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를 아시는지?
길 옆으로 개울이 흐릅니다.
흘러버린 세월을 헤이기도 버거운 고목이 비스듬이 누워 있고
울창한 수림이 한 낮의 깊은 그림자를 끌어 암자까지 길게 따라 옵니다.
청아한 목탁 소리가 허공에 흩어지면 암산의 솔가지를 털어낸 바람이 풍경을 흔들고
지나 갑니다.
풍경과 목탁소리가 산사의 맑은 기운을 가슴으로 실어 나르고
사바 세계를 불어가는 그 한자락 바람이 세속의 번뇌와 미망을 내려 놓게 합니다.
넓은 마당을 가로 질러 대웅전에 들러 부처님께 예를 올립니다.
짧은 인생길을 걸어 가며
늘 어딘가에 기대야 하는 약한 존재 입니다.
늘 걱정과 근심을 떨어내지 못하는 불안한 우리의 삶 입니다.
엎드려 소망을 말하고 잠시 부처님의 미소 아래서 불자의 평안과 안식을 누립니다.
개울을 따라 오르는 오솔길을 걸어 도솔암에 오르다 보면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차분히 가라 앉고 무거운 어깨가 가벼워짐을 느끼게 됩니다.
수수하고 소박한 길인데 어디서나 불심의 경건함과 세월이 그윽함이 묻어 납니다.
마치 도솔천을 건너 수미산으로 가는 듯
부처님의 자비와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입니다.
그 길을 걸어 내리던 시인
타인들을 위한 시간에 휩쓸리다 조용히 나를 돌아보게 하는 길
선운산 가는 길은
굳이 명상을 떠올리지 않아도 부지불식간 자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길입니다.
선운산에는 자주 왔었습니다.
누군가 낙조대에 황홀한 풍경에 눈물이 났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보다 불국에 든 경건함으로 해가 지고 난 후에도 오래도록 바위를 떠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어떤 날은 동백을 보러 왔다가 떨어져 버린 꽃잎만 보고 애�은 복분자 술만 한잔 치고 갔습니다.
흥건히 떨어진 동백의 모습은 처연하지요
덧없이 지나는 일장춘몽이 아쉬어 처마에 떨어지는 낙수의 눈물 속에서도 동백은 열흘을 시들지 않는다 합니다.
늘 신록이 흐드러진 사월에 선운산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신록과 동백을 같이 욕심 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입니다.
동백을 노래한 시인들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운사 동백꽃
선운사 뒤편 산비탈에는
소문 난 만큼이나 무성하게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고 많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가지가지마다 탐스런
열매라도 달린 듯
큼지막하게 피어나는
동백꽃을 바라보면
미칠 듯한 독한 사랑에 흠뻑
취한 것만 같았다
가슴 저린 한이 얼마나 크면
이 환장하도록 화창한 봄날에
피를 머금은 듯
피를 토한 듯이
보기에도 섬뜩하게
검붉게 검붉게 피어나고 있는가
- 용혜원
하지만 선운산의 동백은 한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늘 한 해를 기다리지 못하고 동백 꽃이 뚝뚝 떨어진 여름날 선운사에 갔습니다.
아쉬움의 시를 짓던 서정주님의 심사가 되었지요
선운사 동구 – 서정주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그래도 아쉽지 않았습니다.
다시 꽃피는 봄날은 돌아 올거구 전 다시 선운사에 갈 이유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인생의 봄날은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혼자만의 여행길을 위해 남겨 놓은 소중한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선운산 종주길이 그 하나 입니다.
언젠가 선운사 골짜기를 싸고 도는 둥그런 능선을 돌아 내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봄이면 섬을 따라 여행길을 떠나는 버릇이 들어 그 묵상의 시간을 미루어 왔는데 이젠 기다림이 더 길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 순례의 길은 늘 마음 속에 남아 있고 허리가 다 나은 어느 날에는 세상의 버거움을 훌훌 털어내며 그 길을 가게 되겠지요.
마눌과 추는 100대 명산 춤 11번 째
산 행 일 : 2007년 9월 18일
산 행 지 : 고창군 선운산
동 행 : 충일산악회
날 씨 : 흐리고 무덥다 – 하산 후 비
경유지별 시간
10:34 평지리 마을
11:10 능선
11:23 암릉
11:35 능선 분기점 (사자암 청룡산 분기)
11:43 쥐바위
12:10 청룡산
12:20 배맨바위 (중식 및 휴식 20분)
13;17 낙조대 전 봉우리 (철계단 있음)
13:22 낙조대 (10분 휴식)
13:42 천마봉
13:55 마애불
14:07 찻집
14:15 장사송
15:00 선운사
15:30 주차장
오늘은 꽃무릇을 보러 마눌과 선운사에 갑니다.
마눌과 함께 가는 100대 명산 여행길 11번째 여정 입니다.
꽃무릇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작년부턴가 홀연히 불갑사와 선운사의 꽃무릇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장관이라던 그 꽃밭을 보구 싶어 친구들과 지난주 부부동반으로 다녀오려 했다가 애�은 비 때문에 떠나지 못했습니다.
선운사 가는 길에
선운산 가는 버스에서 나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백두대간 종주 길동무
호남정맥 길을 함께하던 산친구였습니다.
요즘 심산의 가슴을 헤집는 산친구들의 무용담을 읽으면 늘 가슴이 저려오고 쓸쓸해져
너무 오랫동안 까페의 발길을 끊었습니다.
들개처럼 거친 산야를 종횡하며 뜨거운 숨을 몰아 쉬던 날은 아득한 전설이 되었고
이제 서너 시간의 산행길에도 허리에 부담을 느껴야 하는 초심자로 돌아갔습니다.
그래도 훗날을 기약하며 씩씩하게 마눌과 100대 명산 주유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산친구들 소식이 궁금해서 나선생님과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능선을 오르는 길
평지리 길 앞에 버스 두대가 쏟아낸 인파는 대단합니다..
날씨는 흐리고 후덥지근 한데 기념촬영을 하고 오르는 길에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지더니 더 이상 내리지 않습니다.
감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익어가는 감과 비닐하우스에 말리는 고추가 한가위의 풍성한 결실을 이야기 합니다.
천천히 오르는 길인데 저수지를 지나가며 선두그룹이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이 길이 아닌 개벼”
후미에 섰다가 졸지에 선두그룹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르는 길이 너무 가파르고 무른 바위가 풍화된 마사토 흙이 미끄러워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다 보니 능선에 오르기 전에
허리가 뻐근해 지고 땀이 비오 듯 흘러내립니다.
지난 비가 가을을 재촉하여 능선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리라 생각했는데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날은 여름날보다 더워
다시 반팔을 갈아 입었습니다.
어렵게 능선에 올라 한참을 휴식합니다.
청룡산 가는 길
평탄한 능선 길을 생각 했는데 청룡산 까지는 제법 낙차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험한길이라 했더니 마눌이 100대명산 주유길에 한번도 쉬운 산은 없었다고 합니다.
결실의 색으로 물들어 가는 들판이 푸근하고 저수지를 끼고 있는 평지리 마을이 평화롭습니다.
선운사 쪽으로는 첩첩이 산릉이 포개져 있고 능선 너머 멀리 배맨바위가 보입니다.
일대가 후련하게 조망되는 바위 위에서 휴식하며 처음대하는 선운불국의 수려한 산세에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바위 지대를 돌아 오르고 희여재에서 1Km를 왔다는 이정표를 지나면 능선이 분기됩니다.
갈림길에도 이정표가 서 있습니다.
가던 길을 따라 곧장 가면 1km앞에 사자암이 있고 좌측으로 분기하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 청룡산이 1km 앞에 있다고
알려줍니다.
벌써 멀리 바위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바람처럼 사라진 나선생님도 벌써 그곳에 도착한 모양입니다.
분기점에서 가파르게 내려선 산릉은 평탄하게 쥐바위로 이어집니다.
쥐바위 앞에는 건너편 능선 멀리 배맨바위가 더 가까이 보이고 누가 쌓았는지 돌탑이 몇 개 있습니다.
그 돌탑 아래 소중히 부처님을 안치하는 마음처럼 능선 위에는 경건한 구도와 소망이 머물고 있습니다.
거대한 암릉인 쥐바위에 섰습니다.
지나온 벼랑길이 장대하고 우측으로 누렇게 물들어가는 들판이 마음을 푸근하게 합니다.
분기능선에서 청룡사1km라 했는데 쥐바위에 또 청룡산 1km란 표지판이 써 있습니다.
누군가 착각을 했는지 아님 성의 없는 작업의 결과 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왕 설치할 거면 능선 이정표를 제대로 고쳐
달면 좋겠습니다.
로프를 타고 내려가는 길 입니다.
가는 길에 장승처럼 선 바위가 외롭고 뒤돌아 본 둥근 쥐바위 위로 후미 일행의 실루엣이 벌써 아득 합니다.
산은 자신의 존재를 조용히 일깨워 줍니다.
세상에 길게 늘어뜨린 인연과 어깨에 진 짐을 잠시 내려놓게 합니다.
살아가는 날의 답답함을 벗어 길가의 소나무에 걸었습니다.
능선은 낮아진 채로 청룡산으로 흐르고 우측의 첩첩산하는 신선의 나라인 듯 경건합니다.
부지런히 거미집을 만드는 노란색 거미를 만나고 이름 모를 꽃들을 만났습니다.
산에 갔을 뿐인데
너무 많은 것을 가슴으로 만나고 느끼게 됩니다.
꽃은 나를 위해 피었고
새들은 나를 위해 노래합니다.
모든 것이 나를 위한 아름다운 풍경 입니다.
청룡산
청룡산에 올랐습니다.
이정표가 서 있고 더 가까워진 넓은 들판이 평화롭게 내려다 보입니다.
엄홍길씨가 그랬지요
“산은 내 생애의 최고의 선물입니다”
자연이란 늘 살아가는 날의 기쁨과 행복입니다.
흐르는 땀이 삶의 힘겨움을 끌어 안게 하고 빈 마음으로 대하는 산하의 수수한 풍경이 작은 행복의 소중함을 일깨어 줍니다.
누군가를 부러워 하고
누군가 나를 부러워 하는게 인생이라 더군요
산은 허망한 욕심들에서 놓여나 스스로 허허로워지는 빈마음을 만들어 줍니다.
낙조대 가는 길
배맨바위 그 아래 서니 그 크기가 훨씬 웅장합니다.
그 옛날 이곳이 바다였고 그리고 이 곳에 배를 맨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나선생님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귀연팀들의 안부와 지난 공백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식사 후에 배맨바위를 내려섰다가 올라 치는 길이 힘에 부쳐 잠시 봉우리에 앉았습니다.
쓴 웃음이 납니다.
거친 산행 길을 포기한 후로 4kg이 불었고 산행력은 눈에 뛰게 약화되었습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니 마눌과 시간을 더 늘리라는 계룡산신령님의 배려(?) 일른지요?
오랜 세월에도 늘 전성기를 누리시는 나선생님은 벌써 휘적휘적 먼저 가십니다.
철계단에서 바라 본 낙조대의 산릉위로 산객들의 모습이 까마득히 보입니다.
낙조대
고창군 아산면과 심원면 경계에 솟은 선운산은 서쪽으로 서해안을 두르고 북쪽으로 변산반도를 바라보고 있다는데
원래 이름은 도솔산이라 합니다.
주변으로 경수산,청룡산 ,구황봉,개이빨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습니다.
멋진 풍경은 언제나 감동 입니다.
세상에 남겨진 또 하나의 멋진 풍경 앞에 섰습니다.
산은 중독 입니다.
늘 예상을 벗어나는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기대
스스로에게 다가가는 조용한 명상 입니다.
우린 그 목을 끌어 안고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중독자의 희열을 느낍니다.
산에서 우리는 기꺼이 자신을 버리고 비우면서 세상을 조롱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이란 세상에 허기지다 모처럼 만난 배부른 오후의 희열 같은 겁니다.
충만함과 기분 좋은 나른함
그저 부러울 것이 없는 세상입니다.
도솔암이 보이는 낙조대에 서면 불국의 평화와 기쁨이 가슴을 채웁니다.
천마봉에서 내려다 보는 도솔암의 풍광과 낙조대에서 서해 바다에 떨어지는 황혼이 선운사 풍경의 백미라 했습니다.
싸움터에 나간 남편을 그리워 하는 백제여인의 소망과 한이 서린 곳이라 합니다.
선운사비에 남겨진 선운사가의 애절한 연모
쓸쓸한 황혼 앞에 서면 상심의 세월을 보내며 눈물짓던 여인의 애달픈 심정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낮의 열정을 잠재우고 조용히 처연한 붉음으로 떨어지는 태양의 모습을 보면 사바세상의 욕심이 사라진다 했지요 .
낙조대의 일몰은 훗날 선운사에 다시 찾아올 이유와 약속으로 다시 남기어 두고 천마봉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천마봉
도솔암이 바라다 보입니다.
암자에서 바라다 보는 풍경 보다 천마봉에서 바라보는 풍경속의 도솔암이 한폭의 그림입니다.
남해의 금산처럼 자연의 정교한 조각미가 느껴지는 천인암 절벽을 끼고 있는 도솔암은 마치 신의 거처인 듯 그 간극의
거리만큼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암자 입니다.
남해 용문사와 철원 심원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기도처에 속한다 합니다.
골짜기를 내리자 꽃무릇 군락들이 나타납니다.
일찍이 그 수많은 붉은 꽃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늘 동백의 선운사였기에 봄과 여름엔 그 땅 아래 숨어 지내다 쓸쓸한 가을에야 상심의 한을 낭자한 선혈의 빛으로
토해내는 그 꽃의 울음을 정말 몰랐습니다.
수 많은 가을날의 문턱에서 그 화려한 꽃들이 피어났을 텐데 요즘에야 갑자기 선운사의 꽃무릇이 인구에 회자됨이
기이 하기도 합니다.
아직 꽃이 핀 동백의 선운사를 보지 못했으니 이렇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이젠 동백의 선운사가 아닌 상사화의
선운사가 더 합당할 지경입니다..
도솔암 마애불 (보물 제 1200호)
검단선사가 도술로 새겼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기도 하는데 미륵불로 추정된다 합니다.
지상 6m 높이에서 책상 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불상의 높이는 5m , 폭은 3m되며 연꽃무늬를 새긴 계단 모양의 받침돌
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머리 위의 구멍은 등불암이라는 누각의 기둥을 세웠던 곳이고 명치 끝에는 검단선사가 써 넣었다는 감실이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배꼽에 들어 있던 신비한 비결이 햇빛을 보는 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는 전설을 들려주는 부처입니다.
전라감사 이서구가 마애불 배꼽 속에서 서기가 뻗치는 것을 보고 비결을 꺼냈는데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는 바람에
혼비백산하여 그냥 집어넣은 채로 회로 봉해버렸다 합니다.
훗날 동학군이 이를 꺼내고
많은 농민들이 동학에 몰려들어 농민전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전해 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려는 새 세상은 오지 않았습니다.
늘 그렇듯 민초를 위한 새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인 모양입니다.
새 세상이 이미 지나 갔는지 아직 오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늘 새 세상을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고 난 심산의 가슴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습니다
선운사 가는 길 내내 꽃무릇이 지천 입니다.
진달래와 철쭉 그리고 오대산 자생식물원에서 벌개미취 벌판에서 만나 군락 이후에 처음 만나는 꽃 군락의 장관 입니다.
한이 서린 붉은 빛은 푸른 수림과 대비되는 강렬한 색감으로 눈길을 이끌어 갑니다.
한처럼 토해내는 붉은 꽃에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슬퍼하는 여인의 애절함이 담겨져 있는듯 합니다.
스님을 사모하던 처녀가 이룰수 없는 사랑을 비관해 휘영청 달 밝은 날 절 마당 한 켠에서
스스로 삶을 포기했고 이듬해 여름 그 처녀의 혼은 그 자리에 진홍색의 탐스런 한 송이
꽃으로 피어 났다는 전설이 전해옵니다.
가을의 길목에서 상사화가 피어 납니다.
평생을 가도 꽃과 잎이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만 하다 시들어 버린다는 비련의 꽃 입니다.
겨울 눈 속에서 난초 같은 잎을 무성히 피워내고 그 잎들은 꽃을 보지 못한 채 기다림에 지쳐 말라 버립니다.
그리고 억수 같은 장마비가 퍼붓고 지나간 9월 쯤 흔적 없는 자취 속에서 꽃대가 오르고 피터지는 붉은 꽃을 피워 냅니다.
꽃은 화사하게 피어나 간절히 잎을 기다리지만 잎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이별초라 불리며 그 꽃말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인 것처럼 지천의 붉은 꽃들은 그리워도 만나지 못하는 슬픈 사랑
입니다.
상사화는 열매를 맺지 못하기에 씨앗이 없다 합니다.
애틋한 미완의 사랑이기에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꽃
마치 전설의 신빙성을 입증이라도 하듯 자연의 조화는 오묘할 따름 입니다.
이별초는 뿌리를 통해 영양번식을 한다 합니다.
서러움으로 삭이느라 음지로 찾아 들어 다시 참았던 울음을 붉은 꽃으로 터뜨립니다.
자세히 보면 꽃무릇은 정말 양지에서 피어나지 않고 누가 일부러 그랬는지 모르지만 일정 이상의 고도로는 군락이 확장되지
않습니다.
먼 발치에서라도 님의 모습을 바라보려는 듯 선운사 가는 길 내내 수림의 그늘에서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슬픈 꽃밭 입니다.
슬픔은 유전된다 했지요
꽃은 붉은 강을 이루었습니다.
선운사를 둘러 흐르던 서러운 강은 점점 넓어져 슬픔의 바다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상사화를 노래한 시인이 있었지요….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와 전혀 무관한 일이다
지나간 바람과 마주하여
나뭇잎 하나 흔들리고
네 보이지 않는 모습에
내 가슴 온통 흔들리어
네 또한 흔들리리라는 착각에
오늘도 나는 너를 생각할 뿐
정말로 내가 널 사랑하는 것은
내 가슴 속이 널 지우는 것이다.
구재기
장사송
장사송이 서 있습니다.
나이 600년 높이 23m 가슴둘레 2.95m 반송(盤松)입니다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다 숨진 여인의 넋이 극락장생 했다는 전설이 적혀 있습니다.
선운사 만세전 과 보물 290호 대웅전
선운사
백제 위덕왕 때 검단선사가 세운 고찰이라 합니다.
번성기엔 89개의 암자와 189건물 , 24토굴이 있었고 3000명의 승려가 정진했던 대가람 이었다 하는데 그 후 폐사가 되어
1기의 석탑만 남았던 것을 1354(공민왕 3년) 효정선사가 중수했다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여러 차례 중수했는데 정유재난으로 본당을 제외하고 모두 타버리고 이후에도 수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절 내에는 선운사 대웅전(보물 290호) 선운사 금동보살좌상(보물제 279호),선운사 지장보살좌상(보물제 280호) 등의 보물
점과 석문사석씨원류(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4호)등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선운사 목어
*지장 보살상
*지장 보살상
관음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1476년 성종 때 만들어 졌는데 조선시대 최고의 조각으로 지옥에서 고생하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보살상으로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보살상이라 합니다.
한 때 불상을 일본인 유력자가 훔쳐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고 불길한 일들이 계속되자 고창 경찰서장에게 소포로 되돌려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집니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절을 세우기전 선운사는 산적과 해적 떼의 소굴이었다 합니다.
검단선사가 소금을 팔러 다니다가 하룻밤을 유하게 되었는데 간밤에 호랑이가 한 마리 내려와서 마당에서 죽는 소동이
있었 습니다.
힘센 도적들이 아무리 애써도 그 호랑이의 시체를 움직일 수 없었는데 검단선사가 한 손으로 호랑이를 가볍게 들어 올렸습니다.
도적들은 검단선사의 도력에 감화되어 개과천선했고 `스님은 그들에게 소금 만드는 법과 종이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서 자립할
수 있게 했다 합니다.
도둑들은 선량한 백성으로 살면서 자신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 준 스님의 음덕을 기리기 위해 “보은염’이라 하여 소금을 바쳤고
마을도 ‘검단’이라 불렀다 전해 집니다.
선운사는 춤추 듯 부드럽게 흘러가는 능선들에 쌓여 있습니다.
앞산과 뒷산의 산세에 조화를 이루기 위해 모든 건물들을 젓가락처럼 길게 배치했다 합니다.
사바세계와 정토세계를 구분짓는 경계인 천왕문을 지나면서 사천왕상이 음녀를 무릎에 깔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못하는 요녀의 기묘한 표정이 압권이라 합니다.
경내에 들어서면 검단선사가 승려들에게 불법을 강론했던 만세루가 있고 빛 바랜 단청의 대웅전이 그 위에 태고의 세월을 이고
서 있습니다.
만세루를 자세히 보면 기둥에서 서까래에 이르기 까지 온전한 것이 없습니다.
모두 토막나고 휘어진 것들이고 작은 것은 꺽쇠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른 법당들을 짓고 남은 자투리로 지어진 까닭이라는데 아무리 보잘것 없고 쓸모없는 나무토막이더라도 사용하는 사람들의
안목과 솜씨에 따라 얼마든지 훌륭한 건축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 입니다.
만물이 다 저마다 태어난 의미가 있고 아무리 못난 중생이라도 부처님의 품안에서는 모두 소중함을 일깨움이 아닐런지요?
수백년을 대웅전을 스쳐간 불자들을 바라 보았을 배롱나무는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대웅전은 보수공사가 한창 입니다.
금동보살좌상(자료사진)
무릎에 깔린 음녀
정와 - 조용한 작은집이란 뜻의 원교 이광사 글 (자료화면)
또 하나의 소중한 문화재로 진입구 부도전의 백파율사 비문이 있었는데 박물관으로 옮겨지고 모조로 대체되었습니다.
고창 무장 출신인 백파(1767~1852)는 선종의 대가인 석파대사의 제자로 12세에 선운사에 출가했다 하는데 백파대사가 입적한 후
1858(철종9년)년 추사 김정희가 쓴 비문 입니다.
힘찬 글씨체가 송곳으로 강판을 뚫는 힘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합니다.
백파선사 비문 (자료화면)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그 외 선운사를 노래한 시들
선운사 '동백꽃' –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사랑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선운산 가을/홍 윤 표
주말에 내가 간 선운산은
미당선생의 얼이 수년이 넘어
동백꽃 단지에 숨어 있었다
팔할이 바람이라며 삶을 깨치던 그의 손짓
이할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니
선운사는 어느새 선운사를 안고 불경을 외운다
선운산을 언제나 단풍을 몰고 올까
붉은 감나무는 홍시가 되었다
와롭고 서러운 선운산의 맥
어디 있을가
안의 oo의 도선암들이 승방을 다스리는 곳
대장금도 여기서 묶으며 뒷 뜰에서
사극을 지었다니 막걸리 서린
육자배기언니에 귀가 서리다
사극을 지었다니
막거리 서린 육자배기 노래에 가슴이 짱하다
빽빽한 도솔암자의 기를 받은 어린이
꿈처럼 예쁘다
선운사 -송 창 식 -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선운사에서 -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 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어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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