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에 갔습니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곳입니다.
대학시절 가르치던 아이들과 함께 두 번이나 다녀온 곳이데 본격적으로 산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구미라는 대규모 공업단지 근처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겁니다.
산은 세속에서 멀리 떨어져 격리되고 고립되어야 했고 산속에서는 세속의 소음과 악취도탈취되어야 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산정에서는 구름처럼 아득한 첩첩의 산릉에 둘러 쌓여 마치 우리를 철저히 구속하고 유린한도시의 감옥을
벗어 났다는 자유를 느낄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끊임 없이 고속도로의 차 소리가 따라오는 구봉산이 싫었고 공단의 매캐한 냄새가 숲의 향기를 가리는
영취산이 싫었습니다.
7번째 마눌과 함께하는 100대 명산 여행길 역시 즉흥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 날
그 전날 까지도 아무런 계획 없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아침식사를 천천히 하고서도 그저 시간에 쫓기지 않고
쉽게 다녀 올 그런 곳이 필요했습니다.
금오산을 떠올리고 나서야 젊은 시절 제 가슴속 한구석에 늘 갈망처럼 남아 있던 방랑벽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늘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주머니 사정도 좋지 못하고 지금처럼 교통도 편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것보다도 저의 누에고치 같던 세계를 과감하게 박차고 나갈 만큼 모험적이지 못했고 새로운 세상을 바라
보는 기쁨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 입니다.
불행하게도 그런 계기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날들이 지나고 나서야 나의 정적인 학창시절에 남겨진 삶의 교훈과 추억의 빈약함이 그렇게 후회스럽고
아쉽다는 걸 알았습니다.
기차가 가는 길을 따라 있었던 직지사와 금오산은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던 열망을 손쉽게 추스려 주었던 그런 곳입니다.
벌써 이십년이 훌쩍 흘렀습니다.
막상 금오산을 정하고 나니 제 빛 바랜 사진첩에 아직 남아 있는 그 곳을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구름처럼 밀려 옵니다.
뒤로는 한줄기 폭포가 쏟아지는데 장발을 한 청년이 깃이 넓은 신사복 정장을 걸치고
바위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던 그 곳.
마눌과 가는 7번째 100대 명산 주유는 추억의 여행길 입니다.
1시간 20분 만에 구미에 도착했고 금오산 가는 길은 생소하기 만 했습니다.
구미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도시였습니다.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2000원의 주차비를 받는데 주차장 규모로 보아 주말엔 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인가 봅니다.
대도시 인근의 산인데 어련하겠습니까?
그래도 요즘 무더위 때문인지 주차장은 한산한 편이라 나무 아래 태양이 가릴 수 있는 곳으로 차를
파킹해 놓았습니다.
도립공원이라 원래 입장료는 600원 인데 오늘이 광복절이라 면제해 준다고 합니다.
1200원 벌었습니다.
앞으로는 국경일에는 도립공원으로만 산행을 하자며 마눌과 웃었습니다.
산 행 지 : 구미 금오산
산행일자 : 2007년 8월 15일
날 씨 : 매우 무덥고 태양이 구름 밖으로 들락날락
산 위에는 바람이 시원하다
동 행 : 마눌
경유지별 시간
11:40 주차장
11:52 허위선생 유허비 (遺墟碑)
12:17 금오산성
12;27 샘터
12;38 대해폭포
13:04 식사 후 출발
13:17 할딱고개 위 조망바위
14;17 물내리는 절벽 (정상 900m 전방)
14;20 평평한 안부 . 정상 800 m 전방
14:46 금오산 정상 (顯月峯)
15:00 약사암 일주문
15:05 약사암
15:34 조망바위 , 작은 소나무가 있는 바람 길
16:52 하산완료
17:15 주차장
정상부로 가는 방법은 3갈래 길이 있습니다.
계곡을 따라 대해폭포를 거쳐 오르는 길
계곡을 따라 가다 우측 갈림길로 능선에 올라 칼다봉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능선 산행길
반대쪽 법성사 아래 들머리에서 시작하여 정상에 오르는 길
아득한 시절의 그 폭포를 보아야 하니 계곡길을 따라 올랐다가 반대편 법성사 쪽으로
하산로를 잡기로 했습니다.
금호 관강호텔 입구에 허위선생 유허비가 나옵니다.
왕산 허위 선생은 을미사변 때 비분강개하여 의병을 일으키신 분으로 고종의 해산령을 받고 자신 해산하였다가
1905년 을사 보호조약이 체결되자 다시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일제에 항거한 강직하신 분이라 합니다.
“아버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나라의 주도권도 회복하지 못했으니 충성도 못하고 효도도 못한 놈이니 죽어도
어이 눈을 감으랴” 통한의 유서 한 장을 남기고 순국하셨다 합니다.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 합니다.
생각보다 계곡이 깊고 수량이 많습니다.
요즘 비가 온 뒤라 물이 불었겠지만 이 정도면 계룡산 보다 훨씬 물이 많습니다.
등산로 주변의 바위며 나무에는 이끼가 가득합니다.
짙은 수림이 햇빛을 차단하고 계곡의 풍부한 수량에서 나오는 충만한 습기가 한여름에도
이끼가 무성하게 자라게 하는 그런 곳입니다.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고 오래된 기억은 모두 세월에 묻혔습니다.
입구에 누가 돌무덤을 정성스럽게 쌓아 놓았습니다.
마이산의 돌탑처럼 그렇게 정교합니다.
저 돌을 쌓는 마음이 가장 순수한 인간의 본심이고 부처의 마음일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업화의 열망이 가득했던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구미를 거대한 공업단지로 육성을 했고
금오산은 구미 시민의 훌륭한 쉼터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공업단지를 시찰하시고 금오산에 들렀던 대통령께서 등산로 주변이며 계곡에
가득한 쓰레기 더미를 보고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자연보호 운동을 지시했다 하십니다.
금오산성입니다.
성벽을 보수해 놓았는데 아치형 성벽 아래로 흘러가는 계단식 인공폭포가 마음을 시원하게 합니다.
샛길이 있을 듯하여 계곡 아래쪽으로 내려와 옆길을 따라갔지만 길이 끊어져 있습니다.
그늘진 계곡 그리고 청정한 계곡의 물이 등산로 주변의 온도를 낮춰 주어도 워낙 무더운 날씨라 땀은
많이 납니다.
폭포아래 절에는 들르지 않았습니다.
너무 많은 인파에 쌓인 절이라 제 소원을 들어주시기에는 너무 바쁘신 부처님일 것 같습니다
샘터가 나옵니다.
바위를 뚫어 물이 흐르게 했는데 그 물을 받아 마시니 그렇게 차가운 맛은 없습니다.
한 쪽에서 할머니들이 모여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릅니다.
웬 할아버지가 요즘이 어느 때인지도 모르고 저런다고 투덜거립니다.
그냥 그런 것도 보기 좋습니다.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치는 노래가 아니라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이 자연속에서 신명에
겨워 어깨춤을 추며 부르는 즐거운 노래 입니다.
그분들도 금오산에서 지나간 세월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폭포에 도착했습니다.
물줄기가 대차게 쏟아져 내립니다.
그 옛날에도 꽤 큰 폭포였다는 기억이 남아 있는데 비 온 후라 쏟아지는 물소리가 웅장합니다.
그 옛날의 바위에 올라 사진을 찍었습니다.
수십 년이 흐른 뒤 입니다.
사람들에 의해 자연의 모습도 바뀌었고 흐르는 세월에 저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폭포 옆에서 마눌과 함께 미세한 물보라를 맞았습니다.
떨어지는 물줄기가 만들어 내는 바람과 허공에 흩날리는 물보라가 무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식혀 주었습니다.
조금 위쪽으로 올라가 폭포 옆에서 식사를 하는데 계곡의 서늘한 바람에 오한을 느낄 정도입니다.
평범한 밥맛이 꿀맛입니다.
조화로운 자연이 보여 주는 마술 입니다.
계곡에서 불어 내리는 바람과 시원한 폭포수 소리가 무더위를 멀리 쫓아 버렸습니다.
지난 시절의 추억은 여기까지였습니다.
정상 까지는 할딱 고개 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 있을 산비탈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중간 안부에 올랐습니다.
바위가 있고 건너편 능선이 바라다 보입니다.
절벽이 성곽처럼 서 있고 가운데 절리 사이로 떨어지는 작은 폭포도 보입니다.
우리가 올라왔던 저수지며 아파트들 그리고 드넓은 구미벌판도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할딱고개를 지나 정상까지 가는 길이 오히려 힘들고 지루합니다.
시계가 차단된 가파른 길이 한 없이 이어집니다.
절벽에서 물이 흘러 내립니다.
누군가 절벽아래 낡은 프라스틱 바가지를 놓고 그 위에 나뭇잎을 붙여 놓았습니다.
절벽을 흐르는 물은 나뭇잎에서 모아져서 바가지로 흘러 내립니다.
쉬엄쉬엄 가는 길인데 빤히 바라다 보이는 정상이 가고 가도 거리를 좁혀주지 않습니다.
가파른 길에 무더운 날씨라 마눌이 힘이 들어 합니다.
다시 평평한 안부에 도착했는데 커다란 입간판 이정표가 서 있습니다.
질러가면 금방 도착할 것 같아 다 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등로는 뱀처럼 뒷길을 휘감아
다시 한참을 올라 갑니다.
하여간 우리는 무더운 날씨에 먼 길을 걸어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넓은 헬기장에는 날 선 땡빛이 떨어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인지 강렬한 햇빛을 마다
않는 몇몇이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금오산 정상은 중계탑과 건물로 지저분하고 어수선합니다.
우리는 정상에선 기쁨을 바람과 함께 나누며 즐산의 기쁨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산바람을 맞고 나서 법성사 쪽 내림 길을 잡았습니다.
동국 제일문이라 쓰여진 대문이 나타납니다.
주변의 기암과 어우러진 산세가 마치 중국산과 같은 느낌을 가져다 줍니다.
바위에서 내려다 보는 조망이 장관 입니다.
푸른 산들이 흘러 내리는 벌판 위에 사람들이 세워 놓은 아파트며 건물들도 대단합니다.
조화로운 모습은 아니지만 늘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사바 세상엔 근심이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 안에 숨겨진 분노와 질시 그리고 욕망 같은 것들은 늘 우리의 낮은 눈높이에 머무는것들 입니다.
약사암은 예사롭지 않은 절벽 난간에 세워져 잇습니다.
뒤로는 집채 같은 바위를 의지하고 앞으로는 일망무제의 드넓은 벌판을 바라다 봅니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잊게 하는 서늘한 고원의 바람이 불어 갑니다.
바위를 돌아 내리자 몇몇의 산객들이 휴식하고 있습니다.
건너편 솟아오른 산봉우리에는 종루가 있고 긴 줄다리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아침마다 줄다리의 자물쇠를 열고 종루로 건너가고 종을 칠 것입니다.
종소리는 아주 맑을 듯 싶습니다.
거칠 것 없는 허공을 울리는 불국의 청아한 소리를 사바 세계로 내려 보낼 겁니다
암자를 돌아 내리며 길이 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지 길은 가파르고 거칠었습니다.
내려가는 길에는 매미들이 대차게 울어 주었고 여기저기서 잠자리가 날아 올랐습니다.
인적은 없고 가끔 멋진 풍경과 시원한 산 바람이 찾아 주었습니다.
위험하지만 시간이 넉넉한 길이라 우리는 자주 바람 좋은 길목에 쉬어 가며 산아래를 내려다 보고 흘러가는
흰구름을 바라 보았습니다.
때론 마눌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가끔은 혼자 소리내어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자연을 바라만 보는 것 만으로도 작은 기쁨들이 가슴을 채우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희미한 길을 따라 흘러 갔습니다.
때로는 울창한 수림이 뜨거운 햇빛을 가리어 주었고 때로는 뭉게구름이 강렬한 태양 빛을 덮어 주었습니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은 듯한 곳에서 힘차게 흘러 가는 계곡물 소리를 들었습니다.
잠시 계곡에 머물며 땀을 씻고 인적이 없는 터라 아얘 웃통을 벗고 시원한 등멱을 감았습니다.
살아가는 날에 만나는 작은 기쁨들은 도처에 널려 있고 그런 작은 것들이 이루어내는 소박한
행복들이 우리를 넉넉한 모습으로 늙어가게 합니다.
주차장 까지는 5시간 40분이 걸렸고 산행시간은 5시간 이나 소요되는 거친 산길이었습니다.
찾아 가는 명산 구비구비 마다 저마다의 비경과 사연을 간직하고 있고 돌아보는 발걸음마다
그렇게 편안하고 쉬운 길은 없습니다.
50명산을 돌아 볼 때 쯤이면 우린 좀더 산을 닮아 넉넉하고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 있을 겁니다.
비좁은 계곡에서 야영하며 물놀이를 즐기는 인파들을 바라보며 뜨거워진 아스팔트 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일본의 압박에서 자유를 선언한 날 우리는 분연히 폭염에 맞서서 소중한 대자연 속의 자유를
누린 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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