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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눌과 백대명산

마눌과 추는 춤 - 관악산(100대 명산 제 10산)

 

 

 

 

 

 

 

10번째 춤은 서울에서 .

형님네가 코엑스에서 기프트 박람회에 참가중이라 기프트 박람회 관람 겸사겸사 서울로 상경하여 관악의 암릉길을 유영하기로 했다.

북한산과 도봉산의 장대한 암릉은 난 벌써 오래 전에 만나 보았지만 마눌은 꼭꼭 숨겨 놓고 훗날의 춤판으로 남기는게 좋을 듯 싶다.

 

전국 어디에 견주어도 째이지 않을 웅장한 암릉미에 압도당하면 어느 날 올라야 할 관악산은 두 명산과 비교되며 평가절하 돨지도

모른다.

 

새벽을 깨웠다.

새벽 4시에 기상하여  도시락을 싸고 행장을 수습한다.

서울 가는 새벽 무궁화 열차는 5시 56 분 발이다,

 

오랜만에 어둠을 가르는 여행길을 떠난다.

열차 안에서는 잠들지 않았다.

신문을 뒤적이면서 밝아진 차장 밖으로 밀려오는 안개를 바라보기도 하고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바라보며 지나간 여행길을 반추하기도

 했다.

 

가끔 혼자 떠난 새벽 여행길에는 가슴속에서 쏴아 바람소리가 났다.

혼자일 때의 그 고독한 느낌이 좋았다.

마치 잊어버린 자신을 찾아 가는 여행길처럼 지금까지 존재는 함몰되어 가고 숨어 지내던 또 다른 자아가 삶의 새로운 기쁨과 조우하는

 설레임으로 들뜨곤 한다.

 

하지만 동행은 늘 나의 존재를 일깨우고야 만다.

그래서 누군가와 동행할 때와 혼자 떠날 때와 느끼는 여행의 맛은 다른 것이다.

함께하는 여행길에서 우리는 어울림의 즐거움 대신 황홀한 고독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도 마눌이란 자신을 가장 닮아가는 분신과도 같아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 번거러움 없이 여행의 자유로움을 훼손하지 않아서

 좋다.

다소 스릴이 반감되거나 마눌이 여행길을 너무 힘들지 않을까 하는 등의 신경을 써야 하지만 동반자의 안정감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늘 살아가는 날의 기분 좋은 변화였다.

 

 

 

 

 

 

 

열차가 10분 즘 연착해서 영등포에는 8시가 좀 넘어서 도착했다.

영등포 역 주변으로는 식사를 할 만한 마땅한 곳이 없다.

아무거나 잘 먹는 나와는 달리 마눌은 음식도 좀 가리고  음식점의 청결도에도 민감한 터라 되는대로 아무 곳 이나 들어 갈 수

 없어 역사 앞 교차로를 건넜다.

교차로를 건너 우측블록이 식당이 많은 곳으로 가서 비교적 깨끗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서 가장 흔히 눈에 뛰는 음식점은 해장국과 뼈다귀탕 집일 듯 싶다.

만만한 게 홍어라는데 정작 홍어집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아마 홍어보다 뼈다귀탕이 더 만만한 모양이다.

 

한국인이 즐겨먹는 음식이란 늘 거기서 거기다.

몇 가지 음식을 나열하다 보면 별 특이한 게 없고 요리의 종류도 쉽게 바닥을 내보인다.

허기사 회식 할 때도 회 아니면 소고기,돼지고기,개고기 중 택일하거나 

조금 더 범위를  넓혀  본들아구찜, 복어, 정도이면 더 이상 들이댈 것도 없다. 

 

늘 역주변의 건물들과 골목은 지저분하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그래서 뜨내기 손님들만 상대하는 역 주변의 여관이나 식당들에 대한 생리적인 거부감이

몸에 배어 본능적으로 역근처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찾게 되는데 사실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시간이 정해진 여행길에 역주변 말고 다른 곳에서 음식을 먹고 돌아오기란 그다지 쉽지가 않다.

그래도 된장국이나 김치찌개를 시키면 음식맛으로 여행길이 기분을 상하는 일은 별로 없는 편이라 김치찌게로  늦은 아침의

허기를 해결 했다.

 

그래서 여행길에서는 미각의 호사도 함께 누릴 수 있는 맛지도를 머리에 두고 가는 것은 여행길을 더욱 즐겁게 하는 방법이 된다.

 

 

 

 

 

 

 

 

 

서울대입구역에서 5515번 버스를 타면 공학관 까지 간다고 했다.

내 실력이 서울대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으니 사십 고개를 한참 넘어 이렇게 관악산을 예정하고 온 오늘에사 서울대는 처음 발을

 들여 놓는다.

 

수 많은 관악산 등산로 가운데 공학관에서 자운암을  거쳐 정상에 올라  연주대와 연주암을 둘러보고  팔봉능선을 타고 내려올 예정이다.

 

종점에서 길 따라 조금 더 직진하면 관악산 오르는 계단길이 있다.

몇몇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 길은 자운암을 거치지 않고 오르는 길이라 하기에 아랫쪽 으로좀더 내려가 공학관 주차장 쪽에서 오르는

길을 들머리로 잡았다.

 

 

 

 

 

 

 

산행일자 : 2007년 9월 8일

산 행 지 : 관악산

산행코스 : 서울대공학관- 자운암 국기봉 -관악산정상-연주암-8봉-안양국기봉

-         안양 자영휴양림 인덕원

    행 : 마눌

    씨 : 맑음 , 시원한 산바람이 청명하고 시계가 좋은 날

 

경유지 별 시간

         

09 :30  서울대 공학관 산행 들머리

09:41   자운암

10:19   제3 왕관바위

10:30   국기봉

11:15~20 관악산 정상(15분 휴식)

11:35    연주암

11:46    연주암 300m dnl (8봉능선 2km 전방)

12:50    안양 쪽 국기봉

13:26    등나무 통로

13:35    소나무 숲 벤치

14:00    관악산 산림욕장

14:07    산림욕장 이정표 (도로와 마주함)

14:35    인덕원 전철역

 

 

울창한 숲의 서늘한 기운이 온 몸으로 전해온다.

어제 까지 비가 와서 도심에서 멀지 않은 이곳의 공기도 맑고 청명한 듯 하다.

 

 

 

 

 

 

 

 

자운암은  몇 분 오르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마치 일반 가정집과도 같다.

입구에 웃음짓는 할아버지 석상이 길손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비행기가 자주 날아 다닌다.

김포에서 비행기가 지나는 길목이라 하는데 대전 촌놈에게는 그마저도 거슬린다.

산은 늘 적막과 고요속에 쌓여 있어야 하는데 서울사람들은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란다.

 

 

 

 

 

 

악산이라 기기묘묘한 바위 들이 많다.

바위지대 중간에 소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내리기도 하고

한 스무명은 족히 식사할 만한 평반 바위도 있고

긴 바위가 길을 대신한 곳도 있다.

 

꼭 그려려고 해서는 아닌데 늘 우리가 가는 길은 인적이 없는 곳이다.

 

 

 

 

 

 

터넷에서 관악산 정상을 언뜻 보았는데 자운암을 거쳐 오르는 길에 맞은편에 철탑이 보이길래 그 곳이 관악산 정상인 줄 알았다.

거기 까지 가려면 산능성이를 휘돌아 내려 다시 한참을 올라 가야 하는데 고도가 올라갈수록 의구심이 더해 간다.

 

 

 

 

 

 

 

3왕관바위 쪽에서야 비로소 우측에 푸른 하늘을 이고 선 관악산의 봉우리가 고압적인 자태를 드러내고 나서야 멀리 보이는 철탑봉이

관악산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공학관을 출발한지 50분 만이다.

 

 

 

 

 

 

 

시계가 트이는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너무 시원하다.

비가오고 불과 일주일 사이에 날씨는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지지난 주에는 홍천 팔봉산에서는 숨막히는 더위와 한바탕 접전을 벌렸었는데

 

 

 

 

 

 

3왕관바위를 지나며 주 능선에 올라서자 인적이 제법 많아진다.

사당 쪽에서 올라오는 능선길과 마주한 것이다.

 

 

 

 

 

국기봉을 거쳐 관음봉 오르는 길은 험한 바위길로 가경의 연속이었다.

천혜의 요새와 같은 바위 길에는 멋진 청솔이 서고 한쪽에는 첩첩의 산과 다른 한 쪽에는 위대한 도시 서울과 한강이 바라다 보인다.

이제 가을이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은 바위장성 길을 가는 내내 따라 다녔다.

 

 

 

 

 

국기봉

 

 

 

 

 

3왕관바위에서 빤히 바라다 보이는 봉우리 앞에 그렇게 웅장한 바위 길과 암릉들이 도열해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 했다.

지난번 팔봉산처럼 관악의 봉우리는 두발로 당당히 입성하려는 인간들의 불경을 허락하지 않고 대자연의 경외와 존경을 표할 것을 엄중히

요구하고 있었다..

 

 

 

 

 

 

 

 

 

 

 

 

 

위대한 도시를 안고 있는 산이라 산정에는 많은 탑과 건물들로 어지러웠다.

철골로 짜여진 헬기장도 정상부 바로 아래 만들어져 있다.

늘 개발로 인한 황페화와 자연보호란 언제나 인간이 골머리를 싸메야 할 어려운 숙제인 셈이다.

 

 

 

 

 

 

 

뒷편 관악산 정상은 너무나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다.

인간이 훼손시킨 도심의 산정에서 약간 불쾌감을 느끼고 난 후 집채만한 바위 위 구름 길에 걸터 앉아 삶의 기쁨을 연주한다.

산정을 오른 사람들의 기쁨이 술렁거리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산바람에 콧구멍이 벌렁거리는 그런 곳이다.

네발로 기어 어렵게 도달한 산정이 배반하지 않고 자연의 위대함과 성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자연과 치열한 싸움에서 언제나 피폐한 채 무릎을 꿇어야 하는 인간들은 오늘 한 없이 온순한 모습으로 대자연의 한 자락에

기대어 환호하며 삶을 기쁨을 노래한다.

가히 도시 가까이에 있는 명산이라 사람도 많다.

 

 

 

 

 

역시 서울 깍정이들은 다르다.

작은 생수 한 통에 2500원 물탄 막걸리 한잔에 3000원을 받는다.

난 모자랄 것 같아 물 한 통을 사고 마눌과 함께 기념으로 물갈비 한대씩을 뜯고 연주암으로 방향을 잡았다.

 

 

 

 

 

 

 

 

 

 

 

내려가면서 연주대에 올라서 있는 응진전(나한전)이 올려다 보인다.

그곳에 또한 미래여래 약사입상이 안치되어 있다 한다.

고려말 그 자리에는 의상대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고려가 망하자 고려의 충신들이 이곳에 모여 살면서 당시 도읍지 송도(개성)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달래던 곳이란 유래에서

 연주대라  이름 붙었다 한다.

패망한 나라를 슬퍼하면서도 비경의 한가운데 터를 잡는 여유와 안목은 잃어버리지  않았던 셈이다.

절세의 풍경과 풍류에 기대어 지난 세월 부귀영화의 아쉬움을 달래려 했던 삶의 마지막 욕심 이었다.

 

아직 갈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정상을 밟고 난 후 너무 싱겁게 마무리될 것 같은 오늘 여행길이 아쉬워 진다.

 

 

 

 

 

 

연주암은 바위산 치고는 안마당이 꽤 넓은 사찰이다.

온통 바위인 산 속에 저렇게 큰 절은 만들어 놓은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신라 문무왕 17년(677)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어 이름을 관악사로 불리었다는 유서 깊은 절이다.

부처님에 귀의하는 길이 재물과는 연관이 없지만 위대한 도읍이 들어설 길지를 미리 헤아린 고승의 선견지명이 돋보이는 곳이었다.

거대한 배후 도시를 기반으로 일찌기 암산에 은거한 연주암은 더 많은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자비를 설파하기 위한 천혜의 요건을

두루 갖추어 수 많은 사람과 넘치는 재물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듯 보였다. 

 

연주암을 오르는 길은 두 코스가 주로 이용된단다.

서울대 정문앞의 관악산 입구를 통하는 길과 과천역에서 시흥향교를 지나 연주암으로 오르는 길이 그 곳이다.

두 길중에서 과천쪽에서 오르는 길이 좀더 편하고 빠르다 한다.

 

우리는 굳이 편한 길을 버리고 어려운 길을 택한 셈이었는데 덕분에 북쪽의 장대한 바위능선을 만날 수 있었으니 아쉬울 것 없는

행로였다.

 

 

 

 

 

 

 

연주암에서 다시 300m 산길을 올라 팔봉능선을 찾아 간다

 

 

 

 

 

 

몇 개의 능선이 흘러 가고 있는데 지도상으로 8봉 능선을 가늠하기기 쉽지 않아 물어물어 찾았는데 서울 사람들이란 자신이

오르는 길만 열심히 올라 능선의 지명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능선에 대해 속 시원한 이야기를 해주지 못한다..

 

 

 

 

 

 

 

 

 

팔봉능선을 가는 중 멋진 절벽난간에서 식사를 했다.

계절의 변화와 절기란 참으로 오묘해서 거칠 것 없는 바위 위에서 맞는 산바람은 서늘하다 못해 한기가 느껴진다.

8봉에서 좌측 능선을 타고 기암으로 이루어진 여러 봉우리들을 잘 내려 왔는데 지도에 없는 안양 쪽 국기봉으로 길을 잡다 보니

 팔봉능선 길을 지나쳐 버렸다.

국기봉에서 바라보니 안양 쪽 관양동 길의 암릉도 조화롭고 내려가기가 더 수월해 보여 팔봉능선을 버리고 안양 쪽으로 길을  잡았다.

아주 먼 거리로 돌아 내리는 셈이다.

 

 

 

 

 

 

 

 

 

 

 

 

 

팔봉능선 위험한 하산 길을 걱정했는데 완만하게 고도를 낮춰가는 안양 관양동 길은 그다지 거칠지 않았고 안양까지 이어지는 길은 그

렇게 멀지 않았다.

 

바위 길을 30여분 내려오자 부드러운 등로의 소나무 숲길이 나타난다.

발이 편해지고 내려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내려가는 길 소나무 숲 그늘 벤치에 앉아 뻐근한 하루를 내려 놓는다.

솔 숲을 소리 내며 불어온 바람을 목에 감고 처음 걸어 보는 이향의 산길에서 주어 담았던 작은 기쁨들을 뒤적여 본다.

 

평화로운 작은 일상들이 모여 행복을 만들고 그 행복들이 살만한 인생임을 깨우쳐 준다.

솔바람 한줄기에서 느껴지는 소박한 삶의 기쁨을 알 수 있다면 인생은 욕심 부릴 것 없는 허허로운 길이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것인지도 모른다.

신은 더 갖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체념과 자기만족을 주었다.

많이 갖지 못해도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보다 더 풍요롭고 충만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늘 자연 한가운데 서면 넘치는 것과 부족한 것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소유보다 더 충만한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

 

공수레 공수거

바삐 가는 짧은 인생길에 삶의 진정성을 흐리게 하는 그 부질없는 욕심 때문에 우린 늘 삶에 허기져 한다.

 

허리를 다치고 나서는 거칠 것 없이 산야를 종횡하던 그날들이 가장 행복한 날이었음을 알았다.

 

노랫가사처럼 잘난 사람 잘난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대로 산다…”

인생이란 고작 100년이 안되어 수렴이 되고 만다.

지지고 뽁고 폼잡고 무게 잡아도 백년도 안되어 한줌 흙으로 가버리는 거다.

 

세월이 만들어 주는 평준화를 아는가?.

 

40대는 미모의 평준화가 이루어지고
50
대는 지성의 평준화가 이루어지며
60
대는 물질의 평준화가 이루어지며
70
대는 정신의 평준화가 이루어지며
80
대는 목숨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

흐르는 세월은 많은 바꾸어 놓는다.

30대까지는 세상의 모든 것이 불공평하고 사람마다 높은 산과 계곡처럼 차이가 나지만
나이가 들면서 산은 낮아지고 계곡은 높아져 이런 저런 모두가 비슷해진다..

 

많이 가지고 있다고 가진 사람보다 행복할까?

곳간에 바리바리 가두어 금은보화로 무얼 있을까?

자고 일어나면 눈은 침침하고 다리는 후들거리는데

이빨은 흔들 흔들하고 비오면 뼈마디가 쑤시는데….

 

행복이란 놈은 자기만족을 따라 다닌다.

늙어 어머님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아버님처럼….

 

쥐뿔도 없는 놈이 빛에서 죽도록 일하다가  원두막에 벌렁 드러누워

얼음장 샘물에 시아시된 수박 한덩이 베어물고 시원한 들바람에 세상 부러운게

없다고 말하면 당할 재간이 없을 게다.

 

그냥 조용히 생각해 보자

정말 세상을 인간들이 이렇게 만들었지만

오늘날의 우리들처럼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이유가 굳이 있을까?

그냥 개처럼 어슬렁 거리면 어떻구

하이애나 처럼 쑤시고 돌아 다니면 어떤가?

 

세상이란 넘이 얼마나 삐딱한 놈인가?

욕심 부린다고 되는 본적 있나?

세상이란 어깃장이 얼마나 심한지 손에 움키려고 하면 끝까지 아득바득 진을 빼버리기 일쑤다..

넘은 못이기는 그냥 냅둬 버리는게 상책이다.

그러고 세상에 무관심하고 가슴이 울리는 대로 살아가다 보면 세월이란 놈이 먼저 포기해 버린다.

우리의 마음 하나로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냅싸둬 버려라!

안되면 내려 놓아라

마음에서 세상을 비워 버리는 거지

불혹을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면 이젠 세상이 이치를 깨달을 때쯤 아닌가?.

 

 

 

친구의 결혼 청첩장이 날아들다가

어느 날부터 친구아버님의 부고가 날아 들고

친구들 아들 딸 결혼 소식이 들려온다.

머지 않아

하나 둘 먼저 떠나는 놈들의 빈소에서 육계장을 한 그릇 비워내며

가슴에 자꾸 바람구멍을 내어야 한다.

 

세월이 달의 귀퉁이를 갉아 먹 듯

그것이 발걸음이 점점 빨라 지는 우리 인생의 모습이다.

 

한적한 소나무 길의 부질 없는 단상 이었다.

 

 

 

 

 

 

 

 

우리는 관양동 현대아파트 까지 가서 사당동 가는 버스를 타는 대신에 안양 휴양림을 관통하는 도로를 넘어 인덕원으로 갔다.

 

 

인덕원 가는 길에는 폐가가 즐비하다.

아마도 재개발을 하는지 모든 건물에서 사람들은 이주했고 방치된 건물들은 을씨년스러웠다.

 

바보 같은 꿩한마리가 날라가다 이층 모텔 창에 부딪혀 떨어졌다.

한참을 꿩기척이 없다가 아래로 뛰어내려 왔는데 아직 정신이 없는지 날지도 못하고 푸덕 거리며 풀 숲에 앉았다.

무더운 날에 꿩을 잡을 거라고 풀숲에서 씨름을 한다.

그거 잡으며 또 어쩔 거라고 정신이 나가 아직 날지 못하는 그넘을 씩씩거리며 쫓아가는 나도 정신 없는 놈이긴 마찬가지다

 

인덕원을 나가는 데도 한참 걸리고 큰길에서 전철역 까지도 제법 걸어야 했다.

 

서울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싫다.

서초동 남부터미날 근처 동생 사무실 가는데도 나는 땀내 풍기며 사람들 사이에서 비비적 거려야 했다.

대전에서는 전철을 타면 널널하게 앉아서 다니는데.

 

어쨌든 마눌과 나는 관악무도장에서 멋지게 한바탕 춤을 추고 서울구경 두루하면서 인덕원으로 내려왔다.

지하철 몇 정거장 거리를 5시간 정도 걸었고 동생의 사무실 구경도 하고 기프트 박람회도 관람했다.

긴 여행길이라 마눌이 좀 힘들어하는 눈치인데 시간이 없어 청계천을 둘러보지 못한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네와 영태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대전에 내려오니 11가 넘어 버렸다.

춤바람 나서 가출한 지 18시간 만의 귀가였다.

 

 

 

 

 

 

 

 

서울 코액스 맞은편 봉은사 - 도심한가운데 있는 이상한 모습의  큰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