮은 편이었다.

황당한 소재의 영화라고 아이들이나 보는 것으로 치부할 것도 아니었다.

일본 넘들의 기발한 착상과 소재의 다양성은 알아 줄만 하다.

하여간 셋이서 거실에 앉아 숨죽이고 비디오 삼매경에 빠졌다.

 

 

2 25일 일요일

태현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갔다.

이 녀석 요 며칠 새 나를 무척이나 갈구고 있다.

중학교 삼학년에 올라가는 녀석이 갑자기 애완동물 사겠다고 애완동물 사는데 데려다 달라는

거다.

하도 졸라대는 통에 집에서 동물을 키우는 것에 질색하는 마눌마저 기세를 누그러 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설날에 한 밑천 단단히 잡아서 보유 재산이 10만원이 넘는다.

게다가 기필코 살 것이라고 제 누나와 엄마의 찬조금 까지 받아 냈다.

 

그래서 도서관 따라오면 점심 먹고 한번 둘러보자 한 것이 영어책 한 권 끼고 도서관에 따라 온 사연이다.

 

요즘은 금강답사기에 빠져 있다.

4월부터 금강 발원 장수 뜸봉샘에서 발원한 금강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재미 있지 않을까?

봄이 지나는 금강변은  목가적이고 낭만적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두주는 호남 정맥길을  따라가고 두주는 금강 물길을 따라 간다.

허리만 후유증 없이 원상복구 된다면 참으로 신나는 여행길 아닐까?

100대 명산의 꿈에 부풀어 있는 마눌이 좀 서운하겠지만 토요일을 이용해 근교 산행을 함께 다니면 별 불만이 없을 거고 10번 정도의 출정이면 마무리되니 가을엔 가슴 시린 풍경 속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갑성이와 성수를 꼬드기는 일이다.

4명의 드림팀만 구성되면 만사 오케이 인데 산을 함께 타자는 녀석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

 

점심으로 국수 한 그릇 간단히 먹으려 했는데 녀석이 고기를 사달랜다.

야 이눔아 점심부터 무슨 고기여 ?

그래서 타협안이 순대국밥 이었다.

어릴 적부터 무척이나 좋아하던 건데 나이가 드니 입맛이 변해 요즘은 잘 안 찾는 편이다.

 

중앙시장의 애완동물 및 조류상점들은 눈에 뛰게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벌써 몇 년 만 인가?

관상용 물고기를 제외하고는 다른 애완동물은 없다.

수족관도 몇 개 되지 않는다.

 

비단 그 뿐이 아니라 재래시장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시절의 기억에 표구되어 있는 흥청거리는 인파와  술렁임도 사라져 버렸다.

정말 세월이란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고 사라지게 만들었다.

찬찬히 생각해 보니 많은 것들이 어느 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갔다.

중앙극장도 없어지고 대전역에 즐비하던 공중전화 부스도 사라지고 목청 높여 호객하던 상인들의 들뜬 목소리도 사라져 버렸다.

불과 몇 년 전인데 우리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낯 선 느낌 없이 새로운 것들에 익숙해 간다.

내가 서울에서 근무하느라 태현이 녀석은 데리고 다니지 못했지만 은비를 데리고는 시장구석구석  많이도 쏘다녔는데.

 

대전역 앞에 중앙 조류사에서는 햄스터와 기니아픽 말고는 파는 게 없다.

쥐를 기른다니 어이 없긴 하지만 나도 저 만할 때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집착이 유달리 강했으니 대 놓고 핍박할 일도 아니다.

나 어릴 적엔 강아지,잉꼬, 문조 ,메추리,,물고기,자라, 올빼미 까지 닥치는 대로 키워 보았다.

날려보내고 죽이고 때론 오래 정들어 가면서 호기심이 가져다 주는 새로운 기쁨과 슬픔을 경험해갔다. 

햄스터는 너무 작아 징그럽다.

기니아픽은 크기는 괜찮은데 아파트에서 기르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쌍에 3만원 달란다.

 

까르프로 갔다.

애완동물 매장에는 동물들 종류가 다양하다.

기니아픽, 주먹만한 애완토끼, 햄스터,이구아나, 거북이 물고기,전갈, 사슴벌레.

 

은행동에서 아저씨가 이구아나는 냄새는 안 나는데 잘 죽는다고 하는 말을 들은 데다가 제가 생각한 것 보다 더 징그러운 모습을 보고 나서 녀석은 일찌감치 이구아나는 포기해 버렸다.

전갈은 20만원이나 되는데 그걸 사줄 까 물으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버린다.

전갈 무서운 건 아는 모양이다.

그리고 애초부터 곤충은 싫다고 못 밖은 상태였다.

 

쥔 아줌마에게는 기니아픽에 관해 일부러 부정적인 질문을 많이 던졌다.

냄새가 많이 나서 아파트에서 기르기는 어렵지요?

몸집이 커지면 사육사를 존 더 큰 것으로 바꿔야 하지요?

키우는데도 사료 값이며 톱밥이며 돈이 많이 들지요?

 

사료도 하루에 두 번 주고 톱밥도 자주 갈아 주어야 한다.

톱밥은 돈이 드니 신문지를 잘라서 깔아 줄 수도 있는데 냄새를 흡수하지 못해서 꼬리한 냄새가 심하다고 했다.

어쨌든 케이지 삼만원,  3개월 사료 만 오천원,  톱밥 만원  기니아픽 1쌍에  사만원이니

구만 오천원인데 기니아픽은 은행동에서 삼만원에 사면  팔만구천원 드는 셈이다.

 

케이지와 사료 , 톱밥을 내려 놓고 계산하라니 녀석이 망설인다.

아빠 의견은 어때?

글쎄  네가 결정할 문제지만  아빠생각으로는 아파트에서는 좀 무리가 아닐까 싶네

엄마는 애완동물 질색하고 여름에 냄새 까지 나면 기겁을 할 텐데

그리고 너희들 학교가면 엄마가 사료도 물도 절대 주지 않을 건 뻔 한데 잘못하면 굶겨 죽일 수도 있지

그리고 아까 아줌마가 이야기 한 것처럼 꺼내서 함께 노는 것은 불가능 하고 케이지에서 키워야 하는데 별 재미가 있을까?

그리고 지능이 낮아 사람 말귀도 못 알아 들어

일주일에 한번 씩 냄새 나는 톱밥 갈아주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거야.

톱밥이랑 사료 사는 돈 따지면 한 달에 이 만원 씩은 드는데 누나가 보태주지 않으면 네 용돈으로 사야 할텐데 괜찮겠어?

 

게임은 끝났다.

주절 주절 내가 엮어 대는 통에 녀석의 기가 푹 죽었다.

그렇지 않아도 생각한 것보다 비싸서 갈등이 생기는데 문제점만 조목조목 지적하니 보통 혼란스러운 게 아니다.

거기다 쐐기까지 박았다.

너무 급하게 결정할 것 없고 좀더 생각한 다음에 다시 오기로 하자

그래서 태현이의 갑작스런 충동에 의해 잘못하면 애꿎은 동물 두 마리 제 명에 못 죽게 할 뻔 했던 동물사육 계획은 일과성의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꼬리꼬리 한 냄새 속에 시달릴 뻔 했던 여름 

어쩌면 팔자에 없는 몰모트 똥 치워야 했을 위기의 순간을 슬기롭게 모면하고 우리는 먹을 것 만 잔뜩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