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간 : 화방재- 태백산 - 구룡산 - 도래기재
도상 거리 : 총 25.5 km (도상소요시간 12시간 실제소요시간 10시간 10분)
산행 일자 : 2002년 12월 7일 ~12월 8일
03:10 : 화방재 출발
05:10 : 천제단 (1560.6) 조망과 설경
07:15 : 깃대배기봉 (1350) -> 차돌배기 4km 1시간 20분
<- 태백산 6km 2시간 10분
08:45 : 차돌배기 -> 참새골 입구
|| 석문동 6km 1시간 60분
-> 태백 10km 3시간 30분
09:30 : 신선봉 <- 차돌배기 6km
-> 곰넘이재 1.9km
10:10 : 곰넘이재 || 참새골 (진조동) 참골로
->구룡산 5km 1시간 30분
10:55 : 고직령
11:30 : 구룡산 (1134.57 운해 백두대간 40경
11:50 : 임도
12:30 : 봉우리 식사
12:50 : 봉우리
12:55 : 임도 <- 구룡산 3.1km
-> 도래기재 1.4km
13:20 : 도래기재
눈이 부슬부슬 날린다.
밤으로의 긴 여행 끝에서도 눈이 날린다.
간밤에 쌓인 눈 위로 다시 흰 눈이 쌓이고
바람만
버림 받은 탕아처럼
서러운 울분을 토하고 있다
머리의 불 빛에 반짝이며 춤추는 눈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날리는 순백의 기억들
태백은 또 그렇게 가득한 눈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세찬 바람에 흰 갈기를 흩날리는 야생마의 거친 호흡으로 …
태백으로 가는 길은 가슴 벅찬 기쁨들과 반가움이
춤추는 눈과 함께 날린다.
내 발자국 뒤로는 긴 상념과 희미한 기억들이 따라 온다.
눈길을 걸으면
어린시절 눈밭을 걷던 때처럼
저절로 그 순수하고 맑은 마음으로 돌아간다..
강원도 일원 폭설 경보
어둠을 가르는 버스 속에서 기대와 흥분이 먼저 달린다.
오랜만에 다시 대면할 순백의 감동으로….
화방재에서 유일사를 거쳐 태백으로 오르는 길 내내 미세한 떡가루 같은 눈이 하염없이 휘날린다
태백의 바람이 걱정스러워 방한모에 마스크 눈 장갑으로 중무장 했는데 생각 보다 바람꼬리가 그다지 매섭지 만은 않다.
랜턴 불 빛이 가는 눈 앞에서 반짝이며 어지럽게 춤추는 눈
어둠속에서 온통 하얗게 덮여가는 적막한 산하
인적을 말끔이 지워낸 심야의 눈길에 오롯이 우리의 발자욱만 남긴다.
하얀 눈 위에 구두발자욱
바둑이와 같이 간 구두 발자국
누가누가 새벽 길 떠나갔나
외로운 산길에 구두 발자국
눈오는 날 길을 걷노라면 나도 모르게 흥얼대는 어린 시절의 노래가 입가에 달린다..
눈은 동심처럼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모양이다.
젊었을 땐 눈이 내리면 괜히 들뜨고 눈을 구실삼아 여기저기 통발을 놓고 발정난 숫캐처
럼 잘도 히히덕 거리고 싸돌아 다녔다.
나이가 좀 들어 가면서 눈은 고독한 낭만의 얼굴로 다가온다.
거기엔 지난시절이 추억이 그림자처럼 투영된다.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으로 스스로를 내몰지만 눈은 결코 고독하지 않는
아름답고도 낭만적인 상념이다
그래도 불혹이 넘어서도 반추할 수 있는 많은 눈의 추억이 있고 눈에 대한 기대와 기쁨을
간직할 수 있으니 그나마 메마르지 않은 감상의 샘이 고마울 따름 아닌가?
태백정상에 오르자 바람이 거세어 진다.
야심한 시간에 성지에 범접하는 불경한 존재들에 대해 경고라도 하는 듯
세찬 바람은 이제 더 굵어진 눈 발을 어지럽게 허공에 뿌려 대고 있다
후랫쉬 불빛에 반짝이며 흩어지는 눈발 그리고 불 빛이 머무는 작은 공간에서 화사하게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박제된 설화
눈은 다시 봄을 준비하는 앙상한 가지 위에서 화려한 흰 꽃으로 다시 피어나고 있다.
내리는 눈이 차가운 태백의 날씨에 금새 결빙이 되어 메마른 가지 위에 단단한 설화를 피어 내고 있다.
밝은 태양아래 드러나지 못하는 장대한 설국이 안타까워 흡사 박쥐와 같은 집요함으로 어둠을 주시하여도 불빛 아래의 설화의 장관을 웅대한 자연의 캔버스 위로 유추 할 수는 없다.
설화는 내 주변에서 모형처럼 박제되어 있을 뿐……..
난 그저 불 빛에 드러난 설원과 아름다운 설화의 장관을 온전히 볼 수 없는 아쉬움 때문
에 장대한 설국을 증거할 작은 편린이나마 간직하고 싶은 욕심으로 주섬주섬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어 흰 눈을 가득 덮어쓴 나무들을 향해 셔터를 누르고야 만다
후랫쉬 섬광에 의지하는 카메라의 눈도 설원의 아쉬움을 담아내지 못할 것이란 걸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부질 없는 안타까움이었다.
눈보라 속에서 괜시리 일행의 불 빛만 놓치는 통에 쫓아가느라 애만 먹었다.
태백산은 예로부터 삼한의 명산, 전국 12대 명산이라 하여 '민족의 영산' 이라 일컫는다.
천제단을 중심으로 5분 거리인 북쪽 300m 지점이 태백산의 주봉인 가장 높은 장군봉, 남동쪽으로 능선을 타고 가면 멀리 수만 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문수봉이 있다.
천제단에서 유일사 쪽으로 내려가는 능선 중간과 문수봉으로 가는 중간에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약 4천 그루의 주목이 자생하고 있는데 태백산의 주목군락은 백두대간 40경이다.
사찰로는 망경사, 백단사, 유일사, 만덕사, 청원사 등이 있다.
태백산은 겨울의 눈과 설화가 환상적이다. 주목과 어우러진 설화는 동화 속의 설경이다.
적설량이 많고 바람이 세차기로 유명하여 눈이 잘 녹지 않고 계속 쌓인다.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이 눈을 날려 설화를 만든다.
새벽이 오늘처럼 기다려진 날이 없었다
둘레 27m 폭 8m 높이 3m의 원형제단, 주요 민속자료 제288호
개천절이면 천제를 올리는 행사가 열리는
다시 찾은 천제단은 칠흑의 적막함 속에 말 없이 서 있다.
천제단의 설경과 조망은 백두대간 41경이다.
어둠속에서 마주하는 설경과 조망이 안타까울 뿐이다.
차가운 흰 눈의 추상 같은 서릿발에 얼어 붙어가는 검은 돌들의 고독한 적층
바람은 거센 노도와 같이 정면에서 달려온다.
바람에 실린 눈발이 따가울 수 있다는 걸 오늘에서 처음 알았다.
눈을 들 수 없는 매섭고도 차가운 바람은 내밀한 태백의 비밀이 이방인들에게
누설되는 것을 막으려고 안깐힘 쓰는 듯 무서운 소리로 울부짖고 그 세찬 바람에
불려간 눈들은 벌써 장딴지 높이로 올라오고 있다.
내 몸을 타고 오르는 엄숙함과 경건함
보이지 않는 장대한 설국의 형체와 그 위를 떠도는 태백의 신령스런 기운은 그저
큰 산의 일점으로 지워져 가는 희미한 존재의 흔적 위로 떠돌고 있다
두려움을 느끼며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숙연함으로 대자연은 거기 그렇게 버티고 있었다
신비스런 심오함이 가득한 태백의 설원 위에서...
태백이 지나야 날이 샐 텐데 …
무작정 선두를 따르다 보니 길을 잘 못 들었다.
문수봉 못미처에서 대간로를 타야하는데 문수봉으로 내쳐 길을 잡고야 말았다.
30분을 다시 걸어 올라와 회귀하는데 선두그룹이 졸지에 가장 후미로 쳐지고 말았다.
결국 태백권을 한참 벗어난 시간에도 날은 새지 않았다.
태백을 내려서면서 눈발은 다시 가늘어 졌고
얼음처럼 결빙으로 남아 있던 가득한 설화도 그저 가지에 쌓인 눈꽃으로 바뀌어 갈 때 쯤
날이 새고 있었다.
밝아오는 새벽과 함께 다가오던 아쉬움과 허탈함.
내가 만난 설원과 설화의 장관 중 아마 가장 아름다웠을 눈보라 치던 태백의 장쾌한 설경은 몇 장의 사진과 결국 지나버린 어둠 속의 기억으로만 남았다.
폭설경보의 환상의 타이밍은 그저 어둠 속에 함몰되었다.
태백은 그 장쾌한 설릉과 신새벽으로 깨어나는 아름다운 설화의 눈부신 화원을 열어주지
않았다.
역 종주 였으면 멋진 태백의 풍광을 마주할 수 있었을 텐데….
아직 기회는 있을 게다
태백의 눈꽃축제 기간이 18일부터 26일 1월 한달 기간엔 거의 하루도 빠짐 없이 대전발
관광열차가 운행되니 다시 폭설경보가 발효되면 마누라와 아이들 데리고 다시 한 번 찾아
야겠다.
대간의 능선을 따라 남하할수록 가지 위에 내려 앉은 눈이 줄어들고 있다.
모두가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인데 장쾌한 눈에 대한 컸던 기대가 아쉬움과 미련을 남긴다.
태백산을 거쳐 부소봉(1546)을 지나 깃대배기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하늘고개'란 뜻으로 천령이라 불렸는데 고직령과 연결되는 새길(신로령)이 생기면서 천령은 사람의 왕래가
뜸해졌다고 한다.
부소봉은 단군의 아들인 부소왕을 상징한하는데 산세가 웅장하다.
태백산처럼 적설이 많진 않아도 온통 눈 천지고 동쪽을 면한 능선은 여전히 찬 바람이 세차게 불어 시장기가 느껴져도 식사할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
중간에 일행을 몇 명 만나고 가파른 산행로를 지나 제법 평평한 곳을 찾고서야 배낭을 내렸다
눈을 걷어내고 낙엽위에 장갑을 깔고 앉았다
처음의 휴식이다.
헤멘 시간도 있지만 눈 길이라 시간이 지체되었고 에너지 소모량도 많아 시장기가 많이 느껴진다.
어둠 속을 질러 다섯 시간을 쉼 없이 걸었으니……
앞의 능선이 바람을 막아 주니 장갑을 벗고 밥을 먹어도 그다지 손이 시리지 않다.
이정도 겨울 날씨면 아주 좋은 날씨다.
7~8명이 모였을까?
떡을 먹는 사람 . 햄버거를 먹는 사람
보온밥통에 도시락을 싸온 사람 .
나처럼 김밥을 준비한 사람 가지가지다.
그래도 대간 종주한 이래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함께하는 식사 였다
뜨거운 물을 한 잔 마시고 마주한 김밥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맛있게 먹었는데
조부장은 아침 먹는 것이 고역이란다.
먹성은 타고 나는 법인가?
얼마 걷지 않아 제법 가파른 오르막 능선을 오르자 신선봉이라는 나무판이 소나무 등걸에
걸려 있다.
봉우리에는 외로운 무덤이 1기가 누워 있다.
망자를 이 먼 곳 까지 모시면서 아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간 종주객들이 이따끔 찾아줄 테니 한적한 고봉인들 망자는 그다지 외롭지는 않겠다.
구룡산 가는 길에는 바람도 그다지 불지 않아 대간의 서늘한 공기를 피부로 느끼고 싶어서
등산파카를 벗었다
등산용 티셔츠 하나만 걸친 셈인데 차가운 공기가 몸으로 스며들자 그 상쾌함과 서늘함에
기분이 너무 좋다.
구룡산 정상에서는 눈발이 날리는 흐린 날씨임에도 멀지 않은 곳 까지는 제대로 조망이 터진다.
아쉽게도 백두대간 40경이라던 구룡산 운해는 보이지 않는다.
1500고지가 넘는데 신기하게도 바람은 한 점도 없다.
주위를 압도하는 높이에서 구룡산은 인근을 굽어보고 있다.
정상에는 몇 사람의 등산객이 둘러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도 술 한잔 권하지 않는 것을 보면 준비한 술이 넉넉치 않은 모양이다.
조부장과 사진을 한 장 찍고 반대편쪽 하산의 길을 잡았다.
구룡산을 가파르게 내려서서 임도에 다다랐을 때가 11시 45분쯤 되었다.
봉우리를 몇 개 넘고는 삶은 계란을 나누어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커피 까지 마시는 호사를 누리며 산천경개 좋은 금수강산을 주유하니 이 보다 더 좋은 시간이 어디에 있을까?
풍류를 찾아 바람같이 떠돌던 김삿갓이 속세로 돌아가지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을 듯 싶다.
허허롭게 자연과 바람과 만나는 이 자리에 더 바랄게 무엇이 있으며 더 욕심부릴 일이 또
무엇이 있으랴?
눈발이 흩날리는 길을 하염없이 걷는다.
걷는다는 건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다
자신의 우주 밖에 있는 새로운 물상들과의 만남 그리고 자신과의 만남
걷는다는 것은 느림의 미학이다
그리고 철저한 자유
지루할 일도 없고 목적지를 안달하지도 않으며 무슨 생각을 하거나 아무 생각을 하지
않거나….
걷는다는 것은 세상에 반응하는 강한 호기심과 자신을 향한 따뜻한 애정이 아닐까?
매일 대하는 풍광이나 일상이어도 미세한 변화들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새로운 세계를 걷는 즐거움은 호기심 가득한 기대와 낭만적인 설레임이다.
걸으면서 우리는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만날 수 있고 교감하는
우주에 더 관대해질 수 있다.
혼자 걷는다는 건 가장 죽이 잘 맞는 친구와의 수다스런 동행
고독하지 않는 충만한 여행의 자유가 준비된다.
시간상으로 목적지가 나올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아직 도로가 보이지 않는다.
조부장은 이제 지쳐가고 있다
아직 별다른 피로감이 없어 좀더 걸었으면 했는데 임도가 나오길래 목적지가 다온 즐
알았는데 도래기재가 1.4km정도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온다 .
역시 백두대간 다운 익살이다 .
조부장이 실망의 빛이 역력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등반대장은 선두그룹이 8시간 이면 도착하리라 했는데 눈 쌓인 대간이 시간의 발목을 잡았다
우리는 10시간 10분에 걸친 긴 시간의 대간 주유를 마치고 구간 목적지인 도래기재에 도달했다.
대원 중 2명만이 도착해 있었고 바람부는 가운데 열심히 돼지고기 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향기 나는 사람
가장 어린 친구지만 벌써 몇 번째 자신이 찌게거리를 준비를 해오고 선두로 하산해서 내려
오는 사람들을 위해 찌게를 끓인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강원도 고갯마루에서 탁배기 한잔에 털털한 돼지고기 김치찌개
국물을 안주 삼으니 김현주 말대로 정말 그 국물 맛이 끝내준다.
그 격렬한 운동후의 시장기와 불가사리 식욕이 함께하니 무엇인들 입에 달라 붙지 않으랴?
가장 값싸고 가장 맛있는 성찬
다음에는 대원들에게 얘기해서 찌게 거리 비용이라도 걷어 주어야겠다
마지막 대원이 우리보다 3시간 늦게 내려오는 덕분에 “단순하게 살아라’ 책 한 권 다
읽고 돌아오는 길에는 잠까지 충분히 잤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단순하게 사는 방법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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