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내기가 벌어질 것입니다. 오늘날의 산업을 지배하는 몇몇 강력한 이름이 사라지는 반면, 우리가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 익숙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흥미진진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Big bets will be placed. Some mighty names that dominate the industry today will disappear. Others we have never heard of will become household names. We live in exciting times., 2007년1월26일 Ben Verwaayen의 블로그에서)
영국의 통신그룹인 BT는 더 이상은 ‘통신사업자’란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토털 IT서비스 업체’란게 BT 스스로 내세우는 정체성입니다. 지난 수년 동안 BT는 ‘확 바뀌었다’ 혹은 ‘완전히 바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불과 4년 전, 침몰의 위기에 몰렸던 BT를 눈을 부비고 달리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BT의 변신은 1952년2월생의 벤 버와이옌이란 걸출한 CEO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비즈니스 위크, BBC, BT 홈페이지 등에 게재된 기사와 자료 등을 토대로 버와이옌이 이끌고 있는 BT의 변신에 대해 아는 대로 적어볼까 합니다. 저는 BT 사례를 읽고 적어보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KT를 생각하였습니다. 오늘날 KT는 과연 어떠한가? 이 점은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께서 어떤 판단을 하실 지, 저로선 무척 궁급합니다.
BT그룹은 지난 2001년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었습니다. 빚이 무려 300억 파운드(55조원)로 불어났습니다. 1999년 말 주당 15.13파운드이었던 주가는 곤두박질을 쳐 5파운드 선에서 맴돌았습니다. 주주 등의 압박에 직면한 경영진을 기업 정상화를 위해 모바일 같은 전도유망한 사업부문을 매각하고, 강력하게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1974년 민영화된 이래 최악의 위기였습니다.
BT의 위기는 옛 공기업의 낡은 기업문화, 즉 께느른한 회사 내 분위기, 창조와 변화에 대한 거부감, 소극적인 투자정책과 공급자 중심의 영업전략 등 총체적인 경쟁력 저하에서 비롯된다는 게 중론입니다. 이는 과거 국가가 보호하는 독점기업으로 너무 오래 안주해온 데다, 민영화 이후에도 여전히 기간통신사업자로서의 시장 우월적 지위를 향유하면서 나태해진 탓이 클 것입니다.
당시 언론들은 BT 위기의 원인을 경영전략의 실패에서도 찾았습니다. 첫째, 미국의 MCI와 합병하려던 계획이 무산되고 AT&T와의 협력사업 모델이 무위에 그치는 등 ‘제휴 전략의 실패’입니다. 독불장군은 어디서나 통하지 않는 것이지요. 둘째, 세계 각 국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려는 시도가 너무 많은 비용을 초래했다는 것입니다. 독일, 스페인, 일본, 말레이시아 등의 통신회사 지분을 사들였으나, 투자비용에 비해 돌아온 이익은 적었던 것이지요. 세 번째로, BT추락의 가장 치명적인 사건은 3세대 이동통신(3G) 라이선스를 받기 위해 벌인 과당경쟁입니다. 이렇게 해서, BT는 2001년 최악의 상황을 겪으면서 2002년 초 최고 경영자(CEO)를 교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벤 버와이옌’(Ben Verwaayen, 55세)입니다. 그는 영국 사람이 아닙니다. 네덜란드 국적으로, 미국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입니다. 2002년1월14일 이사진에 등재되었고, 같은 해 2월1일 BT그룹 수장이 된 버와이옌은 BT그룹 회장 크리스토퍼 블랜드(Christopher Bland) 경이 ‘특단의 조치’를 위해 긴급히 외부에서 수혈한것입니다. 전 직원의 95% 이상이 영국인이었던 BT에서 네덜란드 국적의 인물이 CEO가 되었으니, 놀랄만한 일입니다.
벤 버와이옌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게 없습니다. 위키피디아를 찾아보아도,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2005년 5월30일자 비즈니스위크 기사에서 재미있는 대목이 실려 있었습니다. “네덜란드 중부의 한 마을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고등학교 때 최초의 학생 의회를 조직했으며, 이후 군대에서 임금인상과 복지향상을 이끌어내기 위해 징집병 동료들을 규합해 비인가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라는 내용입니다. 뭔가 남다른 인물임에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버와이예은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 대학에서 법학과 국제정치학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은 이후, ITT에서 13년, 네덜란드 통신업체인 KPN에서 9년(1988~1997)을 일했으며, 이후 미국계 루슨트테크놀로지(1997~2002)으로 이적했습니다. 루슨트에서 그는 부사장을 거쳐 나중에는 부회장의 지위에 오를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버와이옌이 BT를 맡은 이후 제일 먼저 한 일은 구조조정입니다. 구체적으론 파악하지 못했지만, 강력한 비용절감의 노력으로 그는 2002년 41억 달러 손실의 경영구조를 2003년 회기년도에는 42억 달러 흑자로 돌려놓았습니다. 2007년의 현재, BT는 침체일로의 질곡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작년(2006년) 이익이 22억 파운드입니다. 19분기 연속 순이익을 늘려갔습니다.
변화의 비결에 대해, 그는 최근 한국을 방문해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CEO의 솔선수범을 얘기했습니다.
“직원들은 매일 출근하면서 일을 생각하기 보다는 상사가 원하는 것이 뭔가를 생각하기 때문에 CEO는 새로운 성공모델을 찾고, 조직이 이를 따라갈 수 있도록 공식화해야 하며, 직원들이 성공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 CEO는 기업의 경영진이나 간부들에게는 엄격하되, 일선 직원들에게는 관대하고 유연해야 합니다.”(조선일보 3월17일자)
BT의 변신은 단순한 구조조정의 결과가 아닙니다. 버와이옌이 오늘날 관심을 모으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선사업 부문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도, 과거 음성전화 사업 위주의 BT를 브로드밴드와 인터넷 분야의 우량 기업으로 바꿔놓았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버와이옌 CEO를 비롯해 BT의 임원들은 BT를 ‘IT서비스 기업’이라고 지칭합니다. 전화사업자를 지칭하는 ‘텔코’(telco)라는 말은 더 이상 쓰질 않습니다. 전화사업자에서 IT서비스 일반으로 주된 사업영역을 바꾸면서, 매출구조도 크게 변화였습니다.
현재 BT 전체 매출에서 전통적인 통신사업인 음성전화 사업은 9%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매출의 48%는 기업대상의 IT서비스에서 창출되고 있습니다. B2B IT비즈니스가 BT의 주된 수익모델입니다. BT는 네트워크 서비스 제공뿐만 아니라 NI(네트워크 통합)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함으로써 아웃소싱을 원하는 수많은 기업들을 고객으로 수용했습니다. 이를 테면 유니레버, 나토,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같은 국제기구와 기업들의 전 세계 콜센터를 연결시켜 상호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게 하는 일을 BT가 수행한 것입니다.
소비자 대상 사업부문도 접근방식을 바꿨다고 합니다. 우선 다양한 번들상품을 개발해 소비자 선택권을 넓혔습니다. 직접 소비자를 상대하지 않고 수많은 파트너 기업들에게 네트워크와 관련 서비스의 소매를 맡기는 ‘도매’ 전략을 펼침으로써 이 분야(wholesale)가 전체 BT 매출의 27%를 차지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따져보면, BT라는 과거의 B2C 전화사업자가 지금은 B2B 분야에서 전체 매출의 75%를 일궈내고 있는 것입니다.
BT는 미래의 융합서비스 환경에 대응하고자 차세대 네트워크(NGN) 계획으로 지난해 발표한 ‘21CN’(21세기 네트워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반공중전화망(PSTN)에 기반한 각종 서비스를 앞으로 수년안에 점차적으로 21CN 기반의 융합서비스로 완전 대체하겠다는 야심찬 전략입니다. 이 과정에서, BT는 이른바 ‘제 살 깎아먹기’의 역작용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미 BT는 초고속인터넷 묶음(번들)상품에 인터넷전화(VoIP)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화는 공짜’라면서 초고속인터넷과 IPTV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런 접근은 기존 전화사업의 감소를 가속화시킬 것이지만, 브로드밴드와 각종 융합서비스의 더 큰 시장을 공략하는 BT의 입장에선 ‘그깟 전화사업이야 없어져도 상관없다’는 식의 공세적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잠식효과(Cannibalization)를 의식하지 않는 적극적인 사업 전략입니다.
버와이옌에 대해, 영국인들은 그가 언젠가는 네덜란드로 돌아갈 것이라고 곧잘 말한다고 합니다. 히딩크가 2002년 한국 축구팀을 월드컵 4강에 올려놓고, 다시 제 갈 길로 돌아갔듯이 말합니다. 버와이옌의 네덜란드 귀국 가능성은 그가 정치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위키피디아에는 그가 오래 전부터 네덜란드의 진부계열 정당(people's party for freedom and democracy)의 당적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