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고속도로 중부 휴게소 주차장 도착
8봉산 등산 개념도
합천 36.5 도
처서가 지났는데도 폭염은 고개를 숙일 줄 모른다.
한반도 바닷속에는 열대 어종이 출몰하고 쨍쨍하던 날씨에 느닷없이 먹장구름이 몰려와
열베트남 같은 열대성 스콜을 퍼붓고 순식간에 사라진다.
날씨는 앙코르와트의 메마른 여름처럼 뜨거웠다.
잠시 살아 온 날을 돌아보며 붉은 낙엽 아래서 괜시리 맬랑꼬리하던 가을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
산수유가 피었다는 소릴 듣고 봄을 마중하러 섬으로 갔다가 돌아 오는 길에 연분홍
치마폭을 들썩이며 북으로 올라가며 히히덕 거리던 봄처럼….
내일은 소나무를 밀어낸 아열대 활엽수들이 북으로 진군해 갈 것이다.
앞으로 한반도에서 사계절의 향수를 느끼며 살만한 곳이란 개마고원쯤 되지 않을까?
아니 오줌을 누면 나오다 얼어버린다는 중강진 쯤 될지도 모르겠다.
남북정상회담이 잘되어 개마고원 택지분양 하는 날 만패불청, 희희락락하며 북으로 달려
가리라…
제 1봉을 향하여
무더운 날 한 번은 더위와 일전을 불사해야 한다.
환자도 아니고 무더위에 이틀을 에어컨을 켰다 껐다 하면서 방안에 뒹글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내 생애 얼마 남지 않은 휴일을 폭염에 폭우에 그리고 세상에 늘어뜨린 인연들에 죄
내어주어 버리면 추억으로 살아가야 하는 먼 훗날에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그건 떠날 날 받아 놓고 잠만 자는 격이 아닌가?
그래서 마눌과 함께 폭염 속에서 신명나는 한바탕 춤을 추기로 했다.
사실은 폭염이 겁나서 3시간 코스 밖에 되지 않는 홍천의 비까번쩍한 팔봉산 클럽으로
간 것이지만 서두….
아침부터 찌는데
대형 버스는 아침부터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제키니 홍천 가는 내내 추웠다.
마눌과 얘기도 하고 잠시 졸기도 하고 또 신문도 보다 보니 두시간 반이 훌쩍 지나고
팔봉산에 도착했다.
“애게 저게 팔봉산이여?”
3시간 정도의 암산이란 건 알고 왔지만 실망스럽게도 팔봉산은 대전의 보문산 만도 못한
빈약한 풍채에 부스스한 얼굴로 손님을 맞는다.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저런 산에 웬 사람들이 저리 많은 거여?”
팔봉교를 건너면 등산로 매표소가 있다.
매표소에서 시작하면 1봉을 거쳐 8봉을 아우르고 홍천강변으로 내려오고 강변을 따라 설치된
철제난간을 따라 출발점으로 돌아 올 수 있다.
통상 안내산행의 경우는 대형버스가 산객들을 매표서 입구에서 내려주고 다리건너 팔봉쉼터
주차장에서 대기하기 때문에 다리쪽으로 돌아 가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8봉을 내려서서 홍천강을 건너간다.
폭우나 장마로 물이 불지 않으면 깊은 곳이 허리춤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별 무리가 없고
뜨거운 태양 빛으로 몸이 달구어져 있는 상태니 어이 도강과 물놀이를 마다하며 먼 길을 돌아가랴...
산 행 일 : 2007년 8월 25일 토요일
산 행 지 : 홍천군 서면 어유포리 팔봉산
날 씨 : 합천이 36.5도 까지 올라간 무지 더운날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골바람은 시원하다
동 행 : 마 눌
소요시간 : 3시간 20분
수림이 무성했다.
뜨거운 날 초장부터 온몸으로 땀이 배어나도 능선에 오르기 전 까지는 그 뜨거운 햇살은
팔봉의 속살을 파고 들지 못했다.
설령 짙은 수림을 통과하더라도 나의 팔뚝과 얼굴에 두껍게 바른 썬블락로션 까지 뚫기는
만만치 않을 기라…
1봉을 오르며 바라보는 홍천강
겉에서 보는 산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부시시한 털복숭이 아래 그렇게 거친 기암이 숨기어 있을 줄이야.!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랭이를 쩍쩍 벌리고 엉금엉금 기어야 하는 길인데 마치 뒷동산처럼
두리뭉실하게 서 있던 산 속에 그렇게 가파르게 휘몰아 치다가 종국에는 로프를 잡고 직벽을
한참 기어올라야 하는 길이 있으리라 차마 생각 치 못했다.
처음부터 마눌과 나는 절벽에 바짝 붙어서 거미춤을 춰야 했다.
뜨거운 태양열은 수림이 사라진 내 몸을 달구어 땀을 짜내며 400미터 높이에서 불어가는
홍천 바람을 비웃고 있었다.
1봉에서 바라 본 북서 능선
제1봉
1봉에 섰는데 솔가지 사이로 굽어 보는 홍천강의 풍광이 예사롭지 않다.
시작을 알리는 기념사진을 한 장 때리고 갈 길을 재촉하는데 건너 갈 2봉은 또 다시 아래
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 간다.
푸른 하늘에 흰구름은 앙코르와트의 풍경을 닮았다.
날이 뜨겁다고 멋진 풍경을 대하는 즐거움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해발 450미터의 작은산 이라도 당당히 100대 명산의 반열에 드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제 2 봉
2봉에는 뭐하는 곳인지는 몰라도 건물이 서 있다.
2봉에서 바라 본 제 3봉
폭염 속에서도 훼손되지 않는 즐산의 기쁨을 누린다.
가보지 않은 길에서 만나는 멋진 풍경에 대한 기대가 거친 길 위를 함께 따라 오르고 하나의
봉우리를 넘어 갈 때마다 다가오는 새로운 풍경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작은 산이 염천의 서슬에도 아랑곳 않고 이렇게 살아 가는 날의 기쁨을 느끼게 해줄 수도 있었다.
봉우리를 우회하는 등산로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마루금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봉우리마다
우리의 첫 발자국을 남기고 마치 인증을 받아내 듯 기념사진을 찍었다..
씩씩하게 3봉을 오르는 마눌
모두들 집안에 칩거하는 줄 알았다.
이런 무더위에는 산을 타는 사람들이 얼마 없을 거라고 생각 했었다.
3봉에 선 거암
제 3봉
3봉에 팔봉산이라 새겨진 표석이 있다.
제3봉이 팔봉산의 대표 산봉우리인 셈이다.
3봉에서 바라 본 동북 쪽 평야 지대
3봉을 내려서며 4봉의 해산굴을 지나기 위해 기다리는 구름 같은 인파를 만났다.
4봉을 오르는 길은 오직 한 길인데 굴이 얼마나 좁으면 하염없이 기다려도 줄은 잘
좁혀지지 않는다.
그래도 3봉과 4봉 사이 협곡 철 계단에 서 있으려니 시원한 바람이 목을 간지러 몸의
열기를 식혀 준다.
염천 산행에 너무 반가운 참으로 시원한 바람이다.
우린 30분 이상 기다려서야 가까스로 순번을 받았는데 그 굴이란 게 참으로 어이 없이
좁아서 도저히 나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곳이었다.
아마도 아이를 낳는 산고를 겪을 만큼 빠져 나가기가 힘들어서 해산굴이라 이름 붙인
모양이다.
순번을 받은 마눌이 막상 굴 안으로 들어서더니 그 모양새에 하얗게 질려서 도저히 빠져
나갈 수 없다고 돌아 나오려 한다.
1시간 이나 기다리다 돌아 간다니?
4봉에 기선을 제압당한 마눌을 되돌려 밑에서 받혀주고 먼저 빠져나간 사람이 위에서
끌어 주고 하여 간신히 통과하고 나서 나 역시 어려웠지만 천천히 조심조심 빠져 나갔다.
바위 벽에 부딪혀 허리에 충격이 가해지면 모든 게 도로아미타불이라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노구(?)의 병약한 몸이지만 한국의 숱한 산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관록이 아직 남아 있었다.
약간 통통하신 한 여선생님이 사투를 벌이며 구멍을 빠져 나오더니 아직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 쪽으로 냅다 소리 친다.
“교장 선생니임~~ 선생님은 도저히 통과할 수 없는 곳이니 우회해서 아래로 가세요~~”
1시간 내내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시던 뚱뚱하신 여자교장선생님 얼마나 황당하실까?
바위 그늘아래 외로운 산님
제 4봉
마눌과 함께 어려운 산고를 겪고 나서 마주한 4봉이 더 감동적이었고 봉우리 위 에서
맞는 한줄기 바람에도 우리는 감개무량했다.
제 5봉을 오르는 사람들
제 5봉
5봉에서는 바위 옆으로 한가롭게 굽이쳐 흐르는 홍천강이 평화롭게 내려다 보인다.
5봉을 지나 안부에서 식사를 했다.
조금 아래로 내려가 바람이 잘 통하지 않은 곳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지나고 보니 6봉을
넘어서 평평한 안부가 나타나는데 그곳이 바람도 솔솔 불고 식사하기 아주 쾌적한 장소였다.
제 6봉
6봉 아래 소나무
6봉 너머에는 멋드런지 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
앨튼죤에게 소나무 사진 한 장에 3000만원에 팔았던 배병우씨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멋드러진 소나무다
6봉과 7봉 사이 안부 - 바람이 시원하여 식사하기 좋은 장소임
제 7봉
8봉 가는 길 소나무
7봉을 넘어서다 보면 홍천강을 바라보며 대여섯 명이 식사할 만한 멋진 장소가 있다.
소나무 아래 강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시원하고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후련하다.
4명의 산객이 그 멋진 고원의 레스또랑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다.
조금 더 내려가면 강을 바라 보는 멋드러진 청솔 하나 손들어 산객을 맞는다.
7봉과 8봉 사이 경고판
산행리더도 8봉을 오르내리는 길이 험하니 가급적이면 7봉과 8봉 사이 하산로로
하산하라고 했는데 안부에는 공포감을 조성하는 표지판이 하나 떡허니 붙어 있다.
“8봉은 안전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곳이니 노약자나 부녀자는 이곳에서 하산하시라!”
반 협박이다.
지금까지도 힘든 코스였는데 지금보다 더 어렵다면 마눌에게는 무리가 될 것 같다.
괜히 욕심부리다가 사고 날 까봐 걱정이 되고 또 내가 큰 사고를 당해보니 매사에
조심스러워 져서 마눌은 6봉과 7봉사이 길로 하산 시키고 혼자 8봉에 올랐다
나 홀로 8봉에 서서
해발은 7봉에서 한참 낮아졌는데 다시 오르는 길이 절벽 지대라 위험하긴 한데 손잡이나
발판이 잘 만들어져서 그다지 힘든 코스는 아니다.
각오를 단단히 해서인지 8봉은 7봉사이의 안부에서 얼마 오르지 않아서 금새 표석을
드러내고 만다.
마눌도 충분히 올 만한 길이었는데 아쉬웠다.
격정적인 산행의 조용하고 아쉬운 마무리였다.
혼자 소나무 그늘에 앉아 위에서 굽어보는 홍천강의 시린 풍광을 잊을 새라 오랫동안
바라보며 애써 가슴에 담으려 했다.
바람은 더 시원하게 불고 폭염을 비웃는 강물은 눈 부신 태양을 번쩍이며 되돌려 주고 있다.
세상은 내가 보는 대로 존재한다.
세상은 내가 느끼는 만큼 보이고 내가 원하는 만큼의 감동을 가져다 준다.
늘 팔봉산은 거기 서 있어도 누군가는 그 작은 산의 존재조차 모르고
그 산에 다다른 누구는 폭염과 거친 산을 통탄하고 다른 누군가는 살아가는 날의 감동과
기쁨을 얻는다.
하늘이 푸르고
별이 반짝이고
붉은 노을이 매일 바다를 붉게 물들여도
그 아름다움은 그것을 찾아내고 기꺼이 가슴을 풀어헤칠 수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내려가는 길도 가파르긴 해도 로프와 발판이 잘 설치 되어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다.
별무리 없이 다시 해발 제로로 내려섰다.
8봉을 돌아 홍천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사람들과 수영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강가를
걸어 간다.
강 기슭을 따라 철제 다리와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잠시 강가를 따라 가다 먼저 내려와 기다리는 마눌을 만나고 시원한 강물에 뛰어 들었다.
공용 주차장이 강 건너라 마눌을 업고 건너겠다니 마눌이 팔색을 하고 멀리 보이는 다리를
돌아 간단다.
할 수 없이 마눌을 보내고 시원한 강물에 오랫동안 몸을 담구고 혼자 놀았다.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맑은 물속에서 팬티를 벗고 수영복으로 갈아 입느라 생쑈를
하기도 하고 혼자 물속에서 둥글둥글 놀기도 하다가 시간에 맞추어 기다리는 버스로 돌아왔다.
허리가 아물지 않은 올해는 원거리 출정을 자제하려 했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
허리를 다치고 마주한 올 여름은 지리산과 설악산을 뜨겁게 부등켜 안았던 작년 여름이
너무 아쉬웠는데 지난 일요일 대천바다에서 노닐고 오늘은 홍천강을 희롱하니 올해 또한
그런대로 자족할 만한 여름이라 하겠다.
일단 막걸리 세 잔을 연거푸 들이키고 수런거리는 홍천강의 흥겨운 노래를 들으며 팔봉산을
뒤로 했다.
마눌과 함께 가는 9번 째 명산주유 길이었다.
산행 후 홍천강에서 휴식하는 사람들
홍천강 레프팅
살찐 무릉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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