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조선블로그 whddhr1 '문화재 건축 과학으로 사랑하기'
중원 미륵리사지를 다녀왔습니다.
지리에 약한 약점이 딱 걸렸답니다. T.T 처음에 안내판을 보고는 가마득한... 언젠가 교과서에서 본-지금은 보존 공사(?!)중인- 익산 미륵사지 탑을 보러 가는 줄 알았다는 거 아닙니까...끙~ -.-; (흠... 이것도 언젠가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륵리사지는 지릅재(鷄立嶺, 麻骨岾), 포암산(布巖山), 부봉(婦峰;主屹山의 지맥), 하늘재(寒暄嶺)에 둘러싸인 분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인근 사람들은 이 분지를 미륵리라 통칭하고 있습니다. 문헌상으로 보아 지릅재는 신라 아달라니사금(阿達羅尼師今)3년(156년)에 개척되었고요, 삼국시대에서 고려 초에 이르는 시기 교통의 요지로써 각 세력들의 각축장이기도 하였답니다.
이 곳에 미륵대원지(彌勒大院址)라고도 하는 석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석굴 사원터가 있습니다.
석굴을 금당으로 한, 북향을 하고 있는 특이한 형식을 한 유일한 유적으로 유명합니다. 이 절에 얽힌 전설로는 신라 마의태자가 나라가 망함에 한을 품고 금강산을 가던 길에 누이인 덕주공주는 월악산 덕주사를 창건하여 남향한 암벽에 마애불을 조성하였고, 태자는 이 곳에 석굴을 창건하고 불상을 북쪽으로 두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석불입상이 서 있고,
그 앞으로 역시 같은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여 지는 8각 석등이 있고 석등의 전면에는 미륵리 5층석탑으로
알려진 석탑이 1기가 존재하는 단탑가람(사원)배치의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길게 구성되어 있는 가람을 잘 보면, 중심 축선상에 석실 안의 본존불-팔각석등-오층석탑-돌거북-(그리고 절터 입구의 당간지주)가 놓여 있는데, 본존불과 석등까지는 90척, 석탑까지는 150척, 돌 거북까지는 270척, 당간지주까지 450척으로, 30척의 기본 모듈의 비례가 있다고 합니다.
미륵리사지의 특징은 본당의 모습입니다. 전면인 북쪽은 열려져 있고, 동서남쪽 3면을 석축으로 쌓아 석실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키가 10.6 m의 거대한 불상이 서있습니다. 이 석축은 인공적으로 정교하게 축조를 했고, 지금은 없지만 그 위를 목조 지붕으로 덮었었답니다.
▣ 미륵리 석불입상(彌勒里石佛立像)
지정번호 : 보물 96호
시 대 : 고려시대
고려 초기 이 부근에서 많이 만들어진 일련의 커다란 불상들과 양식적 특징을 같이하는 석불입상이다. 모두 5개의 돌을 이용하여 불상을 만들고 1개의 얇은 돌로써 갓을 삼았다. 둥근 얼굴에 활모양의 눈썹, 긴 살구씨 모양의 눈, 넓적한 코, 두터운 입술 등은 고려 초기 커다란 불상의 지방화된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신체는 단순한 옷주름의 표현이라든가 구슬같은 것을 잡고 있는 손의 묘사 등에서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간략함을 느낄 수 있다.
미륵여래(彌勒如來)로 보여지는데, 재미있는 것은 머리에 쓴 갓과 몸은 모두 수분을 좋아하는 이끼류에 의한 세월의 훈장(?!)을 갖고 있는 데 비해 얼굴만은 희게 빛나고 있습니다. 이는 수분의 영향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는 머리의 갓이 막아 주고,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수분은 위로 충분히 올라오기 어렵고, 흡수된 물은 공기 중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이끼가 서식하기 어려운 조건이 되어, 영험한 부처님의 흰 얼굴을 갖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참, 글쿠, 예불을 드리고 계시는 스님 옆의 흰 개 보이시죠? 자세(?!)가 바뀌기는 해도, 끝까지 스님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역쉬, 개는 영물이여~ ㅋㅋㅋ
눈에 보이는 석실 벽 뒤에는 또 하나의 석축이 있습니다. 일단 견고한 구조용 석축을 쌓고 그 뒤에 흙을 채운 뒤, 가공한 석재들을 정교하게 짜 올려서 석실의 내부를 마감했습니다. 현재는 거의 다 파손되었지만, 내부의 석벽은 상하 두 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아래 위 두 줄로 감실을 만들어 여래좌상·삼불좌상 등 불상 조각들을 안치했던 흔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석굴 옆에는 상류에서 거의 직선으로 내려오는 개울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석굴 위 60 m부근에서 휘어지면서 석굴 옆을 통과하고, 그 아래 경내까지는 직선으로 내려오는데 이는 인공 석축을 둘러서 석불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를 옆으로 바꾼 것이라고 합니다. 신앙적 의미로 물이 필요했든, 자연적인 개울 위에 석굴을 세웠든, 문제는 석굴 내부에 생기는 습기는 석굴을 유지 보존하는 데 매우 치명적입니다.
석굴을 올리는 데 사용된 석재의 특성 또한 보존에 어려움을 주고 있는 구상절리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끝이 둥글게 떨어지는 특징으로 많은 석축의 돌 끝이 둥근 모습입니다.
구상절리되어 둥글게 된 석축과 구상절리되는 모습
미륵대원이 말짱하게 단장되고 혹시라도 복원되기를 나는 원치 않는다. 단지 지금의 상태라도 철저하게 보존되길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더 이상의 파괴와 훼손을 막아야 한다. 지금의 상태로도 충분히 황량한 폐허이고 파괴될 만큼 되었기 때문이다. 영원히 이정도의 폐허이기를 바란다. -김봉렬의 한국건축이야기 2중에서
현재 미륵리사지에서는 세계사라는 이름으로 법당 건축이 한창이었습니다.
남아 있는 문화재를 현재 모습으로만 보존해야한다는 의견과
지금은 훼손되었지만 예전 모습으로 정확하게 고증을 통해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
그리고
옛 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미래를 향한 새로운 문화재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 등
문화재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에 대해서, 찬반이나 가부를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모두 우리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하고, 자긍심을 갖고 있는 마음으로 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남아 있는 문화재를 보존해야 하는 데는 이견이 없겠죠?
현재 석굴 뒤쪽에 분석기기를 설치하여 석굴의 주위 환경 조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시간에 따른 석재의 박리 정도를 측정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석재의 벌어진 틈을 측정해서 풍화 정도를 연구하는 데 사용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조금씩...
풍화가 되는 이유를 알아가고,
이에 맞춰 보존을 계획하고
우리의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들이 있답니다.^^
그리고 끝으로 툴툴 한마디...
바닥이... 바닥이... 온통 누더기(?!)였습니다.
오래전에는 흙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비가 계속 내리고 흙이 쓸리고 하다보니, 콘크리트(?!)로 땅을 덮은 거 같습니다. 그런데 보수 공사를 해야 했는지... 온통 여기저기 기운(?!) 흔적들이... 거슬립니다. 자연스러움을 보고 싶습니다. 조금은 더 정성을 보고 싶습니다. 욕심일까요?
김봉렬의 한국건축이야기 2편, 돌베개
네이버 백과사전, 지도
문화재, 건축, 과학으로 사랑하기
덤으로
▣ 미륵리오층석탑 (槐山彌勒里五層石塔)
지정번호 : 보물 95호
소 재 지 :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56
시 대 : 고려시대
이 석탑은 기단부(基壇部)의 아래부분이 땅 속에 파묻혀 있어서, 그 구조가 어떤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 드러난 부분은 자연석에 가까운 네모난 돌로 특별하게 장식을 하지 않았으며, 그 위로 기단의 맨윗돌이 올려져있다. 탑신(塔身)은 1층 지붕돌이 2장일 뿐 몸돌이나 다른 지붕돌은 모두 1장의 돌로 되어 있다. 각 층의 몸돌에는 몸돌의 넓이에 비하여 좁은 기둥을 모서리에 새겼다. 지붕돌은 급격하게 좁아져 석탑 전체의 균형과 미관을 손상시키고 있다. 지붕 밑면의 받침은 5단이지만 추녀가 짧아서 6단인 것처럼 보인다. 처마는 수평이고 지붕돌의 경사는 매우 급한데 귀퉁이의 치켜올림은 거의 없는 편이다.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남아 있는데, 노반은 6층 지붕돌로 보일 만큼 큼직하고, 복발은 반원 모양이다. 정상에는 머리장식의 중심을 지탱하기 위해 세운 긴 쇠꼬챙이모양의 찰간(擦竿)이 남아있다.5단의 지붕돌 밑면받침과 직선의 처마는 신라시대 석탑의 양식을 따른 것인데, 지붕돌의 급경사와 형식적인 기둥새김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워진 탑으로 보인다.
▣ 미륵리 석등 (中原彌勒里石燈)
지정번호 : 시도유형문화재 19호
소 재 지 :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56
각 부분이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상·중·하로 이루어진 3단의 받침을 마련하여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올린 후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바닥돌과 아래받침돌은 한 돌로 이루어졌으며,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둘렀다. 가운데기둥은 적당한 높이에 간결한 모습이다. 윗받침돌에는 아래받침돌과 대칭되는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화사석은 불빛이 퍼지도록 4면에 창을 내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려졌다. 꼭대기에는 8각의 낮은 받침 위에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얹어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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