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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눌과 백대명산

마눌과 추는 춤 _ 천태산 (100대명산 제 12산)

 

 

 

 

 

 

날씨가 좋은 날.

화창한 날에 바람도 좋다.

모처럼 좋은 친구들과의 산행이다.

 

 

천태산을 가본지는 참으로 오래되었다.

2005년 4월 황사 타고 전해 온 천태산 화재 소식

100만평이 넘는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가슴이 무척 쓰라렸는데

벌써 2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세월은 그런 거다

 

아직 까마득하게 남았다던 추석명절이 시나브로 다가오고

그 긴 명절연휴가 훌쩍 지나 버리고

이젠 또 한 해의 마무리를 의식하며 사업계획을 잡고 있는데

어차피 세월은 또 강물처럼 도도하게 흘러갈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결혼기념일에 서우 친구들과 서해안 여행을 했었는데 이젠 이명박씨가 경선에서

승리하고 다시 선거철이 돌아와 나라가 소란스럽다.

벌써 오년이란 시간이 세월에 퇴적된 것이다.

얼마간 지나고 나면 5년쯤 세월은 별다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래 늘 자국은 남아 있다. 산불이 지나간 산등성이처럼…”

조금씩 세어가는 머리칼

조금씩 벌어지는 이빨의 틈

다친 팔과 허리

결국 무언가는 세월에 부질 없이 사라지고 허물어 진다.

 

그 세월 속에서 조선이 허물어지고 대한제국이 허물어지고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닫히는 것이다.

하물며 한 개인의 삶이란 세월의 바람에 날리는 작은 먼지 하나쯤일까?

 

 

 

 

 

 

 

 

 

 

 

 

 

 

 

그래도 여기엔 장구한 세월이 있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긴 세월의 풍상을 바라보았다는 것 만으로도 경의를 표해야 할 한 나무가 있다.

 

오랜 세월 흘러 내린 가지는 다시 땅에 닿아 새로운 생명으로 피어나고 무성한 잎과 수 많은 열매는  먼 백악기에서

이어 온 강인한 생을 찬미하고 있다.

조선왕조의 영고성쇠를 지켜 볼 만한 세월을 보낸 나무

천연기념물 제 233호 1000년 수령을 넘기며 산과 절을 지켜 온 나무다.

 

 

 

 

 

 

 

 

 

 

 

 

 

 

 

 

 

 

 

마눌과 추는 100대 명산 춤 12번 째

산행일 : 2007년 9월 29일

산행지 : 충북 영동군 천태산

  행 : 마눌과 좋은 친구들

  씨 : 드맑고 가을 바람 솔솔

 

경유지별 시간

 

13:30 : 대전출발

14:40 : 주차장 출발

14;55 : 삼단폭포(용추폭포)

15;00 : 영국사

15:17 : 전망바위

15;30 : 75m 암벽 (정상 650m전방)

16:00 : 능선

16:08 : 정상

16:37 : D코스 하산길 고래등 바위

16;45 : 채석장이 보이는 전망바위

17:09 : 영국사

17:30 : 다시 주차장

 

 

 

산이 다 그렇긴 하지만

사람 사는 이 땅이란 다 길지가 따로 있는 법인지

천태산에 들면 유난히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천태산은 4개의 등산로가 있다.

하지만 천태산의 유명산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A 코스의 걸출한 풍광 때문일 터 혹시 천태산에 들면

 A코스로 정상을 등정하고  D코스로 내려올 일이다.

A코스는 암벽코스로 다소 위험하다 겁을 주긴 하는데 로프에 매달려 자신의 체중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팔

 힘을 가지고 있으면 충분하다.

사고란 늘상 사고가 전혀 날 만한 장소가 아닌 곳에서 발생한다.

사람들이 으례 방심하고 긴장의 끈을 늦추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암벽 타는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A코스 75M암벽에서 깝죽거릴 일 없을 테니 부디 엉뚱한 곳으로 돌아가지 말고

 정면돌파 하시길..

 

A코스는 정상이 1370M

정상 200M아래 능선 까지 계속되는 암릉길의 연속이다.

정상을 900여 미터 남기고 오른 바위 끝부분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바위에 오르니 시원한 가을 바람은

포물선을 그리며 온 몸을 휘감는다.

그 아래 바라보이는 산사면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가는 길

흙이란 모두 씻겨 내려간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고 해사한 솔잎을 피워내는 청솔은 감동이다.

조망 좋고 하늘이 푸르른 하늘 아래 바람 좋은 날

우리는 히히덕 거리며 아이들처럼 암릉에서 장난을 쳤다.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 한가로운 시간들이 좋지 않은가?

우리는 오후에 대전을 출발하고도 사진을 찍으며 그렇게 여유롭게 산에 올랐다.

우리 게으른 김이사만 점심을 생략하고 2시간 마라톤을 한 후 천태산 압벽에 붙은 탓에 영 힘을 못쓰고 빌빌거린다. 

 

 

다른 길은 누구나 다 갈만하고 정상 600여 미터 남긴 곳에서 마주하는 75M 암벽이 압권이다.

처음엔 기 싸움인데 막상 그 앞에 서면 많은 사람들이 그 당당한 암벽의 기세에 눌려 전전긍긍 하게 된다.

배에 잔뜩 힘을 주고 로프를 잡아라!

사실 발은 바위 돌출부분에 의지하며 로프를 잡고 올라가는 것은 그다지 힘들지 않는 법인데 곳추선 바위의 위용과

상상을 통한 불안한 고도감이 꽁지를 내리게 할 뿐이다.

막상 바위에 올라서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하고 색다른 경험이 엔드로핀을 팍팍 돌게 할 것이다.

 

 

김사장은 벌써 암벽을 타고 정상으로 가버렸고.

마눌과 김이사는  벌써 자신의 상대가 아님을 알아 차리고 100M 더 먼거리를 둘러가는 우회로를 택했다.

잠시 망설이던 성박사는 역시 몸조심하는게 상책이라 생각했는지 우회로를 따라 간다.

 

아무도 없는 등로를 오르는 길은 호젓하다.

로프와 바위에 기대어 바라보는 평화로운 세상의 풍경은 암릉길의 스릴과 수직 상승의 통쾌함이 보태어져 너무

후련하다

 

능선길에 올라서면 다시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의 언덕을 올라 200M 쯤 가야 정상이 선다.

천태산 정상은 제원면과 양산면을 경계하는 지점으로 조망은 그다지 좋지 않다.

서쪽으로 서대산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성주산과 그너머 멀리 덕유산이 조망된다.

 

누군가 노산의 시가 있었다고 했는데.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불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그래 인생 뭐 특별할 거 있나?

산길에 많은 짐 내려 놓고 근심일랑 소나무에 걸어두고

그렇게 둥글둥글 살아가면 되지.

 

 

 

 

 

 

 

 

 

 

 

 

 

 

 

 

 

 

 

 

 

 

 

 

 

 

 

 

 

 

 

 

 

하산길 역시 아기자기한 암릉길이다.

굽이굽이 마다 청솔이 푸르고 바람이 시원하다.

예상했던 것처럼 화재의 상처는 쓰라렸다.

자연 속에서 오랜 세월 소박한 삶을 살아가던 수 많은 나무들은 경솔한 인간들 때문에 더 이상 잎새를 피워내지

 못한 채 장승처럼 그 자리에 서서 푸른 하늘을 서럽게 바라보고 있다.

대자연 속에서 늘 인간은 파괴자의 자리를 고수하고 견디다 못한 자연은 응징자로 나선다.

능선 길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산릉 귀퉁이의 채석장이 흉물스러워 보인다.

그것 역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자연 속의 폐허이다.

 

산을 돌아 다니면 자꾸 걱정스러워 진다.

몇 년 후 다시 찾은 산들은 늘 그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주변의 음식점은 더 늘어 나고 등산로 주변은 나날이 황폐해 간다.

오지까지 매끄러운 포장도로가 깔리고 재정에 골머리를 앓는 지자체는 경쟁적으로 수려한 산들 주변을 들쑤셔

놓는다.

 

게다가 등산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과 더불어 소요하는 시간이 더 필요해지고

갈 곳이 마땅하지 않아 넘쳐나는 사람들은 죄 산으로 간다.

그래 작은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슴에 쌓인 한과 상처가 너무 많아 상처받은 가슴을 허물어 낼 곳이

필요하다.

산 말고 딱히 만만한 곳이 없어 사람들은 산으로 가고 산은 그 발아래 유린되고 황폐해진다.

 

인간의 욕심이란  한이 없고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권에 있지 않은 것들을 소홀하게 대하는데 늘 익숙해 왔다.

더불어 사는 세상과 소중한 자연을 망각한 채 그저 먹고 즐기는 어울림을 위해 산에 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 지니

앞으로 우리의 금수강산이 그 수려함을 얼마나 더 보존 할 수 있을지 자못 걱정스럽다.

우린 점점 쉽게 자연을 대하는 대신 그 전처럼 대자연 한 가운데서 편안한 마음을 간직하지못 할지도 모른다.

 

 

안타까움과 아쉬운 마음으로 영국사 코 앞까지 닥쳤던 화재의 길을 따라 영국사로 돌아 왔다.

대웅전에 사람들이 소란스러워 부처님께 예를 올리지 못한 채 옛날의 기억으로 그저 잠시 우울해진 마음을 추스리고

하산의 길을 잡았다.

 

오후의 산행이라 길엔 벌써 땅거미가 조용히 따라오고 술렁임과 흥청임을 모두 싣고 차들이 떠나 버린 쾡한 주차장

한 켠에서 파전을 앞에 두고 친구들과 술 한잔 친다.

가까이 있어서 좋은 산이다.

점심 먹고 친구들과 만나 한 바퀴 돌아 내려와서 이렇게 술 한잔 앞에 놓으면 산다는 게 단순해지는 그런 좋은 산이다.

 

좋은 친구들아마눌아

건강해라

머지 않아 저 산에 오르지 못할 날이 잠깐일 테니

세상의 아름다움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우리의 기력이 쇠잔해지기 전에

철 따라 풍경 좋은 심산의 유곡에서 노닐며 우리의 우정과 사랑을 돈독히 하며 그렇게 늙어가가세나

 

 

 

 

 

 

 

 

 

 

 

 

 

 

 

 

 

영국사

신라 문무완 8년 원각대사가 창건하고 원래 만월사라 불렸다는데 오지의 산골이라 역사적으로 피난처로 많이 활용

되었다.

신라 효소왕이 육궁백관을 이끌고 옥새봉과 육조골로 피난했다는 전설이 있고 고려 공민왕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영국사로  은신하신 후  국태민안을 기원하여 영국사로 개칭했다 전해진다.

그런 연유로 지난 2004년 천태산 화재 때도 불길이 법접하지 못했나 보다.

 

규모가 작은 절이지만 보물이 4점 전해진다.

보물제 352호 영국사 부도

보물제 533호 삼층석탑

보물제 534호 원각국사비

보물제 535호 망향봉 3층석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