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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그리움에 길을 묻다 - 신선봉-마패봉-부봉

대선의 광풍이 지났다.

도덕성의 치명적인 흠결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에서 계속 압도적인 우세를 유지해 온 후보가 당선되었다.

예측과 통계의 위대함이여

 

여기 더 정확한 통계가 있다.

오차의 범위가 정말 적은 그 예측과 통계는 말한다.

백년도 안되는 시간 안에 우리가 죽으리란 것을…

고작 삼만 밤쯤 자고 나면 우린 떠나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신뢰성 있는 통계도 있다.

머지 않아 너의 눈은 침침해지고

열정은 줄어들고

산을 오르는 두 다리는 후들거릴 것이다.

가슴을 뒤 흔드는 감동도

원대한 이상도

모두 뜬 구름처럼 허공에 흩어지리라….

 

 

그래서 숱한 철학자와 도인들은 그 짧은 일생을 걸고 덧없는 인생의 진리와

의미를 찾아 헤멨다.

그들이 궁극의 깨달음을 얻었는지 모르지만 그들 또한 모두 한 줌의 흙으로 갔다.

어려운 언어와 메마른 이성으로 휘감은 사상과 방대한 저술을 남긴 채 …

 

아. 인생이란 스쳐 지나는 바람

새털처럼 가벼울 진대

삶의 의미는 그들의 난해한 문장과 현학적인 수사에 머물지 않나니…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통계가 말하는 것은

내세 보다는 현세가 더 중요하고

미래 보다는 현재가 더 중요하다는 것

가장 축복 받은 소중한 날은 오늘이고

춤은 출 수 있을 때 추어야 한다는 것

 

 

그 짧은 나날에 춤추기 좋은 날은 많지 않나니…

그냥 가슴이 울리는 대로 살아라

세상의 최고선이 자신의 행복이라면

스스로의 영혼이 노래하게 하는 그 무언가를 하며 살아감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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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행 일  : 2007년 12월 25일 (화요일)

산 행 지  : 신선봉-마패봉-부봉-

날    씨  : 포근하고 맑음

동    행  : 만수 산님들

소    요  : 6시간 20분

 

경유지별 시간

   10:20   신선봉 들머리

   11:00   눙선안부

   11:20   신선봉

   11:40   식사 (약 20분)

   12:20   마역봉(마패봉)

   14:00   동문 갈림길

   14:20   부봉 1봉

   15;14   부봉 6봉

   15:44   동화원

   15;55   장원급제길

   16:10   조령 3관문

   16;40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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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날 배낭을 멘다?

누가 보면 또 한 소리 할거다.

“ 저러다 또 싸메고 드러 눕지….”

 

지난 주말은 산에서 멀어 있었다.

동탄 신도시 입주 하는 동생 집들이겸 가족 송년모임 때문에 정말 삭막한

빌딩 숲에 이틀이나 갇혀 있었다.

이젠 치유를 산에게 맡기기로 했는데 한 주라도 숲으로의 통원치료를 거를 수 있으랴….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 떠날 결심을 했다.

문경으로….

준비 없이 떠나는 즉흥적인 여행길에 마눌이 동행을 자처할 리 없다.

거기다 결혼 기념일 선물도 아직 못했고

오늘은 크리스마스 날인데…..

 

떠나지 못하면 마눌과 영화나 한편 보던지  크리스마스로 흥청일  시내구경이나 하며

하루를 보내겠지만 오늘 저녁 쯤엔 무척 답답해 질게다.

 

 

2003년 6월 29일 하늘재를 올라 월항삼봉을 거쳐 마패봉으로 달렸다

그 때 살짝 알바하여 부봉 정상에 올랐었다.

힘겨운 중에도 건너다 보이는 마패봉과 부봉 반석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에 취하여 언젠가

꼭 다시 오리라 했다.

그 부봉의 여섯 봉우리를 넘고자 했던 무심한 세월은 벌써 4년이나 물처럼 흘려 내렸다.

 

 

그래 오늘이 그날의 감동을 다시 느끼기에 가장 좋은 날인지 모른다.

내겐 징크스가 있다.

늘 준비 없이 떠나는 여행길에서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만나 감동을 먹는 징크스…

또 아나 ?

그 팔팔하던 날 받았던 백두대간의 기를 다시 받으면 허리가 씻은 듯이 나아

부봉을 훨훨 날아 넘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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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봉 가는 길

가파른 경사에 50여분 계속되는 너덜 길.

그 옛날 힘 자랑하던 이런 길이 이젠 가장 조심해야 할 길이다.

선두팀을 앞에 보내고 차분한 호흡으로 천천히 올라 간다.

신선봉 15분 남겨 놓은 안부 능선에 걸터 앉았다.

표지판만 덩그러니 있고 풍경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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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봉 바로 아래 조망이 압권이다.

첩첩이 포개진 산주름은 얇은 푸른 빛 화폭에 한편의 정갈한 수묵화를 만들고 있다.

마치 무채색인 듯 푸른 빛 감도는 산 빛은 멀리 갈수록 점점 엷어져

먼산은 하늘 빛에 동화되고 만다.

 

 

12월의 따뜻한 태양

엷은 연무를 두르고 흘러가는 능선

암릉에 기댄 조화로운 소나무

나의 안광은 유장한 산릉을 따라 막힘 없이 내 달리는데

내가 오늘 더 부러워 해야 할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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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경을 지나치기 아쉬운 건지

배가 고픈건지…

놓치기 아까운 풍경에서는 식단을 풀어야 한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어찌하다 보니 길동무가 없다.

 

멋진 고원 레스또랑

오늘 주방장 특선은 충무김밥

내 여행길의 충실한 조력자요 동반자인 마눌께서

갑작스런 여행길에 경황이 없던 탓에

난 통영 앞바다 냄새가 나는 김밥을 심산의 마루금 위에서 맛보는

또 다른 호사를 누린다.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비싼 음식을 아주 맛없이 먹는 사람

변변치 않은 싼 음식을 정말 맛있게 먹는 사람

 

인생의 내공 이겠다.

아니면 산의 마술이겠지…

초라한 식단이 가져다 주는 그 풍성함과 그윽한 풍미

내가 먹는 건 음식만이 아니다.

 

크리스마스가 너무 쓸쓸하다고?

10년 넘게  심산의 가슴을 파고 들면 득도의 地境에 얼쩡이게 된다.

바람 없는 날 코가 뚫리는 솔향을 맡을 수 있고

나무와 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음악?

대자연의 무음이 때로는 장중한 교향곡 임을 느껴 본적 있는가?

멋진 식사를 하는 내내 대자연의 연주하는 감미로운

음악 소릴 들었다.

분위기 좋고 전망 좋은 전원 까페

예약 없이 전세 내버린 호젓한 고원의 편안한 식사였다.

 

 

식사를 마치고 혼자 휘적이며 길을 간다.

이건 겨울 산행이 아니라 봄 산행이다.

걸어도 좋고 앉아 있어도 따뜻하고….

 

최고의 산행 길은 조망 좋은 육산의 편안한 능선 길을

구름처럼 유유자적하게 흘러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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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마패봉


 

 

그날의 전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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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패봉이 선다.

여기서부터 동문 갈림길 까지가 백두대간 길이다.

추억의 대간 길

4년 전 이 봉우리에 걸터앉아 살아가는 날의 감동에 젖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날의 길동무들과는 대자연 깊은 곳에 숨겨진 기쁨을

함께 찾아가는 귀한 인연으로 다시 만나고 있다.

올해는 어쩔 수 없는 왕따의 설움을 당했지만….

 

아무도 없는 그 봉우리에 홀로 걸터 앉으니 그날의 추억과 감동이 떠오른다.

“백두대간이여…

마패봉이여

다시 그날의 영광을 돌려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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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패봉의 감동을 추스리며 혼자 상념에 쌓여 내려 가는 길

세 분의 산객이 휴식하고 있다.

오호라 민수 산악회의 팻말을 걸고 있다.

 

감자를 얻어 먹고

진한 커피 까지 한 잔 받으니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온몸에 그 열기가 퍼져 소리 없는 정이 내게로 흐른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이란 늘 풀냄새가 난다.

크리스마스에 산을 타는 사람들이라면

산의 마법에 단단히 걸려든 산을 닮아 간 사람들 일터

좋은 길동무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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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아직 식사 전이라 동문 갈림길 코 앞에서 식사를 했다.

내가 허리 다친 이야기를 한참 주절 거리다 보니

산님 한 분이 혹시 무릉객 아니냐고 묻는다.

한국의 산하에서 내가 다치고 쓴 산행기를 읽었단다..

한국의 산하 참 대단하다.

가끔 그 곳에서 산님들과 필담을 나누고 또 어느 날 인가는 낯 모르던 그들과

어느 산모퉁이에서 문득 반가운 만남을 가졌으니…

 

 

사실 오늘 4시간 산행길이라고 해서 따라나선 길이었다.

제법 먼 길을 걸어 온 것 같은데 지도를 보니 아직 반도 지나지 못했다

산행대장께서 세시반 까지 넉넉히 5시간 정도를 주신다고 했는데

도상 거리로 보면 그 시간으로는 어림 없겠다.

 

 

행장을 수습하고 다시 내려 가는데 동행하는 여산님의 핸드폰이 운다.

부봉을 타고 먼저 가던 산행대장인 모양인데 도저히 시간이 맞지 않으니 부봉을 타지말고

동문 갈림길에서 동화사 쪽으로 내려 오란다..

뒤에 오는 산님들을 위해 산악회 시그널을 계곡 쪽으로 돌려 놓고…

 

“어찌 그리 심한 말을 !…”

너무 먼 거리라 허리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오늘은 부봉을 만나러 온 날 아닌가?

우리 넷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고봉을 넘어 진군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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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가면 두고 두고 후회할 길이었다.

언젠가 다시 올 날이 있겠지만

산의 위안과 감동이 필요한 오늘 꼭 넘어야 할 산이었고 가슴에 담아야 할

풍경 이었다.

 

늘 생각만으로 바라 본 날이 있었다.

 

언제든 가리

마지막엔 돌아가리

목화 꽃 고운 내 고향으로

아이들이 한 울타리 따는 길머리론

학림사 가는 달구지가 조을며 지나가고

대낯에 여우가 우는 산골

 

산은 내 고향이었다.

노천명의 망향의 수심은 갈 수 없는 그날의 나의 갈망 이었다.

그래도 한 해가 저물기 전에 나는 다시 거친 산릉을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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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평한 바위에 기대어 푸른 소나무를 본다.

그 나무가 내려다본 세상은 평화롭다.

검은 파도도 보이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의 장탄식도 들리지 않는다.

더 높은 권좌에 오르기 위해 목청을 높이고 충혈된 두 눈을 부릅떠야 하는

세상은 멀어져 있다.  

이곳이 무릉도원이다.

이곳을 걸어가는 우린 모두 무릉객이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살아가는 날의 기쁨을 가르쳐 주고 훌쩍 떠나야 할

길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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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봉우리를 숨가쁘게 넘었다.

거친 산길에 내심 걱정했던 여자 산님이 먼저 훨훨 날아 가는 통에…

 

아름다운 배려 아닐까?

잘못된 약속이지만 그 약속을 지켜 먼저 하산한 산님들을 기다리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

그다지 늦은 발걸음이 아니니 여유롭게 경개에 취해도 괜찮을 듯한데

그 마음이 전염되어 모두들의 발길이 빨라졌다.

 

식당개 삼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데

주마간산인들 그 산릉의 서리서리에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어찌 놓칠 수 있으랴….

허리 조심하랴

눈길에 발이 미끄러질까 신경쓰랴

혹시 스쳐 지나는 풍경을 눈에 담지 못할까 마음이 먼저 바빴던

간만에 분주한 시간 이었다.

마치 그 옛날로 다시 돌아간 듯

심산의 고봉준령을 훨훨 날아들던 때의 기쁨과 감동을 다시 느껴본 시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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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 길을 바람처럼 흘러 갔다.

가볍게 흩어진 눈발 위에 조용히 내려 앉은 기쁨을 밟으며…

한 줌의 흙조차 없는 큰 바위틈에 흐믓하게 뿌리를 내리고

높은 곳에서 세상을 관조하는 노송의 담대함에 경배하며….

 

그 길을 걸을 수 없었을 땐 얼마나 통절 했으랴…

비록 거친 길을 두려워 하긴 해도 아직 그 열정은 잠들지 않았고

늘 내 곁에 머물렀던 건강과 평범한 일상이 행복임을 깨닫고 난 지금

다시 그 길을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랴…

아직 다 돌아보지 못한 아름다움과 전수받지 못한 가르침을 남겨두고 어떻게

내가 산을 떠날 수 있으랴….

모든 사라지고 변하는 가운데 늘 변함 없는 그 위대한 전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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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보니 인생의 깊이가 보인다.

행복이란 모두 가까운 곳에 있었나니….

나의 팔을 팔벼개 삼아 편안한 꿈을 꾸는 사람들의 눈동자 속에

내가 원하는 때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그 소박한 자유와 발걸음  속에

거친 산길을 돌아 내린 후 목젖을 꿀럭이며 마시는 한잔의 탁배기 속에….

 

 

4개월 내내 떠나는 날의 꿈만 꾸던 날

희망과 절망의 수 없이 교차하던 그 시간을 보내고

그 상처 받은 가슴이 어느 산님의 맑은 글과 한 장의 사진조차

괴로워했던 그날을 보내고

내가 느낀 것들이 삶의 심오한 의미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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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부봉길을 걸어가는 내가 자랑스럽다.

다시 일어나 지난 시간을 감동을 추억하고 가슴 속에 표구했던

그 멋진 봉우리를 넘어가며 다시 뜨거워 지는 가슴을 느끼는 내가….

 

이제  다시 가보지 못한 먼 길의 꿈을 꿀 수 있는 이 시간

가슴을 흔드는 풍경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이 길이 인생길이고

득도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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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해 누군가에 묻지 마라

그리고 자신의의 행복을 정치가의 입이나 덕망 높은 교육가의

윤리나 타인의 어깨에서 찾으려 마라

 

차라리 산에게 바다에게 세월에게 물어라

그리고 궁극에는 어느 조용한 산길에서 자신에게 물으라

 

우리가 가는 이 길이 어디 빈 땅이랴

돌아올 새봄에 새로운 생명을 피워낼 생명의 대지이다.

그 위를 걸어가면 그 생명과 희망이 그대의 발을 타고 온 몸으로 흘러가리라

그 황량한 풍경 위에서 구성진 꽃과 나비의 노래를 들으리라.

 

우리의 위대한 스승 산으로부터 배워라….

그냥 묵묵히 걸어라…

산이 많은 걸 깨닫게 하고 무언가로 채우고 또 내려놓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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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아픔과 염려 근심은 산에게 맡기기로 했다.

예전 보다 짧아진 그 길을 걸어가며

범사에 감사하고 늘 덩실덩실 춤을 추기로 했다..

 

주차장에 내려서니 5시가 훌쩍 넘어선다.

등이 시린걸 보니 또 6시간을 넘게 걸었다

늦은 시간에도 부봉의 풍광을 욕심 낸 산님들이 있어 늦은 시간에 신선봉

주차장을 떠났다.

허리가 다시 뻐근해 오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부봉을 넘어오지 않았으면 많이 후회 했겠지만 난 그 길을 걸었다.

한 해를 보내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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