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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가는 대로

주말일기 - 2월 셋째주 ( 설날을 보내며 )

2월 12일 월

조인 사장님  모친상 때문에 나이사님과 강부장과 수원에 다녀오다.

벌써 5년이 훌쩍 넘었나 보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지

친구들 결혼식 쫓아 다닌 게 엊그젠데 회사 동료들 애경사 챙기던 어느 날 부텀 친구 부모님들 부고가 날아 오기 시작한다.

그 후로 그 죽음의 그림자는 점점 가까이에서 서성이는 것이다.

 

 

2얼 13일

병원 진료 일이다.

답답해서 보호대를 벗어버리고 갔다.

의사가 보호대를 안 찼다구 막 뭐라 한다.

너무 불편해서 식사 할 때나 누굴 만날 때는 풀어 놓구 간다 했더니

의사왈 편하자구 보호대 차는 겁니까?

엑스레이 찍고 나더니 별 문제가 없다 한다.

통증은 없는데 산행을 해도 괜찮은가 물었더니

보호대 차고 하시고 절대 무리하지 마세요

무리하면 몸이 먼저 느낄 테니 신호를 무시하지 말라는 거다.

 

 

2월 15일 목

오랜만에 정창이가 왔다.

비지니스차 들렀지만 참 오랜만이다.

그래도 능력 있고 대견한 놈이다.

정보통신 산업이란 정글

성공의 희망을 안고 뛰어 들었던 많은 지인들이 비정한 세상의 쓰라림을 맛보며 추풍낙엽처럼 흩날려 갔는데 30명이 넘는 고급 인력을 거느리고 여전히 진군의 함성을 드높이고 있다.

먼 옛날 충북지역 IT 모임 대표로 산과 학 그리고 관까지 아우르며 무림을 종횡무진 했던

것은 지금 생각하면 독립의 꿈을 키우며 훗날을 도모한 포석 이었다.

모처럼 옛 친구를 찾아 저녁이나 한끼 하러 들렀다가 반가움에 허리춤을 풀고 대작을 한 셈이 되고 말았다.

남팀장과 이팀장을 데리고 나갔는데 5섯명이 10병 정도 마신 것 같다.

나는 불편한 몸을 핑계로 1병도 채 마시지 않았는데 수행비서 차 온 진부장 혀가 돌아가는 걸 보니 꽤나 마시긴 마신 모양이다.

제 호주머니 돈이긴 하지만

그래도 질 좋은 육회와 한우 안창살로 미각을 돋우고 옛 친구를 만나 기분 좋게 취했으니 녀석에게도 좋은 날 아닌가?

회사는 잘 되고 있다고 한다.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유지보수비용으로 인건비와 운영비가 충당되고 남으니 불황에도 공격적인 경영을 구사하고 있다.

동기모임 때 항상 술을 사고 선물을 가져다 주는 명호나 고등학교 동창 정창이나 다 열정적인 사업가 수완을 지닌 출중한 친구들이다.

 

 

아쉬운 연휴가 될 것 같다.

떠나야 하는데 떠날 수가 없다.

어쩌면 수년 동안에 처음 떠나지 못하는 설날 연휴인 것 같다.

할 일이 없어서 금요일 회사에서도 늑장을 부리다 느지감치 퇴근했다.

 

17일 토요일

아침을 먹고 마눌과 뒷동산에 갔다.

날씨는 포근하다

황량한 산과 들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산을 넘어 갑천 상류 개울가에는 버들강아지가 피었다.

어이 없이 겨울이 가고

준비 없이 봄을 맞아야 할 모양이다.

여기도 도심 이지만 그대도 산 속에서 마시는 공기가 시원하고

능성이를 불어가는 바람이 제법 싸늘하다.

마누라 손잡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한가로운 여유도 좋다.

아직 저 황량한 들판 새싹이 돋지 않아서 안심이다.

남도의 물길을 따라 올라 온 봄이 붉은 진달래와 흰 벚꽃을 피우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터이다.

따뜻한 햇살에 나비 춤추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날이면 더 답답해 지리라

 

 

 

 

 

 

어머님도 불편하시고 며느리들도 힘이 들어 올해는 제사음식을 인터넷 주문 하기로 한 터라

마눌도 제사음식 준비를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세상이 바뀌어 마눌은 명절 전날 뒷동산 산보를 할 수 있는 호사까지 다 누린다.

조상님들이 뭐라 하실까?

형제들이 많다고 십시일반으로 갹출하여 정성 없는 제사를 준비하니 마음 한구석 죄스러움을 털어내지 못한다.

허기사 뿔난 망아지처럼 뛰쳐나가기 바빠 만두 한 번 빚어 본일이 없는 넘이 무슨 할말이 많으랴 만은 최종 결정은 나의 몫이니 그에 따른 한편의 가책과 서운함도 피할 수는 없는 일 이겠다.

 

그래서 마눌과 함께 3시간 동안 뒷동산을 산보하고 돌아와서 점심식사 까지 여유롭게 한 후에 본가로 건너가니 영수와 영태가 벌써 와 있다.

제수씨들은 부침개 까지 소반 가득 부쳐 놓았다.

형님네만 제외하고 3형제 가족이 모인 셈이다.

저녁식사를 하고 아버님과 3형제가 영화 보여 주기 내기 고스톱을 치기로 했다.

8시 30분 까지 시간을 정했는데 오늘 따라 막내녀석이 분발하는 통에 고리가 기껏 7천원 밖에 모이지 않았다.

오늘은 막내놈한테 영화 얻어 보기는 틀렸고 각자 부담해야 할 노릇이다.

꼭 보고 싶은 영화는 이미 정해져 있는 터라 침 튀겨 그쪽으로 여론몰이를 했다.

 

아버지의 깃발

흥행의 마술사 스필버그 제작 , 지나간 세대의 히어로  크린트이우스트 감독이다.

명배우겸 명감독이 만든 작품이니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 품질보증 일거라는 생각과 비슷한 아류일 것 같은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감동이 만장일치 의기투합에 일조를 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꺽꺽이던 울음을 참느라 힘들었던 기억은 오랜만에 대할 대작의

감동으로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이오지마 섬 전투를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

나는 처음으로 참으로 웅대한 스케일의 너무 재미 없는 전쟁영화를 보았다.

감독은 졸음으로 관객을 모독하고

그래도 후반부에는 거장의 번득이는 통찰력과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가 살아 움직일 거라는

믿음 때문에 우리 삼형제 부부는 끝까지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주말의 소중한 시간에 재미 없는 영화의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일어

섰다.

제수씨는 졸던 표정이 역력하다.

집에서 TV 영화나 보던지 잠이나 잘 걸…”

크린트이우스트 감독은 망령이 났고 스필버그는 돈 좀 잃었겠다’”

 

 

18일 일요일 설날

설날이 왜 일요일 이래?

아침에 일어나서 일찌감치 본가에 갔다

부모님께 세배 드리고 아이들의 세배를 받았다.

온 가족이 모여 인터넷에서 주문한 20만원 짜리 제사음식으로 조상님들께 차례를 올렸다.

조상님 세상이 바뀐 탓이니 너무 노여워 마소서

DO-FAMILY 모두 아무 걱정 없이 지금처럼 잘 살아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그래도 며느리들이 모여 배추전과 부침개는 따로 만들어서 제사 후 먹을 음식이 그다지 부족하지 않았다..

문창동에 세배 갔다가 돌아와서 형제들과 뒤늦게 합류한 여동생 가족들과 함께 윷놀이며 고스톱 등 민속놀이에 잠시 정신을 팔다가 어른들만 함께 보문산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2시간 정도 찬바람을 쏘이며 동생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소란한 명절의 조용한 여백을 즐겼다..

보문산 공원에서 대전 시내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가끔 어릴 적 추억을 끄집어 내며 함께 웃었다.

그 세월은 너울거리며 흘러서 작은 지붕아래 모여 살던 형제들을 뿔뿔히 흩어지게 하고 이젠 막내까지 사십 줄을 넘게 만들었다.  

 

여동생들은 시댁에서 행사를 마치고 늦은 오후면 으레 도착한다.

아이들이 성화니 서둘러 오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은 또래의 사촌들이 모이니 좋고 또 이 날이야 말로 한 밑천 잡는 날이다.

세뱃돈 나간 걸 복구하려면 민속놀이에서 이겨야 하는데 요번은 오히려 잃다 보니 세뱃돈까

30만원쯤 나가 버렸다

마눌의 구제금융도 없고 비상금은 달캉거리고 없는 살림에 또 인고의 세월을 보낼 일이 걱정이다.

 

19일 월요일

어제 밤 열 시부터 22시간 연속방영하는 프리즌 브레이크를 좀 보다가 처갓집으로 건너 갔다.

6남매의 막내 외동 딸

우리만큼 북적일 가족들은 모두 떠나 버렸다.

어제 무리했는지 허리가 아프다.

은근히 걱정스럽다.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거 아녀?

마눌은 성한 사람도 산 타고 하루종일 놀이에 빠져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픈 법이라 한다.

그래도 옛날에는 안 그랬다.

허리가 뻐근하다가도 하룻밤 푹 자고 나면 낫곤 했는데.

 

우리가 도착하자 막내처남은 처남댁과 처갓집으로 가고

점심 때 장인어른과 식사하면서 술 한 잔 했다.

한산소곡주 인데 그다지 독하지 않고 감칠 맛이 입에 착착 붙는다.

장인어른은 82세의 노령에도 여전히 건강하시다.

어디 모시고 가면 기력이 예전만 못하시긴 해도 식사하시는 거나 술 드시는 거나 규칙적으로 운동하시는 걸 보면 타고난  건강체질 이시다.

막내처남과 같이 살고 계시긴 해도 말동무가 그립고 적적하신 터라 두런두런 살아가는 얘기를 많이 풀어 놓으신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 뵙질 못하니 늘 죄송스럽다.

본가는 자주 가면서 처갓집은 자주 가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마눌도 내 대신 일주일에 한번씩 꼭 찾아 뵈라고 등 떠밀어도 그 걸음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장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눈에 뛰게 발걸음이 줄었다.

내가 항상 하는 말

새끼들 아무리 잘 키워도 다 소용없다니까.

마눌 그런식으로 하면  애들한테 대접 못 받는다

 

그러면 마눌이 하는 말이 있다.

요즘 세상엔 애들 다 소용 없다.  남편이 최고다

부모란  의무만 남고 권리는 사라진 사람들의 이름이다

 

그러면서 둘째형님 댁 이야기를 해준다.

둘째 형님 아들은 제 작년 연세대 의대 치의예과에 들어 갔다.

지난 번 일요일 날 내려와서는 슬그머니 나가더란다.

형수는 친구 만나려 가려니 생각 했는데 몇 시간 후에 까르프에 물건 사러 들렀다가

그 아들놈을 딱 마주친 거다.

근데 웬 가방을 들고 여대생 뒤를 쫄랑쫄랑 따라다니고 있더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여자 친구를 소개 받기는 했다는데 영 뒷맛이 씁쓸하더란다.

자식 서울로 유학 보내고 뼈빠지게 뒷바라지해도 말짱 헛일이라고 서운해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리 사랑이라지 않는가?

원래 부모와 자식의 마음은 다른 것이다.

그 놈들 거친 세상에 난파되거나 표류하지 않고 잘 살아가면 그것으로 족한 게 아닌가?

품 안에 자식이지 다 머리 크면 제 살기 바쁘고 못되면 다 조상 탓이고 잘되면 제 능력 때문인 것이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이라 했다.

전광석화처럼 변해가는 세상의 모퉁이에서

관습과 전통이 합리성과 편리함의 이름으로 너무 쉽게 허물어져 가는 시대의 한 모퉁이에서

우린 더 이상 무엇을 붙잡으려고 안달인가?

우리 시대에도 섣부른 자식들에게 기대를 갖는 사람들이 더 우스워 보이는 거 아닌가?

단호히 말해주었다.

이제 아이들의 가치와 삶의 방식에 서운하지 않을 수 있는 연습을 자꾸 하시라고 하삼!.

 

그래도 부모님 세대를 생각하면 가슴이 짠하다.

허리 졸라 메고 먹을 것 안 먹고 키워낸 자식이 그렇게 많아도 쓸쓸히 따로 사는 게 더 마음 편한 세대의 당신들.

부모님을 섬기고 봉양한 마지막 세대면서 자식들로부터 대접 받지 못하고 며느리 눈치 보아

야 하는 첫 세대들의  쓸쓸한 말년을 보면 가끔 가슴에 휑한 바람이 인다.

요즘은 딸이 더 좋단다.

더 자주 들락거리고 잔정도 더 있고 용돈을 정기적으로 줄 수 잇는 것도 딸들이란다.

그것도 부권의 약화되고 여성권위의 상승하는 시대의 변화와 무관치 않은 것 같다.

원시시대처럼 다시 모계사회가 도래하는 것 아녀?

 

처갓집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다 저녁까지 먹고 돌아 왔다.

3일의 명절은 내 삶의 리듬을 완전히 깨어 버렸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상황에 맞춰 열심히 빈둥거리며 노는 것

참 쉬운 일이긴 한데 그것만큼 피곤한 것도 없다.

 

책에서 완전히 멀어 있었던 한 주는 아니었다.

요즘 베스트셀러로 뜨고 있는  철학 콘서트란 책을 읽으며 사이비 철학자 황광우씨의 안내로 동서고금 성현들의 사상세계를 잠시 돌아 보았다.

수박 겉핥기 일망정 예수님과 석가모니도 만나고 공자와 노자의 삶의 지혜를 헤아려 보려는

어줍짢은 시도도 있었다.

고전의 향기에도 취하고 또 마눌과 회복기의 첫 산행도 하면서 나름의 의미를 찾았던 한 주였다.

그래서 별로 내세울 것도 없고 또 별로 아쉬울 것 없는 내 생애 또 한번의 설날을 그렇게

지나 갔다.

 

중요한 것은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더 좋게 사는 것이다.

음미할 줄 모르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            소크라테스

 

가장 많이 산 사람은 가장 오래 산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이 생을 느낀 사람이다.  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