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사용자 회장단 포럼에 참석하러 갔지만 마음은 콩 밭에 가있었다.
캐슬렉스 컨트리 클럽의 리조트
호텔 같은 화려한 침상에서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다
용두암에서 마신 술 때문인지 커피 때문인지
너무 깨끗하고 화려한 잠자리 때문인지….
심경이 복잡하다.
7년 만에 오를 한라산에 대한 기대
그리고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무리하여 나중에 후유증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가 깨었다.
이사장이 시간을 4시 20분에 셋팅했다고 했는데 울리지 않은 걸 보면 아직
시간이 되지 않은 모양이다.
어라! 이사장이 없다.
아뿔사 또 내가 심하게 코를 골았나 보다..
"불쌍한 이사장"
"그렇다고 거실에 나가 잘 건 뭐이가..."
5시 15분전에 기사 아저씨 전갈이 왔다.
“부지런하기도 하시지…”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지만 별은 총총하다.
아직 어둠에 깨어나지 않은 중산간 도로를 달린다.
새벽이란 언제나 작은 흥분을 안고 온다.
아저씨는 4시에 일어나서 김밥집에 들러 여기에 왔단다.
제주와 오름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 보면서 성판악으로 간다.
나뭇가지들은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길 위엔 우리 뿐이다.
새끼노루가 길 위에서 서성이다 불빛을 보고 숲으로 들어간다.
길 위에서 노루를 두 마리나 보았다.
많은 개발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생태계는 건강한 셈이다.
슬며시 어둠이 걷히고 있는 성판악에는 아무도 없다.
김밥에다 소주한병 까지 가져다 주신 아저씨께 택시비 3만원과 김밥4줄과
소주 값(8천원)으로 4만원을 드렸다.
7년 전이면 참 오랜 세월이다.
직장동료들과 함께 한라산을 계획했던 그 때는 막 한국 산하 비경의
진면목을 알아가던 때였다.
심산의 은밀한 곳에 대한 기대가 펄펄 살아 있었고 내 젊음은 지칠 줄 몰랐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숱한 산 위에 나의 거친 호흡을 쏟아내며 살아가는 날의 감동과 조우했다.
그리고 말했다.
인생은 살만하고 삶을 즐겁게 하는 콧노래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즐거운 세월이었다.
마음에 그리움으로 간직된 여행길은 모두 돌아 보았다.
혼자서 ...
때론 나와 같은 중병에 걸린 사람들과.....
그리고 나서 갑자기 멈추어선 시간들이 당혹스러웠다.
지난 몇 개월 외롭고 쓸쓸하지는 않았지만 늘 두려움이 가슴 한구석에
남았었다.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시간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언제나
조급해 했다.
진악산 등산 후에도 허리에 부담을 느꼈던 터라 오늘의 한라산 등반이
어쩌면 무모한 시도라는 생각을 마음한구석에서는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내가 믿는건 하나 였다.
"안되면 그냥 내려오면 되지...."
성판악에서 바라본 동편 하늘은 붉은 아침을 머금고 있다.
바람은 산들산들하고 발걸음은 날아 갈 것 처럼 가볍다
2000년 첫 산행길에서백록담 가는 길이 단조롭고 답답한 길이 란 걸
알아 버렸다.
그 때에는 눈이 많이 쌓였던 터라 다져진 눈 아래 돌과 나무로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빽빽한 수림 사이로 한라의 붉은 축복이 새어 나온다.
아쉽다.
사계가 훤히 트이는 오름에서라도 빛나는 태양의 축복을 온 몸에
받아야 하는데.......
길이 돌 길이라 발이 불편하고 다친 등허리가 신경이 쓰인다.
산죽은 온 산으로 자신의 영토를 확장해 가고 있다.
모두 잎 위에 금테를 두르고 있다.
간벌이 한창인 소나무 수림을 지난다.
나무판으로 만들어 놓은 길을 만나면 발이 너무 편해 진다.
예전에는 이런걸 낭비라고 했는데 요즘은 일자리창출과 소비가
연결된 경제라고 한다.
처음 약수터
진달래 대피소 까지 물이 나오는 샘은 두개가 있었고 관음사 쪽
하산길에도 용진각 대피소 지나 샘물이 하나 있다.
청정지역의 삼다수라 그런지 물맛이 죽인다.
돌길이라 거칠긴 해도 고도차가 별로 없으니 아직 까지 별
무리가 없다.
약수터에는 넓은 공터가 있고 여기도 산죽들이 접수했다.
산죽은 나무들에게 많은 피해를 준다는데
산죽을 없애는 법 - 누군가 인터넷에 거짓정보를 유포하는 거다 (산죽
뿌리를 다려 먹으면 정력이 좋아진다)
간이 화장실이 두개 있고 그 옆에는 휴식할 수 있는 벤취가 있다.
아침의 붉은 햇살이 사선으로 떨어지는 고요한 한라의 아침이다.
도보용이 아닌 장식용 계단 같다.
마치 보호해야 할 대상이 산죽군락인 듯....
망신 살이 뻣쳤다..
그동안 보이지도 않던 사람들이 천천히 가는 우리들을 속속 앞질러 간다.
길을 내어주는 것에 별로 불만은 없다.
허리가 걱정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천천히 느리게 가고 싶은 여유로운 산행길이다.
겨우살이
겨우살이 다린물이 좋데서 산으로님 항상 그 물을 우려가지고 다니시는데
덕유산에서 많이 보던 겨우살이가 여기 한라산에도 많다.
두번 째 물
한라산은 물이 넘치니 굳이 생수병 무겁게 들고 올 필요 없다.
와서 마시고 빈 병 하나가지고 와서 채워가면 그 뿐일 듯....
이사장이 말했다.
"대천이나 대전이나 다 같은 충청도예유"
"꼬다리 하나 떼어내면 대천이 대전이여유"
그래서 우리는 오렌지와 포도를 얻어 먹었다.
잠시 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가 먼저 출발했는데
얼마 가지 못해 다시 추월 당했다.
오십대는 넘어 보이는데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웬만큼 유명한 산은 죄 타보았다고 한다.
평상이 두개 놓여진 쉼터를 지나 산죽길을 걸어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구상나무 숲에 들어서고
야호
구상나무 숲을 지나자 시야가 휜히 트이고 멀리 한라산정이 눈에 들어온다.
진달래 대피소가 서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하늘이 시원하게 열려 있다.
대피소 에서 늦은 아침을 먹다.
컵라면 하나를 사서 김밥 두줄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기사 아저씨가 가져다 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한라의 나른한 봄 빛에
젖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잠시 떠나 있다 찾은 큰 산이 더 큰 기쁨을
준다.
느리게 가는 길이 이렇게 마음편하고 여유롭다.
30분 이상을 느긋하게 휴식하고 천천히 백록담으로 간다.
진달래 대피소 매점
햇반은 없다
진달래 대피소의 휴식
군데 군데 눈이 녹지 않았다.
물이 쉽게 빠져버리는 지형에서 많은 적설과 천천히 녹는 봄눈이 수 많은
나무들의 생명을 다시 피워내는 일등 공신이다.
산정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길을 만들었다.
태고적 한라산이 뜨거웠던 시절에 바람길에 남겨진 전설
봄날에 만나기 힘든 푸르고 맑은 하늘
그리고 조용히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
가을처럼 청명하지는 않지만 산아래 무수한 오름이 내려다 보인다.
정말 축복받은 날이란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는 오늘
제일 먼저 번겨주는 이 있다.
2000고지 가까이에서 독수리 같이 당당한 까마귀들....
여기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곳이다.
푸른바다와 푸른 하늘에 둘러쌓인 곳
수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과 삶의 기쁨을 담아간 이곳에 서서
백록담을 바라보고 있다.
칠년전 음습한 대기의 기운을 끌어 세찬 바람과 자욱한 안개로 진노하던
한라 신령님은 감미로운 바람과 따뜻한 사월의 태양으로 우리를 축복하고
있다.
코 끝이 진하고 조금 눈물이 났다.
삶의 굽이굽이에 숨어 있는 감동들을 나는 하나도 놓지지 않고 모두 찿아
내고 있다.
슬픔마져도 희망과 기쁨을 위한 기다림으로 믿었고
세월과 신들은 그 믿음을 지켜 주었다.
부러진 뼈가 채 굳지도 않은 채 나는 한라산에 오른 것이다.
이젠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약간의 뻐근함이 느껴지지만 좀더 시간이 흐르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드넓은 세상을 꿈꾸며
다시 거친 여행길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멋진날을 허락하신 한라 신령님 감사합니다.
이사장 고마우이...
코 심하게 골아서 미안하고
새벽같이 뚜드려 깨워서 미안하고
골프 못치게 하고 산으로 몰아대서 미안하고....
오늘 한라산에 오른 모든 분들 행복하소서
처음 가보는 관음사 길이 이렇게 멋질 줄이야...
마치 백두산인 듯 봉우리는 기골이 장대하고
내려다 보이는 풍광은 장관이다.
산릉은 우리와 함께 흘러가고
산죽은 마치 봄에 다시 새순을 피워낸 것처럼 연초록으로 수줍은 체
하고 있다.
금지구역 표시가 되어 있는데 줄을 넘어 몰래 숨어들어가 보았다.
코앞이 백록담 인데
누군가 "얘 보래요" 하고 소리칠 것 같아 사진만 찍고 슬며시 되돌아 왔다.
"내려가서 물한모금 마셔보고 올걸..."
봉우리가 성벽처럼 서고...
능선은 우리와 함께 아래로 내려간다.
선 채 죽어 있는 고사목도 멋지고
하늘은 왜그리 푸른 건지...
내가 한마리 노루처럼 한라 산릉을 걸어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고
신기한 오늘...
큰 산속에서 인간이란 마치 한그루 나무
그 조화와 겸허함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 다는 건 산이 주는 교훈이다.
내려오는 길에 멋진 무지개를 보았다.
수원에서 온 아주머니들을 만났는데 몹시힘들어 한다.
기사가 이쪽길이 짧아서 오르기 좋다고 관음사쪽에 내려 주었단다.
아닐텐데....
시방타임 11시 36분
정상에 올라갔다가 성판악으로 내려가려면 많이 힘들겠다.
내려가는 길에 만난 용진각 대피소
무인 대피소인데 무전기를 가진 사람이 한 분 있다.
아마도 12시 30분이 넘어서 이곳에 올라서면 하산 시간을 고려해서
정상등정을 막는 모양이다.
여기도 산죽세상이다
용진각 대피소 아래 샘터
길가에 표지판이 있고 시원한 물이 흘러 내린다.
올라가다 주저 앉아 쉬고 있는 산님들
내려가다가 평상이 있는 쉼터에서 식사를 했다.
성판악오름길에 무수히 보았던 나무다
잎이 윤기가 나는 고무나무 같은 활엽수다.
새잎을 모두 피워냈다.
기사아저씨가 굴거리 나무라고 했다.
이나무는 만난적이 있다.
옛날 호남여행길 중에 아직 대지가 갈색의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때
혼자 푸른 잎을 피워내고 있던 그 나무
하도 신기해서 사진 한장 찍어두었는데 제주도가 이 나무 세상이다.
용암이 흘러내여 만들어진 계곡은 군데 군데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길을 버리고 용암천을 따라 관음사로 흘러가면 진정한 제주도의
면모를 돌아 볼 수 있을 것 같앗다.
척박한 땅위를 뱀 한마리가 기어간다.
나처럼 느릿느릿
녀석의 여유로음으로 믿는 구석이 있나 했더니 머리가 세모꼴인 독사네...
숲으로 들어가 나무둥치를 옆을 천천히 지나가는 넘을 한 컷
드뎌 관음사 주차장
마지막엔 이사장이 힘들었을 게다.
회의에 참석하려면 2시 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너무 여유를 부리다
보니 4Km를 남겨두고 1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명색이 충남대표인데 회의에 늦을 수는 없어서 속도를 올렸는데
걱정했던 것 처럼 허리가 아프지 않다.
내리막길 보다는 가파른 길을 오를 때가 더 무리가 가는 모양이다.
이사장은 중간 까지도 괜찮았는데 부지런히 따라 오다 보니 관절이
아픈모양이다.
장거리 산행을 안하던 사람이니 무리가 아니다.
벌써 시간상으로 벌써 8시간 째이니....
멋진 피날레 였다.
5시 40분에 성판악 출발 하여 2시에 관음사 주차장에 도착
한라산 등정으로 나는 새로운 희망과 기대에 부풀었고
이사장은 첫 한라산에서 멋진 백록담을 만났다.
올해는 진짜 우리의 한해가 될껴.....
시간이 없어 관음사에 들르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제주도 이니까...
나중에도 무언가 볼 것들이 남아 있어야 더 멋진 여행길이 될테니까....
한라 산신령님께 감사드리고
회장단 포럼에 초대해 제주도 비행기를 태워준 컴퓨터사용자 협회
한회장께 감사하단 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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