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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

우아한 세계

 

출처: 무비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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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기는 웃긴데 어째서인지 마음 놓고 웃을 수 없는 코미디를 보통 ‘블랙 코미디’ 라고 부른다. 어떤 이야기가 그냥 코미디가 되는지 혹은 블랙코미디가 되는지는 그 이야기에 담긴 내용이 관객들의 현실과 얼마나 가까운지에 달려있다. 심리학자인 라자러스R. Lazarus 는 우리가 어떤 자극으로 인해 느끼는 감정은 그 자극 자체의 특성뿐만 아니라 그 자극에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자극을 경험하는 사람의 자아와 자극간의 관계에 따라 동일한 자극이라도 서로 다른 정서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소재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웃음거리가 될 수 있는 반면에,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를 블랙코미디의 공식으로 바꾸어 말하자면, 어떤 코미디물의 내용이 관객들의 현실과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코미디는 검은색을 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아한 세계>는 블랙코미디다. 그것도 아주 진한 블랙이다.


사실 이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래, 호아킨 아바도(퀴뇨)의 만화
사회 계급에 따라 같은 컨텐츠가 어떻게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지를 보여주는 걸작




영화의 주인공 강인구(송강호)는 피곤하다. 운전하다 잠에 빠진 모습으로 등장한 그는 영화가 중반을 넘어갈 때까지 단 한 번도 정상적으로 잠들거나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좀 자려고 하면 마누라가 학교 선생과의 면담을 위해 깨우고, 다시 좀 자려고 하면 딸자식이 지랄을 하며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나중에는 아예 마누라에 의해 안방에서 쫒겨나 마루 소파에서 잠을 청하다가, 마누라가 떠난 뒤에는 썰렁한 안방을 참지 못해서 스스로 마루에서 잠든다. 그러니 피곤할 밖에. 하지만 안팎으로 끊임없이 일이 터지니 쉴 수도 없다.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뛰어다니지만 이런 그의 노고는 결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인정받기는커녕 밖으로는 조직 내외로 위협당하고, 안으로는 마누라와 딸자식으로부터 무시와 경멸만을 받을 뿐이다. 도대체 왜 그는 이런 고생을 하면서도 조폭 생활을 버리지 못할까? 자기 가족에게 ‘우아한 세계’를 선사하기 위해서다. 강인구는 그 피로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부동산중개업소에 들른다. 거기서 그는 햇빛이 고루 비치는 멋진 방이 여럿 딸린 우아한 집을 구입한다. 그 집은 그가 가족에게 선사하고 싶은 우아한 세계를 대표한다. 이 순간, 그는 가족을 위해서 세상에서 분투하는 우리나라의 모든 아버지가 되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아버지를 묘사한 많은 영화나 드라마들은 여기서 멈춘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치이던 아버지들이 마침내 불치병을 얻거나 무너져가는 모습을 그린다. 뒤늦게 아버지의 가치를 깨달은 가족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질질짜는 모습을 보여주며, 불쌍한 당신 아버지의 무거운 어깨를 다독여주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따위 어중간한 결말에는 관심이 없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그렇게 처절하고 피곤하게 살면 마침내 우아한 세계가 주어질 것인가?” 우리나라 영화에 등장했던 수많은 조폭들과는 달리 강인구는 억센 운빨로 끝까지 살아남는데, 그 이유는 바로 위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이다.

정말이지 그는 끝내주게 운이 좋다. 영화 <친구>의 조폭은 절친한 친구의 칼을 맞고, <비열한 거리>의 조폭은 아끼던 후배에게 배신을 당하지만, 강인구는 이 모든 불행을 비켜간다. 덕분에 그는 이전 조폭 주인공들이 다들 원했지만 도달하지 못했던 그 삶의 끝까지 간다. 그리고는 마침내 위 질문의 답을 마주한다. 그 전까지 강인구에 감정이입했던 관객들도 이 대답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영리한 감독이 그 대답에서 비켜갈 수 있는 모든 변명의 여지를 차단해버렸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영화 속의 강인구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역할을 훌륭히 완수해 냈다. 그는 바람을 피우지도 않았고, 자식에게 패악을 부리지도 않았다. 비록 그 과정이 힘들기는 했지만 그가 사회생활을 하며 뿌린 노력도 모두 결실을 맺었다. 따라서 “만약 그가 그때 다르게 행동 했더라면 더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었을 텐데” 라고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가 맞이한 답은 그 삶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그 전까지 숨겨왔던 잔인한 블랙코미디의 정체를 드러낸다.



기러기 아빠는 왜 만들어지는가? 시작은 사교육이다. OECD통계에 따르면 200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사람들의 소득 대비 사교육 지출액은 2.9%로 전체 회원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는데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90년대 초반만 해도 이런 사교육열은 일부 돈 많은 가정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모두가 같은 것을 원하고 비슷하게 투자하려고 한다. 여유가 되지 않는 중산층 부모들은 자기들 노후 생활자금은 물론 지금 당장 생활에 필요한 예산까지 삭감해 가면서 사교육에 투자를 한다. 물론 자기 자식이 학업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모두가 경쟁에 뛰어든 결과, 목표는 그만큼 멀어지고 원하는 것을 얻을 확률은 예전과 동일하거나 더 낮아진다는 점이다. 갑돌이네가 100만원을 투자했다면 병돌이네는 150만원을 투자하고 다시 갑돌이네는 200만원을 투자한다. 이렇듯 들어가는 돈은 늘어나는데 원하는 것을 얻을 확률은 그대로다. 그저 경쟁만 더 치열해질 뿐이다. 게다가 사교육비용이 늘다 보니 이제는 차라리 유학을 보내는 게 더 싸다는 과격한 결론에까지 이른다. 그 결과는 엄청난 조기유학 붐이다. 대학생을 제외한 초․중․고등학교 유학생 숫자는 1995년에는 2천2백여 명이었는데 2005년에는 2만 여명으로 늘었다. 연간 90%가 넘는 증가율이다. 처음에는 아이만 유학을 보내지만, 나중에는 그냥 아이만 보내기는 불안하니 엄마까지 유학에 동참한다. 그래서 마침내 기러기 아빠들이 태어난다.

처음으로 돌아가 질문을 해보자. 왜 자식에게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하는가? 그 아이들이 잘 자라나서 세상에 나가 성공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왜 자식이 성공하기를 바라는가? 그래야 부모로서 뿌듯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친 듯이 사교육에 돈을 쏟아 붓고 기러기 가족이 되기 전에 우선 이 질문을 해야 한다.

“기러기 아빠로서의 삶은 바로 그 행복한 결말에 가까운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자"는 말을 들으면 드는 생각
다들 그렇게 살면 세상이 개판이 되는데, 그런 곳에서 정승처럼 쓸 수 있나?


사람들은 운이 좋으면 그럴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통계에 따르면 운이 좋다면 남는 것은 빈털터리가 된 노후생활이다. 여기에 조금 운이 나쁘면 망가진 부부관계와 부모-자녀관계가 곁들여질 것이다. 더 나쁜 경우도 있다. 몸이 망가지거나 자식들이 아예 엇나가는 경우들이다. 영화의 마지막, 강인구의 모습은 바로 이런 기러기 가족의 운명을 노골적으로 암시한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미친 듯이 달리기 전에 왜 그래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해보라고 요구한다. 유감인 것은 아무도 그런 의문을 던지고 싶어 하지 않으며 이런 대답을 듣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앞서 코미디의 내용이 관객들의 현실과 가까워질수록 블랙코미디가 된다고 했는데,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다. 너무 현실과 가까워지면 관객들은 더 이상 웃을 수 없게 된다. 이 영화는 대중들이 편히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잔인하게 진실을 까발렸다. 그 진실이란, 자기만의 우아한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서 세상을 처참하게 만들고 마침내 자기 자신마저 처참해지고 마는 우리나라 중산층의 운명이다.

이런 천기누설을 태연히 저질렀으니, 영화가 제대로 흥행하기를 바란다면 그것 역시 너무 무모한 기대라 하겠다.


- 2007. 4. 16 무비위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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