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크리스마스에 큰 아이로부터 책 한권을 선물로 받았었다. 자신이 읽고 난 후, 엄마가 무척 좋아할 책이라며 인터넷 서점을 통해 우리말로 번역된 것을 찾아 일부러 구해 준 책이었다.
그 후 큰 아이는 시간만 있으면 내게 그 책을 읽었느냐고 물어왔다. "아직" 이라는 대답을 할 때마다 실망하는 아이에게, 지금 읽고 있는 책 끝내면 읽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나 `아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제목이며, 소년의 뒷모습이 담긴 표지 그림, 게다가 출판문화진흥원에서 선정한 `올해의 청소년도서` 라고 찍힌 인장등이 왠지 내게는 청소년을 위한 양서 정도의 인상을 주어 얼른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그렇게 차일피일 읽기를 미루고 있던 중, 지난 주 어느날 둘째로부터 전화가 왔다. 언니가 권해서 그 책을 읽었는데 화장실과 눈물 닦을 클리넥스 화장지를 집으러 간 외엔 꼼짝않고 앉아 6시간만에 읽기를 끝내었다며, 봄방학을 해 집에 오면 함께 토론해보고 싶으니 그 전에 아빠와 엄마가 그 책을 읽어 놓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대체 어떤 책이길래 내 아이들의 마음을 그리도 감동시켰을까 하는 강렬한 호기심과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욕심과 의무감에 드디어 책꽂이에 꽂아만 두었던 그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내가 책 읽기를 시작한 것을 안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를 걸어 물어 왔다. "엄마 어디까지 읽었어?" .... "엄마 울었어?" ....... 내가 많이 울수록 그만큼 많이 감동했다는 것이고, 운 만큼 내가 그 책을 좋아한다는 의미로 아이들은 해석했다.
그랬다. 그 책은 내 안에서 숲속 옹달샘이 되기도 했다가, 거센 풍랑이 이는 바다가 되기도 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잔잔한 샘물이 되어 가슴이 젖고, 파도처럼 소리내어 격렬히 울었다. 최근 수십년간 이만큼 아름답고 감동적인 책은 만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있었다 해도 그 기억이 하얗게 지워져 버릴만큼 정신없이 몰입하고, 사건과 인물들 에게 진한 공감과 애정이 가는, 한문장 한문장이 가슴에 닿아 사무치는 그런 책이었다.
바로, 칼레드 호세이니(Hosseini, Khaled)가 쓴 `연을 쫒는 아이(The Kite Runner)`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칼레드 호세이니의 첫 장편소설이자, 아프가니스탄인이 쓴 최초의 영어 소설이다. 또한 쿠데타와 내전, 외세 침공, 인종갈등이라는 아프가니스탄의 복잡다단한 역사의 한 복판을 관통해 지나온 소년의 성장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은 주인공인 아미르가 어린 시절 저지른 자신의 치명적인 잘못 으로 인해 인해 겪는 내면적 갈등, 그러나 죄를 통해 승화되어 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로서 "용서란 요란한 깨달음의 팡파르와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소지품을 모아서 짐을 꾸린 다음 예고 없이 조용히 빠져나갈 때 싹트는 것이다." 라는 그의 독백처럼 고통을 통해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며, 잃었던 어린 날의 순수를 다시금 회복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아미르와 핫산, 두소년을 통해 아프간 민족의 굴곡진 역사와 그 역사의 아픔으로 인해 굴절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작가는 사랑,우정, 배신등, 미로와 같은 인간의 마음들을 아프가니스탄의 아름다운 자연과 다채로운 전통이나 관습들과 함께 따스하고 훈훈한 배경으로 그려넣고 있다.
특히 이 소설에서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연싸움`은 어릴적 아버지와 함께 연줄에 유리가루를 입혀가며 연을 만들던 일, 논두렁에서 언 손을 호호 녹여가며 연을 날리던 내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해 주어 읽는 재미를 한층 더 해 주었을 뿐 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도 우리와 똑같은 아름다운 전통과 풍습을 가지고 있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은 그들에 대한 내 무지와 무관심을 일깨워 주었고 나아가 그들에 대한 관심과 따뜻한 시선까지도 갖게 해 주었다.
이 책을 통해 내 마음에 문신처럼 남은 말이 있다면 아미르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르는 죄에 대한 정의이다.
" 세상의 죄는 딱 한가지밖에 없다.다른 모든 죄는 도둑질의 변형일 뿐이다. 네가 사람을 죽이면 그것은 한 생명을 훔치는 것이고, 그의 자식들에게서 아버지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진실을 알아야 할 다른 사람의 권리를 훔친 것이다. 네가 누군가를 속이면 그것은 공정함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그리도 울먹이게 했던.... " For You, Thousand Times Over!" . . .
더 이상은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아껴두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책을 읽는 목적이, 책을 통해 좀 더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에게 이 책을 적극 권하고 싶다. 설혹 그의 생에서 하룻밤쯤 불면으로 하얗게 지워진다 해도 결코 억울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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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남편도 도서관에서 영어로 된 책을 빌려와 읽기 시작했다. 온 가족이 함께 읽은 책으로는 `다빈치코드 ` 이후 두번째인 것 같다.
이 책을 놓고 가족들이 함께 나눌 일이 많이 기다려진다.
아마 그날 나는 아이들 앞에서 아름다운 영혼, `핫산`을 생각하며 또 펑펑 울게 될 지 모르겠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엄마에게 좋은 책을 제대로 추천했다고 흐뭇해 할 내 아이들! 그래~~!
"너희들을 위해서라면 천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 " ( For you, thousand times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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