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5일
16구간 보충산행
가까이서 비로소 봄을 의식할 수 있는 4월에 맞이하는 첫 연휴다.
석유 말고는 메마른 사막일 뿐인 이라크에는 포연이 자욱하고 피흘리는 사람들의 통곡소리가 하늘을 덮고 있다.
그래도 봄은 온다.
보길도에서 동백 숲을 헤치고 보리밭을 지나던 봄 바람은 어느덧 목련이며 개나리며 진달래 벚꽃 까지 온갖 봄
꽃들을 가득 피워내고 북녘 어디쯤 인가 북상하고 있겠다
만물의 이치가 그렇듯 나와 우리의 아픔이 아니기 때문에 이라크 전쟁은 그저 강 건너 불일 뿐 우린 그저 문명의
발달로 생생하게 전달되는 전쟁의 참상을 마치 전쟁영화를 보듯 무감각하게 아침 저녁 뉴스로 대한다 .
아직 전쟁이 가져오는 참상과 황폐함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들은 달력의 빨간색으로 다가오는 휴일과 가족과
함께 나들이할 수 있는 평화의 소중함을 의식하지 못한다.
무료하고 때론 나른하고 변화가 없다고 투정을 부리는 우리의 단순한 일상이 공기와 혹은
마시는 물과 같은 것임을 TV화면에 비치는 외국 어린아이의 눈물과 숱한 주검만으로 어떻게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까?
세상은 집단의 이기와 욕심을 위해 움직인다.
어쩌면 미국만 쳐다보는 한국은 미국이 추구하는 극한의 이기에 다시 아연실색할지 모른다.
우리는 너무도 간단히 자행되는 전쟁에 이렇듯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음에 경악해야 하지
않을까?
언제나 역사의 주역이지 못한 국가의 국민들에게 늘어가는 건 낙천성과 배째라 배짱 뿐….
2002년 사월의 연휴 새벽밥을 챙겨 먹으며 전쟁뉴스를 보다가 배낭을 들쳐 메고 길을 나선다.
가는 곳은 전쟁터가 아니고 딱히 오라는 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
지는 눈부신 들판과 산의 유혹을 견딜 재간이 있으랴 ?
저 번 겨울 피치 못해 빼 먹은 백두대간 구간을 기우는 날이다
갈령-화령재 7시간 소요 예상 구간으로 지금 까지와는 다른방식의 단독산행이다. .
오늘은 화령재에 차를 세우고 자전거로 갈령 까지 가서 화령재로 넘어올 예정이다.
7시 30분쯤 집을 나섰는데 보은에서 자전거에 바람을 넣고 화령재에 도착하니 10시다.
화령재에 있는 화령장 지구 전적비는 1980년도 세워진 것으로 6.25전쟁 때 수도사단 제
17연대가 북한군 15사단을 궤멸시키고 낙동강 교두보를 확보하여 전장병이 1계급 특진의
영예를 얻은 사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트렁크에서 자전거를 꺼내 조립한 다음 지도를 보고 갈령으로 향한다.
날씨가 너무 화창해서 봄 빛에 얼굴이 탈 것 같다.
25번 국도에서 분기되는 49번 국도에는 실개천이 따라 흐르고 병풍처럼 막아선 가파른 산비탈에는 수줍은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다.
들판에는 온통 봄 빛이 가득하고 눈부시게 반짝이는 시냇물 옆 버들강아지는 흰 털망울을 터뜨려 버려
벌써 푸른 빛을 띠고 있다.
화령재에서 내리막을 쏜살같이 치달을 때는 기분이 좋았는데 평지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아대려니 속도는
빨라도 걷는 것 보다 훨씬 힘이 든다.
게다가 걷는 근육하고는 운동 부위가 다른지 허벅지가 뻐근해 온다..
도상 거리는 13KM 정도인데 오랜만에 화창한 봄볕을 헤쳐가려니 모처럼 마음 먹은 자전거 이동도 만만치 않다.
계속되는 경사로 이어지는 갈령 구비는 아얘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야 했다.
갈령에서 교통편이 여의치 않다고 들어서 자전거를 동원했는데 산행기점 까지 한시간이 걸려 이동했으니
대간 구간을 자세히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초반부터 너무 진을 빼지 않았나 싶다.
갈령 한 굽이 전에 자전거를 파킹하고 나니 벌써 시간은 11시다.
7시 30분에 집을 나서 산행기점에 서기 까지 3시간 30분이나 걸린 셈이다.
평균종주 시간이 7시간 이라 하니 1시간 단축해야 겨우 오후 6시에나 내려설 수 있다.
시간이 촉박한 셈이다.
리본이 있는 등산로를 접어 들려는데 산불감시인지 산림청직원인지 아저씨가 저편 부스에서 쫓아 나와 잡는다.
아저씨 “선상님 어디 가세유?”
나 “산에가는 디유”
아저씨 “산불 땜시 입산금지유 이 일대가 다 그래유”
나 “ 그람 어떠케유 대전서 왔는디”
아저씨 “ 저 아래쪽 속리산 천왕봉 등산로만 입산금지 아녀유”
나 “그럼 거기나 가지유 뭐…”
아저씨 “거기는 꽤 먼디 차는 어디 있시유”
나 “친구가 저 아래다 내려주고 같구먼요 차 으더 타고 가지유 머”
출발부터 순탄지가 않다.
한번 봐주지 않을 까 기대도 했지만 아저씨는 별 반응이 없다.
천황봉에 갈 마음은 애초 없으면서 나는 그저 아저씨를 안심시키려고 갈령 내리막 한굽이를 돌아 아저씨
로부터 시야가 가려질 때 까지 걸었다.
등산로가 아닌 산비탈을 올라 등산로에 접어 들어야 한다.
가장 만만한 장소를 물색하고 산으로 붙었는데 쌓여 있는 낙엽이며 가지들에 갈 길이 바쁜
발길이 더디기만 하다.
길이 없이 경사가 심한 비탈에서는 평소 땀하고 별 인연이 없다고 자부 하는데도 등산로에
접어 들기도 전에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그래도 20분 만에 능선 등산로와 만났다.
저 아래 갈령으로 끊어진 대간 능선이 코 앞에 보이고 도로는 내려 앉은 능선 사이로 굽이
쳐 지난다.
멀리 내 자전거가 누워 있는 모습도 보이는데 능선에 가린 감시초소는 보이지 않는다.
15분쯤 더 오르자 능선 정상에 도착한다.
멋진 노송의 유연한 가지의 흐름 사이로 보이는 조망에 마음이 다 후련해진다.
노송의 가지를 스친 솔바람이 순식간에 땀과 거친 호흡을 걷어 간다.
인적 없는 산 길에서 만나는 모처럼의 호젓함이다.
눈부신 사월의 태양에 산들바람이 너무 좋다.
불과 5분을 더 오르지 못한 곳에서 창졸 간에 또 감시초소와 마주친다.
아저씨 한명이 들어 있는데 서로 바라다 보았으니 계곡아래로 우회하기는 틀렸다.
백두대간을 늦은 시간에 시작하니 걸리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정면돌파 말고는 방법이 없다.
아저씨2 : “아니 여기는 어떻게 올라 왔어요? 밑에서 통제 안하던가요”
나 : “잘 모르겠는데요 갈령 아래서 계곡 쪽으로 올라 왔는데….”
아저씨2 : “어디 가실려구요”
나 : “화령재로 가는데유”
아저씨2 : “어디서 오셨어요?”
나 : “대전에서유”
아저씨2 : “연락처와 전화번호좀 대주세요”
그래도 우려했던 회군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지나는 시간대에 산불이라도 나면 나는 꼼짝 없는 방화범이 될 것이다.
벌금을 내던지 다시 회군하다가 비탈길을 되돌아 다시 오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한참 능선을 걷다가 갑자기 비탈길로 내려 치더니 절벽이 막아 선다.
절벽이 태양을 차단한 듯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낙엽아래 웅크리고 있다.
절벽 옆으로 난 길을 올라 작은 봉우리를 올라 서니 대간의 흐름이 이상하다.
솟구치던 산세가 자지러 지고 저쪽 안쪽으로 능선이 이어지지만 흐름이 약하다.
지도를 꺼내 본다.
아뿔사! 이 길이 아닌 개벼…
나는 백두대간 반대능선으로 두리봉과 암봉을 신나게 타고 가고 있었던 것이다.
갈령 저편에서 솟구쳐 올라 흘러내리는 능선이 바로 백두대간 이었다.
으레껏 도로가 넘어가는 고갯길은 대간을 관통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지도를 자세히 보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지금까지 올라 오면서 봄바람에 휘날리던 리본도 모두 백두대간 리본이 아니었고
이 능선에서 화령재로 간다는 나를 산불 감시인도 말려 주지 못했다.
우째 이런일이…
부정적인 상황의 삼위일체 였지만 두리봉 산신령님의 초대였을 것이다.
일부러 오기 어려운 대간 지선의 흐름을 돌아 보았으니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 아닌가?
회군은 12시 20분에 결정되었다.
급한 마음에 한달음에 오르막을 치고 내려와 감시초소 아저씨2에게 내려감을 고하고 다시
길 없는 능선을 허우적거리며 갈령에 내려섰다.
정규 등산로에 버티고 있을 감시인 아저씨 때문에 멀리서 봐두었던 산비탈로 차고 오르는
데 웬 경사가 그리 급한지 발아래 밀리는 낙엽에 체력소모가 심하다.
게다가 허비한 시간 때문에 마음이 급한데다 짧은 시간에 감행한 무리한 오버 페이스가 아직 출발 능선에도 서지
못한 긴 여로에 부담으로 남을 듯 싶다.
바람의 언덕에 올라서기 까지 1시간 걸렸다.
1시간 20분 올라간 길을 내려와서 대간 능선 중턱에 오르기 까지 빨리 오르긴 했어도 생각보다 힘이 더 드는 것 같다.
바람의 언덕은 뜨거운 땀을 식혀주는 더할 나위 없는 시원한 바람 때문에 내가 붙인 이름이다.
몇 사람이 누워도 충분할 것 같은 반석 위에 노송이 그늘을 드리우고 바람은 봄의 향기를
가득 실어 나른다.
뱀처럼 굽이치는 갈령 국도에는 봄빛이 화사하다.
갈길이 바쁜데 30분만 더 머무르다 떠 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나는 것은 바람의 언덕에서
굽어보는 풍광과 봄바람을 두고 가기가 아쉽기 때문이다.
1시 40분 비로소 시작 능선에 섰다.
새벽부터 설쳐댔으나 결국 나는 오전근무 마치고 산행을 시작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젠 점심을 먹고 새로운 기운을 북돋아야 한다.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식사를 마무리 하고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하는데 일단의
무리들이 진행방향 쪽에서 올라온다.
대구에서 오는 종주객들이다.
목적지 화령재에서 넘어오는데 여기까지 6시간 30분이 걸렸다고 한다. 천천히 걸었다고는
하는데 갈령까지 내려서면 7시간 소요되는 셈이다.
6시간 안에 화령재에 닿는다 해도 오후 8시
30분을 단축한다면 7시 30분에 내려설 수 있다.
문제는 체력이다.
자전거1시간과 2시간 30분의 비정규 등산로의 체력소모, 때 이른 더운 날 그리고 요즘의
체중증가가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헬기장을 지나 산허리를 돌자 샛노란 산수유 군락이 반긴다.
몽우리 없이 노란 잎으로 활짝 만개한 산수유 나무들
높은 고산지대라 뒤늦게 만개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진달래들은 모두 꽃 몽우리를 펼쳐내지 못하고 있다.
해발이 급속히 낮아지면서 활짝 핀 진달래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도심에 개나리라면 야산에는 한국의 봄을 제일 먼저 느끼게 해주는 진달래가 있다.
호젓한 산야 아직 신록이 물들지 않는 갈색의 대지 위에서 다소곳이 피어나는 진달래의
소박하고 수수한 아름다움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한 없이 떨어지는 고도가 길을 잘못들은 것 같아 지도를 본다.
대간은 급속히 낮아져 도로에 의해 끊어지고 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완전히 고도를 해발제로로 떨어뜨려야 하는 난감함
다시 큰 오름을 예비하고 있는 저 아래 작은 도로에 이젠 주눅이 들어 버린다.
백두대간을 갈라 치는 건 갈령이 아니라 비장의 비재더라….
바닥 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가파르게 일어 나는 산비탈을 오르다 아예 철퍼덕 주저 앉았다.
웬지 다리가 무겁고 맥이 없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는데……
누워서 잠시 쉬다 다시 스틱을 감아 쥐고 올라 가는데 내가 손에 쥐고 가는 건 스틱이 아니
라 부러진 나뭇가지 아닌가?
도무지 정신이 없다.
다시 되돌아 와서 혼자 누워 있던 스틱을 데리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물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한 모금 남겼고 오렌지 주스를 조금씩 나눠 마시면서 올라가는데 아무래도 해갈이
쉽지는 않다.
갑작스럽게 탄 자전거로 그동안 쓰지 않던 근육이 놀라서 인지 오른쪽 위 허벅지에 자꾸 경련이 온다.
아무리 좀 헤멧기로서니 그래도 겨우 다섯 시간 째 인데 창피한 노릇이다.
하여간 두개의 봉우리를 지나 봉황산으로 가는 동안 몇 번을 드러누워 휴식을 취했는지 모르겠다.
주위의 경관도 호젓한 산길을 걷는 여유로움도 생각할 겨를 없이 산행의 힘겨움만 의식하는 악전고투의 상황이니
오늘의 컨디션은 최악이다.
그나마 두개의 봉우리를 힘겹게 넘어 봉황산 코 앞에서 소나무가 걸터 앉아 있는 큰 바위
에 올라서자 시원한 바람이 대차게 불어온다.
찬찬히 살펴보니 참으로 장쾌한 조망과 함께하는 멋진 능선의 흐름이다
피곤한 눈길 위에도 거칠 것 없는 청정의 풍광이 불어내리는 바람처럼 시원하다.
그래서 산은 언제나 잊을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고통은 뿌듯함과 대견함으로 남고 멋진 계절의 풍광은 추억으로 가슴에 남는다.
오후 5시 40분이 되어서야 봉황산에 도착했다.
오늘 대간로 상에서 처음으로 대하는 봉황산 표석과 반가운 3명의 종주객을 함게 만났다.
시작점에서 종주객 몇 명을 만난 것 말고는 처음 대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봉황산에서 굽어보는 인근의 산록과 분지는 눈부신 봄빛에 쌓여 있다. 거칠 것 없이 터지는 시야와 시원한 고원의
바람이 긴 여정의 피곤함을 걷어간다
서울서 왔다는 3명의 종주객은 대문짝 만한 지도를 펼쳐놓고 주변을 조망하고 있었는데.
기지재에서 왔다고 하니 아마도 8시간 이상 산을 탓을 듯 싶다.
2명의 남자와 한명의 여전사인데 비재로 내려가 마을에서 콜택시를 불러서 기지재로 이동할 예정이란다.
기념사진을 서로 한장씩 찍어주고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어쨌든 봉황산에서는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물을 한모금 얻어 먹어서인지 내려가는 길이 이젠 거의 내리막 2시간 정도만 남겨 놓아서
인지 발길이 아주 가벼워졌다.
50분 소요예상이던 산불 감시초소에는 30분만에 도착했는데 아저씨 한 분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는데
알고보니 무전기를 소지한 산불감시인이다.
이 늦은 시간에 여기에 웬일 이냐고 곧 어두워지니 빨리 내려가란다.
감시초소에서 인근을 조망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 갔다.
현재시간이 6시 10분이니 지금 속도로 7시 10분이면 충분히 내려설 수 있다.
그러면 갈령-화령재의 오늘구간은 힘겨웠지만 5시간 40분 정도에 산행을 마무리하는 셈이다.
다시 힘이 솟으면서 발에 힘이 붙는다.
길을 따라 한참을 진행하는데 언제부터인지 백두대간 리본이 보이지 않는다.
“산불감시인이 다 떼어버렸나”?
급기야 잡목의 잔가지가 가득한 길로 접어드는데 도무지 백두대간로 같지 않다.
지도에도 잡목 숲의 위치가 그대로 표기되어 있어 의구심 속에서도 일단 전진해보자는 마음으로 가기 어려운
길을 따라 계속 전진한다.
진돗개 2발령
비상상황이다.
바위로 내려선 길에서 길은 끊어졌고 되돌아서 다시 회령재로 내려서기에는 등산로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불가능하다.
어두워지기 전에 정상적인 대간로를 찾는다면 헤드렌턴으로 길을 따라 내려 갈 수 있지만
길을 찾기 전에 어두워 지면 낭패다.결단을 내려야 했다.
아직 어둠이 내리기 전이니 저 아래 도로와 집을 기점으로 내려 가는 수 밖에 없다.
오늘을 시종일관 나만의 전용 등산로를 만들어 가는 날이다.
길눈이 어두운 것도 고백해야 한다.
어둑해지는 날에 상당한 고도의 45도 급경사를 내려 가야 하는 절박함.
상대적으로 고도가 낮은 구간이라 얕잡아 본 것이 패인이다.
어쨌든 도로와 평행선을 유지하던 능선이니 망정이지 첩첩산중 등산로 였다면 낭패를 당했을 게다.
낙엽 아래 잔돌들이 많이 있는 구간에서 육중한 체중으로 대차게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넘어 지는 통에
오른손 바닥에 상처를 입었다.
어떤 비탈 구간에서는 발이 바위틈에 끼어 빼느라 악전고투를 하기도 했다.
어쨌든 7시가 넘어서 어둠이 서서히 드리우는 도로에 내려 설 수 있었다.
개울가에서 손과 얼굴을 씻고 나서 실루엣진 대간 능선을 바라보니 안도의 한숨이 나오긴
하는데 잃어 버린 한시간의 등산로가 아쉽기만 하다.
어쨌든 이제는 화령재를 찾아 가는 것이 문제다.
어두워지는 도로에는 이따끔 자동차 불 빛이 지난다.
지도를 보니 어디쯤에서 단추를 잘못 끼웠는지 감이 잡히지 않고 능선의 흐름으로 보아
내려온 지점을 예측할 수 없다.
아마 한시간 정도 남겨 놓은 구간 이었으니 그다지 멀지는 않을 게다.
이 시간에 국도상에서 지나는 차를 세워도 태워 줄 리가 만무하다.
도로를 따라 3km를 걸어 민가로 들어서서 화령재를 물었다.
중간 갈라지는 능선 안쪽을 타야 하는데 와곽 능선을 탓기 때문에 잘못 내려섰다고 한다.
화령재 까지는 10리라고 했다.
속보로 40분 거리인 셈이다.
또 하염 없이 국도를 걸어보자.
칠흑의 어둠이 깔린 대지는 스산하다.
인적과 불빛이 끊어지고 이따끔 국도를 오가는 자동차 불 빛만 길게 다가와 굉음을 남기며
스쳐 지난다.
어둠에 쌓인 49번 국도의 교통량은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하늘위엔 날카로운 모습의 초생달이 어둠속에 혼자 떠있다.
터덜거리는 발 길에 올려다 보이는 달이 오늘은 퍽이나 처량하다.
도로가 지나는 들판이 이렇듯 어둠과 정적에 쌓일 수도 있다니....
화사한 봄이 희망으로 가슴 부풀었던 식목일 대간 단독출정은
처량한 7km의 국도 걷기로 대미를 장식했다.
저녁 8시가 넘어 도착한 화령재는 어둠에 쌓여 있었고 나의 애마는
풀풀 날리던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 쓴 채 어둠 속에서 말 없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갈령으로 가서 자전거를 수습하고 대전에 도착하니 시간은
10시를 넘어서고 있다.
3시간의 운전
1시간 자전거
8시간 산행
그리고 1시간 20분 걷기
참으로 어지러운 하루의 숨가쁜 일정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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