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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 트랜드

영화 불법 다운로드의 사회학

최근 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한국의 영화 관객은 극장에서 한 달 평균 1.99편의 영화를 보는 동안 불법 다운로드로 한 달 평균 3.08편의 영화를 본다고 한다. 또 응답자의 절반 정도(47%)가 온라인 다운로드를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반면에 온라인 다운로드를 유료화한다면 38.7%가 받아들이겠다고 대답했다. 그중 반 정도가 500∼1000원의 요금을 치를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 결과만 본다면 온라인 다운로드에 관한 논쟁이 사회적으로 뜨거운 것에 비해 대중의 태도는 오히려 뜨뜻미지근한 것처럼 느껴진다. 대중이 법을 지키려는 뜨거운 의지가 있는 것도, 영화 생산자의 창조적 노동을 존중하려는 문화의식이 투철한 것도 아니지만, 무조건 공짜로 영화를 보겠다는 ‘뻔뻔한’ 논리를 주장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영화 불법 다운로드 현상은 개인의 도덕적 선택 문제이기보다는 문화향유에 대한 한국사회의 정서구조의 일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른바 오늘날 대한한국을 이룬 한국인의 끈질긴 정서, 즉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고야 마는 악착스러움이 온라인 공간을 장악했을 수 있다. 또 서로 공유하고 싶어하는 한국인의 ‘정’과 ‘후한 인심’이 네티즌의 선물경제 심리와 결합해 자신이 가진 파일을 남에게 베풀어주지 않고는 못 배기는 P2P ‘미풍양속’을 낳았을 수 있다.

 한편 다운로드는 한국의 초고속 광대역 인터넷 인프라 덕분에 가능할 수 있었다. 장편 영화를 수분 내에 다운로드할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그리 흔하지 않다. 불법 다운로드 문화는 첨단 테크놀로지 시스템과 거대 미디어산업체가 지배하는 문화공간을 대중이 ‘약간’ 죄스러워하며 즐길 수 있는 일탈행위로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다.

 또 한국 대중문화의 다양한 영역이 ‘방’이라는 공간 형태로 향유되고 있음을 상기해 보자. PC방·노래방·찜질방. 이제는 ‘극방’의 문화로 이어지고 있다. 극장의 통제된 시·공간을 벗어나 방에서 혼자 영화에 빠져드는 것이다.

 왜 우리는 (실상 다소 기형적이라 할 수 있는) 영화 불법 다운로드를 즐기는가? 자신의 시·공간 질서를 자유롭게 누리고 싶어서? 현실 사회가 억압적이고 통제적일수록 사람들은 나만의 방을 추구한다. 아니나 다를까, 앞서 언급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대다수가 ‘내가 편할 때 볼 수 있어서’(61.9%), ‘혼자 보기 편해서’(11.9%)라고 말한 반면에 ‘무료 혹은 저렴해서’라고 응답한 사람은 19.2%에 불과했다. 시·공간적인 자유를 누리려는 욕망이 경제적 요인보다 더 크다는 뜻이다.

 콘텐츠가 다양해서? 그도 그럴 것이 열 개 이상의 스크린을 보유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와 한국판 준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서너 편이 상영되는 일이 빈번한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영화를 보려면 우리는 온라인 세계를 찾을 수밖에 없다. 합법 공간이 빈곤할수록 불법 공간이 번성한다.

 문화강국 한국이라는 슬로건이 표방하듯 한국민의 영화 향유에 대한 열망이 증폭했기 때문에? 박물관·갤러리·공연장, 심지어 그저 산책을 위한 공원마저 문화소비시장으로 광폭하게 변모하는 현재 상황에서 대중이 그나마 자유롭게 접근 가능한 거의 유일한 공간은 가상공간이다. 문화소비의 욕구는 팽창했지만 어디서 어떻게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성찰은 충분히 무르익지 못했다. 현실이 각박하고 경쟁적일수록 생산자와 향유자가 서로의 책임과 의무를 존중하고 준수하고자 하는 예의가 싹틀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든다.

 세계의 다양한 표상을 접하고 느끼는 것이 문화적 가치의 본질이라면 법적·기술적·산업적 제도는 시민으로 하여금 그 문화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제공돼야 하는 도구적 가치로서 중요하다. 영화 불법 다운로드는 그런 본질적 가치와 도구적 가치가 상실되고 때로는 역전된 사회에 대한 대중적 반향인 것이다.

◆김예란 한림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yeran@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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