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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 트랜드

삼각 김밥

지난 2월 중순, 몇몇 회사 대표들과 중국 무단장시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라는 노래 가사가 절로 생각나는 만주 땅, 그러니까 우리 조선족이 널리 살고 있는 동북 3성 중 헤이룽장 성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요즈음 중·러 무역의 요충지로 떠올라 개발 열기가 뜨거웠다. 석탄·목재 등 자원이 워낙 풍부해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우리 땅으로 복원하고픈 마음이 너무 절실한 그런 곳이다. 50여만 조선족이 우리말과 우리글을 그대로 간직한 채 조선족 거리와 자치구를 유지, 발전시켜나가는 우리와는 살가운 그런 곳이기도 하다.

 때마침 중국의 제일 큰 명절인 춘절, 우리의 설에 해당하는 20여일의 연휴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거리에는 각종 장식물과 새해 덕담이 넘쳐났다. 첫 출장인 우리 일행이 약간 들뜨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현지 파트너사의 주선으로 시 고위 공무원들과 미팅을 했다. 도착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9시였다. 일요일이라 여독을 풀고 월요일에 만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일년 중 제일인 연휴도 반납한 채, 시의 주요 사업과 현황을 설명을 하는데 그 열기가 2월 만주의 추위도 무색하게 만들었다. 점심시간까지 이어져 대낮에 그 독한 백주까지 돌리며 진정으로 환대를 했다. 몇 달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 일이 눈앞에 선하다.

 “아니, 이거 좀 뜻밖인데요?”라는 질문에 현지 협력사 사장은 “아이 뭘요, 요새 여기는 다 이래요.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보통이죠”라며 별것 아니라는 표정을 짓는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했다. 대기업 신입사원 시절 동료들과 하얗게 밤을 새우며 미국, 대만 업체를 따라잡겠다고 IBM PC 호환 기종을 만들 때가 언뜻 뇌리에 스쳤다.

 최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처음 다녀왔다. ‘한민족 글로벌 벤처 네트워크(INKE)’ 행사의 일환으로 막역한 국내 IT 회사 대표들과 같이 출장을 갔는데 말레이시아에 대한 선입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 여정이었다. 요새 생긴 괜히 이상한 관념 중 하나는 우리나라와 국가대표 축구 시합을 해서 지는 나라는 우리보다 발전이 덜 됐다는 아주 유치한 생각이다. 말레이시아는 겉은 물론이고 속까지 정보통신 분야에 관한 한 우리보다 저만큼 앞서 있었다.

 부끄러웠다. 시쳇말로 ‘쪽 팔렸다’. 출국 전 인천공항에서 생각한 ‘그래도 아시아에서는 IT강국 코리아가 아닌가?’ 하던 쓸데없는, 아무 효용 없는 자부심은 쿠알라룸푸르에서 30여분 떨어진 사이버자야(CyberJaya·Jaya는 마을이라는 뜻)에 가보고서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사이버자야는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만든 정보통신 연구개발 단지인데 NTT·인텔·노키아·모토로라 등 글로벌 IT업체가 줄줄이 입주했다. 시설과 규모가 실리콘밸리를 압도했다. 지난 20여년간 매년 5%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이룩했으며, 영어가 공용어로서 누구나 쉽게 의사소통할 수 있고, ‘MyICMS886’이라는 정보통신 5개년 계획을 통한 정부 주도의 인프라 구축 등이 오늘의 정보통신 강국 말레이시아를 만들었다. ‘2020년 선진국 진입’이라는 국가 공통 비전이 정부·업계·학계에 공통분모로 인식돼 모두들 한 방향으로 뛴다. 한국에 국비로 유학해 한국어에 능통한 엔지니어가 4000명이 넘는 곳이 말레이시아다.

 요새 샌드위치 위기론이 회자된다. 그런데 경제대국 중국, ‘버블 10년’으로 새 단장한 일본뿐만 아니라 동남아 아세안(ASEAN) 10개국까지 가세했다. 샌드위치가 아니라 편의점의 인기 상품, 삼각김밥 신세다. 인적 자원밖에 없는 한국은 어찌 갈거나, 2007년 이후를! 귀국행이 마냥 편하지 않았다. 새벽 한 시 밤 비행기여서만은 결코 아니었다.

 단언컨대 이젠 기업이 나설 때다. 누구를 탓할 필요 없이 기업이, ‘청년 정신’으로 무장한 강한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향해 나갈 때다. ‘1박 3일’이라는 극한 일정으로 출장와서 기업인들을 격려하고 되돌아간 중소기업청장님 같은 분들을 봐서라도 더욱 그러하다.

◆김병기 지오인터랙티브 대표 peter@zio.co.kr

○ 신문게재일자 : 2007/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