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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 트랜드

글로벌 지식근로자의 조건

 산업사회에서 지식기반 사회로의 전환(paradigm shift)이 요즘 우리 사회의 메가 트렌드다. 산업사회가 자본과 자원에 기반을 둔 제조업 위주의 사회시스템이라면, 지식기반 사회는 지식의 생산·유통·분배 활동에 기반을 둔 사회시스템이라 하겠다.

 지식을 생산·유통·분배하는 주체는 인간이다. 기업이나 국가의 경쟁력은 유능한 핵심 인적자원의 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 지식기반 사회의 핵심 인적자원은 바로 ‘글로벌 지식근로자’라 할 수 있다.

 ‘글로벌 지식근로자’란 피터 드러커가 명명한 ‘지식근로자’에 ‘글로벌’이란 수식어를 덧붙인 개념이다. 즉, 글로벌 역량을 갖춘 ‘지식근로자’란 뜻이다. ‘글로벌 지식근로자’의 조건으로는 창의력을 비롯, 전문성·개방성·도덕성 및 미래 예측 능력 등 여러 가지를 열거할 수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외국어 구사 능력만 말하고자 한다.

 정보통신부에 몸담던 시절, 파견 형식으로 단일 언어국가인 미국과 태국뿐 아니라 다언어 국가인 스위스·벨기에 등지의 한국대사관과 국제기구, 다국적기업 등에 1∼3년씩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 느낀 점이 있다면 바로 다양한 외국어 구사 능력의 중요성이다.

 유럽에서는 다언어 국가인 스위스와 벨기에뿐만 아니라 단일언어 국가인 다른 나라에서도 보통 3개 국어 이상을 구사할 줄 알아야 취업이 가능하다. 문화적 자부심이 강해 영어가 잘 통하지 않던 프랑스에서도 최근에는 영어를 잘해야 취업이 용이할 정도로 변했다.

 영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계 전자상거래의 96%가 영어로 소통되고 있으며, 인터넷 정보의 80%가 영어로 작성된다. 앞으로 지식기반 사회가 고도화되면 될수록 영어의 비중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수출 시장이 점차 다변화돼 가면서 비영어권 국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제2 외국어 구사능력도 글로벌 지식근로자의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제2 외국어의 중요도는 해당 시장의 크기와 발전가능성 등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 단계를 보면 잘 나타난다. 최우선 공략 대상은 중국과 미국·유럽 등 규모가 큰 시장이다. 중국어와 불어·독일어 등이 영어에 이은 제2 외국어로 부상했다. 그 다음으로 고려되는 지역은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은 성장 시장이다. 동남아 회교권 국가를 비롯해 중동시장과 중남미 등이 대상이다. 또 장기적으로는 아프리카도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제2 외국어 교육정책도 이 같은 해외시장 다변화와 연계해 마련해야 한다. 특히 새로운 성장시장으로 떠오른 지역의 언어인 스페인어와 아랍어, 러시아어 등에 대한 교육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이미 글로벌 시대로의 진입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한국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세계화를 이끌 핵심 인재들에 대한 다국어 구사 능력 배양이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그동안 만나왔던 한국인 주재원들의 공통된 의견도 한국인이 ‘글로벌 지식근로자’가 되기 위해서는 외국어 구사능력(특히 영어)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 조건이 붙는다. 영어를 비롯한 제2 외국어 구사 능력을 배양하기에 앞서 반드시 한국어를 제대로 배워둬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에 장기간 거주한 한국인과 이들의 2∼3세 가운데 외국어는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반면에 한국어를 제대로 못 해 제대로 된 인재로 양성할 수 없는 사례가 많은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언어는 그 민족의 고유 문화다. 반드시 지키고 계승발전시켜야 할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은 한국어를 고유 언어로 쓰고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아무리 영어가 세계적인 주언어로 광범위하게 사용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문화로서의 한국어는 영어 다음으로 순서가 바뀔 것이 아니라 더욱 발전시켜야 할 중요 문화유산임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한국어 교육이 더욱 수준 높게 심화된 바탕에 영어를 비롯한 제2 외국어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세계화를 이끌 ‘글로벌 지식 근로자’의 조건이다.

◆신현욱 한국전파진흥협회 부회장 shinitu@rap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