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간: 제 21구간 (궤방령-황악산-우두령)
도상거리: 14km
일 자: 2003년 3월 23일(일)
날 씨: 흐림
기 온: 2~15c
10 : 10 괘방령 출발
10 : 40 여시골산
11 : 10 운수봉(740m)
11 : 55 백운봉(770m)
12 : 15 황악산(1111.4m 비로봉)
헬기장에서 식사후 12시 15분 출발
12 : 50 형제봉
13 : 05 바람재 삼거리
13 : 20 바람재(헬기장)
13 : 45 무선 중계탑
14 : 00 1030m봉
14 : 25 985.6m봉
15 : 10 우두령
삶. 그것은 마치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다가오고 햇살처럼 퍼져 나간다.
그것은 세차게,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이나 거세게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이기보다는 섬세
한 작은 물방울들 같은 것이다.
그것은 강한 힘이기보다는 부드러운 빛과 같은 것이다.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의미-
인생에는 수 많은 즐거움과 고통과 그리고 빛나는 순간들이 점철되어 있다.
인생은 언제나 동일한 속도로 현재로 흘러들고 같은 흐름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그 흐름을 빠르게 혹은 느리게 함은 그저 그 시간 속에 머무르는 사람의 마음일 뿐이다.
작은 빗물이 도도한 강으로 흐르듯
순간의 작은 시간의 흐름들은 벌써 이만큼 인생의 나이테를 그었고 내 몸 구석구석에 세월
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몸은 늙어 가도 마음은 늙지 말아야 하는데…
수 많은 인생 길에서 그 숱한 선택의 길을 걸어 오늘의 내가 있음은 내의 의지라기 보다는
운명과 섭리와 같은 것은 아닐까?
그런 선택을 할 수 밖 없도록 프로그램 되어진 운명….
삶이 갑갑하게 느껴지는 날에는
그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거기 높아 있는 산이 있고 뭉게구름을 스치는 산들바람이 있다.
검은 구름과 폭풍우가 몰려와도 또 어떤가?
아침햇살이 저녁노을로 사그러지듯 어둠 속에 다시 새벽이 밝아오듯 그렇게 밀려오고 밀려가는 것이 인생인걸.
바람이 불어도 좋고, 붉게 타는 단풍을 보며 가랑잎을 밟아도 좋다. 눈이 오면 늙어 메말
라 가는 가슴마저 두근거리고
이제 꽃피는 봄이 오려니 산과 하늘이 더 누부시구나
깊이 사랑하고 간직할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이 있다면 , 아직 오를 수 있는 많은 산들과 추억할 수 있는 시간들이 가득하다면 우리 인생이 어찌 즐겁지 않을까?
우리가 한탄할 건 남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잃어버리는 시간들이 아닐까?
난 오늘도 가득한 봄의 희망과 大自然을 품에 가득 안고 저 넓은 벌판으로 떠나고 싶다.
어려움 속에 하산해서 더 이상의 비상에 실패하고 날개를 접었던 괘방령에는 10시 10분에
도착했다.
괘방령은 977번 지방도가 지나며, 옛날 도보로 다니던 시절에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세
관문 중의 서쪽 관문으로 주로 상로(商路)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박이룡이 의병을 일으켜 이 고개에 방어진을 치고 왜적을 막아 큰 공을
세웠다고 하는데 영동-김천간의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온통 흰 눈으로 덮여있던 황악산은 그간 따뜻했던 봄기운에 흰 눈 옷을 말끔히 벗어버렸다.
여시골산 가는 길이 하도 가파르다 보니 모두들 힘겹게 오른다. 지난 출정 때 무리해서 감행했더라면 아마 고생께나 했을 듯 싶다.
여시골산을 지나 산행을 계속해가는데 해발이 높아 지면서 아직 녹지 않은 만은 눈들이 남
아 있다.
이제 우리 팀들이 많이 단련이 되어서인지 가파른 능선을 몇 굽이 넘어서도 휴식할 줄 모른다.
오르는 길목에서 이채로웠던 자연 굴은 꽤나 깊다.
“저 굴 속은 미국의 벙커 버스터에도 안전할까?”
나중에 전쟁 나면 계룡대가 있는 대전은 위험하니 황악산에 와서 숨을까 보다.
대표적이 육산인 이 구간은 눈도 녹고 인적도 드물어 드문드문 지나치는 대간 종주팀과의
마주침 이외에는 한적하다.
운수봉 못 미쳐서 조망이 트인 언덕에서 휴식했다.
저 멀리 지난번 우리들을 혼냈던 가성산이 보인다.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저 산록이 날리던
눈발과 쌓인 눈에 그렇게 험하고 힙겹게 다가올 수 있었다니….
그래도 멋진 풍광과 기억에 남을 추억 이었다.
운수봉을 지나니 직지사 방면에서 올라온 등산객들이 많다. 백운봉에는 사방을 두루 조망할 수 있어 종주팀과 등산객들이 한무리 가득하다.
날은 흐리지만 봄기운이 완연하고 인근에서 단연 걸출한 산이라 제법 많은 등산객들이 산을 찾고 있는 모양이다.
모두 산을 닮아 가는 편안한 모습들이다.
두 시간 정도 오르니 억새가 하늘거리는 넓은 분지와 헬기장이 주변의 멋진 조망에 둘러
쌓여 홀연히 나타난다.
평화롭다
내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의 마을과 들판 그리고 흘러내리는 산주름이 정겹다.
그냥 평화로운 고봉의 편안하고 넉넉한 그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 셔터를 눌렀다.
황악산(黃岳山)은 경북 김천과 충북 영동면 상촌리 그리고 매곡면을 경계로 하며, 한반도
중추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내린 소백산맥 허리 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해발 1111.4m의 비로봉과 백운봉, 신선봉, 운수봉, 형제봉, 바람재를 아우르는 부드러운
능선의 흐름과 명찰 직지사를 품고 있다.
황악산은 옛날에 학이 많이 서식했다 해서 황학산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높이에 비해 산세가 완만하고 평탄하여 부드러운 느낌이 들고 토질도 좋아 산더덕과 나물이 많다.
1000고지를 넘고 있지만 별 특징 없는 육산 이라 황악산 비로봉은 그 산세에 비해선 많은
사람이 찾지 않는 셈이다..
민주지산 ,석기봉 ,삼도봉의 거봉과 큰 흐름으로 넘어 덕유로 연결되는 장대한 지맥의
힘찬 시발인 황악산은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긴 해도 그저 구수한 시골 아저씨와 같이
소박하고 후덕한 인상으로 실제 높이보다 낮아 보이는 그저 넉넉한 그런 느낌의 산이다.
비로봉 정상에서 바라보면 서쪽으로 민주지산이, 남쪽은 수도산이 위치한다. 길게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한반도 중간 허리를 탄탄하게 받혀주는 형상이다..
오랫만에 모두 함께 점심을 먹는다.
대부분 김밥이 주종이지만 따뜻한 봄날의 산들바람과 일찌감치 올라서서 바라보는 고원의 아늑한 풍광이 입맛을 한껏 돋운다.
식사후 정상에서 한 컷 때리고 나니 아래로 흐름을 잡는 능선을 따라 눈길이 간다.
남쪽으로 형제봉과 바람재가 발아래 내려다 보인다.
능선을 따라 편안하게 내달릴 수 있는 길이려니 했더니 의외로 길가에는 높은 눈두덩이가
남아 있다.
바람에 실려 능선 끝자락에 형성된 커니스
마지막 뒷꼬리를 감추고 있는 겨울의 모습이다.
그렇게 장쾌한 설국을 열어 주었던 겨울이 가는구나
웬지 코끝이 찡하다.
형제봉 가는 길에
곳곳에 폭설로 인하여 부러진 나무가 널려 있다. 가지만 부러진 게 아니라 나무의 큰 등걸
이 사정없이 쪼개져 흡사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 같은 처참한 모습이다.
폭설로 담을 수 있는 최대한의 적설을 머리에 인 나무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서 가지
가 뿌러지거나 등걸이 쪼개지는 것이다.
최전방에서는 한겨울 심야에 보초를 설 때면 눈을 이기지 못한 나무가 스스로를 갈라내는
소리가 골짜기에 날카로운 비명처럼 울려퍼진다.
산불에 홍수에 그리고 태풍과 심지어 내리는 눈에게 까지 수난을 당하는 나무의 운명도 서글프고 고단하다.
작년 여름 수해가 할키고 간 처참한 상흔을 보고 오늘 또 형편없이 찢기어진 나무들의 아픔을 본다.
불어오는 봄바람과 돋아나는 새순이 이제 그 아픔을 보듬어 주리라
한참을 내달려 형제봉을 지나니 신선봉 가는 길과의 갈림길이 나타난다. 신선봉 쪽으로 하산하면 직지사로 연결된다.
바람재에는 멋지게 단장해 놓은 넓은 헬기장이 있다. 주변에는 목장을 조성하여 목초지가
무성하고, 간간히 아직 녹지 않은 눈 위로 억새밭이 능선을 가득 메우고 있다.
바람재에는 간간히 바람이 목을 스친다.
상쾌한 느낌으로 기분이 날아갈 듯하다.
바람이 많아서 바람재 일까?
양쪽 능선이 막아선 분지 형태 인데 앞 뒤가 열렸으니 자연스런 바람 길이다.
꼭대기에는 중계탑과 간이 화장실이 있다. 군데군데 임도를 따라 대간길은 허리가 잘리고
일부만 남아 종주팀을 맞고 있다.
대간팀 모두 기분 좋은 멋진 산행이다.
밝은 아침과 함께 산뜻한 모습으로 맞이하는 산하의 풍광이어서 더욱 가벼운 발길이다.
1030m봉을 지나니 능선의 내리막길이 한눈에 보인다. 멀리 삼도봉과 민주지산이 보이고
그 너머로 덕유산 자락이 웅장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능선 길을 따라 경북과 충북이 구분된다.
점점이 보이는 민가가 너무도 한가롭다.
속세를 떠나 이 자연 속에서 나무와 농토를 가꾸며 사는 인생
은퇴와 함께 찾아야 할 내 삶의 모습이 아닐까?
아마 앞으로 머지 않아 서울이며 대도시는 사람이 살기에는 열악한 환경이 될 것이다.
좋은 공기와 맑은 물 이상 인간의 건강에 더 소중한 것이 있을까?
열심히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주유하면서 노년에 기거할 좋은 터를 한번 생각해 둘
일이다.
저 아래 영화 "집으로"의 실제 촬영장이 있다고도 한다.
계곡물이 흐르는 하천에도 곳곳에 복구 사업이 한창이다. 국토의 동맥이라는 경부 고속철
공사도 이젠 제법 골격을 갖추어 가고 있다.
누구랄 것 없이 이젠 종주팀의 실력이 평준화가 되어 간다.
이젠 집녑과 의지가 강한 골수 멤버 15명이 남았고 모두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등산의
고수가 되어 가고 있다.
피치 못한 소백권과 지리산권을 제외하고 이동거리가 짧다면 10시간 이상의 대간 구간도 야간산행 대신 새벽 4시에라도 기꺼이 출정하자는 열정을 보이는 걸 보면 백두대간 종주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들 그 눈부신 대간의 풍광에 매료되어 진정한 산꾼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리라.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들 올해 안에 모두들 백두대간을 무사히 완주하고 국토혈맥의 종단 천왕봉을 하산해 중산리 골짜기에서 성대한 축하파티를 벌일 수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두령에는 맛있는 김치찌개가 끓고 있고 무사히 구간종주를 마친 대원들의 구수한 대화와 돼지고기가 실린 김치찌개 향기가 봄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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