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간: 제 12구간 (댓재-황장산- 덕항산- 피재 )
도상거리: 26 km
일 자: 2002년 11월 9일(토) ~2002년 11월 10일(일)
날 씨: 바람이 거세고 맑음 ( -6~3c)
11:10 03 : 30 댓재 출발
03 : 50 황장산(1059)
06 : 20 1036봉
06 : 30 자암재 -- 환선굴 --대이리 삼척
07 : 05 지각산(1079) 해돋이
자암재<= 1.8km 덕항산=>1.6km 덕항산 골말 =>3.3 km
08 : 00 덕항산(1070.7m)
08 : 40 봉우리
09 : 03 봉우리
09 : 50 봉우리
10 : 25 푯대봉(1009.9m)
10 : 45 건의령
11 : 20 944.9m봉
12 : 45 임도
13 : 00 피재
인생은 짧고 되돌릴 수도 없다.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 마다 존재의 경이로움에 놀라며 삶의 의미를 맛볼 수 있다.
이 얼마나 알알이 소중한 시간들인가?
- 시인 소로-
차가운 바람이 지나는 하늘엔 별빛이 맑고 그 창백한 아름다움이 어둠의
베일위에 신비롭게 내려 앉아 있다.
황장산을 오르는 20분의 격렬함을 제외하고는 별 어려움 없는 종주길은
그저 낭만적인 별밤 산책길이다.
청옥 두타를 이루는 산세가 쉬어가는 듯 다시 함백산의 거친 기세를 준비하는 듯
수북한 낙엽과 함께가는 산행로는 사그락 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와 낙엽이
전하는 가을 냄새가 바람 길에 떠돌고 있다.
고랭지 채소 밭에서는 가득한 별무리에서 흘러 내리는 유성의 꼬리를 보았다.
거칠 것 없는 산록을 불어 내리는 칼바람
막아 서는 방해물이 없어 그 기세가 누그러 지지 않으니 바람에 몸이 밀릴 정도로
바람결이 드세다.
그래도 긴 줄을 만드는 대간 동행들의 불빛이 있어 황량한 바람산에서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칠흑의 어둠 속 정신 못차리게 불어 대는 바람 한 가운데 나무들 조차 없으니 먼저
간 대간 꾼들의 리본을 찾기가 어려워 진입로를 찾아 우왕좌왕한다.
먼저간 팀들이 어지러운 탐조로 헤메는 불 빛이 어지러운 가운데 뒤에 떨어진 팀들이
속속 합류하여 함께 고랭지 채소 밭 지대를 헤멘다.
야심한 시간에...
드러난 바람 길에 무방비로 서 있으려니 시린 바람의 서슬이 몸속으로 파고든다.
대간 길을 찾아 우왕좌왕 하기를 몇 번 그래도 발 벗고 나서서 길을 찾느라 노력하는
사람들 덕분에 어렵게 길을 잡았다.
고랭지 채소 밭 가운데를 가로 질러 한참 능선을 돌아 올라 불빛이 흐르는 골짜기를
내려다 보니 골짜기 가옥 건너편 둔덕이 우리가 두번째로 헤메던 곳이다.
얕은 골짜기를 가로 질러 올라 왔으면 한달음 길인데 거기는 대간에서 벗어난 길인
모양이다.
높디높은 백두대간 산정 수만평을 채소밭으로 갈아 엎어 놓고 그 밭 한가운데로
멘트 포장길을 까지 만들고 그 아래엔 전원 주택 까지...
대단한 근성의 국민들이다.
그걸 인간승리라고 해야하나 ?
올라가기 쉬운 하고 많은 야산들 놔두고 백두대간을 개간해서 배추를 팔아 먹다니?
도데체 백두대간이 국가에서 관리하는 국토인지 사유지 인지 분간이 안가는 대목이다.
매일 10시간씩 걸으면 한달 이면 도달 할 수 있는 빈약한 우리 국토의 등줄기 그 안스
러운 구비구비가 그렇게 훼손되어 가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인생들은 그저 우리 국토의 한 곳을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객이 건만
이나라 삶의 터전을 그렇게 무분별하게 유린하는 간 큰 나그네들은
도데체 그 자격과 명분을 어디서 얻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훗날 수 많은 우리의 후손들이 기대어 기꺼이 보람과 기쁨의 땀을 닦으며
억겁을 지키고 보존 해야할 대간 이어늘
상처를 간직한 채 바람등걸에 누워 있는 백두대간은 어둠속에서 말이 없다.
6시 30분이 지나자 동편 하늘이 붉은 빛으로 물들어 간다.
여명과 함께 백두대간의 아침이 열리고 있다.
가득한 신비와 붉은 장엄함으로 ...
1079 지각산 정상에서 아름답게 떠오르는 태양을 맞는다.
동해 바다위로 붉게 떠올라 온 누리를 황금 빛으로 물들이고 긴 대간길에 흐뜨러
지지 않는 동행이 되어 거센 바람에 따뜻함으로 그리고 빛으로 남는다.
발아래 신비한 환선굴을 보듬고 있는 지각산은 쓰라린 수해의 상처를 안고 있을 게다.
2년 전인가? 환선굴 가는 길에 웅장한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도로와 주차장들이
안타까웠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다는 명분과 관광수입의 욕심 아래 땀의 댓가 없이 절경으로 인도
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노력이야 말로 언제가는 준엄한 대자연의 역습에 혼비백산할
뿐이다.
우리는 언제나 패배한 전쟁터에서 또 안타까움으로 흉물스런 잔해를 바라 보아야 한다.
철탑이 서 있는 덕항산 정상에서는 우리 대원 두명이 빵으로 허기를 때우고 있다.
우리는 좀더 내려 가다가 능선에서 깊게 내려가 바람을 막아주는 골짜기에서 식사를
했다.
조부장은 두건에 방한모에 등산파카 까지 완전히 중무장한 상태다.
머리와 몸안에 계속 땀이 난다는데 차라리 한 겹 벗어 던지고 가볍게 등산하는 것이
나을 법한데 그냥 땀을 한 껏 내고 있다.
나는 식사하는 동안 체온이 떨어질까 두려워 등산 파카를 벗고 오리털 내피를 입고
식사를 했다
차가운 날씨에 차가워진 김밥과 차가운 김치 그리고 차가운 물과 함께하는 차가운
식사인데도 시장이 반찬이라 잘도 넘어간다.
남들은 춥다고 빵으로 때우는데 밥이 없으면 안되는 걸 보면 나는 어쩔 수 없는
오리지널 조선족인 모양이다.
식사 후에는 파카와 오리털 내피를 벗고 등산 티 위에 조끼만 하나 걸쳤다.
처음엔 정지된 시간과 찬 밥의 냉기가 추위를 몰고 왔지만 조금 지나니 오히려
가슴을 파고드는 시원한 준령의 공기가 후련하다.
세개의 봉우리를 지나서 푯대봉은 산허리를 감돌아 한참을 올라서야 만날 수 있었다.
정상에 표시가 없어 처음 푯대봉인 줄 몰랐지만 약도를 보고 시간을 유추해보니
그곳이 푯대봉이다.
그리고 건의령 까지 별다른 어려운 구간이 없이 이어지는 낙엽 가득한 길이었다.
낙엽은 언제나 고독과 사색을 떠올린다
그리고 낙엽에는 성숙의 냄새가 배어 있다.
"길 위에 낙엽이 굴러도 슬픔을 느끼지 않을 때 그녀는 숙녀가 되어 있었다."
-에밀-
입시를 앞 둔 대학 캠퍼스에서 만난 바람에 흩날리던 낙엽들
새로운 세계를 향한 두려움 속에 스산한 외로움으로 내 마음을 구르던 낙엽은
그렇게 내가 어른이 되는 길목을 지키고 있었고
아내와 폴짝 거리는 딸아이 손을 잡고 갑사를 찾았을 때도 하늘 가득 휘날리며
길 위를 덮고 있었다.
수 많은 낙엽들이 나의 가을을 그렇게 스쳐 지나갔고 오늘은 또 이렇게 산 가득한
낙엽 길을 걷는다.
세월은 많이 흘렀구나
저기 선 채로 말 없이 세월의 나이테를 그어 갔을 낙엽송처럼....
덕항산 인근은 촛대봉 ,나한봉, 수리봉,금강봉,미륵봉 ,자암재 에 둘러싸여 있고
너와집이나 굴피집 물레방아 등 화전민들이 살던 옛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그리고 큰동굴 세개가 발견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천연기념물 178호로 유명한 동양최대
규모의 환선굴이다.
건의령을 지나 피재로 이어지는 등산로의 가을 풍경은 아름다웠다.
능선 아래 푸른 전나무와 노란 낙엽송의 조화는 단아한 한폭의 수채화로 다가온다.
문득 떨어지는 낙엽을 책갈피에 끼우며 보석 같은 시어에 가슴이 뭉클하던
시절들이 그리워 진다.
내 마음은 세월처럼 메말라 가고 있는가?
그저 몇일 만이라도 바쁘고 복잡한 일상을 허물고 이 아름다움 속에서 잠들고 이 시린
경치의 평화로운 아침을 맞으며 깨어나고 싶다.
많은 대간 길의 막바지처럼 그렇게 쉽사리 목적지가 열리지 않는다.
조부장이 투덜 거리는데 결국 멀지 않는 시간에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고
또 많은 시간을 기다리다 집으로 가는 버스 속에 잠들 것이다.
임도에 다다라 리본을 찾아 다시 산을 들어서서 한 굽이를 돌아서 언덕에 오르니
거기가 바로 삼수령으로 유명한 피재 아닌가?
피재는 이별의 아픔의 간직한 고갯 마루다
하늘에서 내려온 비 가족이 세 갈래로 갈라져 한줄기는 삼척 오십천으로 흐르고
또 한줄기는 낙동정맥 발원지가 되고 나머지 한 줄기는 514km의 한강 발원지가 되어
흘러내리는 한스러운 이별 고개
아쉬운 미련이 서성대는 피재의 송림과 정자는 백두대간 46경이다.
언덕에는 덩그러니 우리 버스가 기다리고 먼저 도착한 세명은 부는바람 속에서
열심히 돼지고기 찌게를 끓이고 있었다.
우리는 찌게를 기다릴 새도 없이 뜨거운 물에 데쳐낸 두부와 예의 돼지 껍데기 안주로
한 잔을 걸치고 나른한 오수에 빠졌던 것이다.
후미가 3시간 가량 늦어져 출발이 지연되었고 늦어지는 시간을 기다리며 과음한 사람
들이 버스에서 오랜 시간 떠드는 통에 잠을 설쳤고 그 바람에 도로 정체와 지연되는
시간을 의식하며 지루한 여행을 마무리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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