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랜 친구들과 모처럼 남해 겨울바다를 바라 보았다.
해풍은 그렇게 차갑지 않았고 햇살은 따사로웠다.
우린 사람들 없는 산길을 걸으며 마치 우리의 오래된 우정이
바다처럼 푸르고 섬처럼 푸근하다고 느꼈다.
오늘 구간이 비교적 짧다는 사실만으로 여유로운 호남길을 단정하고
남해의 풍류에 욕심껏 젖어들고서 10시가 넘어
첫눈이 하늘 가득 춤추며 내리는 길을 따라 돌아왔다.
.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12시가 넘어 잠들고 다시 기운차게 일어나 배낭을 메고 어둠의 들창을
힘있게 열어 젖힌다.
사량도 종주길에 피곤했을 마눌에게 도시락을 싸지 말라고 했더니
내가 잠든사이에 다시 밥을 해서 식탁에 도시락을 준비해 놓았다.
힘들테니 나보고 하루 쉬라 얘기하던 마눌이
인기척에도 깨어나지 않는 걸 보면 많이 피곤한 모양이다.
마눌은 내가 뻔히 떠날 걸 알고 있었다.
호남길 주유의 기쁨을 누가 알까?
칼바람 난무하는 능선에서 만나는 작은 행복들
그 길 위에는 따뜻한 아랫목보다 더 신나는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
백양사 휴게소에서 몬 눈덮힌 산과 구름에 걸린 아침햇살
히터가 잘 작동되지 않는 차안에서 웅크리며 잠에 빠졌다.
모처럼 친구들을 위해 운전으로 봉사하고 겨울의 그림 같은 섬을 보여주느라
사량도의 낙차 큰 암릉길을 오르락 내리락 했으니 밧데리 충전이 아직 되지
않은 모양이다.
백양사 휴게소에서 차가운 공기에 화들짝 놀라 잠을 깨어 콩나물 해장국 한그릇
가볍게 비우다.
지난번 정읍휴게소 인가 소고기국밥 가관이더니 백양사 휴게소 콩나물국밥
그만하면 전라도 명성에 누가 되지 않는다.
시작점에 서서
지지난주 땅거미를 먼저 보내고 어둠과 함께 내렷섰던 돗재는 이렇게 생겼다.
차길은 산을 휘감아 구불구불 올라 천운산 코아래 재를 넘어가고
어둠 속에 무척 넓어 보였던 휴양림 마당은 삭막한 시멘트 포장이었고 생각보다 협소하다
한천휴양림에서 바라 본 천운산
호남정맥 제 12구간
산 행 지 : 호남정맥 제 12구간
일 자 : 2006년 12월 3일 (일요일)
날 씨 : 갑자기 추워지고 바람 많이 부는날
산행거리 : ?
산행시간 : 6시간 47분
동 행: 양반곰,관홍,무릉객,계백장군,산꼭대기,한림정,금강초롱,김상원
goodman,새벽안개,허여사,백제의미소,로즈마리,백범,청산(15명)
호남정맥 제12구간 경유지별 시간
돗 재출발 09:20
봉1 09:39
봉2 09:57
봉3 10:10
태악산 10:28
조망바위 11:00
노인봉 11:26
성제봉 11:49
능선분기점 11:52
능선안부 식사 12:25~12:55(30분 식사)
말머리재 12:58
옷벗는 봉우리 13:18
촛대봉 13:59
두봉산 14:51
능선갈림길 15:32
죽산안씨묘 15:35
468.6봉 15:48
개기재 16:07
돗재를 올라선 길에 나부끼는 호남 표지기
어서오시라요
호남 신령님은 가는 길에 살짝 눈을 뿌려 놓고 색색의 표지기들로 출정을 환영하고 있다.
첫 봉우리에서 바라 본 천운산
어둠이 깔리던 천운산 낡은 의자에 앉았었지
그날이 어제처럼 벌써 2주일이 지났고 한 해가 저물고있다네...
아직 돌아볼 것들이 너무 많은데
세월은 속절 없이 빠르기만 하네
간밤에 내린 눈이 쌓여 있는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능선 길
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하는 능선길은 얼마나 편안한가?
여유로움
마치 고향길을 걷고 있는 듯한 푸근함이 호남길 내내 따라 온다.
멋지지 않은가?
내가 이 호남의 등줄기를 따라 휘적휘적 걸어 갈 수 있음이....
산죽 위에도 흰 눈
내가 만들어 가는 호남길 주유가 하나의 완성된 작은 우주가 아닐까?
난 그렇게 건강하고
난 기꺼이 배낭을 메고 미지의 길을 떠나고자하는 열망이 있으며
내겐 출정을 포기하게 할 만한 삶의 피폐함도 걱정거리도 없다는 사실
게다가 차가운도 도시락도 너무 맛있다는 거
태악산 전위봉에서 바라 본 천운산
태악산 북쪽 조망
태악산에서 바라 본 가야할 능선 길 -노인봉-성재봉 - 용암산
태악산에 내린 눈
이젠 진짜 겨울인 것 같다.
길가의 가로수가 아직 붉은 잎을 떨구지 않고 겨울답지 않은 11월의
포근한 날씨가 가을의 미련을 떨치지못하더니
능선을 불어가는 칼바람과 능선의 초목에 쌓인 흰 눈이 지난 겨울의 상념을
들추어 낸다.
바람이 그린 그림
망자의 무덤이 아수라 백작 얼굴 같다.
지난 밤 차가운 날씨에 사나운 바람을 타고 온 흰 눈 이야기
태악산 남쪽 조망
노인봉 가는 길에 무덤
잠들어 있는 누군가도 한 때는 뜨겁게 세상을 껴안았겠지..
조용히 호남길가에 누워 지나는 이의 발자국 소릴 알아볼까?
지나간 꿈같은 세월을 기억이나 할까?
내 삶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그 삶에 대한 연민과 집착은 오랜 세월에 묻었다.
내가 아는 아주 중요한 사실은
마흔 잔치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는 거
지난 시간 보다 내게 남겨진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는 거
조망바위에서 바라 본 서쪽 풍경
새벽의 문을 열고 고원에 쌓인 흰눈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허허로운 이 길을 얼마나 오래 걸어 갈 수 있을까?
일행들이 지나가고 조망바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 본다.
계절 속으로 잠들어 가는 산 빛에도 고요한 아름다움과 평화가 드리운다.
조망바위에서 바라 본 지나온 태악산
낙엽 밟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날
준비 없이 맞은 칼바람이 능선에서 소리내어 우는 날
편안한 능선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살아 있음은 축복이고
세상속에서 만나는 기쁨이 슬픔보다 훨씬 키가 더 크다고...
모든 슬픔과 기쁨은 작은 가슴안에 있다고...
조망바위 풍경-멀리 지나온 무등산과 하늘의 구름
지난 여름 늦은 철쭉의 붉은 꽃과 푸른 풀빛이 아름다웠던 무등산
흰눈을 머리에 이고 침잠하는 계절 속에 잠들어 간다.
내 육신이 병들지 않았고
내 마음은 아직 늙지 않았고
소박한 풍경에도 흔들릴 수 있는 가슴으로
시린 계절의 향기에도 젖을 수 있으니 더 큰 바램은 욕심일 뿐...
구름은 그저 바람을 따라 무심히 흘러 간다.
쓸쓸한 노인봉
노인봉을 지키고 있는 건 보기 안스러운 빈약한 나무 하나
세월의 무게처럼 주렁주렁 달아맨 지나간 이의 흔적과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잊지말아 달라는 이름표
노인봉에서 바라 본 풍경
성재봉 가는 길 봉우리에서 만난 가지 많은 나무
지난 여름 무수한 유혹과 감겨오는 추파를 감당하기 어려웠다우
봉우리에서 바라 본 서쪽 풍경
노인봉에서 고도를 내리다 다시 성재봉을 향하여 가파른 산릉을 올라치고
나뭇가지 사이로 서쪽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엔 뭉게구름 가득하고
길은 산허리를 감돌아 저수지로 간다.
성재봉 전위봉 표석
말 없는 무덤과 오랜세월 외로운 바람을 맞았을 쓸쓸한 표석을 바라보면
덧 없는 세월의 회한이 사철가 한 가락에 실려온다.
"무정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이내 청춘도 아차 한 번 늙어지면 다시 청춘은 어려워라.
어~어~ 어화 세상 벗님네들 이네 한 말 들어보소
인생이 모두가 백 년을 산다고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걱정근심 다 제허면 단 사십도 못 살 인생,
아차 한 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
사후에 만반진수는 불여 생전의 일배주 만도 못허느니라
세월아 세월아 세월아 가지 말어라 아까운 청춘들이 다 늙는다.
세월아 가지마라. 가는 세월 어쩔거나. 늘어진 계수나무 끝끝어리에다
대랑 매달아 놓고 국곡투식 허는 놈과 부모불효 허는 놈과 형제화목 못허는 놈,
차례로 잡어다가 저 세상 먼저 보내버리고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여 앉아서
한 잔 더 먹소 덜 먹게 허면서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세".
성재봉 표석
직진 용암산 방향과 좌측 호남정맥 분기점에 나부끼는 표지기
분기점에서 용암산으로 직진할세라 가파른 내리막길 앞에는 표지기가 무수히 달려 있다
산릉은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급하게 고도를 낮추어 간다
역디긋자로 돌아 가는 능선에서 식사
녹지 않은 눈이 능선길에 흩어져 있고 칼바람이 부는 협소한 능선길에는 함께모여 식사
할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다 .
성재봉에서 가파르게 하강하는 산릉을 타고 내려서서 다시 열라 올라가 봉우리 하나 더 넘다.
12시 25분 쯤에 말머리재 위 능선길 어디쯤인가 바람이 자즈러지고 햇살이 따사로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갖은 반찬에 뜨거운 카레라이스 , 인삼무침에 양주에 커피에 ....
없는게 없는 화려한 만찬
소프나노 옥타브로 노래하는 바람의 악사
차가움 속에 빛나는 12월의 태양
산을 닮은 사람들의 즐겁고 편안한 대화 까지...
스산한 겨울에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역설
식사 후 말머리재로 내려서는 길
말머리재
나무에 걸린 말머리재 이정표
우측으로 가면 용반리쪽 좌측으로 가면 말머리골 쪽 이라는데
도통사람이 다닐거란 흔적을 찾기 어렵다.
길섶의 나무가 완장을 차고 말머리재를 증거한다.
촛대봉 조망
말머리재에서 말머리 형상의 오름길을 20여분 극복하면 봉우리에 서고 그 봉우리를
따라 평탄한 능선길이 30여분 이어진다.
그러다가 약 10분정도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서면 촛대봉이 선다.
두어사람 휴식할 정도의 비좁은 봉우리다.
촛대봉 이정표
촛대봉에서 바라 본 두봉산
삶을 잠시 내려놓고 허허롭게 불어가는 바람을 맞는다.
텅 빈 마음이 가져오는 평안함에 느린걸음으로 참된 삶의 의미와
세상 이치의 변방을 기웃거려 본다..
두봉산 이정표
산죽길을헤치고 가파른 산비탈을 치고 오르면 오늘 구간의 최고봉 두봉산이다
두봉산에는 일행에서 먼저 치고 나간 관홍님이 기다리고 있다.
오는 사람들 사진을 찍어 주려고....
하늘이 열려 일대를 굽어보는 후련함이 있고
사진 찍으며 반겨주는 이의 따뜻함이 있으니 분위기 업되는 두위봉이다.
두위봉조망
어느 이름모를 봉우리 이름모를 나무들의 숲을 지나며
두봉산을 뒤로하면 마루금은 우측으로 급하게 떨어지는데 편안하고 호젓한
산길이 이어진다.
15분쯤 진행하면 장재봉 분기봉을 만난다.
여기서부터 마루금 좌측으로 보성군이 시작된다.
유랑길이 화순군에서 보성군으로 넘어가는 셈이다.
개기재에 내려 서기 전 죽산 안씨 묘
능선갈림길을 지나 3분정도 내려서면 죽산 안씨묘를 만난다.
능선 갈림길에는 좌측으로 무수한 표지기가 나부끼고 있는데
관홍님 허여사님 거침 없이 직진길로 진군한다.
아르바이트좀 하시게 내버려 둘까하다가 막판이라 봐줬다.
이제 468.6봉만 극복하면 될 것 같은데 40여분 이면 족하겠다.
개기재 에 내려서는길
완만한 내림길을 내려서서 다시 부드럽게 오름길을 이어가는 486.6봉을 지나
생각보다 가파른 내림길을 10여분 내리면 개기재가 보이고 개간후 돌보지 않는
야생초지가 나타난다.
개지재 위 야생초지
개기재의 베이스캠프 그리고 개기고(?) 있는 선두 팀
왕주가 숭늉이여?
술인심은 좋지만 사발에 왕주를 넘치게 엥기니 오늘들 무사할까?
이제 김치찌게가 짱인 계절이 돌아 왔다.
개기재를 흔드는 김치찌개 향기
한 드럼통이 순식간에 바닥을 보이고 마는 천하 왕주의 풍미
그리고 왕주 몇사발에 왕이 된 사람들...
그래서 또 유쾌한 하루가 저물고
그래서 인생은 즐겁지 아니한가?
개기재에 쏟아지는 늦은 오후의 나른한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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