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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새영화] 300, 피 튀는 잔인함 더 잔인한 비주얼
  • 새영화 '300', "다 보여주겠다"

  • 어수웅기자 jan10@chosun.com
    입력 : 2007.03.07 00:52 / 수정 : 2007.03.07 00:52
    • 전성기 마이크 타이슨의 핵펀치를 명치에 제대로 얻어맞으면 이런 느낌이 들까?

      만화를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프랭크 밀러(Miller)의 동명 만화를 잭 스나이더가 스크린에 옮긴 전쟁 서사극 ‘300’(14일 개봉)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시각적 쾌락을 선물한다. 그 안에는 삶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도, 어깨에 힘 준 교훈의 메시지도 없다. 고대사(史)를 엔터테인먼트 삼아 떡 주무르듯 희롱하는 상업적 뻔뻔함. 만약 역사와 예술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액션 영화 ‘300’은 러닝타임 2시간 내내 당신의 아드레날린 중추를 놀라운 힘으로 압박할 것이다.

      우선 제목에 대한 궁금증부터. ‘300’은 스파르타 병사의 숫자다. 이 터무니없는 작은 병력이 영화의 줄거리를 효율적으로 압축한다. 기원전 480년,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제라드 버틀러)가 이끄는 소수정예 300명의 병사가 크세르크세스(로드리고 산토로) 황제가 이끄는 페르시아 100만 대군과 맞선다. 투항하자는 내부의 의견을 무시하고 몰래 나선 출정이었던 탓에 발생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복선 없이 명쾌한 드라마는 단순 그 자체. 스파르타 병사들은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우다 모두 장렬하게 피를 뿌리고 쓰러진다.

       

    • 겨우 300명을 이끌고 출정한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의 포효. 2007년 할리우드 블럭버스터 전투의 개막을 선언한다.
    • 직선으로 내달리는 플롯은 의외의 파괴력으로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그리고 이 마력적 흡인력의 근원에는, 기존 영화적 전통에서는 극히 희귀했던 새로운 형식의 비주얼이 똬리를 틀고 있다. 어쩌면 이 매혹적 비주얼을 120%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스토리를 희생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만화적 칸의 평면적 구속을 박차고 3차원의 세계로 막 뛰쳐나온 듯한 ‘300’의 이미지들은, 100m 단거리 주자 같은 속도감으로 스크린을 질주한다. 2년 전 프랭크 밀러 원작의 ‘씬 시티’(2005)에서 살짝 보여줬던 이 희귀한 시각체험은, 진일보한 CG와 매끄러운 연출을 바탕으로 한층 더 경쾌한 매력을 확보했다. 흑백 화면에 강조하고 싶은 부분만 원색으로 처리했던 ‘씬 시티’와 달리, ‘300’은 모든 배우와 배경의 고유 색채를 생생하게 살리면서도 그 순도와 질감을 훨씬 더 향상시키는 새로운 기술(크러쉬 기법)로 펄떡거리는 날것의 생명력을 실감하게 만든다.



      사실 ‘300’의 전투 장면을 기존의 사실적 영상으로 관람했다면, 잔혹의 정도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손목과 발목이 잘려나가고,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며,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는 개별 순간들을 고스란히 클로즈업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무시무시한 장면들은 현미경 같은 리얼리티로 묘사되기 보다는,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는 듯한 비현실적 이미지로 처리된다. 하나의 오락을 즐길 뿐이라는 쾌감과 안도감을 주는 것이다. 어깨 아래에 팔 대신 칼과 톱이 달린 망나니, 근육을 비정상적으로 확대한 거인 등 신체 기형 인간의 등장 역시, 잔인함이나 역겨움보다는 영화적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데 기여한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는 크게 높지 않았다. 배우들의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고, 감독이나 원작자에 대한 환호 역시 소수의 충성심 강한 신도들에게 국한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 ‘300’은 올해 격화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대전(大戰)의 첫 주자 같은 느낌이다. 다시 보고 싶은 매혹적 시각 체험이다.

    • 프랭크 밀러는 누구 

      최근 할리우드 비주얼 혁명의 한 축에는 이 독특한 만화 작가가 있다. 1970·80년대의 소중한 자산으로 꼽히는 이름 프랭크 밀러(50·사진)다. 마블 코믹스의 ‘배트맨’ ‘로보캅’ ‘데어 데블’ ‘씬 시티’ 등 스크린으로 번역된 유명 작품들이 모두 그의 사랑스러운 자식들. 특유의 그림체를 훼손할까봐 웬만해선 영화화를 수락하지 않는 것으로 이름났다. ‘씬 시티’(2005)에서는 로버트 로드리게스와 공동 연출을 하기도 했다. 특히 ‘300’은 만화와 영화가 한 스크린 안에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영상미학을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명의 만화(세미콜론 간)로도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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